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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 물건이 최고’인 시대는 지났다

기사승인 [115호]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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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SINESS] 독일 할인점의 변신

 알디·리들 등 할인마트는 매장 장식과 포장을 없애는 방식으로 비용을 낮춰, 생필품과 식료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해 성공했다. 그런데 이들 마트가 초저가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기사에서는 독일 마트를 세 형태로 나누었다. 알디와 리들은 할인마트, 레베와 에데카는 중대형 마트, 레알과 카우플란트는 대형 마트로 분류했다.

 
마르셀 라스쿠스 Marcel Laskus 자유기고가
 
   
▲ 독일 함부르크 알디 매장을 지나가는 사람들. 최근 독일에서는 알디, 리들 등으로 대표되는 할인점들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REUTERS
뮌헨 시내 쾨니히스플라츠 지하철역 부근은 사회의 시대정신을 감지하기에 적합한 장소다. 뮌헨 공대, 근대회화미술관 같은 건물을 둘러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독일 경제가 지금 누구 손에서 좌우되는지 알고 싶다면, 체인 할인점 페니(Penny) 신규 매장에 가서 옥수수통조림과 장기 보존 우유를 찾아봐야 한다.
페니 쾨니히플라츠 점장인 슈테판 마겔이 버버리 신발과 재킷을 걸치고 매장 안으로 들어선다. 고객을 응대할 때 아주 적합한 차림새다. 그 뒤로 미닫이 자동문이 스르르 닫힌다. 중년 남자 한 무리가 문밖 지하철역 입구에 서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손에 보드카병을 들고 있다. 마겔이 그들을 쳐다봤다가, 다시 매장 안 직원에게 시선을 돌려 묻는다. “저 바깥에 있는 남자들이 우리 매장에서 물건을 살까?” 그러고는 두 사람 모두 웃음을 터뜨린다. 
저 바깥 풍경은 말하자면 옛 고정관념 그대로다. 그들 모습에서 ‘할인마트 고객’ 하면 떠오르는, 값싼 물건을 찾는 중장년층이라는 고정된 이미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반면 자동문 안쪽  세련된 매장 안 현실은 사뭇 다르다. 대부분 고객은 몸에 착 달라붙는 양복을 입은 젊은 사람으로, 매장에 비치된 고객용 쇼핑바구니를 들고 판매대 통로를 거닐고 있다. 천장에 따뜻한 조명이 밝게 빛나고, 한쪽에 샐러드바도 보인다. 과자와 초콜릿 판매대에서 이 슈퍼마켓 자체 브랜드를 부착한 싼 제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마겔조차 하리보(Haribo), 밀카(Milka), 리터슈포르트(Ritter Sport) 사이에서 페니 상표를 부착한 초콜릿과 사탕을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이 페니 매장을 자체상표부착 등을 통해 초저가 상품을 파는 할인마트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페니의 할인마트처럼 저가 상품으로만 고객을 공략하는 시대가 끝났다는 징후인가? 
마겔은 “뮌헨에 연 새 매장은 페니의 실험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5년 동안 독일에서 페니 매장 400곳이 문을 닫았다. 대신 부분적으로 상권이 가장 비싼 지역에 신규 페니 매장이 들어섰다. 이 대체 매장은 기존 페니보다 가격대가 높고 상품도 다양하다. 중대형 마트, 예를 들어 에데카(Edeka)와 놀랄 만큼 비슷하다. 
독일은 유럽에서 식료품비가 가장 싼 나라다. “인색한 것이 멋진 것”이라는 광고 문구를 만든 나라도 독일이다. 그런데 독일에서 더 이상 싼 게 ‘쿨’하지 않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 뒤 독일에서 국민소득이 9년이나 지속해서 올랐다. 독일 국민은 다시 이전처럼 소비할 능력이 있고 그러기를 원한다. 
