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불안정한 2020년대 ‘부채 리셋’ 절실

기사승인 [129호] 2021.01.01  

공유
default_news_ad1

- [FINANCE] 코로나 경제위기의 교훈

윤석천 경제평론가

   
▲ 2020년 12월8일 미국 뉴욕주 브루클린의 목욕용품점 배스앤드보디웍스에 들어가기 위해 손님들이 간격을 두고 줄 서 있다. 미국에선 하루 코로나19 확진자 20만명, 사망자 3천 명을 넘어섰다. REUTERS

2020년 2분기, 세계 각국이 받아든 경제 성적표는 참담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침체는 깊어졌다. 화들짝 놀라 봉쇄와 제한에 들어갔던 유럽과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2분기 말에야 봉쇄와 제한을 풀기 시작했다. 이때 각국의 경제 상황에선 4개 시나리오가 가능했다. △바이러스가 수그러들면서 경제가 좋아져 2019년 수준으로 반등하는 것 △바이러스는 수그러들지만 경제는 심각한 침체 국면으로 진입하는 것 △바이러스가 확산하지만 경제는 좋아지는 호황 국면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경제가 나빠지는 국가적 재난이다.
상당수의 경제학자와 전문가는 ‘국가적 재난’ 시나리오의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바이러스는 여름에 수그러들 것으로 기대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 퍼졌고 2분기 침체의 골이 생각보다 깊었기 때문이다. 2020년 경제적 파국은 너무 분명해 보였다. 2분기 말까진 그랬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바이러스는 3분기와 4분기를 거치며 세계를 더욱 거칠게 할퀴고 있다. 그럼에도 주요국에선 미약하나마 경제가 회복세를 보인다. 적어도 파국으로 치닫진 않고 있다.
경제 수축 정도는 심각하지만 2분기 성적에 비하면 양호한 흐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0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보면, 9월보다 12월 전망치가 주요국에서 나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이 기관의 세계 전체 성장률 전망치도 9월 –4.5%에서 12월 전망 –4.2%로 0.3%포인트 개선됐다.
많은 사람이 생각했던 재앙적 파괴나 파국은 일어나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퍼질수록 경제가 더 악화할 것이라는 예상과 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바이러스는 전보다 더 기승을 부리지만 경제는 더 이상 수축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상은 ‘타이밍’의 문제일 수 있다. 주요국이 몰려 있는 북반구의 3분기는 비교적 온화한 날씨를 보인다. 이것이 일시적으로 경제에 도움을 줬을 수 있다.
겨울로 접어들수록 경제가 더욱 휘청거릴 수 있다. 그렇지만 경제가 최악으로 빠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경제가 붕괴되지 않을 거라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가설이지만 들어맞을 확률이 높다.

   
▲ 2020년 1월14일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이 다보스포럼 50주년 행사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REUTERS

