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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은행 등 경제주체마다 엇갈린 표정

기사승인 [117호] 202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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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END] 저금리가 바꾼 프랑스

기욤 뒤발 Guillaume Duval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2019년 11월2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ECB 본부에서 새로 발행된 유로 지폐의 사용을 알리는 연설을 하고 있다. ECB의 단기 대출금리는 2016년부터 0%다. REUTERS

기록적으로 낮은 금리가 이어지고 있다. 금리는 경제구조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금리가 낮으면 누구에게 좋고, 누구에게 좋지 않을까? 저금리 여파가 끝나지 않은 지금, 프랑스 경제 곳곳을 진단해본다.

1. 달라진 시대
먼저 충격 강도를 재야 한다. 단기금리부터 떼어놓고 보자. 몇 개월짜리 거래에 적용되는 단기금리는 유럽중앙은행(ECB)이 결정한다. 은행이 ECB에서 대출받을 때 적용되는 이 단기금리는 2016년부터 0%다. 거래 기간 1년 이상 장기금리는 가계와 기업이 자금을 마련할 때나 국가가 채권을 발행할 때 적용된다. 경제 활력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금리다. 장기금리는 은행과 거래자, 가계와 기업 수요에 따라 금융시장에서 자유롭게 결정된다.
그러나 ECB는 몇 년 전부터 돈을 푸는 양적완화로 장기금리를 낮춰왔다. 2014년 말~2019년 11월 ECB가 사들인 국채와 사채는 2조4750억유로(약 3270조원)어치, 유로존 국내총생산(GDP)의 20%였다. 그 덕택에 유럽 정부와 기업은 아주 낮은 이자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었다. 채권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이들은 줄곧 금리 인하를 요구했다.
이 분야 지표가 10년 만기 국고채금리다. 가계와 기업의 대출이자는 국고채금리를 따라 오르거나 내리며, 항상 국고채금리보다 높다. 2019년 11월 프랑스의 10년 만기 국고채금리는 0%에 머물렀다. 프랑스 정부가 투자자한테 10년 동안 돈을 빌리는 데 이자 한 푼 안 내도 된다는 말이다. 프랑스에서 국고채금리는 1981년 15.9%까지 올랐다. 1960~97년에는 5%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경제 활력을 결정하는 건 명목금리가 아니라 물가상승률에 따라 바뀌는 실질금리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금리를 물가상승률보다 높게 설정해 차익을 얻으려 한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금리인 실질금리가 경제주체의 투자 능력과 경향, 즉 경제 활력을 결정하는 핵심이다.
2018년 프랑스 10년 만기 국고채 실질금리는 -0.6%였다. 1984년부터 유로가 탄생한 1999년까지 항상 4% 이상이었고, 1990년에는 6.9%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은 물가상승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1970년대뿐이었다. 금융이자가 절대적 우위에 있던 1980~90년대가 끝나고, 이제는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쓴 표현대로 “금리생활자의 안락사”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유럽 어디든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18년 실질금리가 0%를 넘어 이자 부담을 진 나라는 현재 큰 위기를 겪는 그리스를 비롯해 포르투갈, 이탈리아, 키프로스, 폴란드,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몰타 여덟 곳이다. 모두 금융위기 타격을 크게 입은 국가다. 프랑스도 사정이 좋은 편은 아니다.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영국, 벨기에 등 13개국은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덕에 재정 부담을 덜 수 있었다.
1990년대 말 이후 실질금리 인하 추세가 거의 예외 없이 이어지자 모든 경제주체의 부채가 급격히 올랐다. 당연한 결과였다. 1995년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6.4배였던 총부채 규모가 2018년 13.4배로 늘었다. 25년 만에 2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2. 가계대출과 저금 동시 증가
가계가 겪은 변화는 엄청나다. 1973 ~97년 프랑스 가계의 금리소득은 항상 GDP의 2%를 웃돌았다. 1985년에는 290억유로(약 37조원)로 GDP의 3.9%에 이르렀다. 2018년 예·적금 금리소득은 GDP의 0.6%(140억유로)에 그쳤다. 6분의 1 토막이 난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배당금 수입은 GDP의 0.6%에서 1.6%로 크게 늘었다. 생명보험금과 투자수익도 비슷하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지표에 거의 잡히지 않던 이들 소득이 2018년에는 GDP의 1.9%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모든 종류의 자본소득을 살펴보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2년 7.5%에서 2018년 4.1%로 줄었다. 1978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가계는 저금을 꾸준히 하고 있다. 1995년 GDP의 1.4배였던 금융자산이 2018년 2.2배로 늘었다. 그 수준은 ECB가 양적완화를 시작한 2015년부터 유지되고 있다.
가계부채 상황도 많이 달라졌다. 대출받는 가계 구성이 바뀌고, 대출이자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1990년 GDP의 2.6%를 기록하고, 1977~97년 1.5%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지금은 겨우 0.6%에 머물러 있다. 역으로 가계부채는 증가하는 추세다. 1995년 GDP의 41%에서 2018년 71%로 대폭 늘었다. 그러나 2010년부터는 가계부채 규모에 큰 변화가 없다. 가계가 투자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 2019년 11월29일 최대 쇼핑 시즌인 블랙프라이데이에 프랑스 낭트 주민들이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있다. 저금리로 돈이 넘치자 가계 저축과 더불어 대출도 늘었다. REUTERS