페니가 쾨니히스플라츠 매장 같은 실험을 다시 할지, 시도한다면 언제일지, 마겔은 현재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2100개 점포를 보유한 레베그룹 계열사인 페니가 아무 계획 없이 뮌헨 고급 상권에서 영업을 시작할 리 만무하다. 페니의 이 ‘콘셉트 매장’은 할인마트 업계 생존이 불안해지자 신규 고객 확충 차원에서 론칭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할인마트의 요즘 행보를 보면 마치 장 볼 목록을 적은 메모지를 실수로 집에 두고 시장에 온 사람처럼 무계획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물론 저렴한 식료품을 파는 할인마트는 여전히 거대한 매장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 베를린에 있는 리들 매장. 매장 장식과 포장을 없애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해 생필품과 식료품을 싼값에 공급했던 리들과 알디가 초저가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REUTERS
소득 높아진 만큼 소비 선호
발트해에서 이자르강에 걸친 지역 도시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새로 지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 지역 할인마트의 2019년 상반기 매출액은 겨우 0.1% 늘었을 뿐이다. 사실상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20년간 흑자를 낸 알디노르트(AldiNord)는 2018년 처음 적자를 기록했다. 이 몫은 할인마트보다 판매 물건이 현저히 많아 ‘중대형 슈퍼마켓’이라는 레베와 에데카 매장에 흡수됐다. 
레베와 에데카는 2019년 2% 가까운 매출 증가를 보였다. 심지어 2018년에는 4% 성장률을 보였다. 2016년 당시 레베그룹 사장인 알랭 카파로스는 한 인터뷰에서 “지금부터 5년 후면 저가 식료품 위주 할인점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마겔은 이 기사를 읽자마자 곧장 카파로스 사장에게 “그렇다면 도대체 왜 나를 고용했느냐고 농담조로 물어봤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카파로스는 그로부터 채 5년이 지나지 않아 체운트아(C&A·독일 대형 의류매장)로 자리를 옮겼다. 마겔은 여전히 페니에 남아 있고, 늘 바쁘다. 과거에는 할인마트 특성이 확연히 구분됐다. ‘초저가’가 슬로건이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른 요소는 모두 부수적이었다. 
지금은 알디, 페니, 리들(Lidl) 같은 할인마트가 변화를 꾀하고 있다. 과거 수년간 저가 경쟁 외에 소홀했던 점을 보완해 추락한 경쟁력을 회복하려 애쓰고 있다. 이를테면 계산대 앞 현금출납 서비스, 유기농 식품 판매 등이 그렇다. 기능적인 면뿐 아니라 매장 인테리어도 개선하고 있다. 유통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딱딱한 할인마트가 부드러워진다’는 말로 표현한다. 얼마 전 알디는 가장 오래된 알디 에센(Essen)점 폐점을 알렸다. 과거보다 엄청나게 많아진 판매 물건을 다 비치하기에 장소가 너무 협소했기 때문이다. 
할인마트 매출은 답보상태에 있지만 영업비용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알디노르트는 2년 전부터 53억원을 투자해 알디 매장 2300곳 모두를 개·보수하고 있다. 페니와 리들도 비슷한 전략을 쓰고 있다. 값싼 완두콩통조림 정도나 골라서 살 수 있는 곳이라는 기존 이미지를 없애려고 노력한다. 요즘은 할인마트에 가는 사람도 이전처럼 매대 위에 쌓인 한 종류의 물건만 찾지 않는다. 예를 들어 모차렐라를 살 때도 고객은 모차렐라 한 종류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할인마트도 유기농 모차렐라, 뷔펠모차렐라, 유당 없는 모차렐라까지 함께 진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할인마트의 변화 노력은 다음과 같은 맹점만 없다면 그럴싸하게 보인다. 맹점이 가시적으로 나타난 장소가 뮌헨 쾨니히스플라츠에서 북쪽으로 430㎞ 떨어진 곳이다. 라이프치히 동쪽에 있는 이 지역 주민은 연간 구매력이 뮌헨 주민보다 평균 1만유로(약 1300만원)나 떨어진다. 이 지역 대다수 주민에게 저가 식료품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 베를린에 있는 에데카 매장의 로고. 에데카와 레베는가격이라는 기능성과 다양한 품목을 쇼핑하는 체험이 합쳐지는 ‘가능성의 공간’으로 인식되며 저변을 넓히고 있다. REUTERS
