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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에도 확산 저지 ‘역부족’

기사승인 [119호] 20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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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기획] 가짜계정의 온상 페이스북 ② 한계

 마이크 바움게르트너 Maik Baumgärtner
로만 회프너 Roman Höfner
<슈피겔> 기자

   
▲ 페이스북 가짜 계정들은 개인의 데이터 수집뿐 아니라 여론 조작, 연구, 광고, 바이러스 확산, 인터넷 사기 등에 활용해 이익을 취하려는 목적으로도 사용된다. REUTERS

가짜 네트워크의 핵심이자 큰 영향력을 가진 가상 인물은 로베르 고티에일 것이다. 프랑스 국적의 이 남자는 사진만 봐도 갓 30살이 안 된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다. 짧은 턱수염을 기른 그는 아르마니 모델로 일한 적이 있다고 했다. 현재 파리의 대형 로펌 법인에서 일하는데, 업무차 전세계 위험 지역을 다닌다고 했다.
고티에는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현장에 거의 모습을 드러냈다. 2017년 초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벌어진 도네츠크 전투에 우크라이나군과 동행했다. 몇 개월 뒤 허리케인 ‘허비’가 미국 텍사스 대도시 휴스턴을 강타했을 때는 현장에서 소식을 전했다. 사진도 있다. 2018년에는 시리아에서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납치돼 고문당했고, 터키군이 그를 구했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납치 2주 만에 풀려났다.
이후 자칭 고티에는 시리아전쟁 과정과 범죄 관련 사진을 올렸다. 게시물은 친쿠르드, 친러시아 성향을 보인다. 그는 이민자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를 전파했다. 편지에선 이민자를 향해 “왜 젊은 남자가 유럽으로 오는가” “왜 그들은 고향에서 싸우지 않는가” “왜 ‘그들 종교’에 부합하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 같은 나라로 도피하지 않는가”라고 묻는다. 계정에 올라온 사진과 글 아래에서 군인, 경찰, 법률가가 세계의 정치 사건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많은 이가 고티에와 마찬가지로 현실에 없는 가상 인물이다.
죽은 언니를 애도하는 알리스 베르크만에 관해서도 댓글이 달린다. 디지털 연속극에서 베르크만은 고티에를 스토킹하는 전 여자친구다. 고티에의 친구 중 일부는 베르크만을 싫어하고, 다른 몇몇은 베르크만을 변호한다. 현실에서의 삶과 같다.
가짜 네트워크 프로필은 대부분 아름다운 이상형에 부합하는 남녀 사진을 올린다. 광고 사진처럼 보인다. 20~40살 여성은 비키니를 입은 셀카를 올린다. 비슷한 나이대 남성은 운동하는 모습이나 근육질 몸매가 드러나는 사진을 게시한다. 이들은 대체로 친절하게 글을 쓰고, 서로에게 키스와 하트를 보낸다. 프로필에는 어두운 내용도 담겨 있다. 수많은 계정이 증오 어젠다를 따른다. 이들은 인종차별적 내용을 퍼트리고,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나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숭배한다.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어조가 빠르게 비인간적으로 바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들의 공식적인 적이다. 손에 피를 묻힌 모습으로 합성된 메르겔 사진을 올려 그를 살인자라고 욕한다. 영화 <스타워즈>의 악역 다스 베이더와 합성된 마크롱 사진에는, “로스차일드 빌더버그 갱스터” 같은 반유대주의적 혐오발언이 붙는다. 오바마에게는 “아동 살인자”이자 “전범”이라고 비방한다.
이에 반해 푸틴에게는 “위대한 차르 블라디미르”라고 칭송하며, 모범적인 정치가이자 IS 정복자로 묘사한다. 알리스 베르크만의 프로필에는 푸틴 사진에 슈퍼히어로 의상을 합성한 이미지를 올렸다. 이 사진에 한 페이스북 친구가 “캡틴 러시아와 함께 이성이 승리한다”고 댓글을 달았다.

