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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회계약으로 공정한 고통분담

기사승인 [129호] 202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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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2021 한국경제 3대 키워드- ③ 불평등

전병유 한신대 교수·경제학

   
▲ 2020년 6월 코로나19로 수입이 크게 줄어든 영세 자영업자와 무급 휴직자, 프리랜서 등이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방문해 긴급고용안정 지원금을 신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2차 대유행(팬데믹)에도 백신 개발은 낙관적 경제 전망을 낳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0년 하반기와 2021년 성장률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이른바 기저효과로 한국은 3%대, 미국도 4%대 성장을 예측한다. 그러나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 영국 <이코노미스트> 등 유력 경제지들조차 2021년 경기회복을 U나 V가 아닌 K자형으로 내다본다. 팬데믹이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자산의 승리, 노동의 패배’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생산시장의 기업 간 격차, 노동시장의 일자리 간 격차, 여기에 자산시장과 실물경제의 괴리 등이 맞물려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불평등은 확대될 전망이다.

불평등 심화 메커니즘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의 위축, 즉 경기침체는 저소득층 일자리를 줄이고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계를 어렵게 했다. 일반적으로 매우 높은 경제성장률이나 위기로 극심한 경기침체는 둘 다 불평등을 심화한다고 한다.
노동시장에서 코로나19가 초래한 고용 충격의 차별성도 불평등을 가속하는 주요 메커니즘이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전문직 종사자와 대면서비스가 불가피한 저학력·저소득 노동자가 받는 코로나19 충격은 현저하게 다르다. 가장 취약한 계층을 대상으로 정교하게 설계된 지원책을 유지·발전시키지 않으면 코로나19 탓에 일시적으로 커진 불평등이 장기적으로 구조화할 우려가 있다.
또 다른 불평등 심화 메커니즘은 자산가격 상승과 자산소득 증가다. 최근 위기 상황에도 고임금·고학력자들의 저축은 오히려 크게 늘었다. 그들이 투자한 부동산과 주식 자산의 가격은 세계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확장적 통화·재정 정책에 따른 통화량 팽창, 낮은 이자율에 따른 자산 가치 재평가, 소비 감소로 늘어난 저축 등이 모두 자산가격 상승으로 귀결된다.
증권사를 비롯한 금융기관들은 2020년 엄청난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보통 소득보다 자산의 불평등이 불공정에 더 가깝고, 현실의 불평등을 더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한다. 자산 빈곤 계층은 낮은 노동소득에서 탈출하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 자산세위원회가 일회성의 ‘코로나 재산세’를 제안한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이면에선 역설적으로 새로운 기회가 창출되고 있다. 모든 위기는 기회를 낳는다. 특히 코로나19는 기업과 개인의 행태를 크게 바꿔놓았다. 일하고 소비하는 방식과 장소가 크게 달라졌다. 그동안 레토릭(수사)에 그쳤던 재택근무가 2020년에는 많은 노동자의 일상 경험이 되고 있다.
기업과 개인의 행태가 변한다는 건 새로운 기회가 생기고 기존 사업이 도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3개월 만에 호텔 수요는 63% 줄었지만, 정보통신기술(ICT) 수요는 그만큼 늘었다. 세계경제포럼 조사에서는 응답 기업의 80%가 디지털화 촉진, 50%가 자동화 추진, 43%가 노동력 감축 의사를 밝혔다. ICT 산업과 비대면 산업이 코로나 사태에서 승자인 것이다.
이런 변화와 기회에 대응해 최근 창업과 기업공개(IPO) 시장도 전례 없이 뜨겁다. 한국에서 창업자 수는 최근 6년 사이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창업 활성화는 통화량과 저축의 증가, 자산가격 상승에서 비롯한 거품의 성격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뒤바꿔놓은 시장의 흐름, 디지털뉴딜과 그린뉴딜 등 새로운 시장의 형성도 기여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K-경제회복’의 키워드는 불평등과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국가와 사회가 대응해야 할 핵심 과제는 코로나19가 남겨둔 부담과 비용을 공정하게 나누고, 코로나19가 제공하는 새로운 기회를 공평하게 나눠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은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정책 목표에 경제적 불평등 완화를 추가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심지어 기업가 모임인 세계경제포럼도 코로나 이후엔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계층 간 이동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을 재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변화가 큰 시기에는 사회적 이동의 공정성이 담보돼야 사회가 역동적으로 진보할 수 있다. 사회적 이동성에는 자산과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코로나19 사태에서 발생한 자산가격 상승은 부담과 비용 관점에서도 공정하지 않다. 원격수업 과정에서 발생한 교육의 불평등 또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교육 격차가 구조화되지 않도록 하는 정책적 접근을 요구한다.

