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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한 디지털시장 베를린 빌딩 ‘싹쓸이’

기사승인 [118호] 20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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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SUE] 독일 부동산 큰손 로켓인터넷- ① ‘뭉뚝한 끌’ 수법

 디지털 창업으로 부를 축적한 잠버(Samwer) 형제가 최근 부동산 투자를 확대하자, 세입자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민은 거주지에서 쫓겨날까, 의사는 영업 중인 병원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디지털 세계에서 통용되던 ‘퍼니머니’(Funny Money·불안정한 돈)가 실물경제로 유입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마르틴 크노베 Martin Knobbe 
안톤 라이너 Anton Rainer
필리프 자이프트 Philipp Seibt
안드레아스 바세르만 Andreas Wassermann
로빈 빌레 Robin Wille <슈피겔> 기자
 
   
▲ 잠버 형제는 신생기업 개발과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로켓인터넷(Rocket Internet)을 창업한 뒤 디지털산업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이들이 이제는 베를린 부동산에 눈독을 들이며 현물시장 투자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왼쪽부터 알렉산더 쿠틀리히 이사, 올리버 잠버 최고경영자(CEO), 피터 킴벨 최고재무관리자(CFO). REUTERS
의사 자비네 뮐러(58)는 퇴근이란 걸 모른다. 무려 8개국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이 여성은 시·청각 장애를 가진 환자를 위한 진료 시간을 따로 운영한다. 뮐러가 중점적으로 진료하는 사람들은 부인과 질환이 있는 여성과 여성암 환자다. 환자를 위해 뮐러는 하루 24시간 전화를 켜놓는다.
뮐러는 여성 환자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그에게 진료받는 여성 환자 수는 약 1만6천 명이다. 그중 5천 명은 정기적으로 병원에 오는 환자다. 대부분 나이가 많거나 돈이 없는 환자다. 베를린 알렉산더플라츠 근처에 있는 키츠 구역은 콘크리트 건물이 즐비한 곳이다. 이 지역을 통틀어 개업의는 뮐러 단 한 명뿐이다.
뮐러의 진료실은 카를마르크스알레 거리에 자리잡은 ‘건강의 집’ 건물 안에 있다. 늦어도 2020년 5월에는 진료실 문을 닫아야 한다. 7개월 전, 건물주가 임대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계약기간이 끝나가는 시점이었지만, 계약 연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정말 이런 난리가 없다. 이 건물은 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된 의료빌딩이다. 그런데 이제 이곳 주민은 마지막 남은 의사 단 한 명까지 잃게 됐다. 이건 거의 범죄 수준이다.” 
뮐러가 이렇게 분노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새 건물주 때문이다. 2016년 6월21일 이 건물을 1280만유로(약 164억원)에 산 사람은 뮌헨에 본부를 둔 ‘아르고부동산주식회사’다. 몇 년 전부터 인터넷사업 분야에서 인색한 투자자로 악명 높던 잠버 형제 중 막내인 알렉산더 잠버가 이 회사의 공동출자자 중 한 명이다. 두 형 마르크와 올리버 역시 이 사업을 함께한다. 이들은 인터넷 패션회사 찰란도(Zalando)와 휴대전화 시그널 톤 판매회사 잠바(Jamba) 설립을 주도했다. 신생기업 개발과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로켓인터넷(Rocket Internet)을 창업하기도 했다. 로켓인터넷은 현재 26억유로의 유동자본을 갖고 있다. 이 ‘악당 삼 형제’가 베를린 부동산 시장에 입성한 것이다.
<슈피겔>과 독일 제2공영방송 <ZDF> 시사 프로그램 <프론탈21>(frontal 21)의 공동조사 결과, 잠버 형제가 지난 몇 년 사이 거의 눈에 띄지 않게 성공적으로 노선을 변경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터넷 세계 거장들이 전통 분야인 현물 투자를 점차 확대한 것이다. 
출자회사라는 복잡한 구조를 이리저리 통과하면서 이들은 도시 부동산을 사들인다. 뒤셀도르프, 드레스덴, 레겐스부르크 같은 도시 부동산이 매물이 되기도 하지만, 핵심 대상은 베를린 부동산이다. 잠버 형제가 베를린에서 사들인 건물들의 가치는 최소 1억5천만유로에 이른다. 베를린 미테지방법원 소관구역 내 건물의 매매계약서에 나타난 액수만을 근거로 뽑아낸 수치다.
 
