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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된 미국, 성과주의를 방치한 자유주의자의 책임”

기사승인 [127호] 20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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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OPLE] 마이클 샌델 인터뷰

도널드 트럼프의 적들은 트럼프가 미국을 완전히 분열시켰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미국 하버드대학 철학 교수인 마이클 샌델은 이런 분석이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유주의자에게도 미국 사회 분열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주잔 바우어 Susan Bauer <슈피겔> 기자

   
▲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는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때 한국사회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연합뉴스

마이클 샌델(67) 교수는 친절했고 신사처럼 약간 수줍은 웃음을 보였다. 그는 학계나 정계나 가릴 것 없이 미국 엘리트에게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논지는 날카로웠고 자주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었다.
마이클 샌델은 미국 최고 대학 중 하나인 하버드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친다. 강의는 테드(TED·미국 비영리재단에서 운영하는 강연회)에 공개됐기에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최근 <공동선의 종말>이란 책을 냈다.
이 책이 미국 대선 운동 기간 막판에 출판된 것은 이유가 있다. 책은 당연히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를 다룬다. 이에 더해 트럼프 전임인 버락 오바마와 먼저 대선에서 맞붙었던 힐러리 클린턴, 그의 남편이자 전 대통령인 빌 클린턴도 다룬다.
샌델은 미국 사회 분열과 더불어 독일을 포함한 다른 국가에서 나타나는 사회 분열을 누가 초래했는지 책에서 보여준다. 그의 비판 중심에는 트럼프가 있지 않다. 샌델은 자유주의 세력에 비판의 날을 세운다. 미국에서는 민주주의자를, 유럽에서는 사회민주주의자를 대상으로 한다.

왜 자유주의 세력에 비판의 날을 세우나
독자들은 쉴 새 없이 같은 이야기를 하는 책이 출판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이들 책은 모두 트럼프는 위험하다, 트럼프는 바보다, 트럼프가 잘못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당신은 신작에서 트럼프의 적인 민주주의자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들이 미국 사회가 겪는 비참함에 책임져야 한다고 했는데, 음… 이건 좀 놀라운 얘기다.
확실하게 말해두겠다. 내 책은 트럼프가 미국 사회와 정치에 초래한 해악을 두둔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는 인종 사이의 긴장을 더욱 증폭했다. 그가 취임할 때 이미 사회 안에 존재하던 분열을 더욱 심화했다. 나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어떻게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등이 포진한 민주당이 만들어놓았는지를 보여주려 했다.
당신은 민주당이 ‘성공의 윤리’를 정착시킴으로써 지난번 선거 유권자들이 적대감을 느꼈다는 논지를 펼쳤다. 그런 유권자에는 노동자가 포함돼 있었다. 그렇다면 성과 중심 생각에 반대해서 적용할 수 있는 생각은 무엇인가. 이에 담긴 메시지인 ‘네가 원한다면 해낼 수 있다’는 것은 미국이 항상 하는 약속이었다.
민주당원들이 좋은 의도로 이 약속을 반복해서 이야기한 것은 사실이다. 세계화로 심화한 불공평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줬다. 그들은 대학 교육을 신분 상승 수단으로 확고하게 만들었다. 이는 인구 절반을 소외시켰다. 그사이 우리는 최고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더 나은 학점을 얻기 위해 가차 없는 경쟁에 내몰렸다. 유행처럼 부모는 아이를 과잉보호하기 시작했다. 자식이 상승의 끈을 잃어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인간이 운명을 자기 손에 쥐고 있다는 생각은 고무적이었다. 하지만 성취하지 못한 이는 병이 들었다. 트럼프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엘리트에 대한 이런 생각을 오직 민주당에 책임 지울 수는 없을 텐데.
그렇다. 전환점은 이미 저 먼 과거에 있었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이고 마거릿 대처가 영국 총리였을 때, 자유시장과 세계화가 촉진됐다. 1990년대가 되면서 미국엔 빌 클린턴이, 영국엔 토니 블레어가 각각 대통령과 총리가 되었다. 독일에선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총리를 맡았다. 모든 지도자가 중도좌파 정당 소속이었다. 그들은 보수파인 전임자의 신념을 받아들였다. 공공선을 뒷받침할 돈을 만들어내는 데 시장 메커니즘이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시장에 대한 그들의 신념은 레이건이나 대처보다는 약했다. 그들은 시장에서 뒤처진 이들을 붙들기 위한 안전장치를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어쨌든 시장에 대한 신념 자체에는 반문하지 않았다.