댓글 공간에서 정치 논쟁
수년 동안 계정 속성이 계속 바뀌었다. 프로필이 완전히 재구성되는 일도 많다. 여성이 남성이 되고, 남성이 여성이 된다. 초기에는 주로 유튜브 음악 영상 링크와 무해한 게시물이 올라오다가 시간이 지나면 정치 주제가 더해진다. 2018년부터는 여러 가상 프로필이 쿠르디스탄에 관한 내용을 올리기 시작했다. 성향은 명백하게 친쿠르드다.
가짜 프로필의 상당수는 최근 오스트레일리아 화재, 미국 허리케인이나 올랜도 총격 사건, 브뤼셀과 파리 테러 사건 등과 관련해 감정을 자극하는 사진과 의견을 올린다. 종종 댓글 공간에서 정치적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가짜 프로필은 수백 개에 이르는 페이스북 그룹의 일원으로, 이 그룹은 사진과 이야기를 공급해주는 무한한 원천이다. 이를 기초로 가짜 프로필이 만들어지는데, 모두가 항상 실제처럼 보이는 건 아니다. 댓글 공간의 일부 토론은 성능이 좋지 않은 자동 게시물 생성 프로그램의 첫 실행 시도 같고, 또 다른 댓글은 아직은 미숙한 온라인 자동 번역처럼 보인다.
네트워크는 실제 페이스북 이용자와 접촉함으로써 힘을 발휘한다. 정확한 네트워크 수는 불분명한데 수만 개에 이를 수도 있다. 어떤 가짜 프로필은 구독 계정이 1600여 개에 이른다. 그중에는 정치인, 의료인, 군인, 경찰, 언론인, 변호사, 심리치료사, 투자 고문, 페이스북 직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가짜 네트워크 메시지를 널리 퍼트리려면 확대·재생산자를 많이 낼 수 있는 직업군이 절대 필요하다. 직업적으로 영향력 있는 이들의 메시지가 여론을 형성하기 더 쉽기 때문이다. 가짜 계정의 지인에는 예술가나 다른 창조적인 직업을 가진 이들도 있다.
정보기술(IT) 보안 전문가이자 해커인 마르코 필리포는 “가짜 프로필이 희생자를 찾기 위해 실재 사람과 접촉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외로워서 온라인 관계를 맺고, 자신을 많이 드러내는 사람, 나중에 쉽게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대상이 된다.”
몇 주에 걸쳐 <슈피겔>은 가짜 네트워크와 교류한 사람에게 연락했다. 많은 이가 답변하지 않거나, 말하려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아주 잠시 이들과 접촉했다. 제바스티안 뮐러(가명)가 알리스 베르크만의 사촌인 헬레나와 본인 사이에서 벌어진 일을 자세하게 들려줬다.
뮐러는 페이스북의 예술 애호가 헬레나와 어떻게 처음 접촉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오랫동안 온라인에서 친분을 유지할 수 있는 친구를 찾았다. “아프리카, 우크라이나, 러시아의 가짜 프로필과 자주 마주쳤다.” 그사이 뮐러는 실존하는 인물의 프로필인지 아닌지를 식별하는 눈을 갖게 됐다. “가짜 프로필은 점점 더 정교해진다. 그 뒤에 숨은 사람은 아주 영리하다.” 뮐러는 절대 돈을 송금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역시 비자나 비행기표 값으로 온라인 지인에게 돈을 보낸 남자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다.
뮐러는 가짜 헬레나만이 그와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고 확신했다. 헬레나는 자신을 어린 딸 한 명을 둔 싱글맘이라고 소개했다. 딸 사진도 보냈다. “정말 예쁜 금발 소녀였지만 매우 슬픈 표정을 하고 있어 나를 놀라게 했다.” 어느 날 뮐러는 헬레나를 산악지대에 있는 자기 부모 집으로 초대했다. 하이킹하면서 서로 더 가까워질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헬레나는 오지 않았다.
뮐러는 헬레나가 자신에게 무엇을 바랐는지 지금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헬레나의 정치 성향을 알게 됐다. 헬레나는 자기 가족 중 한 명이 살해당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정치 상황이 얼마나 ‘역겨운지’도 썼다. 풍자 전문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로 사상자 12명이 생겨난 시기였다. “나는 이슬람교도가 지긋지긋하다. 그들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봐라. 마치 쥐떼처럼 세계를 덮치고 있다.” 당시 헬레나가 뮐러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이다.

   
▲ 인공지능 등 기술 발달로 페이스북에 기생하는 가짜 계정은 늘어나고, 그 속임수 기술도 더 향상될 것이다. 가짜 계정을 찾아내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REUTERS