   
▲ 독일 베를린 도심 거리를 걷는 여성. 잠버 형제가 도심빌딩을 대거 사들여 높은 임대료를 요구하면서, 영세한 입주민들이 쫓겨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REUTERS
잠버 형제, 현물 투자 ‘올인’
로켓인터넷 같은 투자회사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성공을 확실히 약속하는 광고를 해서 출자금을 끌어들였다.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재계를 혁신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신생기업을 골라 띄워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성공담을 좋아하는 투자자는 성공 보장과 혁신을 내거는 신생기업의 주식을 기꺼이 사들인다. 이때 이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로켓인터넷이 그렇게 칭송하는 기업 중 흑자 회사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잠버 형제가 부를 쌓을 때 사용한 도구는 ‘희망’이라는 원칙이었다. 이제 이들은 과거에 누려온 사업모델을 더는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 그동안 모은 자금을 다른 곳에 투자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재 투자 대상은 전쟁·자연재해·혁명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는 한 확실하게 가치를 유지하는 대상, 즉 건물과 토지다. 물론 독일에만 국한돼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다.
브레멘의 경제학자 루돌프 히켈은 유사한 현상이 미국에서도 관찰된다고 말했다. 디지털 재벌이 관장하던 자금이 자체 디지털 분야 개발에 쓰이는 일이 점점 드물어진다고 했다. “디지털 분야 이윤이 점점 줄면서 투자 관심도 떨어지고 있다.” 인터넷사업에 비하면 부동산 경제는 등락 요소가 적고 위기가 닥치는 일도 드물다. 
로켓인터넷이 최근 주주총회에서 사업 대상을 부동산 거래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자체 발표에 따르면 이 기업이 가진 부동산은 현재 전체 자산의 0.4%에 그친다. 그러나 이 회사의 창립 멤버인 잠버 형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른 법인을 통해 건물을 계속 사고 있다. 대부분 상업용 건물이다.
신경제가 구경제를 만났다. 그러나 두 세계가 융합하는 것은 위험하다. 디지털 광부의 ‘가상화폐’(Funny Money)가 도시 부동산 등 보수적으로 성장한 곳에 흘러들면 불균형이 일어난다. 히켈은 “잠버 형제는 그들의 사업모델로 베를린 얼굴을 변형시키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되면 혁신을 가져오는 창조적인 힘이 상실된다. 평범한 세입자, 우리 주변의 능력 있는 소규모 장인도 사라진다.” 병원 문을 닫아 갈 곳이 없게 된 뮐러처럼 다른 세입자들도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다.
뮐러는 새 임대주가 행사하는 압력이 처음부터 분명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어느 날 건물 공사장 인부가 갑자기 병원으로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벽에 해머드릴을 댔다. 건물 관리인은 건물 안전성이 의심스러운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뮐러는 “그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이 건물이 1920년부터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지 물을 수밖에 없다”며 어이없어했다.
뮐러의 변호사인 의료법 전문가 볼프강 퓌츠 역시 “그 행위는 전형적인 횡포”라고 지적했다. “전문가 사이에선 이것을 ‘뭉툭한 끌’ 수법이라고 한다. 귀찮은 세입자를 쫓아내는 방법으로, 세입자가 지쳐 스스로 나가게 하는 전략이다.”  
 
