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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우리 안의 카스트

기사승인 [124호] 20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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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는 지금] 카스트로 살펴본 인도

김문영 KOTRA 서남아지역본부장

   
▲ 인도 카스트제도에서 여성의 지위는 아주 낮아 각종 범죄를 낳기도 한다. 한 여성이 2020년 2월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서 국회의원선거 투표를 하고있다. REUTERS

조선의 반상제도, 서구의 노예제도 등 인류사에서 수많은 신분제가 있었지만, 21세기 현재까지 살아남은 신분제는 인도의 ‘카스트’다. 카스트제도는 기원전 3천 년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철제 무기로 세력을 키운 아리안계 유목민족이 현재 파키스탄을 관통하는 인더스강 주변에서 인류 4대 문명의 하나를 꽃피운 드라비다 원주민을 정복하면서 지배를 정당화한 종교·사회 체제로 알려져 있다. 5천 년 넘는 인도 아대륙의 수백 왕조에서도 지배 이념으로 자리잡은 힌두교에 기반을 두고 끊임없이 분화됐다. 이를테면 조선의 사농공상과 비슷하면서도 상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상농공형 신분체계다.

카스트의 과거와 현재
카스트는 지식과 제사를 담당하는 브라만(사제), 전쟁과 통치를 담당하는 크샤트리아(귀족), 상업과 농업에 특화된 바이샤(평민), 수공업 위주의 수드라(공인), 어느 계층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달리트(불가촉천민)로 구분된다. 같은 카스트 안에서도 수백 개 서브 카스트로 기능이 분화됐고 상호 위계도 엄격하다.
28개 주에 따라 계급별 구성비에 많은 편차가 있다. 인도 인구의 약 80%인 힌두교도를 기준으로, 달리트가 약 16%, 수드라 25%, 맨 위의 브라만이 4%, 바이샤 내 상인 집단인 바니야가 3%, 그 외 나머지를 중간의 농민(바이샤)과 전사 계급(크샤트리아)이 차지한다.
1947년 독립 이후 40여 년 집권한 네루 가문을 위시해 현대에서도 인도 정치, 학문, 행정, 사법, 언론 분야에 미치는 브라만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인도 출신 역대 노벨상 수상자 11명 가운데 인도의 시성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와 1998년,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 아브히지트 바네르지는 인도 북동부 벵골 출신 브라만이다. 2009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라마크리슈난을 대표로 라만, 찬드라세카르 등 과학 분야 3명의 노벨상 수상자,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의 주인공으로 20세기 초 현대 수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라마누잔도 모두 남부 출신 브라만이다.
인도 권력의 또 다른 축인 군대와 경찰 고위 간부는 전사 집단인 크샤트리아 출신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라자스탄주, 구자라트주, 펀자브주 등 지역별 대표 상인 집단(바니야)이 인도 10대 재벌 가운데 아홉을 차지할 정도로 경제 분야에서 바니야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인도 3대 전자상거래 기업 플립카트, 스냅딜, 민트라 창업자는 모두 마르와리 내 ‘반살’(Bansal) 가문 젊은이다.
인도 주요 도시에서 일하는 청소부, 구두수선공, 짐꾼, 경비원 등은 수드라 내지 달리트일 확률이 높다. 약화하는 추세지만 현대 인도도 4%의 브라만(권력)과 3%의 바니야(상인) 그룹(금력)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평가를 받는다. 상위 계급 사람들이 사상, 문화, 돈이라는 핵심 가치를 지배하는 게 사실이다.

