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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과 가난 대물림에 두 번 운다

기사승인 [119호] 20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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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프랑스 청년 빈곤

 청년 빈곤은 대부분 선진국에서 시대의 화두가 됐다. 먹고살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안정된 일자리로 가족을 부양했고, 상대적으로 두터운 연금으로 노후를 맞은 부모 세대와는 정반대 환경이다. 그러나 청년이 정말 희생당하고 있는지, 또 누구를 위해 희생되고 있는지 논쟁이 뜨겁다. ‘부모 찬스’ 유무에 따라 청년의 삶이 극과 극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덴마크 청년의 현실과 빈곤 대책을 들여다본다. _편집자

뱅상 그리모 Vincent Grimault
로랑 자노 Laurent Jeanneau
자비에 몰레나 Xavier Molénat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프랑스 파리 번화가 버스 정류장 의자에 노숙인이 자고있다. 청년에게 월세 민간주택은 부담이 크고, 사회임대주택에 들어가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REUTERS

아나 카의 최근 소식이 들렸다. 여전히 혼수상태다. 22살 대학생 아나는 2019년 11월 초 청년 빈곤을 고발하며 리옹 크루스 학생생활지원센터 앞에서 몸에 불을 질렀다. 이 사건으로 청년 문제에 관심이 높아졌다. 첫 번째 어려움은 노동시장 진입. 청년실업률은 평균실업률보다 2배 높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실업률은 일하는 중이거나 일자리를 찾는 경제활동 인구만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일할 수 있는’ 24살 청년 대부분은 아직 대학 강의실에 앉아 있다. 문제는 일찍 노동시장에 진출한 청년이 겪는 어려움이다. 실직할 가능성이 가장 크고, 시간제·임시직 등 불안정한 비정규직만 전전한다. 15~24살 노동인구 56%가 기간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유럽에서 프랑스보다 상황이 나쁜 나라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뿐이다.

더 불안정한 청춘의 삶
열악한 일자리 현실은 청년 소득과 생활수준에 영향을 끼쳤다. 오늘의 20살 청년이 어제의 20살 청년보다 어렵게 산다고 딱 잘라 말할 순 없지만, 동시대를 사는 다른 나이대보다 힘든 건 사실이다. 2002년 청년의 생활수준이 프랑스 평균 생활수준보다 2% 떨어졌다면, 2017년에는 8% 차이가 났다.
빈곤율(평균소득 50%보다 적게 버는 사람의 비율)을 보면, 2015년 프랑스 평균빈곤율이 8%였지만 청년빈곤율은 12.5%에 이르렀다. 루이 모랭 불평등연구소 소장은 “2004~2015년 빈곤율이 가장 빠르게 오른 나이는 18~29살”이라고 말했다. 청년들이 빈곤 격차를 따라잡을 만한 자산을 가진 것도 아니다. 1986년 청년기를 갓 지난 30대가 가진 평균 순자산이 70대보다 45% 많았다. 2015년 30대는 평균순자산이 70대보다 3.5배 적었다.
한쪽엔 기간제 계약직을, 다른 한쪽엔 낮은 임금이라는, 양발에 달린 쇠공을 질질 끌며 청년은 살 집을 찾아 나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모 집을 떠나지 못하거나 독립해 나갔다가도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아베피에르재단은 “재정 수단만 있다면 100만 명 넘는 청년이 부모에게서 독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가족 품을 떠난 대부분의 청년들은 노력 끝에 겨우 민간주택에 월세로 살고 있다. 모랭 소장은 “1984~2018년 민간주택 임대소득은 물가 상승을 고려하고도 3배나 불었다”고 설명했다. “물론 월세가 오른 데는 주거환경이 개선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월세 인상의 진정한 의미는 따로 있다. 30년 전부터 점점 줄어든 세입자의 얼마 안 되는 부가 나이 많은 집주인에게 넘어가고 있다. 찔끔 오른 소득을 월세가 꿀꺽 삼켜버린다.”
경제학자 기욤 알레그르 역시 30살 미만의 노력도(가계소득에서 주 거주 주택에 쓰는 지출 비율)가 30년 전보다 1.7배 증가한 사실을 지적했다. 같은 기간 65살 이상은 1.2배 늘었다. 부동산 전문가 자크 프리지는 “40년 동안 청년이 잃은 게 많다”고 말했다. 집 살 여력이 안 돼, 비싼 민간주택 월세살이를 벗어날 수 없다. 사회임대주택에 들어가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거주 기간이 보장돼 있어 나오려 하지 않는다. 청년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2013년 20~25살 청년 가운데 겨우 16%만이 사회임대주택에서 살았다. 1995년에는 25%였다.
레아와 루카의 물질적 삶의 조건이 열악한 건 명백한 사실이다. 모니크와 제라르, 에릭과 스테파니가 20살이었을 때보다 더 열악하다. 이는 2000년대생이 1950년대생과 1970년대생을 위해 희생됐다는 뜻일까? 현실을 세심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프랑스 파리 인근 쿠르브부아에 있는 레오나르도다빈치대학 학생들이 건물 밖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은 프랑스 대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REUTERS

