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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왕’ 카네기가 세계적 부자가 된 이유

기사승인 [127호] 20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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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혁준의 바보야, 문제는 돈이야!]

   
▲ 1869년 미국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첫 대륙횡단철도 완공식에 많은 사람이 나와 축하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코로나19로 원격교육·재택근무 같은 비대면 활동이 일상으로 자리잡은 새 일상(뉴노멀) 시대에 진입하면서 4차 산업혁명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전환의 시대에 누군가는 기회를 잡아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뒤처진다. 세계 최고 부자로 이름을 날린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년)도 그랬다.
카네기는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도시인 영국 스코틀랜드 동부 던펌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옷을 만들어 팔았다. 할아버지 일을 물려받았다. 순조롭던 사업이 어느 순간 돌변했다. 산업혁명 때문이었다.
가내수공업 방직은 직물 기계에 밀리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아버지는 산업혁명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재래식을 고수했다. 가난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지경으로 가족을 몰아갔다. 아무도 아버지에게 옷감을 맡기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신천지를 찾아 미국으로 떠나자고 했다. 스코틀랜드에선 미국 이주를 ‘야반도주’(Flit)라고 불렀다. 도저히 먹고살기 힘들어진 사람들이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아버지는 어두컴컴한 텅 빈 방직 공장에서 머리를 손에 파묻은 채 혼자 앉아 있었다. 자신의 젊음을 함께했던 공장을 이젠 떠나야 했다. 한때 ‘방직 명장’이었던 그는 이젠 지친 낙오자가 돼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신대륙에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다. 아버지는 다른 분야를 찾아 적응하려 하지 않았다. 스코틀랜드에서 실패한 재래식 가내수공업 방직을 계속하려 했다. 물론 그에겐 젊은 날 방직 명장으로 불렸던 추억을 신대륙에서 되살리고 싶은 생각이 있었으리라.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기술 진보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채 구닥다리 기술에 안주하려는 태도이기도 했다.

대전환 시대에 아버지와 아들은?
반면 아들은 끊임없이 적응하면서 기회를 만들어나갔다. 처음엔 아버지처럼 방직업을 했으나 이후 보일러공, 전보배달원, 전신기사로 계속 거듭났다. 그러면서 전신과 철도 산업을 알게 되고 당시 최고 붐을 맞이하던 철도산업 안으로 들어갔다. 카네기 스스로 새로운 기술혁명에 적응하며 기회를 잡은 것이다. 카네기가 세계적 부자가 된 계기는 철도산업이었다.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제조업이 발달하면서 운반해야 할 물자가 폭증했다. 이에 따라 대륙을 가로질러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대륙횡단철도가 필요했다. 철도 건설에 많은 자본이 들어갔다. 처음엔 누구도 철도산업에 나서지 않으려 했다. 결국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3천㎞에 이르는 철도 구간 양쪽 20㎞ 땅을 무료로 주고 철도 1마일(1.6㎞)당 정부보조금이 지급됐다. 인센티브가 제시되자 많은 사람이 철도산업에 뛰어들었다.
철도를 따라 서부까지 도시가 생겨나고 작은 마을이 대도시로 발전했다. 많은 사람이 농장을 일구기 위해 미국 서부로 옮겨갔다. 철로가 생기면서 서부의 넓은 땅이 옥수수밭과 가축을 키우는 땅으로 바뀌었다. 철도망이 전국적으로 깔리기 전까지 제조기업은 마케팅에 신경 쓰지 않았다.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더라도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상품을 팔기 힘들었고 물류비도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철도는 이런 상황을 바꿔버렸다. 철도를 통해 물건이 많이 팔리면서 상품 가격은 떨어졌고, 상품 가격 하락은 더 많은 수요를 불렀다. 코카콜라와 프록터앤드갬블(P&G) 같은 대기업이 전국적으로 기업망을 확대할 수 있었던 것도 철도 덕분이었다. 철도회사는 지금으로 치면 물류·유통 회사 구실을 한 셈이다.
철도산업과 함께 성장한 건, 카네기가 일한 전신산업이었다. 전신산업은 초반기에 미 동부 해안선을 따라 소규모로 시작했지만, 남북전쟁 뒤 전국을 연결하는 광범위한 전신망을 갖춘 산업으로 성장했다. 전신산업은 처음부터 철도산업과 협력했다. 전선이 철로를 따라 설치됨으로써 전신회사들은 비싼 토지 개간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철도 역시 전신이 필요했다. 기차 충돌 사고를 막으려면 정교한 신호체제와 운영시스템이 있어야 했다. 배차 정보를 역마다 전해주는 전신망이 필요했다. 철도가 놓이면서 분과 초 단위로 시간이 관리됐고 정밀한 시간 개념은 일상생활로 파급됐다.

패러다임 변환기에 기회 찾아야
철도와 전신 산업은 금융산업 성장을 이끌었다. 철도 주식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 활발히 거래되면서, 월스트리트는 급속하게 성장했다. 동시에 주식과 채권 판매를 다루는 근대적인 투자신탁 은행이 나타났다.
월스트리트 자본가는 채권을 만들고 투자자에게 팔아 새로운 부를 축적했다. 철도 건설 붐이 일면서 이 철도 건설을 위한 채권을 발행하고 이를 월스트리트에서 거래했다. 이는 금융자본가의 출현을 촉발했다.
전신산업 역시 월스트리트의 부흥을 이끌었다. 전신은 수백, 수천 마일 되는 곳까지 정보를 단 몇 분 만에 전달했다. 주식은 매매하기에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전신은 위안이 돼주었다.
철도와 전신 산업은 대기업 성장과 금융자본주의를 불러온 중요한 요인이었다. 기업가, 은행가, 주식중개인, 자본가는 이런 신기술을 통해 사업 기반을 끊임없이 넓힐 수 있었다.
철도와 전신이라는 새로운 사업으로 시장은 재편됐다.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밴더빌트(철도), 록펠러(석유), 카네기(철강), JP모건(금융) 등 미국 경제를 움직이고 새로운 경제질서를 만든 상징적인 인물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로 돌아와보자. 코로나19로 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 기반의 4차 산업혁명 대전환기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미래를 엿보고 잘 대응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카네기처럼. 자신이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변혁에 적응하지 못하면 삶은 팍팍해질 것이다, 카네기 아버지처럼.

* 몇 해 전 나온 ‘청소년 반부패인식지수’에서 중고생 18%가 “10년 감옥 사는 한이 있어도 10억원을 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고 답해 논란이 됐다. 돈을 향한 비뚤어진 가치관은 ‘물신주의’를 향해 내달리는 우리 사회의 잘못에서 비롯됐다. 매일 돈과 관련한 정보가 쏟아지지만, 정작 돈과 우리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에는 익숙지 않다. ‘바보야, 문제는 돈이야!’에서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의 주인’으로 행복하게 사는 법을 독자와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11월호

정혁준 june@hani.co.kr

<저작권자 © 이코노미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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