일상 속 카스트의 균열과 변화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의 노보텔호텔 주방장은 브라만 안에서도 상층 브라만인 샤르마(Sharma)다. 카스트 전통상 낮은 계급이 요리한 음식을 먹지 않기에 요식업 계통에 브라만 출신이 많이 진출했지만, 이 샤르마는 일반 손님을 대해야 하는 호텔에서 직업 공간과 퇴근 뒤 집안과 귀향한 고향에서 위상이 상반되는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인도 어느 도시에 가도 아가르왈(Agarwal)이란 상인 집단을 수없이 만난다. 인도 상인 집단 내 본류 중 본류임을 자부하는 마르와리의 핵심 그룹이다. 수천 년간 무역, 금융, 상업에 종사한 전통에 맞춰 대부분 창업을 하거나 사업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다른 가치를 찾아 학계, 회계사·변호사 등 전문직, 공직 분야에 진출한 아가르왈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인도 근현대 격변기에 적응하지 못한 그룹이 크샤트리아 계급이다. 전쟁과 전투에 특화된 전통 때문에 글이나 재산 등을 후순위에 두었던 탓이다. 크샤트리아 출신인 타코르는 아버지와 삼형제가 모두 운전직에 종사한다. 가산을 탕진한 할아버지 때의 영화를 회복하기 위해, 8살 외동아들을 자신이 다녔던 8학년 의무교육이 아닌 영어 사립학교와 대학 교육을 받게 하는 데 모든 초점을 맞췄다.
아쇼크는 인도에서도 가장 못사는 주로 알려진 북부 비하르주에서 대대로 구두 수선을 해오던 달리트다. 끼니조차 잇기 어려운 고향을 떠나 수도 뉴델리 인근 주택가 입구에서 가설 구두수선점을 11년째 운영하고 있다. 고향에 남겨둔 딸 셋을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해 휴일도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47년 독립헌법에 카스트 차별 철폐를 명문화한 뒤 카스트제도는 법적으로 폐지됐다. 현재 인도 특유의 중앙부처인 사회정의 여성복지부에서 차별받아온 하위 카스트 계층의 교육과 복지 증진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하고 있다.
수많은 중·하위 카스트 계급을 주별로 분류·지원한다. 지원 대상은 크게 지정 부족(ST·Scheduled Tribe), 지정 카스트(SC·Scheduled Caste), 기타 소외 계급(OBC·Other Backward Caste)이다. 먼저 ST는 인도 북동부 몽골티베트계 주민을 포함한 인도 전역에 분포된 소수민족 집단이다. SC는 달리트, OBC는 수공업 종사 수드라를 위주로 근현대사 격변기 적응에 가장 실패한 크샤트리아 계급 등 경제·사회적 지위가 급속히 추락한 계급이다. ST, SC, OBC는 주기적으로 추가하기도 하고 빼기도 한다.
SC, OBC별 가산점은 차이가 있지만, 3개 그룹에 들어가고 소득과 자산이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 사립학교 쿼터 배정 및 무료 교육, 대학 입시, 공기업·정부 관리 임용에서 별도의 쿼터를 둬 경쟁원리를 적용한다.
이런 지원책과 도시화, 소득 증대로 천민 출신 대통령이 나왔고 중·고위 공직에 진출하는 달리트와 수드라 출신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인도 인구 60%가 사는 시골에서 카스트 문화와 전통이 아직도 강하지만 교육 확대와 소득 증대, 돈과 직업이 거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 도시화로 카스트의 영향력은 지속해서 하향 추세인 건 확실해 보인다.

   
▲ 인도 뉴델리에 있는 한 힌두교 사원에서 카스트제도의 최상위 계급인 브라만에 속한 소년들이 기도하고 있다. REUTERS

5천 년 이어온 카스트의 힘
인도와 인도인 일상을 규정하는 카스트를 현지에서 체험하면서 카스트가 5천 년 넘게 현재에도 지속하는 근원은 무엇일까 수없이 자문해보았다. 무엇보다 문화·규범·권력의 대를 이은 독점, 카스트 상하 간 권력 불균형이 근원일 것이다. 이에 더해 윤회의 힌두 세계관과 위로부터 차별보다 아래 카스트를 차별하는 데서 오는 위안적 자부심 내지 합리화도 큰 몫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 인(人)자가 의미하듯 사람은 혼자서 의미도 없고 힘도 없고 도덕도 불필요하다. 원시인류처럼 한정된 사냥감을 효율적으로 사냥하고 지켜내기 위해서는 같은 집단의 연대와 분업이 성패를 좌우했다. 이런 연대와 분업은 인간이 동물에 맞선 절대적 경쟁력이다.
지연, 학연, 직연 등도 따지고 보면 불완전한 인간이 동류라는 본연의 감정에 더해 한정된 목표나 가치에서 나와 우리에게 할당될 몫을 키우기 위한 현대판 연대 본능이다. 개인·소집단 관점에서 최적화한 모델이고, 발전 원동력일 수도 있다.
한 분야, 한 직업에 한평생 몰두케 하고 동류 집단끼리 끈끈한 공동체 문화를 형성했을 때 무서움을 느끼기도 한다. 인도 상인 집단, 똑똑하고 대국적인 시각을 가진 대학생과 바늘구멍을 통과한 인도 고위공무원단, 불가촉천민 구두수선공 등을 보면서다.
우리나라 면적의 50배에 이르는 인도는 5천 년 역사에서 수백 개 국가가 난립했고, 현대 인도 이전까지 진정한 통일 민족국가가 없었다. 외침만 받아왔지 밖으로 뻗어나간 일이 거의 없었던 것도 카스트의 제도화, 고착화가 가져다준 내적 분열과 사회 동력 약화의 주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인도는 하나의 국가로 탄생하고, 카스트제도가 철폐된 지 70여 년이 지났다. 인도 정부와 시민 집단, 깨인 지도층의 계몽, 경제발전과 도시화로 판 자체가 뒤틀리고 변화 에너지가 분출하고 있다. 미래 인도는 카스트의 순기능과 계급적 카스트의 어느 지점에서 인도판 균형점을 모색할 것이다.
따라서 21세기 인도를 카스트 신분제도의 나라, 신비의 나라로만 바라보는 것은 ‘부분의 전체화’ 오류다. 한 나라가 아니었고 현재도 아닌 이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를 하나의 국가란 프레임으로 들여다보는 건 일반화 관성의 산물이다.
정체성 확립과 기능적 분업이란 넓고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한다면 카스트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며, 나 자신과 사회의 발전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카를 포퍼가 말한 ‘열린 사회’에 반하는 제도화, 고착화, 닫힌 사회화가 문제인 것이다. 내 안에도, 우리 안에도 수많은 카스트가 존재한다.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8월호

 

김문영 mykim_3@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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