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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효과적인 정책 거버넌스 찾아야”

기사승인 [127호] 20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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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곤의 웰페어노믹스] 정책학습 관점에서 본 의사파업

   
▲ 2020년 9월9일 전공의들이 무기한 집단휴진을 끝내고 병원으로 돌아온 가운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4학년 학생의 81%는 내부 설문조사를 통해 동맹휴학과 의사 국가고시를 계속 거부하는 데 반대한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 어린이병동에서 환자를 이송하는 의료진 모습. 연합뉴스

2020년 9월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의사들의 집단휴진, 이른바 ‘의사파업’은 전공의들이 19일 만에 병원에 복귀하면서 마침내 끝났다. 하지만 사태가 완전히 끝났다고 말할 수 없다. 의대생들의 의사 국가고시 거부가 여전히 이슈인데다, 의정협의체 구성 등 정부·여당과 대한의사협회 사이에 맺은 ‘의정합의’의 결과가 또 다른 불씨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파업’이 남긴 것
이번 사태는 여러모로 현 정부의 뼈아픈 ‘정책 실패’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의대 증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지역 의료체계 개선이란 애초의 정부 계획이 이미 큰 차질을 빚었고, 시급하고도 중대한 공공보건 의료체계 개혁이 상당 기간 동력을 잃게 됐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국가 정책 실패는 대체로 대가가 막대하다. 예산 낭비와 기회비용 문제를 초래하고, 갈등과 대립으로 사회적 비용 또한 엄청나다. 무엇보다 “국민의 정치에 대한 효능감을 떨어뜨리고 정부 불신을 초래해 ‘정책 실패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점에서 매우 문제적이다.
이번 사태의 경우, 먼저 응급실과 중환자실 소속 전공의들도 대거 집단휴진에 참여하면서 적잖은 환자와 가족이 고통을 겪었다. 파업 당사자인 의사들은 물론 정부·여당과 청와대도 내상이 적지 않다. 어떤 승자도 없는 대한민국 공동체의 모두가 피해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왜 이런 상황을 초래했는가?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일까? 7월23일 정부·여당의 ‘의대 증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방안’ 발표, 이어 의사들의 거센 반발 그리고 의정합의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정책 과정은 정책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교훈과 대안을 찾는 이른바 ‘정책학습’ 관점에서 차분히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정책을 추진할 때 의사를 비롯한 이익집단과 어떻게 정책 조정을 해야 할지라는, 좁게는 ‘정책 거버넌스’, 넓게는 ‘보건의료 개혁의 정치’란 관점에서도 의사파업 전후 정책 과정을 톺아볼 이유가 충분하다. (여러 한계상 여기서는 이런 점검의 실마리만 살필 수밖에 없다는 점도 아울러 밝힌다.)

정책 실패는 왜?
어떤 정부든 정책을 추진할 때는 언제나 성공을 확신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평가를 받는 정책이 많지 않다. 왜 어떤 정책은 성공하지만, 어떤 정책은 실패할까?
정책 실패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 데 따른 복합적인 결과다. 우리나라 보육 정책처럼 애초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정책 실패 사례도 적잖다. 정책 결정 단계에서 즉흥적인 결정을 내려 실패한 경우도 있다. 한 정부 부처를 출입하던 일선 기자 시절, 특정 정책이 사회적 이슈가 됐을 때 담당 사무관이 낸 즉흥적인 아이디어가 하룻밤 새 국가정책으로 급발진해 발표되는 일도 봤다. 정책 형성은 잘돼도 집행 단계에서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이나 복지부동, 집행자 간 불화, 정책 대상 집단과 소통 부족이나 예상치 못한 반발이 정책 실패를 불러온 사례도 있다. 간혹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천재지변으로 인한 실패 사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정책 실패는 대체로 정책 과정(Policy Process) 단계마다 발생하는 ‘인재’(人災)에서 비롯된다.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책이란 “가치를 배분하는 권위 있는 결정과 행동들의 집합”이라고 정의한다. 그것은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획득하는가”, 즉 자원을 배분 또는 재분배하는 과정의 성격을 띤다. 따라서 많은 정책은 설계·형성·집행 등의 단계마다 재정이란 제약과 이해관계자들의 반발 같은 갈등이 생기게 된다.
정부가 추진한 의대 증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지역의사제 방안은 명분이 뚜렷한데다 복잡한 정책이 아니다. 의대 정원은 2006년 이래 총 3058명으로 묶여 있었다. 지방에서 의료인력 부족은 해묵은 이슈다.
우리나라는 인구 1천 명당 활동 의사 수가 2.4명(한의사 포함)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4명의 71%에 불과하다. 이는 의사들도 인정하는 객관적 수치다. 정부는 전국을 70개 진료권으로 나눠 중증·필수의료 기능 수행 여부를 파악하고, 중증(심장·뇌·응급)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추가로 필요한 인력을 추계한 결과, 필요한 의사 수는 적어도 3258명(전문의 2260명, 일반의 998명)이란 통계를 별도로 제시했다. 더구나 코로나19 시대에 우리의 보건의료 공급 체계가 처한 현실을 고려하면 필요한 정책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현실을 바라보는 의사들의 생각이 달랐고, 예상 이상의 거센 반발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의사들은 “우리나라는 의료 접근성과 효율성이 세계 최고”라는 등 여러 이유를 앞세우며 의대 증원 확대에 거세게 반발했다. 개중에는 아예 “내 밥그릇 내가 지키지 누가 지켜주겠냐”고 대놓고 ‘밥그릇론’을 주장했다. 적잖은 의료인 유튜버가 의사들의 반발을 증폭하는 의사집단 담론의 확성기로 나섰다. 사실 의사들의 반발은 애초부터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런데도 왜 작금 같은 정책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나?

