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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탄소 지원까지는 먼 길 지출항목 환경평가에 의미

기사승인 [129호] 202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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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VIRONMENT] 프랑스 녹색예산의 허실

앙투안 드 라비냥 Antoine de Ravignan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2019년 5월14일 파리협정 실행을 위한 유럽 35개국 비공식 각료회의가 열린 독일 베를린의 회담장 부근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환경단체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대형 얼음으로 ‘마지막 출구’라는 문구를 만들어놓고 시위를 벌였다. REUTERS

“앞으로 모든 경제정책은 친환경 전환 과제로 간주할 것이다.” 2020년 9월28일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경제장관이 2021년 예산안을 발표하며 한 말이다. 일단 경기부양이 우선이다. 그러면서도 프랑스가 “탈탄소 선진국”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이런 2021년 정부 예산안을, 르메르 장관은 “프랑스의 첫 녹색예산”이라고 소개했다.

환경에 무해?
녹색예산? 이름만 보면 국가재정 하나하나가 환경을 위해 모이고 쓰일 것처럼 보인다. 물론 착각이다. 항공업계를 살리겠다고 내놓은 조처 말고도 녹색예산과 거리가 먼 지출계획이 수두룩하다. 정부가 만든 신조어 녹색예산은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 환경평가를 거친 정부지출이다. 정부지출이 환경에 이로운지(녹색예산), 해로운지(갈색예산), 이롭지도 해롭지도 않은(중립)지 분류만 하는 것이다.
의회는 녹색예산을 반기는 눈치다. 정부 예산안이 친환경 기준과 목표에 부합하는지 심의하고 의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사실. 그렇게 ‘환경 프리즘’을 통과한 정부 예산안이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와 함께 의회에 제출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려는 걸까. 프랑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이 2017년 12월 ‘원 플래닛 서밋’에서 한 약속이 있다. 국가 재정정책을 파리기후변화협정(파리협정)에서 정한 목표 수준에 맞추겠다고 한 것이다. 급한 약속이지만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가야 할 거리부터 재보자.
2019년 9월 재정감사국(IGF)과 환경·지속가능개발 일반위원회(CGEDD)는 공동으로 작성한 보고서에서 환경을 고려한 예산 편성 방안을 제시했다. 프랑스 경제연구소 아이포시이(I4CE) 연구원 마리옹 프테와 세바스티앙 포스틱은 “이 방안이 전환점”이라며 “환경에 이로운 정부지출을 생각하고 각 부처의 환경영향평가 범위를 확대하는 등 (정부 예산안에서) 여러 진전이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프랑스만 국가 재정의 환경영향을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부의 선택이 다른 나라와 사뭇 다르다. 하나는 평가 방법이다. 환경에 해로운 정책도 빠짐없이 기록했다. 단순히 기후변화 정책 여부만 가르지 않고 생물다양성, 오염, 수자원 관리 등 평가 기준을 세분화하기도 했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선택이다.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예산안 심의 대상에 포함한 것이다.

기준 바꿔치기
2021년 예산안에 담긴 총지출액은 4800억유로(약 650조원)다. 환경 프리즘을 거친 결과는 어떨까. 환경에 이로운(환경에 이롭다고 평가받은 항목이 하나 이상이면서 해롭다는 항목이 없는) 지출은 380억유로, 전체의 8%다. 환경에 해로운(해롭다는 항목이 하나 이상이면서 이롭다는 항목이 없는) 지출은 100억유로, 전체의 2%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90%는 중립적 지출이다.
2021년 예산안에서 환경에 해롭기만 한 지출 대부분은 유류세에서 생긴다. 교통·농업·산업에서 부담하는 유류비를 덜어주는 정책 비용이다. IGF-CGEDD가 2019년 정부 총지출에서 일부(전체 4400억유로 가운데 3400억유로)만 가지고 환경영향평가를 시범 진행했을 때도 환경에 해로운 지출은 200억유로에 이르렀다. 전체의 6%다.
이런 지출이 2021년 예산안에서 100억유로나 줄어든 것은 정부가 갈색예산을 쓰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 아니다. 바뀐 것은 바로미터(기준)다. IGF-CGEDD와 달리 경제부는 항공유에 부과하는 세금을 면제해주는 정책이나, 경유와 휘발유의 유류세율에 차이를 둔 정책을 환경영향평가 대상에서 빼버렸다.
구멍은 군데군데 더 있다. 프테와 포스틱은 정부와 군이 원유 조달에 쓰는 비용 역시 평가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중립으로 평가받은 지출의 90%가 사실은 중립과 거리가 멀다. 경기부양 차원에서 하는 자동차·항공업계 지원이 대표적이다.
환경에 이로운 것으로 분류하는 방법도 문제다. IGF-CGEDD 보고서는 현 정책을 어떤 방식으로든 개선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환경에 이로운 지출로 분류했다. 실제 자연환경을 국가 환경목표에 맞게 개선하는 정책이 아니다. 저공해차, 이를테면 경유차에서 휘발유차로 바꿀 때 주는 보조금 제도가 그렇다. 이 예산은 2020년 6억유로에서 2021년 130억유로로 늘었다.
그 성과가 얼마나 빈약했는지 아이포시이 연구원 캉탱 페리에가 되짚었다. “예전 유럽 표준 자동차 배출가스 측정시험(NEDC)에서 2018년 프랑스 자동차의 평균 배출가스양은 1㎞당 112g이었다. 저공해차라고 보조금을 준 자동차는 106g이었다. 차이가 미미했다. 새 시험법(WLTP)에서 배출가스양 한계선이 137g으로 정해진 만큼, 매연을 많이 내뿜는 자동차로 바꿔도 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참고로 독일은 전기·하이브리드차에만 저공해차 보조금을 지원한다.
결론. “정부는 지출계획이 파리협정 등 국가가 내건 공약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평가하는 도구로 녹색예산을 소개했다. 조금 성급하고 허술했다. 국가환경전략과 거리가 먼 정책이 아주 조금 개선되리라는 이유로 친환경 정책으로 둔갑했다.”(캉탱 페리에) 그래서 불확실하다. 의회가 정부 예산안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데 녹색예산이 쓸모 있을지 의문이다.
멘에루아르주 선출 하원의원이자 의회 내 ‘환경·민주주의·연대 그룹’(10월 중순 해산) 대표였던 마티외 오르플랭은 말했다. “반겨야 할 변화다. 하지만 개선해야 할 점도 있다. 현재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그것만 가지고 예산안을 통과시키기 어렵다. 의회가 기대하는 건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 환경목표에 닿으려면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거리를 측정한 결과다.”

