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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해체가 시작되다

기사승인 [124호] 20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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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SUE] 포스트 미국 시대의 글로벌 권력

미국 외교 전문 정치인들은 미국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벌이는 대혼란의 여파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포스트 미국 시대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앤 애플바움 Anne Applebaum 역사학자

   
▲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가열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이 2019년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악수하고 있다. REUTERS

역사와 조금이라도 친숙한 사람이라면 아무리 뻔뻔스럽고 대담한 형태의 선전이라도 때로 대중에게 통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선전·선동으로 제기되는 온갖 주장을 그대로 믿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중은 선전·선동을 하는 이들이 쥔 권력이 두려워 그냥 믿어버리기도 한다.
선전·선동이 소기의 목적을 가장 충실하게 이룰 때는 경쟁 관계 메시지가 없거나 다른 메시지를 보내는 발신자가 전혀 신뢰를 주지 않는 진공 상태에서다. 적어도 2020년 3월 중순 이후 중국은 정확히 바로 이 지점을 찾아 공략 중이다. 중국은 코로나19로 근본적으로 달라진 세계를 향해 대대적인 선전을 펼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재앙에 버금가는 방역 실패로 비웃음 대상으로 전락한 것도 코로나19로 세계가 달라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전세계 수많은 언론이 미국 외교의 이런저런 정책을 비판하고 미국 대통령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미국이 패권국이 된 뒤 이런 현상은 늘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 미국 대통령에 대한 언론보도는 지금까지 봐왔던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현 미국 대통령은 비판 대상이 아닌, 비웃음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탈리아의 대표 칼럼니스트인 베페 세베르니니는 이탈리아인은 자국만큼이나 코로나19 위기에 짓눌린 미국인에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만큼은 다른 감정이 있다고 말한다. “암흑과 우울의 시대에 트럼프 대통령은 유쾌한 오락거리가 됐다.”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 행동 등으로 세계의 비웃음을 사면서 미국의 존재감은 더욱 약화하고 있다. REUTERS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 잃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비웃음 대상으로 전락하는 동안, 미국 정부는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을 잃어갔다. 1990년대 스웨덴 총리를 했고 보스니아전쟁 당시 주유엔 스웨덴 대사였으며, 4년간 외무장관을 지냈던 칼 빌트는 자신의 정치 여정 30년을 회고하면서 “미국이 관여하지 않은 국제 위기가 단 한 건도 없었다”며 새삼 놀라워했다. “전쟁, 지진 혹은 무엇이 되었든 전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미국이 반응을 보일 때까지 모두 숨죽이고 기다렸다. 미국이 행동을 취한 뒤에야 각국은 그에 상응해 대응하는 식이었다.”
이번 코로나19 위기에서 미국은 놀랍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국의 수많은 주지사, 시장, 의사, 학자와 기업이 코로나19 방역으로 동분서주하는 동안, 백악관은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 방지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코로나 위기에서 미국의 대통령 리더십은 실종됐다. 동시에 전세계에 영향을 미쳤던 미국 리더십도 실종됐다. 이외에 조지 플로이드 사망(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으로 미국 내 정치 지형도 크게 요동쳤다.
주요 7개국(G7)은 3월26일 코로나19 팬데믹 공동성명을 채택하기 위해 화상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우한 바이러스”라는 표현을 고수했다. 나머지 6개국은 이를 거부하면서 G7 정상 화상회의라는 뜨뜻미지근한 정치 시도조차 어이없는 힘겨루기로 끝나고 말았다.
마치 미국 대통령이 헛소리를 지껄이고 미국이 부재를 통해 오히려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고 시위하듯, 미국 국무장관은 ‘현재 상황에 영향을 미칠 능력이 실제로 없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막말을 서슴지 않는 버르장머리 없는 소년처럼 행동했다.
국제사회는 미국의 이런 행동을 두고 놀라운 속도로 결론을 내렸다. 코로나19 방역에 대응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능하고도 돌팔이다운 발언을 놓고 세계인들은 비웃었다.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시대 전환은 이제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전세계가 직면한 보건 위기와 경제 위기 피해 규모를 여전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포스트 아메리카 국제 질서는 모습을 드러냈다. 코로나 시대에 미국은 이전보다 덜 중요해지고, 미국 경쟁국은 더 중요해질 것이다. 미국인이 지금까지 이해하지 못한 방식으로 국제 정치 지형을 뒤바꾸어놓을 것이다.
중국의 야심만만한 선전·선동에 숨겨진 전략을 보자. 파키스탄에서 이탈리아,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각지 공항에서 중국에서 보낸 지원물품 도착을 환영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각본은 항상 대동소이했다. 중국발 비행기가 착륙하고, 지원받은 국가의 고위 인사가 방호복을 입은 중국 전문가들을 환영하면서 감사의 말을 하는 모습이다. 당연히 인도적 지원을 베푸는 중국 의료인은 중국 정부 선전의 핵심이다.
하지만 중국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보호장비 일부는 실질적으로 수출된 것이다. 게다가 진단키트 등 방호물품 일부는 결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원물품을 받는 국가들은 중국의 지원 행위와 공항 연출 행위가 무엇보다 코로나19 기원과 전파에 대한 질문을 덮어버린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의 선전·선동이 먹히는 이유는, 지원받는 국가들이 모든 의혹에도 중국의 글로벌 파워를 수용하면서 중국 투자를 노리는 계산을 끝냈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는 이탈리아에 널리 퍼져 있다. 이탈리아는 코로나19와 뒤이은 봉쇄로 극도로 지쳐 있다. 이탈리아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도 수년 동안 자국의 전통 연합 세력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에 반대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음모론(일부 러시아에서 시작)으로 깊게 분열돼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이 노골적인 선전·선동으로 합세했다. 이탈리아의 인터넷은 중국-이탈리아 우호관계 해시태그(#forzaCinaeItalia)와 “고마워 중국” 해시태그(#grazieCina)로 뒤덮였다.

