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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확충·규제 철폐로 경쟁력 높여

기사승인 [124호] 20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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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LTURE & BIZ] 되돌아본 문화산업정책 25년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 영화 <기생충> 포스터.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누구도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광풍에 관심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2020년 상반기 대한민국 문화콘텐츠 업계에 가장 큰 이슈는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일 것이다. <기생충>은 그동안 할리우드 바깥 비영어권 작품에 악명 높던 아카데미의 유리천장을 깬 것을 넘어, 아카데미상 빅5(작품·감독·남녀주연·각본상) 가운데 3개 석권이라는 당분간 깨지지 않을 기록까지 남겼다. 국제영화상을 포함한 기생충의 4관왕 위업은 아카데미상을 남의 나라 잔치 정도로 생각한 비영어권 나라들 관심도 끌었다. 특히 큰 관심을 보인 나라가 이웃 일본이다.
일본은 공영방송 <NHK>에서 특집 코너까지 만들어 수상 소식과 배경을 상세하게 전했다. 일본 포털에서는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이 검색 순위 상위권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 수상을 바라보는 일본 반응은 복잡미묘하다. 축하하는 반응도 있지만, 일본 문화콘텐츠 산업이 일본 대중문화 전성기인 198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개탄도 나왔다. “음악에서 BTS에 밀리더니 일본이 자랑하던 영화산업도 한국에 뒤처졌다”고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다.
어떤 사안이든 원인과 배경 분석을 좋아하는 일본 매체에서 한국의 민족성이나 내수시장이 작아 해외 진출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 등이 거론됐다. 그 가운데서 많은 이가 공통으로 말하는 흥미로운 원인이 있었다. 바로 국가 차원의 문화콘텐츠 진흥 정책이다.
한국에서는 문화콘텐츠 산업 진흥이 국가 주요 정책의 하나이며 국가 지원시스템이 잘돼 있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모태펀드라는 국가 문화투자펀드를 통해 2006~2019년 약 1조2천억원, 연평균 900억원이 영화에 투자됐다는 상세 자료까지 곁들였다. 정부 지원이 아카데미상 수상에 밑거름을 제공했다고 평가하며 자국의 문화 진흥 정책과 비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문민정부가 쌓은 초석
해외에서도 인정하는 한국의 문화콘텐츠 진흥 정책이 시작된 것은 1995년이니, 올해로 25년째다. 돌아보면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한국의 문화콘텐츠 산업은 전형적인 내수 위주 구조였다. ‘콘텐츠’라는 용어조차 쓰지 않던 이 시절, 영화나 음악 산업은 많은 부분 미국과 일본 콘텐츠에 의존했다. 자국 콘텐츠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정부의 문화정책도 전통문화 보존이나 순수예술 영역에 국한됐다. 1980년대까지 이어진 군사정권 집권기에 대중문화는 진흥보다는 통제 대상에 가까웠다. 전통문화나 순수예술만이 정부에서 진흥할 가치가 있는 문화였다. 이 기조는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바뀌었다.
김영삼 정부는 국민 삶의 질을 높이려면 문화적 풍요가 중요하다는 ‘문화복지’ 개념을 발표했다. 김영삼 정부의 문화정책은 과거 군사정권의 ‘문화 억압’에 대한 반동이었다. 국민이 주체적으로 생산하고 향유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주요한 정책목표였다. 문민정부는 출범 5개월 만에 ‘새 문화·체육·청소년 진흥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문화부와 체육청소년부를 통합해 문화체육부를 발족했다.
여러 규제를 완화해 대중문화를 부가가치 창출 산업으로 보겠다는 김영삼 정부의 국정 기조는 1994년 문화체육부에 문화산업국을 신설함으로써 더 분명해졌다. 국가정책이 문화를 ‘소비 대상’이 아닌 ‘산업적 생산 주체’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당시 김영삼 정부에서 주창한 세계화 흐름에 맞춰, 국가적으로 문화를 진흥해 세계에 수출할 한국의 주요 상품으로 삼겠다는 의지였다.
문화를 산업 관점에서 보는 이런 움직임은 1995년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에 영화와 연예 산업이 처음으로 국가 진흥 대상으로 명기되면서 진흥 정책을 세우는 근거를 확보했다. 많은 전문가가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을 현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 문화콘텐츠 진흥 정책의 시작으로 본다.
정부의 확고한 의지와 정책 기반이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제대로 된 콘텐츠 수출 구조를 만드는 원동력을 한국 문화산업에 제공했다. 이전까지 한국 콘텐츠 수출의 대부분은 일본 애니메이션 납품이었다. 1995년 ‘선진 방송 5개년 계획’에 따라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기반 확충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됐다.
외주 장려 정책에 따라 주요 방송사에서 일하던 피디가 창업하면서 독립제작사 활동이 활발해지고 방송산업에서 역할이 커졌다. 특히 다양한 수출 지원 방안을 통해 텔레비전 콘텐츠 수출이 조금씩 늘었다. 1992년 한-중 수교를 계기로 인적·물적 교류와 함께 문화 교류가 활성화하면서 중화권을 중심으로 TV드라마 수출이 본격화했다. 한류로 불리는 한국산 콘텐츠 대유행의 시작이다.
문민정부의 노력은 비록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등 국가적 혼란 속에 실제 정책으로 많이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국 문화산업 진흥 정책의 기반이 이 시기에 형성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꽃피운 ‘국민의 정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구제금융 대가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강요당했다. 문화정책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강대국이 제시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원리에 따라 문화정책은 자본주의 산업구조 안에서 논의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이전 문민정부 관점이 심화했다. 김대중 정부의 문화 기조는 1999년 제정된 문화산업진흥 기본법으로 나타났다.
문화산업진흥 기본법은 당시 세계를 휩쓸던 정보기술(IT) 혁명 물결에 발맞춰 전통문화와 순수예술 영역을 경제적으로 융합하는 문화산업을 강조했다. 거기에 더해 게임, 캐릭터, 애니메이션, 광고, 디자인, 멀티미디어 콘텐츠 등 다양한 영역을 문화산업 범주에 포함했다. 문민정부 시절 일부 완화됐던 문화 규제와 검열이 상당히 철폐돼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는 등 문화창작의 사회적 여건도 조성됐다. 그렇다고 국민의 정부 문화정책이 대중문화 쪽에 집중된 것은 아니다. 순수예술 쪽 예산이 네 배 이상 확충돼, 문화산업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 다양성 확대도 강조됐다.
당시 정부는 문화체육부를 문화관광부로 바꿔 문화산업 측면을 더 부각했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을 세워 초고속 통신망 보급을 타고 조금씩 성장하던 새 콘텐츠 분야인 게임산업 지원에도 나섰다. 1천억원 규모의 방송진흥기금을 만들어 제작사를 지원했다. 2000년대 한국 콘텐츠 수출의 공신인 게임과 방송 산업 지원이 본격화하면서 한국 콘텐츠 분야는 대내외적으로 산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화권을 중심으로 서서히 불던 한류 바람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으로 촉발된 한-일 문화 교류 활성화와 함께 폭발했다.
콘텐츠업계에서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한국 콘텐츠산업 전환점으로 보는 이가 많다. 당시 언론과 문화계에서는 일본에 문화주권을 내주는 행위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일본의 수준 높은 대중문화가 몰려와 막 성장하던 우리 문화산업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21세기는 문화산업의 시대이며, 더 이상의 문화쇄국 정책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개방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우려한 문화침탈은 없었고 ‘욘사마 열풍’을 비롯해 한국 콘텐츠가 일본에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
많은 사람이 국민의 정부를 한국 문화산업의 꽃을 피운 정부로 인정하는 이유는, 대통령부터 나서 문화산업을 21세기 한국의 새로운 산업 원동력으로 줄기차게 강조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 출범 초기인 1999년 문화계 숙원이기도 한 ‘문화예산 1%’ 목표를 달성했다. 정부가 말뿐이 아니라 실질적 예산 확보를 통해 문화산업 성장을 위한 ‘마중물’까지 댔다는 의미다.

