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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살찌고 가계는 배고픈 이유

기사승인 [126호] 202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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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이제는 통하지 않는 경제법칙- ② 화폐·금리·부채

크리스티앙 샤바뇌 Christian Chavagneux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04 화폐가격을 내리면 경제가 성장한다
경제학에 쓰이는 전제 조건 하나, 가격을 낮추면 상품이 더 잘 팔린다. 정부는 자국 상품을 외국에 더 많이 팔기 위해, 다시 말해 무역 우위를 점하려 자국 화폐 가치를 낮춘다. 그러면 외화 가치는 올라간다. 1달러로 1유로에서 2유로를 살 수 있는 식이다. 마치 유럽 수입품 가격이 반토막 난 것과 같다. 자국 경쟁력을 빠르게 올릴 수 있는 전략이지만 주변국 희생이 필요하다. 다른 나라의 화폐 저평가 정책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다.
화폐가 평가절하되면 중앙은행도 같이 긴장한다. 외국 소비자는 같은 상품을 싼값에 사는 셈이지만, 수입업체에는 외려 비용이 늘어난다. 비용이 상승하면 가격도 따라 오른다. 인플레이션(지속적인 가격 인상) 압박으로 이어진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반기지 않는다.

화폐 저평가와 실물경제
수출 경쟁력을 높여 대외 수요가 늘어나면 최종적으로 자국 경제가 성장한다. 대신 나라 안에선 물가가 올라 구매력이 떨어지고 내수가 줄어든다. 대외 수요 증가와 내수 위축 가운데 무엇이 더 클까. 2002~2014년 미국(달러), 2013년부터 일본(엔), 브렉시트 결정 이후 영국(파운드)이 각각 화폐 평가절하 정책을 시행했지만, 경제성장률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환율이 실물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왜 그랬을까.
재화 가격은 서비스 가격보다 환율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국제적으로 재화 교류가 더 활발한 탓이다. 선진국은 국내 산업 비중을 줄이는 구조조정으로 환율 의존도를 낮추려 한다. 세계화도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다. 전세계가 생산 사슬로 엮이면서 상품 제조에 필요한 수입 부품이 계속 늘어난다. 화폐 저평가로 수출품 가격은 낮아지지만, 동시에 수입 부품 구매 비용은 늘어난다. 인건비가 비싼 선진 경제에서는 생산이 중단된 부품, 지역 생산으로 대체하기 어려워 수입할 수밖에 없는 부품이 많다. 환율 변동 효과는 결국 수출품에서 수입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에 달렸음을 알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7%, 베트남은 44%다. 환율-경제성장 관계를 정의하는 보편 법칙은 없다.  

   
 

05 금리는 0 아래로 떨어질 수 없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기업, 개인은 가진 돈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할 때 모자란 만큼 돈을 빌린다. 경제주체 누구나 돈을 빌릴 때 이자 내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은행이든 투자자든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려줄 때 되돌려받지 못할 위험을 감수한다. 이 위험은 돈으로 환산된다. 바로 대출금리다. 금리는 높을 때도 낮을 때도 있지만, 본래 목적에 맞게 항상 0보다 크다.
그런 금리가 몇 년 전부터 심상치 않다. 몇몇 경제 강대국 정부뿐 아니라 일부 기업이 마이너스금리로 대출받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에 따르면, 2019년 신용도가 좋은 편인 대출자 3분의 1이 마이너스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엄청난 비율이다. 2019년 프랑스에서도 10년, 심지어 15년 만기 국채 금리까지 한시적으로 0 아래로 떨어졌다. 투자자가 아무것도 받지 않고 돈을 빌려준다. ‘빌리는’ 대가로 외려 돈을 챙겨준다.

