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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합법적 마약상?

기사승인 [115호]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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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FE] 진통제 오·남용 논란

 적잖은 의사가 중독성 있는 꼭 필요하지 않은 진통제를 처방한다. 매년 수만 명이 진통제 오·남용 후유증으로 사망하는 미국처럼, 독일에도 오피오이드(Opioid·암 등으로 극심한 통증을 겪는 환자에게 처방하는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 위험이 있을지 모른다.

알렉산더 에프 Alexander Epp
베로니카 하켄브로흐 Veronika Hackenbroch <슈피겔> 기자

유디

   
▲ 중독성 있는 진통제 처방으로 수많은 환자가 후유증을 겪고 있다. 심지어 죽음 문턱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REUTERS

트 딜(32·가명)은 10년 전 네덜란드 레이우아르던에서 대학 진학 후 바로 요통을 앓았다. 이사 도중 세탁기를 들어올리는 순간 사달이 났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통증이 등에 엄습해 눈앞이 노래졌다. 척추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그는 요추간판탈출증으로 과거에 진료받던 독일의 정형외과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는 그에게 트라마돌 성분 약물을 처방했다.
트라마돌은 체내에서 모르핀이나 헤로인처럼 동일한 수용체에 결합하는 진통제다. 트라마돌은 효과가 그다지 강하지 않아 마취제법에 적용받지 않는다. 2018년 독일에서 트라마돌 성분은 하루에만 6420만 번 처방됐다.
다른 진통제와 마찬가지로 트라마돌은 중독성이 있다. 특히 성분이 금방 뇌로 흡수돼 중독 위험이 더 크다. 의사는 딜에게 단기간만 트라마돌을 복용하라고 주의를 줬다. 그 역시 트라마돌이 아스피린이나 파라세타몰 등 기존 진통제와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트라마돌을 복용하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딜은 의사가 더 이상 트라마돌을 처방해주지 않자, 한 통증치료사를 찾아가 처방전을 받아냈다. 그가 처음 처방받은 트라마돌은 1일 3회 20정이었지만 이 분량은 진통 완화에 거의 도움이 안 됐다. 점차 약물을 30정에서 40, 50, 70, 80정까지 늘렸다. 나중에는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하고 싶어 트라마돌 복용량을 계속 늘려야 했다. 처음 한 달 기준으로 처방받은 1000정이 담긴 병이 어느 순간 열흘도 채 안 돼 비워졌다.
대학에 진학한 이듬해, 딜은 트라마돌이 통증을 전혀 완화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원하는 만큼 트라마돌을 처방받기도 어려웠다. 병원에선 그에게 트라마돌을 처방해주려 하지 않았다. 딜은 자신에게 트라마돌을 처방해줄 의사를 찾아다녔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트라마돌을 처방해주려 하지 않았다.
딜은 마약상 등 불법 경로로 트라마돌을 구할 수도 있었다. 트라마돌은 암시장에서 자주 압수되는 진통제다. 최신 유럽 마약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유럽에서 트라마돌은 1억1900회 분량이 단속 과정에서 압수됐다.
딜은 마약상을 찾는 대신 술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알코올은 진통제 미복용에 따른 증상을 완화해줬다. 저녁에 가볍게 마시던 와인 한두 잔이 금세 도수가 센 알코올을 들이부어 마시는 수준까지 알코올중독이 악화했다. 끝내 그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고, 만신창이가 됐다. 어느 날 저녁 약상자에 든 약을 모두 꺼내어 한입에 다 털어넣고 보드카를 병째 들이마셨다. 당시 그는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 10년 전 허리를 다쳐 트라마돌을 처방받았던 유디트 딜은 부작용을 경험했다. 통증이 완화되고 두려움이 줄고 우울증에도 덜 시달린다고 느낀 그는 약을 지속해서 복용해 심각한 중독 증상까지 겪었다. REUTERS