   
▲ 2018년 11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가한 정상 부인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팬데믹 이후 이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REUTERS

미국 부재를 파고드는 중국의 선전·선동
국가 간 합종연횡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수면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외교 활동이다. 중국의 현대판 실크로드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 이탈리아는 1여 년 전 유럽의 가장 중요한 회원국이 됐다. 일대일로는 유라시아 관계를 강화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포기한 대서양-태평양 무역협정 대안이 될 중국의 무역·인프라 프로젝트다. 오성운동 대표를 지낸 루이지 디 마이오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중국 투자 비중이 커지고 있다. 중국판 올리가르히(러시아의 신흥 재벌)로 통하는 가전유통업체 쑤닝그룹이 이탈리아 유명 축구팀 인터밀란 구단주가 되었고, 중국 은행은 이탈리아 에너지기업 ENI와 자동차 제조업체 피아트(Fiat) 등 대기업에 엄청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탈리아가 코로나19로 경제 피해를 크게 입으면서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은 열매를 맺었다. 이탈리아 일간지 <레푸블리카> 마우리치오 몰리나리 편집장은 중국 사업가들이 파산 위기에 놓인 이탈리아 기업을 인수하고 있다고 말한다. 파산 직전 공장을 찾아내고 자사를 매각하려는 이탈리아 기업인을 접촉하고 다닌다고 전했다. 중국의 어떤 면이 이탈리아에 매력적이냐는 질문에 몰리나리는 “돈”이라고 짧고 명료하게 답했다.
중국이 이탈리아에 공들이는 것과 달리, 미국 정부가 이탈리아를 위해 한 것이라고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느닷없이 미국-이탈리아 직항 노선을 중단한 것이었다. 몰리나리는 “미국이 뒤늦게 보낸 빈약한 지원 패키지를 제외하고는 이번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미국과 우호협력 관계를 느낄 계기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중국의 선전·선동은 다른 곳에서도 결실을 맺었다.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트럼프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현지 미군 주둔 비용을 훨씬 더 많이 부담하라는 과도한 요구에 시달리는 일본과 한국도 중국의 지원을 받았다. 일본과 한국은 중국의 이웃 국가이면서 한때 적국으로 중국에 조심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전세계 비웃음거리로 전락했고, 미국이 글로벌 파워게임에서 한발 물러선 지금, 일본과 한국은 신중하게 중국과 관계를 맺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에서 중요한 허브 구실을 하는 이란에도 지원을 제안했다. 미국 대통령이 전세계에서 필요 없는 인물로 낙인찍힌다면, 이란 지도자들은 미국 제재를 우회할 새 희망을 품어봄직하다.
중국과 아랍국가의 관계도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강화됐다.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는 코로나19 초기에 우한에 구호물품을 보냈다. 이후 중국은 이들 국가에 방역물품을 지원했다. 아랍에미리트 외무장관은 중국을 “코로나 모범 방역국가”라고 치켜세웠다. 3월 초 중국은 의료진을 바그다드에 파견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하기로 결정하자 빈 공간을 파고들기 위한 사전 준비단인 셈이다.
현재 전세계 곳곳에서 미국은 부재중이다. 미국의 관심은 핵심에서 벗어나 있으며 돌부리에 걸려 휘청거리고 있다. 게다가 비웃음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국의 최근 행보를 칭찬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전세계가 미국 대통령을 비웃는 동안 중국 방식이 성공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고자 함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둘러싼 거품 안에서는, “우한 바이러스”라는 표현을 쓰고 중국을 향해 의례적인 수사적 공격을 하는 것이 용감하고 효율적일 수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암흑의 광대로 대중에 인식되고, 폼페이오 장관도 그 광대의 아첨꾼으로 인식되는 현실에서, 폼페이오 말에 귀 기울일 사람은 거의 없다. 