문제는 정치력
민주주의 체제에서 이익집단의 반발이나 정부와의 갈등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숱한 이해관계 집단과 가치가 대립하고 경합하는 게 바로 민주주의 사회다. 따라서 갈등은 오히려 민주주의 사회의 건강성을 방증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핵심은 갈등을 조정 또는 관리, 소화하는 정부와 이익집단 사이의 성숙한 상호관계와 제도화된 갈등 조정 체계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정책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다. 의미를 확장하면 권력관계에 따른 정치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컨대 예상되는 갈등을 얼마나 사전에 조정했는가, 또 이를 위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얼마나 충실하게 이뤄졌는가, 이런 정책 조정을 꾀할 정당정치가 얼마나 원활히 작동했는가, 경합하는 가치와 이해관계를 조정할 민주사회에 걸맞은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정책 거버넌스를 얼마나 갖추고 있는가 등이다. 이는 정치의 문제다.
기실 이번 사태는 정책 거버넌스가 없거나, 이익집단과의 정치 과정을 놓친 정책이 어떤 운명에 처할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사태는 첫 단추 끼우기부터 삐걱했다. 의사집단의 반발은 예상했지만 그 강도를 안일하게 생각했다. 특히 기존과 다른 문법과 속성을 지닌, 전공의란 새로운 의사 세대 주도자들의 등장은 미처 예상치 못한 요소였다. 그러다보니 이를 고려한 정책 추진의 우선순위나 정책 발표 시점에 대한 숙고나 점검이 내실 있게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공식 발표 이전에 이해관계 집단인 의사단체들과 충분히 소통하거나, 해당 의제 공청회 등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실제 이번 정책을 추진하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한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번 정책은 공식 발표에 앞서) 청와대에서 오랜 논의 과정이 있었고, 수십 차례의 내부 찬반 토론을 거쳐 확정한 정책”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찬반 이슈는 지역의사제 도입 여부였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어디나 정권 내부 ‘관료정치’의 영역이다.
문제는 내부의 조정이나 토론이 아닌, 정책 대상 집단은 물론 시민과의 충분한 정책 논의 과정, 즉 의견 수렴과 공론화 과정을 통한 정책 조정 과정이다. 이와 관련해 앞에 언급한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털어놨다. “솔직히 발표 과정에 이르기까지 (의사들과)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다. 운을 떼고 협의하는 과정이 있었더라면…. 이게 첫 번째 착오였다.”
이는 의사들의 반발 강도를 높이는 빌미가 됐음은 물론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교실)도 비슷한 맥락에서 “의사들이 강하게 파업에 나선 데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자신들을 (정부가) ‘패싱’(건너뛰기)했다고 생각한 것이 컸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와 정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내부 토론이 격렬하게 이뤄졌는지 몰라도, 정작 이해관계 당사자인 의사집단과 충분한 사전 논의를 하지 못했다는 점은 이번 사태를 평가하는 다수 언론이 이미 한목소리로 지적한 대목이다. 정부와 여당이 두고두고 되새겨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의사들은 2000년 의약분업 반대를 위한 첫 집단휴진 이래 2014년 원격의료, 영리병원 반대를 위한 집단휴진 등을 겪으면서 어떤 전문가 집단보다 이익집단으로서 영향력을 키워왔다. 이들의 집단휴진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다른 이해관계 집단과는 단체행동의 파괴력이 다르다.
이번 정책을 놓고 공청회나 토론회 등을 통해 다각적인 의견 수렴 절차를 갖는 사회적 논의 과정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보건의료단체나 전문가들의 지적도 정부·여당으로선 변명할 여지가 없는 대목이다.
이번 사태에서 짚어볼 또 하나의 지점은 새로운 세대인 청년의사 집단의 등장이다. 2000년대 의사파업과 달리, 2020년 의사파업의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이들이 파업 주도자로 떠오른 점이다. 여권 관계자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의사들의 반발이 어느 정도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렇게 셀지는 몰랐다. 특히 전공의들의 반발이 이 정도일지 몰랐다”고 토로했다.