가상 연애로 인터넷 사기
<슈피겔>은 4년 이상 알리스 베르크만과 교류한 한 남성의 채팅 기록도 분석했다. 첫 메시지는 정치 문제가 아직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던 네트워크 초창기에 보낸 것이었다. 베르크만은 자매의 죽음을 잊지 못하는 우울한 여성이었다. 그는 상대방에게 계속 압력을 넣었다. 상대방이, 사랑을 충분히 표현하지 않고, 관계를 맺을 만큼 로맨틱하지 않다고 비난했다.
대화 상대가 독일에서 만나자고 하면 베르크만은 거절하는 태도를 보였다. 4년 뒤 둘의 관계는 끝났다. 이 기간에 남성은 베르크만에게 자신에 관한 수많은 내용을 알려줬다. 개인사, 현재 거주하는 곳, 특정 주제에 대한 의견 등이었다. 집 사진도 보내줬다. 가상의 여성 베르크만이 대화 상대방 남성을 정탐하기 위해 가상 연애를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보였다.
무엇을 위해 이 모든 노력을 한 것일까? 전문적으로 연출된 가상 세계 뒤에 누가 숨어 있는 것일까? 이스라엘 IT 전문가인 마이클 파이어에 따르면, 개인 혹은 기업체가 여러 이유로 이런 프로필을 운영한다. 공통된 이유는 되도록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려는 것이다. “개인 데이터를 수집할 뿐만 아니라 여론 조작, 연구, 광고, 바이러스 확산, 인터넷 사기에도 이용할 수 있다. 수사기관도 이런 프로필을 활용한다.”
<슈피겔>과 리서치랩이 분석한 네트워크에 따르면, 가상 프로필은 광고뿐 아니라 여론 조작 등 거의 모든 목적에 쓰일 수 있다. 이런 네트워크 뒤에 숨은 자가 누구인지 드러난 사례는 거의 없다. 리서치랩 니카 알렉세예브나 역시 “용의자 목록은 좁힐 수 있지만, 이런 캠페인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네트워크 분석 중 스페인어 사용 국가를 암시하는 흔적이 발견됐다. 가짜 페이스북 운영자는 복잡한 네트워크 때문에 몇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독일어·영어·러시아어만 할 수 있다고 해놓고 프로필 정보 페이지에 스페인어 정보를 노출했다.
2011년과 2012년에 올라온 네트워크의 첫 게시물을 살펴보면 더 명확했다. 이 기간에 네트워크의 모든 계정에서 스페인어로 단 댓글이 발견됐다. 일부 문장은 ‘TQM’으로 서명됐다. 스페인어 ‘Te Quiero Mucho’의 약어로 ‘당신을 매우 사랑합니다’라는 뜻이다. 많은 가상 친구가 초창기에 칠레 산티아고에서 포스팅했고, 일부 프로필은 칠레를 고향으로 지정했다.
알리스 베르크만도 개인 메시지에서 여러 번 자신이 칠레에 살고 있다고 썼다. 그가 와츠앱 메신저로 실재 사람과 연락하는 데 이용한 휴대전화 번호도 칠레 번호다. 칠레를 가리키는 또 다른 증거는 게시물 시간 표시다. 분석에 따르면 게시물 등록 시간이 독일 시각보다 4시간 빨랐다. 칠레와 독일의 시차다. 하지만 디지털 세계에서는 이런 흔적도 조작할 수 있다. 인터넷 사기꾼, 해커, ‘인터넷 트롤’(악성 댓글 등 공격적인 행위로 타인을 괴롭히는 사람)은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가짜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조작도 사업에 포함된다.

광고와 여론 조작 도구로 악용
<슈피겔>은 2019년 12월 말 네트워크의 개별 프로필에 페이스북 자체 메신저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에 반응한 이는 알리스 베르크만뿐이었다. 베르크만은 만들어낸 겉모습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는 “당신은 이런 방식으로 여자 형제를 잃은 적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며 <슈피겔>이 거짓말을 한다고 비난했다.
베르크만은 놀랍게도 <슈피겔>이 며칠 전 다른 가짜 프로필의 연락처로 보낸 메시지 복사본을 전송했다. 가짜 계정을 중앙에서 통제하는 사람이 있다는 증거다. 베르크만은 “내 친구들은 매우 충성스럽다. 그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면서 시간 낭비하지 마라”고 경고했다. 그는 “내 아버지가 변호사다. 당신들이 계속 내 명예를 훼손하면 <슈피겔>을 고소하겠다”고도 위협했다. 본인이 실재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과 형제 사진을 보내왔다. 진실은 그가 보낸 사진 속 인물 중 단 한 명도 베르크만이란 이름이 없었다는 것이다.
베르크만의 개인 메시지와 동시에 그와 연결된 다른 가짜 계정이 공격을 시작했다. 로베르 고티에의 프로필뿐 아니라 그의 네트워크에 속한 여러 프로필이 갑자기 이런 글을 남겼다. “독일 기자와 상대하지 마라.” “독일에서 온 사람은 모두 의심하라.”
KSK 엘리트 병사 게오르크 쇤펠더 뢰머는 한술 더 떠 <슈피겔> 편집부를 그가 자주 이용하던 이야기에 끼워넣었다. “독일 기자 두 명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차단해라. 당신들은 알리스 베르크만의 친구다. 이 독일인들에게 어떤 정보도 주지 마라.” <슈피겔> 기자마저 가상 연속극의 일부로 만들어버렸다. 현재 이들 계정은 일단 거짓말 머신 가동을 중단했다. <슈피겔>과 리서치랩이 신고한 뒤 페이스북은 전체 네트워크를 차단했다.
그럼에도 페이스북에 기생하는 가짜 프로필이 늘어나고, 그 속임수 능력도 점점 좋아질 것이다. “새 기술이 진짜 인간처럼 보이고, 행동하는 가짜 프로필 생성을 더욱 쉽게 만든다”고 파이어는 설명한다. 인공지능이 진짜 사람처럼 보이는 얼굴을 만들어내고, 복잡하고 연계성이 있는 텍스트를 올리는 인물을 창조할 수 있다. 페이스북 가짜 세상이 점점 커지고 있다.

ⓒ Der Spiegel 2020년 5호
Falsche Freunde
번역 황수경 위원

마이크 바움게르트너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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