이로써 세계에 정치 진공 상태가 생겼고, 중국 정권은 이 진공 상태를 채우기 위한 질주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 미국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뜯어보면, 과거 미국 외교정책의 손길이 닿았던 곳에 저지른 대혼돈의 의미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분주하게 이란에 추가로 제재 조치를 하고 있다. 마치 러시아나 중국, 유럽 동맹국이 여전히 미국을 따를 의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필립 리커 미국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차관은 프랑스 기자들에게서 “코로나 위기가 미국과 프랑스의 뒤틀린 관계 복원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질문을 받았다. 리커 차관은 이 질문에 마치 1980년대 말 소련 연방 특권층 입에서 나왔다고 해도 믿길 정도로 으스대며 말했다. “나는 그 질문이 깔고 있는 전제를 거부한다”며 “프랑스와 미국의 협력은 아주 잘 굴러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프랑스 협력관계에서 유일하게 눈에 띄는 대목은 양국 관계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중 관계 분석 역시 현실과 동떨어졌다. 트럼프 정부의 전 관계자들이 외교정책 전문지에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미국은 중국과 관계를 재설정해야 하며, 반중국 동맹국을 집결해 국제무역 규정을 고쳐 중국을 포위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을 납득할 수 있다.

   
▲ 미국 대통령이 반중국 연합을 주도한다면 어느 나라가 따를 것인가? 유럽연합 지도자들이 2020년 6월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벨기에 브뤼셀에서 대면회의를 하는 모습. REUTERS

포스트 팬데믹 시대, 미-중 관계 재설정
트럼프 대통령이 반중국 동맹국을 규합해 앞장서려 한다면 대체 어느 나라가 그를 따르겠는가? 이탈리아는 대놓고 반기를 들 것이고, 유럽연합은 외교적 우려를 표명할 것이다.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들도 일단 시간을 벌려고 할 것이다. 아프리카 국가들도 이득과 손실을 따져 양국 모두와 우호 관계를 맺기로 결정할 것이다. 비록 아프리카가 중국에서 최근 불고 있는 반(反)아프리카 인종주의에 상당히 분노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돼 모든 흐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확실하게 말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2021년에 그렇게 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중국이 내민 코로나 방역물품을 받는 나라는 여전히 이를 기억할 것이다.
백악관 언론 브리핑에서 코로나19를 치료하는 방법으로 살균소독제 정맥 주입을 제안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할 것이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후임으로 누가 임명되든, 4년은 피해를 복원하는 데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혹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어느 국가든 한번은 실수할 수 있고 부적합한 사람을 지도자로 선출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인이 트럼프를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한다면 ‘더 이상 미국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는 명백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나 진배없다. 이는 미국인이 자국 대통령만큼이나 자신도 멍청하고 나르시시스트이며 무지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전세계가 이런 결론을 도출하더라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 Die Zeit 2020년 25호
Die Ablösung beginnt
번역 김태영 위원

앤 애플바움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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