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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등장이 한국 드라마에 남긴 것

기사승인 [125호] 2020.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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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LTURE & BIZ] <더 킹: 영원의 군주> 비판 다시보기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드라마 <더킹: 영원의 군주> 포스터. SBS 누리집

사람마다 드라마 취향이 다르다. 나는 현재 드라마 한류를 이끄는 3대 장인이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의 김은숙, <별에서 온 그대> <사랑의 불시착>의 박지은, <주군의 태양> <호텔 델루나>의 홍정은·미란(일명 홍자매) 작가라고 주장해왔다. 훌륭한 작가는 이들 말고도 많다. <시그널> <킹덤>의 김은희, <뿌리 깊은 나무> <아스달 연대기> 등을 쓴 김영현·박상연도 믿고 보는 한국의 대표 작가다.
하지만 문화 코드가 대체로 동질적인 우리나라 시청자뿐 아니라 적어도 아시아권 시청자의 눈과 귀를 확 잡아끌 만한 이야기꾼으로는 ‘3대 장인’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잘 구축된 인물 캐릭터, 뻔하지 않은 차진 대사 등이 3대 장인의 장점이다. 이들의 가장 큰 미덕은 작품마다 새로운 소재와 이야기 틀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한국 드라마의 전매특허였던 젊은 재벌 후계자에서 벗어나 외계인, 도깨비, 귀신, 손오공, 인어, 노비 출신 미국인을 비롯해 북한 군인까지 마음을 줄 수 있었다. 이승과 현세, 고려시대와 현대를 한꺼번에 오가는 기쁨도 함께 누리면서 말이다.
최근엔 이변이 생겼다. 3대 장인 가운데 가장 솜씨 좋은 이야기꾼이었던 김은숙 작가의 <더킹: 영원의 군주>가 저조한 시청률 끝에 막을 내린 것이다. 아시아 최고 스타인 이민호와 대한민국 최고 작가인 김은숙의 만남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은 드라마였다. 막상 뚜껑을 열었더니 시청률은 8%대를 오갔고,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터져나왔다. 평행세계로 연결된 이야기 구조의 복잡성과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캐릭터와 연출력, 시대에 뒤떨어진 여성관, 과도한 드라마 속 광고(PPL·피피엘) 등이 주로 거론된 문제점이었다.

달라진 드라마 수요·공급 구조
비판 가운데 일부는 수긍이 갔다. 하지만 어떤 부분은 단지 이 드라마만의 문제가 아니라, 2020년 한국 드라마가 함께 풀어야 하는 숙제다.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기는 쉽다. 해결점을 찾는 것은 어렵다. 지금 한국 드라마는 코로나19로 성큼 다가온 비대면 경제 상황에서 아시아권 맹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드라마의 진로를 고민할 때 <더킹>에 쏟아진 비판에서 더 생각해야 할 점은 없었을까.
먼저 넷플릭스 등장으로 드라마 시장의 수요와 공급 구조가 달라졌다는 점이 간과된 것이 아쉬웠다. 대한민국 대표 작가들 드라마는 넷플릭스에 먼저 팔리는 경우가 많다. 선판매되면 제작비 상당 부분을 지원받아 제작사로선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시청자로서도 드라마 방영과 동시에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볼 수 있어 편의성이 늘어난다.
그런데 세계인이 함께 시청하는 넷플릭스 드라마에는 특징이 있다. ‘몰아보기’ 시리즈가 주를 이룬다. 몰아보기를 유도하려면 이야기 전개 형태를 바꿀 필요가 있다. 이야기는 더 복잡해지고, 회별 완결성은 떨어지곤 한다. 다음 회를 이어보게 하려면 결정적 순간에 이야기를 뚝 끊는 것이 유리하다. 이야기 구조가 복잡할수록 한꺼번에 몰아보려는 마음이 더 커진다.
한국의 대표 작가도 넷플릭스 작품과 경쟁하려면 이 흐름을 무시할 수 없다. 대표 작가일수록 기존 한국 드라마보다 더 다채로운 이야기 구조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과거 본인이 써온 드라마보다 더 복잡하고 치밀한 구조를 구성하는 데 공들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들은 한국의 방송 채널에서 동시에 방영된다. 대부분 한 주에 2회씩 방영된다. 주 2회 드라마와 몰아보기용 드라마에는 차이가 있다. 주 2회 드라마는 지난주에 보지 않았더라도 이번 주 내용을 따라가는 게 어렵지 않아야 한다. 물고 물리는 복잡한 구조라면 주 2회 시청으로 전체 윤곽을 파악하기 힘들다. <더킹>의 평행세계 이야기 틀이 복잡해 이해되지 않는다는 불평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수요자의 시청 형태도 달라졌다. 최근 드라마 몰아보기가 늘어나면서 ‘본방 시청’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드라마라면 아예 시청을 유예하는 사람도 많다. 방영 시간에 맞추느라 고생하며 찔끔찔끔 보느니 아예 마음 편히 본인 시간에 맞춰 몰아보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시청률 비밀도 풀린다. 드라마 목표 시청자 가운데 넷플릭스 가입자는 예전만큼 ‘본방 사수’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다. 본방송을 보려는 시청자는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익숙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에게 넷플릭스용 드라마는 너무 복잡하다. 결국 주력 시청층은 넷플릭스로 이탈하고, 편안한 드라마를 기대하는 시청자에게는 외면받는다. 과거 20~30%대 시청률의 영광은 재현되기 어렵다.
앞으로 넷플릭스에 판매된 드라마들이 방송 채널에서 동시에 방영될 경우 이런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대작 드라마, 한 자릿수 시청률 굴욕’ 같은 기사는 계속될 것이다. 언론도 과거 시청률 잣대에 맞춰 기계적으로 기사를 쓰던 관행을 조금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넷플릭스를 통해 이 드라마들이 세계에서 더 환영받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인만이 아니라 세계인을 위한 드라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킹>도 그랬다.