진통제 오·남용으로 죽음 문턱
딜은 진통제 오·남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사례에 불과하다. 최신 전염병 중독 설문조사에 따르면 16~64살 독일인 190만 명이 매일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다. 대부분 아스피린, 디클로페낙(항염·진통·해열 작용을 하는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 약물), 이부프로펜 등 처방전이 필요 없는 의약품이다. 처방전이 필요 없는 진통제 판매량은 2008년 3천만 개에서 2017년 5천만 개로 급증했다.
2019년 5월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일부 지역에서도 미국처럼 수백만 명이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 오·남용 위험이 우려된다. 실제 이로 인한 사망자 수는 2016년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처음 넘어섰다. 스웨덴, 노르웨이, 영국, 아일랜드, 웨일스에서 2011년부터 2016년 사이 오피오이드 오·남용 사망자가 급증했다. 이 시기에 독일에서도 오피오이드 처방량이 대폭 늘었다.
전세계의 진통제 처방 수치 또한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2019년 10월 첫째 주 발표된 ‘의약품 리포트’에 따르면, 2018년 오피오이드 진통제는 매일 총 4억2200만 개가 처방됐다. 이 보고서를 발표한 울리히 슈바베는 “최신 의약품 리포트 결과는 독일에서 진통제 처방 관련 유효한 지침이 준수되지 않음을 명확히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그는 “통증 치료가 제약업계 홍보마케팅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고 비판한다. 이로 인해 불필요한 비용이 생기고 위험한 부작용을 불러오며 중독자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의사들은 오피오이드를 근본적으로 달리 생각하기 시작했다. 30년 전만 해도 말기 암환자에게 매우 효과적인 진통제 처방에도 아주 소극적이었는데, 오피오이드 처방은 2000년부터 2018년까지 두 배 이상 급증했다. 현재 오피오이드 처방전의 약 80%는 말기 암환자가 아닌 환자에게 발급되고 있다.
암을 제외한 등·허리·무릎 등 만성통증은 대부분 복잡한 생물학적·심리학적 요인에서 기인한다. 중환자가 아닌 사람에게 오피오이드 진통제 오·남용은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오피오이드 진통제가 크게 도움이 안 되는 통증 종류도 많다.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만성 등 통증과 관절염 환자의 약 3분의 1에서 최대 절반까지만 실제 오피오이드 진통제 복용이 도움이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만성통증을 놓고 다른 진통제와 비교할 때 효력이 더 강한 오피오이드는 환자의 고통을 더 완화해주지 못한다. “오피오이드 진통제는 만성통증일 때 제1순위로 선택할 약이 아니다.” 괴팅겐의과대학 통증의학과 프랑크 페츠케 의무부장은 지적한다. “오피오이드 진통제 처방시 환자가 실제 이를 통해 얻는 손실보다 이득이 더 많은지 확인해야 한다.”
미국에서 오피오이드의 심각한 오·남용 사태 뒤 일부 의사는 만성통증일 때 오피오이드 처방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바트 베르카 학제간통증치료센터 요하네스 루츠 의무부장은 많이 움직이고 유의미한 대화를 나누며 이완 연습을 하는 것과 동시에 심리학적 치료, 즉 기분 전환이나 삶의 방향을 바꾸는 등 이른바 다학제간 복합통증 치료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다학제간 복합통증 치료의 목표는, 통증을 받아들이고 통증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요하네스 루츠 의무부장은 한 비교연구에서 놀라울 정도로 명료한 결론에 이르렀다. 오피오이드 진통제를 지속해 복용하는 환자와 비교했을 때, 오피오이드 진통제 복용을 중단한 환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통증이 완화되고 두려움이 줄며 우울증에도 덜 시달린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마취과 의사로 일하는 동안 오피오이드 신봉자였다”며 “하지만 만성통증 환자에게 오피오이드가 전혀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알게 됐다”고 말했다.