   
▲ 샌델 교수는 하버드대학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철학 강의로 명성을 얻고 있다. 2018년 10월 스페인에서 강연하는 모습. REUTERS

겸손함 잃은 민주당의 엘리트 정치
그들이 어떻게 했어야 할까.
더 많은 겸손함을 보였어야 한다. 힐러리가 개탄스럽다고 한 말을 생각해봐라. 지난번 선거에서 힐러리는 트럼프를 선택한 유권자를 이렇게 지칭했다. 이 말은 교육을 덜 받은 사람을 향한 거만함을 드러낸다. 오바마는 이런 사람에게 “무기와 종교에 집착하는 이들”이라고 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사회적 상승이 성과와 업적에 근거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약속을 지킬 수 없다. 하버드대학에 들어가려면 당연히 어려운 시험을 거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 아동기와 청소년기 전체를 하키를 배우고 피아노 레슨을 받고 어학 코스에 가는 데 바치면서 하버드대학에 갈 준비를 하려면 부모가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어떤 부모는 이런 투자를 감당할 능력이 전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뛰어난 성취는 가정 배경에 강하게 영향받는 것이다. 약간의 행운이 필요하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더욱 겸손해져야 하고, 우리보다 운이 좋지 않은 사람의 처지가 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었다. 그는 주로 백인 엘리트에게 쏟아질 이런 비난을 거부했을 것 같다.
그도 자기만의 논지를 펼쳤을 것이다. 오바마와 빌 클린턴은 다음과 같이 말할 듯싶다. 우리는 노동자가 공공 건강보험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반대했다. 우리는 아동 돌봄을 더 많이 제공하려 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반대했다. 우리는 중산층에 이득이 되는 세금정책을 도입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공화당은 백만장자나 억만장자가 낼 세금을 줄였다. 그렇다면 이제 사람들은 클린턴과 오바마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그래요, 그런데 왜 트럼프가 선거에서 이겼지요?” 트럼프가 승리했을 때, 민주당원들은 충격받았다. 그들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지지자들의 끔찍한 행태가 정당한 불만에 근거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 지지자에겐 월급이나 일자리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었다. 민주당이 그들에 대한 존중을 보이지 않았기에, 도덕적이고 문화적인 의미에서 모욕을 느꼈던 것이다.
엘리트에게 무시당했기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역겹게 느꼈다면, 흑인이 나라의 수장이 되고 힐러리가 여성으로서 거의 수장이 될 뻔했다는 데 특히 기분이 나빴을까.
인종주의와 성차별이 확실히 역할을 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여성에게 적대적인 발언을 하고 인종차별이 담긴 말을 공공연하게 한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된다. 오바마가 두 번 선거에 이겼다는 것과 오바마 지지자들이 트럼프 지지자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성차별은 힐러리가 지는 데 한 원인이었지만, 노동자를 무시하는 성과 위주 엘리트 의식과도 연결돼 있다. 트럼프에게서 사람들은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다.

