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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좇는 ‘묻지마’ 투자에 경종

기사승인 [117호] 202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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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기획] 위기의 소프트뱅크 ② 결과

팀 바르츠 Tim Bartz
마르틴 헤세 Martin Hesse
기도 밍겔스 Guido Mingels
마르셀 로젠바흐 Marcel Rosenbach
<슈피겔> 기자

   
▲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왼쪽)은 2000년 중국 온라인 쇼핑몰 알리바바에 2천만달러를 투자했다. 현재 손 회장이 보유한 알리바바 지분은 1천억달러 이상 가치가 있다. 손 회장과 마윈 알리바바 창립자가 2019년 12월6일 일본에서 열린 도쿄포럼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REUTERS

일본에서 태어난 손정의 회장은 미국 생활 초기 영어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에서 경영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대학생 손정의는 전자사전을 발명해 전자기업 샤프에 170만달러에 팔았다. 손 회장이 대성공을 거둔 최초 사업이었다.
손 회장은 그로부터 몇 년 지나 1981년 컴퓨터 프로그램 유통회사인 소프트뱅크를 세웠다. 1994년 소프트뱅크 주식을 공개한 손 회장은 몇 년 뒤 그의 인생에서 최대 투자를 했다. 손 회장은 2000년 당시 서구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 온라인 쇼핑몰 알리바바에 2천만달러를 투자했다. 현재 손 회장이 보유한 알리바바 지분은 1천억달러 이상 가치가 있다.
손정의 회장은 이후 투자의 귀재로 통했다. 이미 그때부터 손 회장은 기업 지분을 매입하기 위해 주로 은행 대출을 받았다. 손 회장은 몇 년 전 일본 정부의 도쿄 영빈관으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초대해 긴급 자금을 지원해달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그는 훗날 “45분 만에 450만달러 지원을 사우디 왕세자에게서 약속받았다”고 자랑했다.
손 회장의 ‘모 아니면 도’ 전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반려견 산책 플랫폼 웨그(Wag) 사례가 잘 보여준다. 웨그는 비전펀드 투자 중에서도 가장 불가사의한 사례로 손꼽힌다. 샌프란시스코 기술업계 관계자들은 손 회장의 웨그 투자를 가리켜 “실리콘밸리 역사상 가장 멍청한 투자”라고 비웃기도 했다.
웨그에 반려견 산책 서비스를 신청하면 반려견 돌보미가 신청 접수 즉시 신청자 집을 방문한다. 도우미는 자신이 산책시킬 반려견에게 줄 간식까지 준비해 온다. 반려견 산책 서비스 신청자는 앱을 통해 서비스 수수료를 낸다. 수수료는 산책 30분당 20달러다. 우버 기사처럼 웨그 앱에 등록된 반려견 돌보미도 동시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돌보미는 일이 가장 많이 들어온 주에 400달러를 벌기도 한다. 반려견 산책 분야 우버인 셈이다. 큰돈이 오가는 사업은 아니지만 기발하고도 일상에서 긴요한 서비스다.

급작스러운 웨그 앱 투자
비전펀드는 2018년 1월 웨그에 3억달러 투자를 급작스럽게 결정했다. 웨그는 투자자를 물색하면서 759만달러 이상은 생각지도 않은 터였다. 이 투자 건을 잘 아는 미국의 한 벤처캐피털업체는 “웨그 관계자가 비전펀드의 엄청난 투자액에 열렬하게 환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려워했다”고 전했다.
웨그 쪽은 비전펀드가 반려견 아파트나 호텔을 찾아주는 서비스 앱을 출시한 경쟁업체 로버(Rover)에 투자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렌 셔먼 교수는 “우리가 비전펀드 투자를 거절하면 경쟁업체 로버가 소프트뱅크 투자를 받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했다”고 전했다. 그렇게 웨그가 소프트뱅크 투자금을 종잣돈 삼아 반려동물 서비스 앱 시장을 지배하리라는 건 충분히 예상되는 수순이었다.
던컨 데이비드슨은 소프트뱅크가 투자하기도 훨씬 전에 웨그에 투자했던 벤처캐피털 투자자다. 그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웨그에서 거대한 성장 잠재력을 봤다. “웨그는 당시 반려동물 돌봄, 사육, 사료, 치료 등 반려동물 원스톱 서비스를 했다.”
소프트뱅크는 웨그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동시에 경영진도 물갈이했다. 웨그 설립자들은 결국 회사를 떠났고, 그 뒤 웨그는 중심을 잃으면서 비전펀드가 투자할 당시 기업가치에도 훨씬 못 미치는 가격으로 매각을 기다리고 있다.
렌 셔먼 교수는 비전펀드의 웨그 투자 사례에서 냉혹한 결론을 내린다. “손정의 회장과 비전펀드는 기업가정신과 혁신, 스타트업계에 그 누구보다 심대한 해악을 끼쳤다.”
뮌헨의 벤처캐피털업체 타깃파트너스(Target Partners) 쿠르트 뮐러 공동설립자도 “소프트뱅크의 대규모 투자가 기업윤리를 망친 경우도 있다”는 견해에 공감한다.