   
▲ 최신 진통제 중독 조사에 따르면 16~64살 독일인 190만 명은 매일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다. 대부분 아스피린, 디클로페낙, 이부프로펜 등 처방전이 필요 없는 의약품이었다. REUTERS

중독 위험 간과 의약품 의존성
의사에게 약으로 통증을 최대한 빨리 없애달라고 요구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 의료진은 이런 환자들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 “의료진 문제는 통증을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다.” 아네트 베커 마부르크대학 일반의학과 교수는 지적한다. 상당수 의사가 통증 치료를 일종의 전쟁으로, 오피오이드 진통제를 ‘강력한 무기’로 명명하는 것이 현실이다. 제약업계 역시 통증을 완전히 사라지도록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을 의사와 환자에게 세뇌하는 데 성공했다.
제약회사 먼디파마(Mundipharma)는 ‘통증 없는 병원’이나 ‘통증 없는 도시 뮌스터 이니셔티브 연합’ 등의 프로그램을 후원하고 있다. 베를린 자선의대 마취과 의사 크리스토프 슈타인 센터장은 이런 프로그램으로 전달되는 메시지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한다. “만성통증 환자의 치료 목적이 통증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될 수 없다.” 먼디파마사는 이런 프로젝트의 목적을 “통증에 대한 지식 부족과 진통제 수급난을 인지하고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취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이니셔티브는 연구 프로젝트라는 외피를 둘렀지만 실상은 홍보 수단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한 예로 프레가발린(Pregabalin)은 대상포진 등 신경 손상으로 생기는 통증을 완화해준다. 다국적 제약회사 화이자는 의사들이 만성통증 환자의 신경병적 통증 원인을 알게 하는 질문지 목록 작성을 지원했다. 물론 화이자는 질문지에서 어떤 치료법도 별도로 추천하지 않았다는 뜻을 밝혔다. 그럼에도 <의약품 처방 리포트>에 따르면, 15년 전 프레가발린 진통제가 승인된 뒤 지금까지 처방 횟수는 계속 늘었다.
독일 의사협회 의약품위원회는 2011년 프레가발린에 중독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마약중독자들이 환각 증세를 느끼기 위해 복용하는 약물은 프레가발린이다. 오피오이드 중독 위험성은 오랫동안 과소평가됐다. 의사와 제약회사는 통증 환자가 오피오이드를 복용하더라도 절대 중독될 염려가 없다는 의견을 오랫동안 고수했다. 하지만 미국 제약기업 퍼듀(Purdue)는 오피오이드 중독 위험을 애써 무시한 마케팅으로 고액의 벌금을 내야 했고 이후 파산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오피오이드 중독성이 대수롭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주로 인용하는 것이 40년 전 발표된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이다. 오피오이드를 처방받은 환자 1만2천 명 가운데 중독 증세를 보이는 환자는 4명에 불과하다고 언급한 11줄 분량의 문구가 참고 문헌이라는 명목으로 아직도 소환되는 것이다. 2017년에야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은 40년 전 비교연구 보고서를 근거로 미국인이 오피오이드 진통제를 안심하고 복용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11줄짜리 기록에 불과하나, 이 문구가 독일 의사에게도 충분히 영향을 미쳤다”고 마취과 의사 크리스토프 슈타인은 지적한다.
오피오이드 복용 환자가 얼마큼 중독 증세를 겪는지는 의학 연구로 조사된 경우는 거의 없다. 종양 외 이유로 장기간 만성통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치료 기간에 겪는 오피오이드 오·남용과 중독성은 환자의 3.27%에서만 확인됐다는 것이 극소수 연구보고서에서 겨우 확인될 뿐이다.
유디트 딜 사례에서 오피오이드가 그를 죽음 문턱까지 몰고 갔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나마 역설적으로 딜의 몸이 오피오이드와 알코올에 너무 절어 있어, 자살을 생각하고 마지막 순간 먹은 진통제 양도 목숨을 앗아가기에 충분하지 않았을 뿐이다. 딜의 자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부모는 딸을 즉각 재활센터에 입원시켰다.
딜은 3년 전 오피오이드 복용을 중단했다. 유통업에 일하기 위해 직업교육을 받는 그는 최근 자립단체를 만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의약품 의존성을 중독으로 생각하지 않는 건 정말 문제다. 의사가 처방한 의약품이라서 나쁘지 않다고 믿는 건, 분명 잘못됐다.”

ⓒ Der Spiegel 2019년 40호
Der Doktor als Deal
번역 김태영 위원

알렉산더 에프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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