아직 희생된 세대는 없다
“프랑스는 다른 선진사회보다 청춘을 더 희생시켰다.” 매서운 비판이다. 그러나 이 말 역시 대학생조합 대변인이 한 말은 아니다. 청년문제를 연구하는 사회학자 루이 쇼벨이 했다. 쇼벨의 연구에 따르면 레아와 루카뿐 아니라 에릭과 스테파니는 20살 때만 고생한 게 아니다. 이들 세대는 모니크와 제라르 같은 베이비붐세대를 위해 지속해서 희생됐다.
쇼벨은 프랑스 사회복지제도가 나이 많은 ‘인사이더’를 보호하려고 젊은 ‘아웃사이더’를 양산한다고 말한다. 청년이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면서 사회안전망 밖에 머문다는 것이다. 쇼벨은 이 현상을 프랑스 제도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하지만,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서는 다른 지적을 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일어난 때를 빼고 산업혁명 이래 청년 세대 소득수준이 사회 평균소득보다 이렇게 낮게 떨어진 건 처음이다.” <가디언>이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캐나다, 미국을 연구한 결과다. 미국 경제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 역시 1981~96년 태어난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프랑스에서 특정 세대가 희생되었다는 주장이 나온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학업 수준과 일자리 사이 격차가 있다. 10년 전만 해도 학력 인플레이션을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은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청년 계층하락’ 현상도 마찬가지였다. 기술 변화로 일자리 질은 꾸준히 좋아졌고, 베이비붐세대가 노동시장을 떠나면서 수많은 레아와 루카는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장만 있으면 탄탄대로가 열릴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 지표는 암울하다. 최근 20년 동안 취업에 나선 청년들의 상황을 살펴봤다. 2010년대 취업한 사람은 앞선 세대가 겪지 않은 높은 실업률 벽에 부딪혀야 했다. 계층 사다리를 내려오는 청년도 점점 늘었다. 대학 졸업장만 있는 청년에겐 이런 현상은 더 눈에 띈다. 2010년 학사 학위자 가운데 절반이, 일한 지 5년이 지나서도 안정된 직업을 찾지 못했다. 1992년 비슷한 상황에 놓인 청년은 10명 가운데 3명이었다.
학력이 낮은 청년은 실업자로 남거나 아예 일자리 찾기를 포기한다. 실업에서 벗어나는 수단이 학위라고 해도, 학위가 좋은 벌이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2010년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의 급여는 7년 동안 겨우 25~30% 올랐다. 반면 1998년 일을 시작한 사람의 급여는, 시작은 늦어도 같은 기간에 50% 늘었다. 결과적으로 현재 학력이 학·석사 이상인 청년은 12년 빨리 일자리 시장에 진입한 사람보다 적은 급여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생활수준도 썩 나아지지 않았다.
청년 현실이 이런데 국가가 나서서 해결할 의지가 없어 전망은 더 어둡다. 연금제 개편으로 1975년생부터 보험료 납부 기간이 느는 등 외려 청년에게 더 불리한 상황이다. 사회학자 카미 퓬니는 새 연금제를 두고 “세대 불평등을 양산해 프랑스 사회를 더 갈라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진짜 희생된 세대가 있는 걸까? 경제학자 기욤 알레그르는 어떤 세대를 말하는 건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알레그르의 동료인 1951년생 크리스티앙 생테티엔은 1993년부터 자기 세대가 가장 불우하다고 생각했다. 1967년에 태어난 루이 쇼벨은 1950년대생 때문에 자기 세대가 희생됐다고 말한다. 이들 이야기만 들어도 ‘한 세대 희생’을 논하기가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알 수 있다. 경제학자 이폴리트 알비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1901~79년생을 세대별로 나눠 조사해보니 윗세대보다 불행하거나 다음 세대보다 소비수준이 낮은 집단은 없었다.”
프랑스 통계청에서도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을 묶어 이들의 생활수준과 평균 소비수준이 15년 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측정하고, 태어난 연도별로 비교했다. 통계청은 알비스와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말까지 경제성장으로 모든 세대의 생활수준이 이전 세대보다 전반적으로 향상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 추세는 2008년에 멈췄고, 2013년부터는 생활수준이 다시 떨어졌다. 그러면 지금 7살인 아이들이 희생된 세대일까? 루이 마르탱은 끝까지 문제를 신중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15년은 완전한 결론을 내기에 짧은 기간이다.” 그 때문일까. 한쪽에서는 청년이 점점 불우해진다고 확신하고, 다른 쪽에서는 희생된 세대는 없다고 말하는 현상이 생겼다.