중앙은행 정책 효과
이런 이상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주요 원인으로 가장 많이 지목되는 것이 화폐 정책이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2015년)부터 유럽중앙은행(ECB)은 매달 200억유로 규모의 채권을 사들였다. 코로나19가 터지고 나서는 궁지에 몰린 회원국이 마음 놓고 재정을 쓸 수 있도록 1조3천억유로(약 1800조원)를 시장에 풀었다.
채권을 끊임없이 발행하다보니 금리가 서서히 떨어졌다. 여기에 경기침체, 무역전쟁, 바이러스 등 전세계적으로 불확실성이 팽배해졌다. 이런 환경에서 프랑스와 독일 등 몇몇 나라는 투자 가치가 확실하다고 여겨졌다. 투자자가 이윤을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중앙은행의 정책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와 유로존 위기가 터지기 전에 이미 금리는 내림세를 타고 있었다. 1990년대부터 전세계적으로 투자보다 저축에 돈 쏠림 현상이 있었다. 돈을 빌리는 수요가 줄고, 돈을 빌려주는 공급이 늘었다. 결과적으로 돈 가격이 싸졌다.
경제학자 폴 슈멜징은 놀라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대출금리 내림세가 이미 수세기 전에 시작됐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전세계’(라고 하지만 연구는 주요 8개국을 대상으로 했다) 장기 금리는 19세기에 10%를 조금 넘었다. 21세기 초에는 1.3%까지 낮아졌다. 두 수치 모두 물가변동률을 적용한 실질금리다. 금리 내림세가 계속된다면 단기 실질금리는 2020년대 말까지 마이너스 구간을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장기 금리도 마찬가지다. 21세기 후반 마이너스 구간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경제학 교재가 절실하다!  

06 시장을 개방하면 모두에게 이롭다
경제학자 대다수가 인정하는 법칙이 있다. 국제 시장에 진출하는 나라가 갖춰야 할 여건을 제시한,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이다. 이 이론에서 리카도는 상대 나라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자원(숙련 또는 비숙련 노동, 자본 등)으로 생산한 재화를 상대 나라에 수출하면 교역에서 승자가 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아인슈타인의 타자 속도가 자신의 비서보다 빨랐으니 직접 보고서를 치는 게 나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비서가 아인슈타인처럼 이론 연구를 할 수 없으니 타자는 비서에게 맡겨두고 아인슈타인은 이론 개발에 집중한다. 모두 승자가 되는 것이다.
국제 무역은 경제 전반에 긍정적 효과를 일으킨다. 하지만 그 이익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은 경제학자들도 인정한다. 경쟁력과 실력이 가장 우수한 이가 더 큰 몫을 가져간다. 이때 해법으로 재분배 정책을 쓰면 된다.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은 시장이 개방된 나라일수록 복지를 강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뒤집힌 평가
국제 무역을 긍정적으로 보던 시선이 최근 몇 년간 변화했다. 로드릭 말을 되짚어보자. “사회가 점점 분열되고 불평등이 심화한다. 탈산업화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탈산업화 책임은 세계화와 기술 변화에 있다. 보호 제도가 뒷걸음치는 가운데 이 모두가 일어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도 로드릭과 비슷하게 국제 무역을 평가했다. ‘세계화에 참여하면 국가 소득 수준이 높아진다. 하지만 국제 무역 의존도가 높을수록 최종적으로 얻는 이득은 줄어든다. 세계화에서 오는 성과는 부유층에만 돌아가 불평등이 심화한다.’ 세계화 참여자 가운데 일부만 승자가 되는 건 불가피한 현실이다. 문제는 그 수가 너무 적다는 데 있다.
폴 크루그먼은 세계화가 지역경제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경제학자들이 간과한다고 지적한다. 어떤 지역에선 출혈이 너무 크다. 영국 중앙은행 조사에 따르면, 1980년대까지 섬유산업이 몰려 있던 영국 지역은 공장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고용률과 경제활동인구 비율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 여파가 오늘날까지 지속하고 있다. 현실은 리카도 이론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세계화는 사람과 지역을 차별하며 불안정하다. 재정 위기와 감염병을 이 나라 저 나라로 전파한다. 경쟁은 불공정해졌다. 사회·환경적 덤핑으로 유지되고 있다. 경쟁은 몇몇 기업의 독점 권력을 키우고, 이들 기업은 탈세를 계획한다. 물론 전체주의가 해법이 아니라는 건 역사가 깨우쳐줬다. 그래도 통제되고 절제된 개방, 재분배가 가능한 개방만이 모두에게 이로운 세계화가 될 수 있다. 갈 길이 멀다.