‘메레’ 독일에 100개 매장 출점 계획
어느 금요일 오전 개장 시간보다 10분 이른 시각, 두 노년 여성이 먼저 도착해 개장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이 있는 곳은 메레(Mere)마켓이다. 메레는 러시아에서 가장 큰 할인매장으로, 독일 알디보다 더 싼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다. 공교롭게도 라이프치히-타우하에 있는 이 점포에 메레가 들어서기 이전에 바로 알디가 입점해 있었다. “내 친구한테 여기 파프리카 절임이 아주 싸다는 정보를 들었다.” 한 여성이 말했다. 두 여성 모두 신분을 밝히기 꺼렸다. 값싼 마트에서 장 보는 것을 창피한 일로 여기는 듯했다. 15분이 지나자 매장은 손님으로, 그로부터 얼마 뒤에는 그들의 쇼핑카트에도 물건으로 가득 찼다. 
메레에서는 우유 가격이, 초저가 할인마트인 리들과 알디보다 8센트 더 싸다. 65살 여성의 쇼핑카트에 파프리카 절임병 6통이 실려 있다. 그 옆에 초콜릿, 소시지, 콩도 보인다. 카트가 자우어크라우트(소금에 절인 양배추)가 있는 선반 앞을 지나간다. 10㎏ 큰 통이 4유로87센트로 꽤 저렴하다. 
뮌헨의 페니 매장과 달리 라이프치히에 입점한 메레 매장에는 깔끔한 진열대가 아닌 허름한 선반 위에 상품이 겹겹이 쌓여 있다. 천장 전등은 희미한 빛을 내보낸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절약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조차 어느 정도 품질을 갖춘 상품을 원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올봄 문을 연 독일 1호점 메레는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마겔도 라이프치히로 차를 급히 몰았다. 혹시라도 페니가 최저가를 선호하거나 값싼 제품을 사는 소비자를 관리하는 데 소홀했던 것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반년이 흐른 지금 메레가 공언했던 100개 매장 중 현재 문을 연 곳은 라이프치히점 말고는 단 한 곳, 츠비카우점뿐이다. 메레 쪽에 앞으로 출점 전략을 물었으나 어떤 답도 듣지 못했다. 메레의 ‘초저가’ 콘셉트도 독일 할인점 미래를 책임질 전략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할인마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시장조사기관 GfK의 로베르트 케츠케스는 “할인마트가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싼 가격도 중요하지만 이제 고객은 지속성·품질·안전·위생 같은 주제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리들과 알디 등 할인마트와 레베와 에테카 등 중대형 마트의 차별점은 오랫동안 분명하게 유지돼왔다. 특히 중대형 마트는 가격이라는 기능성과 다양한 품목을 쇼핑하는 체험이 합쳐진 ‘가능성의 공간’이었다. 반면 할인마트는 한 가지 가능성, 즉 저렴한 상품 구입이라는 기능과 효율의 공간으로만 인식됐다. 그런데 페니의 뮌헨 매장 사례처럼 변화 조짐이 있다는 것이 로베르트 케츠케스의 분석이다. 
식료품 거래 형태가 변한 것은 소득과 동시에 시대정신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도시 주민은 요즘 자가용을 몰고 레알(Real)이나 카우플란트(Kaufland) 같은 대형마트에서 일주일치 장을 한꺼번에 보기보다는, 가까운 상점에서 그때그때 조금씩 제품을 사는 편이다. 대가족 형태가 아니라면 집 안에 식료품을 대량 비축해두지 않는다. 이는 대형마트 유행이 지났다는 얘기다. 
 