   
▲ 샌델 교수가 2018년 10월 스페인 국왕에게서 철학 강의 공로로 상을 받고 있다. REUTERS

교육수준에 따라 정치적 지지 갈려
민주당원들은 왜 엘리트가 오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민주당은 과거엔 특권층이 아니라 농부와 노동자들 편에 서 있었다. 힐러리가 대통령 후보 시기를 회고했을 때, 그는 미국 국내총생산의 3분의 2가 생기는 지역에서 이겼다고 자랑했다. 선거 연구 결과를 보면 트럼프 지지는 소득이 아니라 교육수준에서 가장 잘 예견할 수 있었음을 증명했다. 비슷한 소득을 가진 유권자 가운데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이 힐러리를,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이 트럼프를 뽑았다.
오바마도 한때 오만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에겐 분열을 극복하려는 고귀한 마음, 소망, 능력이 있었다. 당신도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시 장례식에서 오바마가 한 추모 연설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 흑인 교회 교인 9명이 성경 공부 시간에 총을 맞아 희생됐다. 오바마는 친지들과 슬픔을 나누고, 그 자리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미국의 대표 찬송가)를 불렀다.
내가 사는 동안 어떤 정계 인물도 인종차별에 반대해 그렇게 명확한 이야기를 전달한 적이 없다. 나는 오바마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긍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영감을 주는 지도자인 것은 맞으니까. 2008년 취임했을 때 오바마는 도덕적이고 문명화된 희망을 일깨웠다. 미국인이 오랫동안 알지 못했던 개념이다. 하지만 2008년은 금융위기의 정점이기도 했다. 경제문제에서 오바마는 세계화의 신자유주의 형식을 받아들였다. 그는 금융업계를 개혁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은행의 무책임한 행동에 책임을 묻지 않고 그냥 구제했다. 살던 집을 잃은 서민들을 위해서는 별로 일하지 않았다. 금융구제안에 대해 쌓여왔던 분노는 시위의 정치로 나타났다. 좌파에선 월가 점거 시위가 일어났고, 버니 샌더스가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 우파에선 티파티(Tea-Party·미국의 조세저항 운동으로, 특정 정당이 없는 형태로 정치적으론 보수 성향을 띠어 ‘극우 반정부 운동’을 뜻하기도 한다) 운동과 트럼프 당선을 초래했다.
당신은 하버드대학 교수이자 엘리트의 일부다.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엘리트와 성과 위주 사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글을 쓴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잘 알기 때문이다. 지나친 경쟁이 학생에게 미치는 부정적 결과를 직접 보았다. 학생들은 이미 고등학교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짓눌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 뒤 대학에 오는 것이다. 독일 상황은 다르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미국 엘리트 대학생은 성과에 목숨을 거는 데 익숙하다. 그들은 그런 생각에 거리를 두는 것이 중요한데도 그렇게 하는 걸 어려워한다. 경쟁 의식에서 벗어나는 걸 힘들어한다. 성과주의 횡포는 경쟁에서 뒤떨어졌던 사람만 상처 입히는 것이 아니다. 기대를 충족했던 사람도 망친다.
‘횡포’는 매우 강한 단어다.
100곳 넘는 미국 고등교육기관에서 학생 6만7천 명의 정신건강을 연구한 최신 결과가 보여주는 수치가 있다. 이 연구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사람에게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초래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연구는 5명 중 1명의 학생이 자살을 생각했다고 밝혔다. 20~24살 청년층 자살률은 2000년과 2017년 사이 36% 늘었다.
2020년 11월3일 미국 대통령 선거까지 몇 주 남지 않았다. 트럼프나 그의 경쟁자인 조 바이든이 이길 경우, 정계에는 어떤 숙제가 남을까.
트럼프가 이긴다면 트럼프의 공격에 맞서 민주주의의 규범과 제도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가 정치권에 숙제가 될 것이다. 바이든이 승리한다면 사회의 깊은 분열을 극복하고 어떻게 공공선의 새로운 의미를 일깨울지 찾아내는 일이 숙제가 될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 결속이 사라진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분열을 치유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원인에 관해 토론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가 공공선의 정치를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생각해야 한다.

   
▲ 샌델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는 하버드대학에서 가장 많이 듣는 강좌로 수만 명의 학생이 들었다. REUTERS

부모의 모범이 아이들에게 겸손을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하지만 연대와 공동체 의식은 정치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겸손함도 그렇고.
겸손함은 경험에서 만들어진다. 부모가 아이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 말이다. 겸손함은 학교가 성공에 대해 가르치는 것에 내재한 교훈에서도 형성된다. 인지적 성취에 성적을 매겨야 할까, 아니면 사회적 능력을 길러주고 보상을 줘야 할까. 다양한 사회계층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적인 공간을 만들어갈까, 아니면 우리만의 보호구역 안으로 다시 돌아갈까. 학교에 차로 아이들을 직접 데리러 갈까, 아니면 다양한 계층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버스를 타게 할까. 성공했을 때 단지 가정환경이나 생활수준 면에서 운이 좋았다는 것을 스스로 알도록 가르칠 수는 없을까.
감염병이 사람들이 약하다는 걸 드러나게 했다. 당신은 학생 사이에서 새로운 연대감을 발견하는가.
개인화된 사회에서 연대감을 발전시키는 일은 어렵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벌써 더 나은 복지제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말한 방향에 내가 조금 힌트를 줄 수 있겠다. 최근 나는 온라인으로 한 그룹의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감염병이 유행하는 시기에, 록다운(이동제한) 원칙을 택할지, 스웨덴 같은 집단면역 방식을 택할지 말이다. 집단면역의 경우 경제를 지키려면 정부가 대규모 감염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놀랍게도 대다수 학생이 집단면역 방식에 반대했다. 그들의 논지는 이랬다. 병약하거나 나이 든 사람,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이 매우 위험해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어떤 답이 있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연대감을 위해서는 적어도 학생들이 만날 수는 있어야 할 테니까. 하지만 그들은 전세계에서 화면을 통해 연결될 뿐이다.

ⓒ Der Supigel 2020년 제39호
Tyrannei der Leistung
번역 이상익 위원

주잔 바우어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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