오늘만 아니면 내일도?
일자리 시장에 내디딘 첫발을 삐끗했다고 계속 절름발이로 남아야 할까? 비정규직 청년은 불안정 일자리만 갖게 될까? 냉혹한 신고식은 계속될까? 루이 쇼벨을 비롯한 일부 학자는 프랑스 사회가 청년에게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 세대의 희생을 회의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더 있다.
프랑스 직업역량연구소의 두 연구원은 ‘흉터 이론’을 뒷받침할 통계가 없다고 반론한다. 경제 전망이 좋아지면 출발점에서 비틀거리던 청년도 첫걸음이 빨랐던 또래를 곧 따라잡는다.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2008년 초, 1년 전인 2007년에 학교를 졸업한 청년의 취업률은 68%였다. 반면 불황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9년에 졸업한 청년의 2010년 초 취업률은 55%에 그쳤다. 하지만 그 뒤 취업률은 빠르게 높아졌다. 두 집단이 취업시장에 나온 지 8년 후 취업률은 약 78%로 비슷했다.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통계청에 따르면, 날씨가 흐릴 때 취업시장에 진출했어도 최저임금이 든든한 안전망 역할을 해주기에 소득이 웬만큼 보장된다.
마틸드 개니 통계청 연구원은 “결국 청년 현실을 말할 때 중요한 건 취업률”이라고 말한다. “상처가 났다고 해도 자국이 영영 지워지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상처가 많고 클수록 흉터는 지지 않는 법이다. 실업 생활이 길거나 잦아 경력을 쌓지 못하면 급여는 그만큼 더디게 오를 수밖에 없다.

   
▲ 에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얼굴의 쾌걸 조로로 분장한 노동자가 2018년 5월1일 노동절 집회에서 “나는 가난한 사람에게 빼앗아 부자에게 준다”는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REUTERS

‘청년세대’는 없다
희생된 세대를 얘기하려면 일단 ‘세대’가 있어야 한다. 프랑스 소도시 공사장에서 비정규직 인부로 일하는 20살 청년과 대도시에서 마케팅 석사 과정을 마치고 런던에서 바로 취업할 예정인 23살 청년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거의 없다. 사회학자 피에르 보르디유는 “청년은 그저 한 단어일 뿐”이라며 한 세대를 가르는 불평등을 비판했다. 세대 간 불평등보다 더 심각한 세대 안 불평등 때문에 ‘희생된 세대’에 관한 논의가 점차 희미해졌다.
젊다는 것 빼고 닮은 점이 별로 없다. 고학력자와 저학력자 사이에 놓인 골이 청년층과 중노년층을 가르는 세월보다 더 선명하다. 대학교 이상 졸업하고 취업시장에 나온 지 1~4년 된 집단의 2018년 실업률은 9.4%지만, 고졸 집단은 43.4%였다. 4배 넘게 차이 났다. 사회학자 스테판 보는 “탈산업화와 저숙련 일자리 감소로 학력이 낮은 청년이 사회적 사망 상태에 처했다”고 말했다.
이런 격차는 금융위기 이후 더 벌어졌다. 직업역량연구소에 따르면 1998년 저학력자가 안정된 직장을 얻을 확률은 고학력자 대비 6분의 1이었다. 2010년 저학력자가 정규직으로 취업할 가능성은 고학력자 대비 9분의 1이었다. 학사 학위가 있는 청년에게 비정규직은 안정된 일자리로 가기 위해 잠시 올라타는 ‘트램펄린’이다. 트램펄린을 탈 입장권이 없는 청년에게 비정규직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다.
더욱 심각한 건 학력이 어떤 가정 출신이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2016년 관리직·전문직 부모를 둔 사람 가운데 50%가 전문대 이상 졸업장을 받았지만, 부모가 평범한 회사원이거나 공장 노동자인 사람은 16%밖에 안 됐다. 경제학자 기욤 알레그르는 “진짜 문제는 세대 격차, 베이비붐세대와 청년 사이의 갈등, 학력 평가절하가 아니라 학력을 통해 불평등이 대물림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불평등은 가정에서 연대가 얼마나 돈독한지에 따라 악화된다. 가계소득이 높을수록 자녀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가계소득 상위 10%가 자녀에게 쓰는 돈(매년 약 7050유로)이 하위 10%보다 5배 많았다. 단순히 경제 여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프랑스 통계청의 세바스티앙 그로봉은 이런 현상을 “문화재생산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성인이 된 자녀가 높은 위치에 오르도록 도구를 쥐여주는 것이다.” 부동산도 불평등 대물림에 이용된다. 집값이 올라 이득을 보는 건 집이 있는 베이비붐세대만이 아니다. 가치가 오른 집은 언젠가 그들의 자식과 그 자식의 자식에게 유산으로 남겨질 것이다.
그렇게 누구는 부를 이어받고, 누구는 가난을 대물림받는다. 하지만 현재를 사는 청년이라면 똑같이 물려받는 것이 있다. 오염된 지구다. 바로 여기서, 희생된 세대 담론이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16살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 시위를 벌이며 어른에게 병든 지구를 남긴 정치·경제적 책임을 물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퍼지는 “오케이부머”(베이비부머인 기성세대의 참견에 저항하며 맞받아치는 표현) 구호도 마찬가지다. 25살 뉴질랜드 의원이 기후변화 연설을 하는 도중 야유를 받자 “오케이부머!”라고 되받아치며 유명해진 표현이다. 기욤 알레그르는 “부머는 환경문제에 눈감아온 기성세대를 뜻한다”며 “진짜 세대 간 불공정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0년 2월호(제398호)
Les jeunes sont-ils sacrifiés?
번역 최혜민 위원

뱅상 그리모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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