3. 쌓이는 기업 잉여금
기업이 낸 순수이자 총액은 1992년 GDP의 3.7%에서 2018년 0.5%로 엄청나게 떨어졌다. 195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기업 배당은 1992년 GDP의 4.8%에서 2018년 1.6%로 쪼그라들었다.
기업도 부채가 늘고 있다. 1995년 GDP의 2.3배였던 기업 금융부채가 2018년에는 5배로 증가했다. 하지만 동시에 자본잉여금도 쌓이고 있다. 프랑스 통계청(INSEE)에 따르면, 순부채(전체 차입금에서 기업 현금자산을 뺀 금액)는 GDP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응급 상황은 아닌 셈이다.
우려해야 할 점은 오히려 급변한 환경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기보다 금융자산만 불리는 기업의 소극적 태도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기업이 보유한 비금융자산(실물자산) 가치는 2010년부터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 2017~2018년 다시 늘어났다.

4. 가장 큰 수혜자 정부
기록적인 저금리의 수혜자는 물론 정부다. 금리가 낮아진 덕에 정부는 순이자로 겨우 380억유로, GDP의 1.6%만 썼다. 1984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1996년 정부가 낸 순이자도 380억유로였지만, 당시에는 GDP의 3.1%였다. 정부 금융부채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늘고 있는데도 이런 상황은 여전하다. 정부 부채는 2007년 GDP의 32%에서 2018년 77%로 10년 동안 2배 넘게 증가했다.
그렇다고 불안해할 것은 없다. 정부의 금융부채가 이렇게 늘어도 정부가 보유한 비금융자산 가치보다 적기 때문이다. 프랑스 통계청에서 부채-자산 격차가 지난 몇 년 동안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차이가 있다.

5. 고통받는 금융계
저금리 상황에서 중요한 경제주체는 은행이다. 금리 하락은 은행이 팔려는 현금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뜻해서 은행에는 반가운 소식이다. 은행의 주요 역할은 가계에서 단기간 돈을 빌린 다음, 더 높은 이자로 장기간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금리가 0%에 가까워지면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아 다른 곳에서 수입원을 찾아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계좌 관리 수수료가 급격하게 오른 이유다. 프랑스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자금 예치 수단인 생명보험은 안전한 국채에 주로 투자해 가입자에게 약정한 수익을 보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질금리가 가장 높았던 1992년 예·적금 이자를 뺀 금융기관의 순이자 수익은 GDP의 4.3%를 기록했다. 2018년에는 1.8%에 그쳤다. 순배당이익도 하락세를 보여 2018년 GDP의 0.5%에 만족해야 했다. 현재 사업모델이 위기에 놓였지만 자사 주식 가치를 유지하려면 배당금을 올려야 했다.
은행은 자연스럽게 생명보험금과 공동투자자금(FCP)을 2008년 GDP의 3.9%에서 2018년 2%까지 축소했다. 이런 노력에도 순금융소득은 뚝 떨어졌다. 2008년 GDP의 2%에서 0.3%로 줄었다. 물론 아직은 충격 완화 매트가 두껍게 깔렸고, 중개인과 경영진에 두둑한 보너스와 급여를 챙겨줄 수 있다. 하지만 지점이 문을 닫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어떤 이는 1980~90년대와 비교하면 지금은 ‘영광의 30년’(1945~75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균형을 (드디어) 되찾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프랑스 경제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은 △예산 정책이 전과 같이 빡빡하고 △가격 낮추기식 일자리 정책이 가계 사정을 불안정하게 만들며 △중기 경제 전망이 환경 위기까지 겹쳐 여전히 불안정하고 암울하기 때문이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9년 12월호(제396호)
A qui profitent les taux d’intérêt bas?
번역 최혜민 위원

 

기욤 뒤발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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