   
▲ 2020년 9월28일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경제장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프랑스의 첫 녹색예산”이라고 이름 붙인 2021년 예산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REUTERS

세 가지 한계
2021년 예산안이 갈 길은 한참 남았다. ‘앞으로 모든 경제정책이 친환경 전환 과제’가 되려면 말이다. 그 문제점을 세 가지만 짚어보자. 첫째, 정부는 환경(또는 사회적) 조건 하나 안 내걸고 기업 생산세를 낮춰주겠다고 했다.
이것으로 2021년 세수 결손이 100억유로나 생긴다. 100억유로는 정부가 경기부양 명목으로 배정한 (세출예산 220억유로를 포함해) 예산의 3분의 1이다. 프랑스 경제연구소(OFCE)의 환경경제학자 폴 말리예는 “기업이 면세 혜택으로 아낀 돈을 탈탄소화에 쓸지 의문”이라며 “화석연료 가격이 지금같이 낮을 때는 그 가능성이 더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친환경 전환 예산 가운데 실제 얼마나 쓰일지, 친환경 전환 정책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페리에는 말했다. “정부가 2022년까지 경기부양에 1천억유로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 180억유로, 즉 매년 90억유로가 기후 예산으로 편성됐다. 단기간에 필요한 재정 수준에 맞췄다고는 한다. 하지만 이미 다른 곳에 쓴 돈이나 2022년까지 못 쓰는 돈도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
철도산업에 배정된 예산 47억유로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프랑스 국영철도회사(SNCF) 빚을 대신 갚아주는 데 47억유로 가운데서 얼마나 썼는지 모른다. 루터대학 소속 기후 컨설턴트 피에르 질베르 역시 정부의 재정계획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경기부양 명목으로 돈줄을 활짝 열어놨다. 그렇게 서두르다 돈을 비효율적으로 쓴다. 그러다 돈줄을 갑자기 죈다. 저탄소 전환은 장기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좋은 예시가 민간주택 에너지 효율을 개선할 때 주는 보조금이다. 정부는 이 정책에 필요한 예산을 지금보다 두 배 늘려 10억유로를 더 쓰겠다고 했다(그래봤자 마크롱 정부 임기 초기 잘려나간 예산을 되찾는 정도다). 하지만 2022년이 지나서도 같은 수준으로 유지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프랑스 기후시민협의회가 제안한 대로 2040년까지 에너지 저효율 민간주택으로 모두 개선하려면 적어도 그 정도 예산이 필요하다. 이 사업에 국가재정이 매년 약 100억유로까지 들 수 있다. 결정적으로 재정수입을 올리는 방안을 찾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에너지 전환에 공공이나 민간 투자도 늘어나기 어렵다. 에너지전환 성패는 그에 돈을 얼마나 쓰는지에 달렸다.
기후시민협의회는 정부에 재정수입을 늘리라고 권고했다. 항공권·주식배당금·질소비료에 부과하는 세금을 올리면 된다고 했지만, 정부는 손을 내저었다. 다른 여러 권고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항공유, 자동차·공업용 휘발유 같은 화석에너지에 대한 감세 혜택을 다시 뺏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이 제도로 코로나19 위기 이전에 이미 정부는 매년 70억유로 넘는 세수를 잃었다. 탈탄소 경제에 쓸 수 있는 돈이었다. 의회가 심의를 마친 뒤 2021년 예산이 무슨 색일지 지켜보자. 갈색이 짙어질까. 녹색이 (조금) 짙어질까.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0년 11월호(제406호)
Quand la France verdit son budget
번역 최혜민 위원

앙투안 드 라비냥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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