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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대 기업의 주가조작 스캔들

기사승인 [124호] 20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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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이슈] 삼성 불법 승계 의혹

박종오 <이데일리> 기자

   
▲ 참여연대, 민주노총 등 관계자들이 2020년 7월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이재용 부회장 불법 경영권 승계 혐의 검찰의 기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에서는 하루 평균 주식 20조원어치가 사고팔린다. 개인과 기관 투자가가 거래한 가격인 주가는 기업 2200여 개의 시장가치를 실시간으로 반영한다.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기본적인 힘은 믿음이다. 주가는 기업의 장기적인 전망을 객관적으로 반영하고, 신규 투자 수요와 투자금을 회수하려는 공급자에 의해 합리적으로 결정된다. 만약 시장에 신뢰가 없다면 주식거래는 불가능하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삼성의 주가조작 논란은 주식시장의 이런 뿌리를 흔드는 대형 스캔들이다. 한국 최대 기업 집단이자 글로벌 기업인 삼성그룹이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시가총액 수십조원짜리 계열사 주가를 조종했다는 의혹은 담합이나 불공정 거래 같은 일반적인 기업 비리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경제·금융 사건은 목적과 동기의 단순함에 비해 그 실행 과정과 구조가 복잡해 전체 그림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네 개의 질문을 통해 한국 자본시장에 큰 트라우마를 남긴 이 사건의 쟁점을 살펴보자.

1. 무엇을 위한 합병인가
사건 시작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다. 첫 질문은 이것이다. ‘무엇을 위한 합병인가.’
합병 계획이 처음 발표됐을 때 많은 시장 참가자는 두 회사가 합병하는 이유를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제일모직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아들 이재용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통로 역할을 하는 회사여서다. 이 부회장은 1996년 제일모직의 전신인 삼성에버랜드 주식과 마찬가지인 채권을 헐값에 배정받아 제일모직 최대주주가 됐다.
아버지 이 회장이 2014년 병으로 쓰러지자 이 부회장의 경영권 확보는 그룹 최대 현안으로 부상했다. 이 부회장의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보유 지분이 0.6%에 그쳤기 때문이다. 반면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4.1%에 이르렀다. 만약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하면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인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주식을 공짜로 늘릴 수 있었다.
두 회사는 합병이 ‘시너지 효과’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삼성물산은 건설과 해외 영업, 제일모직은 패션·레저·외식 등이 주력 사업이었다. 삼성은 합병 뒤 매출이 합병 전보다 6조원 증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약 34조원이던 두 회사 매출을 2020년 60조원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합병 시너지 효과는 없었다. 2020년 합병 회사 매출액이 목표의 절반인 30조원에 그칠 전망이어서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합병 당시 예상한 것보다 글로벌 유가 하락,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전반적인 사업 환경이 나빠졌다”고 했다. 국내 증권사 중 유일하게 합병 반대 보고서를 낸 한화투자증권 주진형 전 사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서로 겹치는 사업이 없다”며 “처음부터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외에 어떤 시너지도 낼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2. 합병 비율은 적정했나
합병이 주가조작 논란으로 번진 계기는 ‘합병 비율’이다. 일반적으로 두 회사가 합병하면 살아남는 회사는 합병 뒤 사라지는 회사 주주에게 새 주식을 발행해준다. 각 회사의 기업 가치와 주식 가치를 따져보고 적정 교환 비율을 정해서 주식을 바꿔주는 것이다.
다음 질문은 ‘합병 비율이 과연 공정했는가’이다. 당시 제일모직 주식 가치는 삼성물산 주식의 3배로 평가됐다. 제일모직은 삼성물산을 ‘1 대 0.35’ 비율로 흡수합병하기로 했다. 삼성물산 주주가 가진 주식 1주당 제일모직 주식 0.35주를 주겠다는 의미다.
이 비율은 반발을 낳았다. 삼성물산의 자산과 매출액이 제일모직의 3~5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 확보를 위해 삼성물산 주식 가치를 고의로 낮게 평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율이 23.2%고 삼성물산 보유 지분은 없었다. 제일모직 주식을 높게 평가할수록 합병 뒤 더 많은 지분율을 가질 수 있었다. 삼성물산 주주 중 이런 주장을 가장 적극적으로 펼친 것은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이었다.
삼성은 “합병 비율을 법에 따라 정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국의 자본시장법은 주식시장에 상장된 회사의 합병 가치를 합병 결정 전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가’를 기준으로 정하도록 한다. 당시 제일모직 평균 주가는 15만9294원, 삼성물산은 5만5767원이었다. 합병 비율 ‘1 대 0.35’가 나온 배경이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대형 상장 기업은 덩치가 워낙 크기 때문에 주가를 쉽게 조작할 수 없다”며 “주가야말로 시비 없이 기업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가장 공정한 기준”이라고 말했다.
상장사의 합병 가치를 주가 기준으로 산정하도록 의무화한 것은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같은 그룹 계열사끼리 합병이 대부분인 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해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가치 평가를 하는 것을 막고 소액주주를 보호하겠다는 게 법 취지다.
삼성그룹이 주가를 조작했다는 의혹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삼성이 소수 주주 보호 제도를 거꾸로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악용했다는 의심이다.
실제 당시 시장에는 “삼성물산의 실적 부진이 의도된 것”이라는 의구심이 팽배했다.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 비율이 정해지도록 합병 발표 전 삼성물산 ‘주가 누르기’에 나섰다는 말이다. 국내 부동산시장 활황에도 신규 수주 영업을 하지 않고 일감을 계열사에 넘겨주거나 대규모 해외 수주 사실을 뒤늦게 공개한 것 등이 그 근거로 제기됐다.
이는 의심으로 끝났다. 합병은 완성됐다.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각각 주주총회를 열고 합병 안건을 통과시켰다. 삼성물산 지분 11.21%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이 결정적이었다. 한 시민단체는 두 회사의 합병 비율을 ‘1 대 1’로 했을 때보다 이 부회장이 3조1천억원의 부당 이득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 수사팀과 대검찰청의 막판 조율을 거쳐 1년8개월간 이어온 삼성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바라본 검찰기와 삼성 사옥 모습. 연합뉴스