   
▲ 간접광고(PPL)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 <텔레비전에 그게 나왔으면>의 한 장면. SBS 방송 화면 갈무리

간접광고 vs 직접광고
<더킹>의 지나친 광고 문제도 많이 지적됐다. 너무 많은 피피엘로 몰입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대표 작가 드라마로도 두 자릿수 시청률과 상응하는 광고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연스레 방송사 편성료가 줄어들고 제작비에도 연쇄 타격이 온다. 제작비를 충당하려면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 업체에 선판매하든가, 피피엘을 활용해야 한다.
<더킹>은 넷플릭스 선판매로 다른 드라마보다 제작비가 넉넉한데도 피피엘을 너무 많이 넣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더킹> 편당 제작비는 20억~25억원 안팎으로, 16부작에 모두 320억~350억원이 들었다. 제작비는 편성료와 넷플릭스 판매료로 모두 회수했고, 피피엘 등으로 약 30% 수익을 올렸다는 후문이다. 피피엘을 줄여야 한다면 이 정도 수익을 포기하라는 이야기다. 상업 드라마 시장에서 기대 수익을 포기하라는 주장은 하기 쉽지 않다. 모든 드라마에서 이 정도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을 냉정하게 반영해, 드라마에는 중간 광고를 조금 더 허용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드라마 안에 들어가는 간접광고나, 드라마를 중단하고 보여주는 직접광고나 시청자에게 달갑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야기까지 훼손하는 간접광고보다는 “잠깐 광고 보고 다시 시작하는” 직접광고가 드라마 자체에는 그나마 나을 수도 있다. 이런 문제로 최근 지상파 방송 드라마는 2부로 쪼개 중간 광고를 넣게 됐다. 만약 피피엘을 더 제한해야 한다면 더 많은 중간 광고를 허용해야 할 터다. tvN이나 JTBC의 방영 드라마에 삽입되는 중간 광고 분양과 비슷할 것 같다.
드라마 평균 제작비는 편당 10억~20억원이지만, 같은 분량의 예능 프로그램 제작비는 약 1억~2억원 수준이다. 최근 채널만 돌리면 엇비슷한 트로트 가수로 가득 찬 예능 프로그램이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즐겨 보는 중장년 시청자가 좋아해 시청률도 보장되고, 제작비는 드라마의 10~2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제작비가 20배 드는 프로그램을 채널에서 계속 편하게 보려면 좀더 대가를 치르는 게 필요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텔레비전에서 트로트 가수만 보는 날이 진짜 올지 모른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달라진 ‘여성관’
<더킹>에는 다른 문제도 있었다.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주요 캐릭터의 심리가 잘 표현되지 않아 공감하기 어려웠다는 평이 많았다. 작가도 새 도전 과제를 해결하느라 모든 것을 챙기기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무엇보다 아무리 평행세계라지만 ‘백마를 탄 황제’라니, 작가의 구시대적 여성관이 문제라는 지적도 많았다.
한국 드라마에서 왕자, 재벌 혹은 유사한 절대능력을 가진 남주인공과 그가 구원하는 여주인공이라는 설정은 낯익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낯익었던 이야기가 2020년에는 빛바랜 낡은 것이 됐다. 최근 사회 전체적으로 여성관이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미디어가 다루는 여성을 향한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표 작가도 과거에 잘 써먹던 방식이 갑자기 ‘구시대적’이라고 비판받는 상황이 당황스러울지 모른다.
대중매체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은 ‘동시대성’이다. 동시대 사람의 감성과 생각을 잘 담아야 공감을 일으키고 성공한다. 세상은 바뀌었고, 세상 속 여성도 바뀌었다. 드라마도 그런 변화를 함께 담아내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 김윤지 연구위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9월호

김윤지 yzkim@koreaexi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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