   
▲ 2020년 1분기로 예정된 중국의 인공지능(AI)·콘텐츠 스타트업 바이트댄스 기업공개가 소프트뱅크의 운명을 가늠할 전망이다. 바이트댄스의 현재 기업가치는 750억달러(약 88조원)다.REUTERS

투자기업 성장 혈안… 수익 뒷전
소프트뱅크는 독일에서 중고차 거래 플랫폼 오토1(Auto1), 핀테크 대기업 와이어카드(Wirecard), 베를린에 본사를 둔 투어·액티비티 플랫폼 겟유어가이드(Get Your Guide)에 투자했다. 비전펀드는 사전에 선정된 전세계 기업들에 1천억유로를 투자했다. 하지만 쿠르드 뮐러는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가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철저히 따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투자하는 기업 성장에만 혈안이 돼 있고, 수익은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소프트뱅크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선진국에서 저금리와 높은 저축률로 얼마 되지 않은 소수의 고수익 투자처로 시중자금이 몰려들 수밖에 없다. 대규모 사모펀드는 상장 대기업에도 과감한 투자를 한다. 연기금은 엄청난 채무에 짓눌려 있는 국가의 국채를 초저금리에 매입한다. 파산한 기업도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받아 목숨을 연명한다. 소프트뱅크는 수익 지상주의를 여실히 보여주는 극단적인 상징일 뿐이다.
수년 동안 스타트업들은 대규모 투자를 받기 위해서라면 굳이 주식을 공개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기업공개를 하지 않은 스타트업들은 규제 대상이 아니었고, 3개월마다 수익과 적자를 공개할 의무도 없었다. 기술기업을 향한 맹목적인 신봉은 더욱 굳건해졌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대규모 투자자가 비전펀드에 느끼는 불안이 점점 커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매년 가을 사막의 다보스포럼에 해당하는 미래투자이니셔티브(Future Investment Initiative)가 열린다. 미래투자이니셔티브는 중동 지역 대형 국부 관계자, 미국 월가 관계자, 정치인, 독일 대기업 경영진이 만나는 장으로 통한다. 2018년 미래투자이니셔티브를 지배한 주제는 사우디아라비아 유력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이었다. 2019년 10월 말 열린 미래투자이니셔티브에서는 소프트뱅크와 비전펀드의 참담하리만치 저조한 실적이 화두였다.
비전펀드 1호의 최대 투자자는 150억달러를 투자한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국부펀드였다. 라지브 미스라 비전펀드 CEO를 위시한 펀드매니저들이 위워크를 비롯한 여러 투자처에서 대대적인 손실을 본 것에, 아부다비 국부펀드 쪽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참담한 투자 실적을 기록한 비전펀드의 불똥이 튀지 않을까 아랍에미리트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국부펀드가 비전퍼드 2호에 더는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에미리트보다 좀더 느긋한 상황이라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이 사우디아람코 기업공개로 말 그대로 돈방석에 앉기를 기대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사우디아람코 기업공개로 생기는 수익 일부가 비전펀드 2호에 투자될 수도 있다고 한다.
소프트뱅크가 출시한 비전펀드 2호는 20억달러 규모로, 애초 목표액인 1천억달러 수준에 크게 못 미쳤다. 비전펀드 2호 출시 전부터 렌 셔먼 교수는 “비전펀드 2호는 이미 죽었다”며 “비전펀드 2호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앞으로 몇 년간은 말이다”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비전펀드 2호의 저조한 투자에서 최대 피해자는 소프트뱅크 자회사나 비전펀드에서 대대적인 투자를 받은 기업이 될 것이다. 바이트댄스(틱톡)와 더불어 음식배달업체 도어대시(DoorDash)나 포스트메이츠(Postmates) 등이다.
렌 셔먼 교수는 “이들 플랫폼은 이제 마음을 접어야 한다. 이들이 주식을 공개할 가능성은 제로다”라고 지적한다. 월가가 수익 없는 성장에만 관심을 가졌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 Der Spiegel 2019년 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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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김태영 위원 

팀 바르츠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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