3. 주가 ‘조작’인가 ‘관리’인가
뒤늦게 삼성 주가조작 의혹이 다시 논란이 된 것은 한국 검찰의 수사와 이 과정에서 드러난 삼성그룹 내부 문건 때문이다. 그룹 핵심 조직인 미래전략실은 이 문건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전후해 ‘주가 관리’가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삼성그룹 대응은 주가 조작인가, 관리인가.’ 삼성은 문건에서 “주가 악재 요인은 2015년 1분기(1~3월) 실적에 반영 또는 합병 이사회 공시 전에 시장에 오픈해 주가에 선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 비율을 만들기 위한 삼성물산 주가 누르기를 암시하는 문구다.
특히 시장이 놓친 포인트가 추가로 공개됐다. 문건은 “주가 호재 요인은 합병 이사회 후인 2015년 7~8월에 집중해 주가를 부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삼성물산 주가 누르기뿐 아니라 ‘주가 띄우기’도 같이 모의했다는 의미다.
이는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가 자기주식을 되사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대거 권리 행사에 나설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합병 반대 주주는 합병 안건이 주주총회를 통과한 날부터 20일 안에 보유 주식을 회사가 다시 사가도록 청구할 수 있다. 이 청구 가격은 상장사의 경우 합병 발표 이전 주가를 기준으로 정하는 만큼 합병 발표 뒤 주가가 이보다 낮아지면 더 비싼 가격에 주식을 팔기 위해 권리를 행사하는 주주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 반대 주주 주식을 되사는 데 많은 돈을 써야 하는 셈이다. 삼성그룹은 직전 2014년에도 주주의 주식 매수 청구가 대거 몰리며 계열사인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을 포기한 바 있다.
삼성의 이같은 주가 누르기와 띄우기 모의와 실행을 불법으로 볼 수 있을지, 조작 주체를 이 부회장으로 지목할 수 있을지는 법정에서 다툴 문제다. 자본시장법은 거래 유인, 허위 사실 유포 등 주식 시세 조종과 부정한 수단·계획·기교 등을 사용해 주식거래에 영향을 미치는 부정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통상 규모가 큰 대기업은 주식거래를 통한 시세 조종이 쉽지 않다”며 “허위 공시 등 부정 거래 요건을 적용하면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4. 분식회계와의 연결고리
삼성그룹 바이오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8년 한국 금융 당국한테 회계 사기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행정 제재를 받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합병 삼성물산이 지분 43%를 가진 최대주주다.
‘삼성바이오의 회계 사기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어떤 관계’일까. 간단히 말해,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는 이 부회장을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후폭풍을 수습하는 과정이라는 해석이 많다.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였던 제일모직의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당시 제일모직이 지분 46.3%를 보유한 삼성바이오의 가치도 덩달아 높여 잡았던 게 뒤늦게 삼성바이오의 부실한 재무 구조라는 뒤탈을 낳자 회계 기준을 어기고 가상의 이익을 반영했다는 이야기다.
한 회계사는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 바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라며 “그때 무리수를 쓴 게 애먼 곳에서 문제로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8월호

박종오 pjo2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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