   
▲ 2020년 2월 아르헨티나 의회가 공공 대외 부채의 재협상에 관한 법률을 논의하는 가운데 의사당 건물 밖에서 노숙인이 잠을 자고 있다. REUTERS

07 기업엔 가계가 저축한 돈이 필요하다
경제학 공부를 시작하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있다. 가계는 저축하고, 기업은 투자할 돈을 구한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노동자에게 급여와 배당금을 챙겨주고 세금을 낸 다음, 남은 돈은 투자할 때 쓴다. 모자란 돈은 은행이나 금융시장에서 빌린다. 그런데 오늘날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문제가 닥쳤다. 이 원리가 조금 복잡해졌다. 기업이 가계보다 저축하는 돈이 더 많아진 것이다.
이 현상은 1990년대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내 유보금이 계속 불어난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2017년 연구보고서를 보면, 농업·광산업과 운송업, (전력, 가스, 수도 같은) 공공서비스를 제외하고 모든 기업이 금융업자로 변신했다. 다른 경제주체에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기업이 현금을 쌓아두는 행태는 기업 규모나 설립 연도와 상관없이 이루어진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다국적기업의 사내 유보금이 늘어나는 속도가 월등히 빠르다.

사내 유보금 증가 배경
나라별로 특수한 상황을 살펴보지 않아도 전세계 기업의 사내 유보금이 늘어나는 추세를 설명할 수 있다. 기업은 노동자 임금을 천천히, 배당금은 일정하게 올려준다. 그러면서 기업 이윤을 늘린다. 결국 임금노동자의 소득 감소가 기업과 가계 형편에 불균형을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기업 저축액 곡선이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는 동안, 가계 저축액 곡선은 추락한다. 임금이 좀처럼 오르지 않으니, 가계는 떨어지는 구매력을 붙잡으려 저축할 돈을 아낀다.
그뿐이 아니다. (법인세 감면, 공격적 조세회피로) 기업의 세금 부담은 줄어들고, 투자상품 가격은 낮아지고, 이익률이 올라갔다. 기업들 현금 주머니는 점점 두둑해졌다. 요약하자면, 기업은 가계소득을 쥐어짜면서 늘린 부를 쌓아둔 것이다. 전 국민 이동제한령으로 발이 묶인 기업에 그래도 정부 지원이 필요했다. 그 혜택이 노동자에게 돌아가진 않겠지만.  

08 공공부채는 경제성장 장애물이다
이 이론도 ‘공식’ 경제학이 낳았다. 긴축재정을 외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구실을 한 이론이다. ‘공공부채가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경기가 침체한다.’ 쌓인 빚이 일정 수준을 넘는 순간 투자자(채권자)는 정부(채무자)의 채무 상환 능력을 의심한다. 정부는 빚 갚을 재정을 마련하려 당연히 세금을 올릴 것이고, 그 결과 소비와 투자 모두, 또는 둘 중 하나가 위축하리라 생각한다. 위험이 큰 나라(투자 대상)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한다. 최종적으로 부채 비용이 올라가 채무 변제가 더 어려워지고 세수에서 더 큰 몫이 빠져나간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부채를 통제해야 한다.
공공부채 적정 수준은 얼마일까.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카르멘 라인하르트와 케네스 로고프가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직후 발표한 보고서는 국내총생산의 90%를 공공부채 상한선으로 본다. 이 선을 넘으면 경기부양이라는 긍정 효과가 부정 효과에 가려진다는 것이다.

팬데믹 교훈
여러 반론이 제기됐다. 우선 라인하르트와 로고프의 계산에 오류가 있었다. 두 사람이 제시한 수치는 겨우 한 번, 그것도 박사학위 준비생이 검산한 허술한 결과였다. 게다가 고정불변하고, 모든 나라에 유효한 부채 한계선이 있을 수 없음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지금까지 금융위기 이후 시행된 강력한 긴축정책은 적자를 만회하기보다 나라 경제를 빠른 속도로 망가뜨렸다. 오늘날 막대한 돈이 투자할 곳을 기다리며 세계 곳곳에 잠들어 있다. 금리는 중앙은행 정책으로 오랫동안 낮게 유지될 것이다. 그 덕에 부채 비용이 오를 일도 없다. 빚이 많지만 신용도가 좋은 프랑스 같은 나라도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확실해졌다. 나라가 적자를 감수하고 빚을 늘리는 것이야말로 봉쇄된 경제가 낳을 부정적 영향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면 깊은 수렁에 빠진 경제를 끌어올리기가 더 쉽지 않았을 것이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0년 9월호(제404호)
Panique chez les économistes! Ces 10 lois qui ne fonctionnent plus
번역 최혜민 위원

크리스티앙 샤바뇌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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