   
▲ 2020년 9월4일 서울대병원에서 전문의가 보건의료 정책에 반대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 정교하게 알아야 할 이익집단
이번 집단휴진은 과거 동네 의사들이 대거 동참하던 때와 다른 양상이었다. 이번 의사파업을 주도한 이들은 전공의다. 의사면허자 12만6천여 명 중 13%(1만6천 명)를 차지하는 이는 선배 의사들과 고용주의 지원에 힘입어 대학병원이나 대형 종합병원을 뛰쳐나와 상당한 응집력을 과시하며 이번 의사파업을 앞장서 이끌었다. 이들은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을 비우는 상황까지 마다치 않았다. 의사협회의 결정조차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전과 다른 양태를 보여준 새로운 속성을 지닌 의사 세대의 출현이다. 이들의 사고와 행동방식을 이해하지 않고는 앞으로 실효성 있는 의정합의가 어렵다는 걸 이번에 뚜렷이 증명해 보였다.
정세균 국무총리나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필자와의 대화에서 일련의 의정합의 과정에서 이들과 합의문을 작성하거나 거의 합의에 이르렀으나 번복당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들은 기존 의사들과 다른 특성이 있어 당황스러웠다.” 정부나 정치권 등이 앞으로 정책을 추진할 때 이해관계 집단을 세대별로 좀더 섬세하게 이해해야 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민 참여 정책 거버넌스 구축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도 잘못 끼우기 십상이다. 의정합의 결과가 딱 그렇다. 이 합의는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내장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사회적 거리 두기가 1단계로 완화하면서 정부가 이른바 ‘9·4 의정합의문’에 따라 의정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지만, 의료계는 의대생 국시 문제 해결 노력을 먼저 보여야 한다고 맞섰다. 예견된 상황이다.
시민사회단체와 적잖은 전문가 등 여론은 의정합의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 “코로나19가 안정될 때까지 의대 증원 확대 등의 정책 추진을 중단하고 향후 의정협의체를 구성해 현안을 논의하고, 논의 결과를 보건의료 발전 계획에 반영하겠다”는 게 대체적인 합의 내용이다. 심지어 향후 입법 과정에 논의 내용을 반영하겠다고 명시해놓았다.
의정합의의 결과는 정책 실패를 넘어 정책 후퇴나 다름없다. 김윤 교수는 “의료계와 정부가 일대일로 밀실에서 타협을 보는 이런 의정합의는 정부가 늘 해오던 방식인데, 이제는 낡은 (정책 조정) 패러다임”이라고 꼬집었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에서 그들만의 협상으로 이뤄진 시민 배제적 정책 논의는 정책 후퇴라고 반발하는 대목도 같은 맥락이다. 자연스레 보건의료 현안을 논의할 시민 참여적인 새로운 정책 거버넌스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국가는 수많은 정책을 통해 일상적으로 시민의 삶에 개입한다. 이들 정책은 단순히 공무원들의 기능적 업무가 아님은 물론이다. 개중에는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방책이기도 하지만, 때로 우리 삶을 후퇴시키는 나쁜 정책도 있다.
정책은 정치 과정의 일부며 우리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정책 과정에서 숱한 행위자들이 관여해 자신의 이해관계나 가치를 투영하면서 격돌하는 대립과 갈등의 장이다.
의사파업을 불러온 정책 과정에서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실은, 우리 사회는 아직도 민주적이고 효과적인 정책 합의의 거버넌스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책과 그 결정 과정은 절대 고위 정치 엘리트나 관료는 물론 이익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정책이 우리 삶에 끼치는 막대한 영향을 고려하면 시민들이 더 다양한 지식과 깨달음으로 정책을 살피고 갑론을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성급한 정책 집행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뢰와 합의를 중요시하는 관점이다. 갑론을박과 합의의 제도화 방안이 바로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시민 참여의 정책 거버넌스 구축일 것이다.

* 복지를 다년간 살피고 책도 펴냈다. 그러다 ‘복지와 경제의 호혜적 융합’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늦깎이 경제 공부에 매달리는 언론인이자 사회과학도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개혁, 그 수단으로서 좋은 정책과 복지정치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11월호

이창곤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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