   
▲ 마르크 잠버와 올리버 잠버는 인터넷 패션회사 찰란도(Zalando)와 휴대전화 시그널 톤 판매회사 잠바(Jamba)의 건립을 주도했다. 최근에는 부동산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REUTERS
임대료 인상에 세입자 내쫓겨
이 건물 관리를 맡은 아우구스투스매니지먼트아키텍처는 반론을 제기한다. 뮐러와 건설적으로 협상했으나 그가 “터무니없이 높은 배상액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회사 쪽은 건물 재개발로 병원 진료 영업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돼 임대계약 해지를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당분간 월세를 면제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뮐러는 “제안받은 건 사실이지만, 내가 공사 시작보다 일찍 건물을 비운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고 반박했다.
2016년 12월 어느 날, 뮐러의 병원 진료실 천장 한쪽이 갑자기 뜯겼다. 콘크리트 조각이 마구 떨어졌다. 뮐러는 그날을 떠올렸다. “내가 탄 지하철 운행이 지연돼 병원에 늦게 도착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콘크리트 조각이 내 머리통을 내리쳤을 것이다. 그날의 충격은 꽤 오랫동안,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 사고에 대한 관리업체의 해명은 이렇다. “뮐러의 진료실 위층에 새로 입주한 세입자가 내부 공사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뮐러의 말은 다르다. 공사를 한 건 개인이 아닌 잠버 형제가 운영하는 건설회사라고 말했다. 
법적으로 따져보면 복잡한 사안이다. 건물 매입 계약서를 보면, 아르고부동산주식회사는 “최소한 60개월간 건물 거주 면적의 절반을 의료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임대하며, 같은 기간 동안 건강 관련 경제 분야 서비스 업종 세입자를 위해 비워둬야 한다. 여기에는 상업성 피트니스 스튜디오도 해당한다”고 의무 규정에 명시해놓았다. 건물주가 이 규정을 어길 때는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동시에 이 계약서에는 “의사 세입자를 구하려는 (증명 가능한) 노력에도 세입자를 발견하지 못할 경우에는 해당 면적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도 있다. 마치 아르고부동산주식회사가 도망갈 길을 마련해주는 듯한 예외 규정이다.
퓌츠 변호사는 “의사 세입자를 구하지 않을 요량이면, 입주 기간이 짧은 임대계약서를 내보이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지적한다. 진료실을 새로 개업할 경우 시설비 투자비용이 많이 든다. 의사가 영업 공간을 빌릴 때, 임대 기간이 최소 10년인 것이 통상적이다. 뮐러는 수술실까지 포함해 진료실 전체 내부 인테리어에 25만유로를 투자했고, 대출금도 아직 다 갚지 못했다. 뮐러는 반문한다. “중하층 시민을 대놓고 배신하라는 뜻이다. 어떻게 환자 생존을 이토록 파괴할 수 있나. 이들이 죽어가는 걸 그냥 보고만 있으라는 말인가.”
아우구스투스매니지먼트아키텍처는 이 사안에 대해 “이 건물을 매입한 뒤 임대계약 기간이 해당 건물의 이용 약관에 나와 있는 기간을 넘어서는 의사에 대해서는 새로 입주하는 형식으로 바꿔 계약 기간을 연장해줬다”는 답변을 보냈다.
반면 이 건물 사정을 잘 아는 뮐러가 새로 입주하는 의사를 단 한 명도 알지 못하는 건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뮐러의 변호사 역시 의아하기는 마찬가지다. 새로 진료실을 구하는 의사는 백이면 백, 임대계약서를 의료법 전문가에게 가져가 검토를 맡긴다. 만약 아우구스투스 쪽 말대로라면 계약 건이 의료계와 법조계 동료 사이에서 널리 알려졌을 텐데, 그런 일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천주교병원 법인에 소속된 알렉시아너의료양로센터도 건물주한테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일반가정의 두 명과 비뇨기과 의사 한 명이 근무하던 이 센터가 문을 닫으면서 오랫동안 이 건물에서 영업한 약국도 생계수단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약사 로렌츠는 “개업 의사가 근처에 없는 상황에서 약국을 경영해봤자 남는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약국 고객이 느끼는 불안감은 아주 크다. 보행이 자유롭지 못한 83살 노인 환자가 한 달치 요실금 처방약을 받기 위해 베를린시 이쪽과 저쪽 끝을 걸어다녀야 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나.” 
 
ⓒ Der Spiegel 2019년 51호
Stumpfer Meißel
번역 장현숙 위원

 

마르틴 크노베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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