   
▲ 베를린에 위치한 레베 매장. 알디·리들 등의 할인점 매출은 답보상태이지만 레베·에데카 등 다양한 품목을 완비한 슈퍼마켓의 매출은 꾸준히 늘고 있다.REUTERS
금융위기 오면 식료품 비용부터 아껴
유행에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2019년 3월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에서는 그 지역 역사에서 유일무이할 집단시위가 일어났다. 유기농 상점과 고급 의류점의 입점이 늘면서 인근 알디 매장이 폐점했는데, 이를 반대하는 시위였다. 알디 폐점으로 싼값에 물건을 살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이 사라질 것을 두려워한 주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시위하는 사람 속에는 어린 소녀도 있었다. 소녀 손에는 “우리 할머니에게는 알디가 꼭 필요해요”라고 쓴 팻말이 들려 있었다. ‘우리 할머니들’이라고 복수로 썼어도 사실과 맞아떨어지는 내용일 것이다. 할인마트 가운데 알디는 60살 이상 고객을 가장 많이 확보한 곳이다. 
현재로써는 할인마트의 ‘초저가’ 전략이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실제 할인마트들은 옛 콘셉트를 유지하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리들 쪽은 “미래에도 할인(초저가) 원칙은 우리 회사의 강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알디노르트 쪽은 “우리가 할인마트라는 점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알디쥐트(Aldi Süd) 역시 “시대 흐름과 발맞춰간다. 그럼에도 항상 알디쥐트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경영 방침을 강조했다. 이 모든 발언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매장이 지금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멋져야 한다. 그러나 값이 비싸다는 인상을 줄 만큼 멋질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고객이 이것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리들과 알디가 추구하는 고급화 전략이 궁극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지 미리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지역 특성에 맞춰 레베나 에데카 같은 중대형 마트 형태를 표방한 매장을 오픈하는 것이다. 또는 레베나 에데카 등의 콘체른(기업 결합)처럼 할인마트와 중대형 마트 형태의 매장을 계열사로 묶어 동시에 운영하는 방법이다. 실제 레베그룹은 계열사인 페니 매장의 고급화를 실험 중이고, 에데카그룹은 네토(Netto)마켓으로 할인마트를 선호하는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슈테반 마겔에게 뮌헨 쾨니히스플라츠에 자리잡은 페니 콘셉트 매장에 왜 ‘레베’ 마크를 붙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우리 콘체른 안에서도 이 질문이 나왔다. 쾨니히스플라츠 매장은 그런 포맷이 초저가 식료품을 찾는 고객에게 과연 호응을 얻을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실험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같은 계열사인 페니와 레베는 일찌감치 긴밀히 협업하고 있다. 광고 예산, 물품 구입, 운송까지 공동으로 처리한다. 단골고객에게 구매액 일부를 돌려주는 페이백 시스템을 이용해 고객 구매 습관도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도 두 회사를 하나로 통합하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마겔은 “상품 가격과 종류는 앞으로도 두 마트 특성과 차별점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전에 상사였던 알랭 카파로스 대표가 언급했던 5년이 아니라, 여기에 5년을 더 보태 10년 뒤에도 할인마트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마겔 역시 할인마트의 미래 모습이 현재와 비슷할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알디노르트와 알디쥐트는 이미 상대방 브랜드 상품을 함께 팔기 시작했다. 알디는 자체 브랜드 상품 가격도 올렸다. <식료품신문>은 그 배경에 알디 쪽이 전면 부인함에도 할인재량권을 더 많이 확보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할인마트가 희망을 걸 수 있는 건 시장 경기다. 이미 조짐을 보이는 경기침체가 개별 가계 구매력까지 약화한다면 이 상황이 할인마트 경쟁력을 더욱 탄탄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두려워하거나 직업을 잃은 사람은 가장 먼저 식료품 구매비부터 아낀다. 마겔은 “그렇다고 경제위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어쨌든 위기가 닥치면 바로 그때 페니가 나서면 된다”고 말했다. 
 
ⓒ Die Zeit 2019년 40호
Geiz wird ungeil
번역 장현숙 위원

 

마르셀 라스쿠스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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