‘코로나 공황’ 막은 돈
2020년 초, 코로나19가 퍼지자 각국은 허둥지둥했다.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했던 주요국은 깜짝 놀라 무차별적 봉쇄에 들어갔지만 전대미문의 바이러스에 대한 경험 미비로 대응에 실패했다. 결과는 최악의 경제 성적표였다. 바이러스에 대한 본격적 대응은 2분기 말 이후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바이러스 대응에 성공한 나라는 몇 개국뿐이다.
바이러스 확산과 경제는 명확한 부의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둘의 상관관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바이러스가 더욱 기승을 부리지만 경제는 미약한 성장세를 보인다. 모순이지만 현실이 그렇다.
왜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돈의 힘’이 매우 강력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 위기에 맞서 각국은 경기부양책을 통해 천문학적인 돈을 뿌렸다. 독일은 2008년 금융위기 액수의 10배 정도, 미국은 4배 정도를 투입했다. 무엇보다 금기시되던 취약계층과 중소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이 이뤄졌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신흥국도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시행했다.
돈의 힘은 컸다.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음에도 최소한의 구매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소비가 붕괴하지 않아 공황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돈은 경제적 재앙을 막아냈다. 적어도 2020년 12월 현재까지는 그렇다. 미국은 2019년 국내총생산(GDP)의 12.1%를 경기부양으로 투입했다. 이로써 미국의 GDP는 연간 기준으로 2분기 -31.4%에서 3분기 33.1%로 급반등할 수 있었다. 돈은 침체의 그림자를 엷게 했다.
다른 요인도 있다. 가장 설득력 높은 가설은 ‘현재 세계가 놓인 조건이 1·2분기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경제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이미 파괴됐다. 기초체력이 약한 상점과 기업은 폐업 또는 파산했다. 현재 영업하는 기업들은 기초체력이 강하거나 의외의 호황을 맞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1·2분기 같은 침체는 더는 일어나지 않으리란 가설이 충분히 합리적이다.
여전히 많은 기업과 사람이 곤경에 처해 있기는 하지만 이들도 이미 코로나 시대에 적응하는 내성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많은 기업이 셧다운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웠다. 온라인으로 일하는 방법을 학습했고 비용과 재고를 줄였다. 앞으로 추가적인 셧다운 상황이 발생해도 그것이 더는 과거처럼 파괴적일 수 없는 이유다.
재앙을 막은 또 다른 요소도 있다. 팬데믹이 모든 사람, 기업에 동일한 방식으로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팬데믹 상황이 역으로 호재로 작용한 부문도 있다. 바이오헬스와 디지털 분야가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은 재난 상황에서도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다. 동시에 여전히 상황이 좋은 사람도 많다.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전문직 고임금 노동자들은 소득 감소를 겪지 않았다.
회복은 ‘K’자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개인 소득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에선 가계 유동성이 최하 소득 분위에서도 개선됐다. 정부의 각종 지원 프로그램이 한몫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아닌 일부만 쓰러진 것이다. 전체적으로 소비는 줄었지만, 여유 있는 사람들은 소비 방향을 틀었을 뿐 유의미하게 소비를 줄인 것이 아니다. 여행과 오락에 쓰던 돈을 다른 아이템을 사는 데 쓰고 있을 뿐이다. 이들의 소비가 향하는 곳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인다. 한국에선 골프장이 호황을 보이는 게 대표적인 예다.
미국에선 12월14일 기준으로, 코로나19 사망자가 30만 명을 넘어섰다. 누적 확진자는 1640만 명을 돌파했다. 몇 달 전만 해도 이런 사실이 국민적 분노를 촉발하리라고 나는 예상했다. 그런데 의외로 조용하다. 셧다운(폐쇄)과 록다운(이동제한)에 반대하거나 과중한 의료 부담을 줄이라는 시위는 종종 벌어지지만, 정부의 무능력을 성토하는 목소리는 생각보다 작다.
대신, 대부분 미국인은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높은 사망률에도 잘 견뎌내고 있다. 자신이 죽을지, 주변의 친지나 가족이 사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삶을 영위해나간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인간 뇌는 대규모 사망에 무감각하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많은 사람이 사망할수록 주의를 덜 기울인다는 것이다. 하긴 대규모 살상이 벌어지는 전쟁 와중에도 심리적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사람이 적은 걸 보면 이해가 간다.
어쨌든 이런 대중 심리가 정치적 불안정이나 혼란을 촉발하고 있지는 않다. 이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경제 안정에 도움이 된다.

그레이트 리셋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 백신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는 2021년 하반기에는 모든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까? 세계경제포럼(WEF) 회장 클라우스 슈바프는 공개적으로 ‘자본주의 리셋’을 언급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록다운은 점차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세계의 사회·경제 전망에 대한 우려는 증폭될 것이다. 급격한 경제 하강이 이미 시작됐고 우리는 1930년대 이래 가장 최악의 공황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나은 결과를 도출하려면 세계는 사회, 경제, 교육, 사회계약, 노동조건 등 모든 측면을 빠르게 연합해 개조해야 한다. 미국부터 중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가가 참여해야 하며, 오일에서 기술 산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산업이 바뀌어야 한다. 자본주의 ‘그레이트 리셋’(Great Reset)이 필요하다.”
슈바프 회장은 합의에 따른 리셋을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가 원하는 질서 있는 리셋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리셋이란 기본적으로 불안정을 기초로 가능한 개념이다.
역사는 안정과 불안정이 반복되는 주기를 명확히 보여준다. 미국에선 50년 주기의 사이클이 존재한다. 1870년, 1920년, 1970년이 대표적인 불안정 시대였다. 이 주기 이론에 따르면 2020년이 불안정 시대가 된다. 불안정한 2020년대가 온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부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는 부채의 둑을 쌓아 위기의 파고를 막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위기로 그 둑은 더욱 높아졌다. 과연 언제까지 둑을 높일 수 있을까?
인류는 코로나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다. 우린 새로운 세계에 적응할 것이다. 그에 따라 경제는 파국이 아닌 회복세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로 증폭된 부채 급증, 빈부 격차 심화는 언젠가 심각한 정치 불안정을 유발할 것이다. 세계는, 자본주의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시 말해 어떤 식이든 리셋 버튼을 눌러야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 특히 부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불안정을 피할 수는 없다. 안정은 불안정을 극복해야만 가능하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1월호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저작권자 © 이코노미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