‘K-경제회복’ 모델
코로나19 대응 정책에 성적을 매기기는 아직 이르지만 현재까지 코로나19 상황과 기존 제도, 관행 등에 따라 국가별로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19 차단에 성공한 중국은 사회안전망을 통한 가계소득 보장보다는 기업과 인프라(사회기반시설) 투자에 집중하는 기존 하이테크 국가자본주의 모델을 강화했다.
유럽은 노동시간 단축과 일시휴직에 대한 정부 지원을 통해 기존 일자리를 보호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량실업 방지에는 성공했지만 상대적으로 경제회복 속도는 더딘 편이다. 대량실업을 용인하면서도 실업자에게 관대한 소득 보장으로 대응한 미국에서는 새 영역에서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한다. 한국은 방역과 경제의 균형을 달성해 전반적으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1년은 코로나19 탈출을 위한 전략뿐 아니라 경제회복을 위한 정책의 국가 간 경쟁이 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조건과 사정에 맞는 포스트 코로나 K-경제회복 모델을 만드는 것이 우리 과제다.
불평등을 완화하고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려면 일차적으로 빠른 경기회복이 필요하다. 단기적인 수요 충격이라도 그 규모가 매우 크면 장기적으로 공급 변화를 초래한다. 이른바 ‘상처효과’(Scar Effects)와 ‘이력효과’(Hysteresis Effects)다. 충격이 너무 깊고 길어지면 고용과 생산성이 원래 상태로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빠른 경기회복의 일차적 조건은 백신을 신속히 확보해 팬데믹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 조건이 충족된 상태에서 정부 주도의 적극적인 거시경제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미국 연준은 평균인플레이션목표제(AIT), 즉 2% 이상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더라도 고용을 더 중시해 확장적 통화정책을 가져가겠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곧 출범할 조 바이든 정부의 초대 재무장관 내정자인 재닛 옐런도 ‘수요 위축이 크거나 지속돼 이력효과 현상이 나타날 경우 수요를 잠재 수준보다 더 강하게 자극하는 정책이 단기적으로 필요하다’는 고압경제론(High-pressure Economy)을 제시한 바 있다. 폴 크루그먼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돈의 출처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미래에 대해 더 많이 투자할 것”을 바이든 정부에 거듭 권고했다.
한국도 2020년 네 차례 시행된 추가경정예산(약 67조원, GDP의 약 3.5%)으로 국가채무 비율이 2020년 43.5%로 올라가긴 했지만 성장률을 0.5%포인트 정도 높인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부채는 이자로 갚는 게 아니라 경제성장으로 갚는 것이다. 성장과 회복으로 재정 적자를 감당하는 구조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국가 재정과 경제 운영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전제다.
위기는 정상 경제에선 이루기 어려운 새로운 균형으로 이동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새 균형으로 가는 과정에선 승자와 패자가 갈리기에 위험이 매우 크다. 여기서 국가는 위험과 불안, 불확실성을 낮춰주는 구실을 해야 한다. 사회안전망과 재분배도 국가의 보험 기능으로 볼 수 있다. 신사업 도전이 실패했을 때 보호해주는 ‘보험국가’ 기능이 요구된다.
정부와 민간의 파트너십으로 새로운 혁신 기회를 포착하고, 낙오된 산업이나 영역에 대해서는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정부가 제시한 한국판 뉴딜은 ‘포스트 코로나 경기회복’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뉴딜과 그린뉴딜에서 △민관 파트너십을 통한 기회 창출 △생태계 형성을 통한 공정한 기회 배분 △새로운 기회에 따른 위험을 낮춰주는 보험 정책 △선제적 구조조정 지원책 등의 원칙을 관철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뉴딜
위기는 새로운 경제 균형으로 전환하는 기회인 동시에 새로운 사회계약을 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위기는 사회계층 사이에 차별적인 영향을 초래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 청년 세대와 중고령 세대, 전통산업 종사자와 신산업 종사자 사이에서 코로나19의 피해와 비용 부담이 동일하지 않았다. 공정한 분담을 위해서라도 계층 간 사회계약을 새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뉴딜’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하는 보편적인 사회보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K-뉴딜 사회계약’의 시작이다. 일자리를 잃으면 ‘누구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보장받도록 하는 전국민고용보험과 아프면 쉴 수 있는 상병수당이 비정규직에게도 적용될 수 있게 사회안전망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 코로나19 사태에서 확인됐다.
현대통화이론이나 기본소득과 같이 전통적 정책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대안도 요구된다. 정책적 실험·평가의 누적과 사회적 합의를 거쳐 이런 대안을 새로운 사회계약에 포함할지 결정하는 과정이 따라야 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1월호
 

전병유 bycheon@hs.ac.kr

<저작권자 © 이코노미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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