   
▲ 2019년 9월 서울 도봉구 창동역 환승주차장 터에서 열린 창동 창업·문화산업단지 조성사업 기공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주력 상품
이후 정부마다 방향성이 조금씩 다르지만 문화산업은 국가 주요 정책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2020년 6조원 넘는 문화예산의 많은 부분이 문화콘텐츠 경쟁력 강화에 쓰인다. 한국 문화콘텐츠 위상은 문화예술진흥법을 개정해 문화를 산업적으로 보기 시작한 1995년과 비교해 눈부시게 발전했다.
물론 그동안 문화정책에는 분명 잘못된 부분이 있고, 그에 따라 문화산업이 휘청거리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민간의 노력과 함께 25년에 걸친 지원정책이 문화산업 발전에 큰 힘이 됐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은 문화산업의 성공 여부가 우리나라 21세기 경제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문화진흥 정책은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다시 한번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25년보다 몇 배 더 분발해 한국이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우뚝 서기를 기대해본다.

* 문동열은 영상콘텐츠 스타트업 레드브로스 대표로 저비용·고효율의 한국형 영상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미디어마케팅을 전공했고 SBS 콘텐츠허브에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다. 또한 IBK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에서 콘텐츠 금융과 콘텐츠 기업 컨설팅을 맡았다. 방송 제작과 금융에 모두 정통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문가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8월호

 

문동열 rabike04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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