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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병원 확대는 금지된 정책인가

기사승인 [129호] 202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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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2021 한국경제 3대 키워드- ② 코로나19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시행한 공공의료 강화 정책인 ‘오바마케어’를 복원해확대 시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REUTERS

조 바이든 시대가 눈앞에 왔다. 어떤 시대가 열릴지는 그동안 바이든의 발언과 정책 구상에서 대부분 윤곽이 나왔다.
바이든의 집권 구상에서 사회정책 핵심은 ‘오바마케어’ 부활이다. 코로나19 방역과 의료보험 개혁 약속은 바이든을 대선 승리로 이끈 동력이었다. 2010년 오바마케어로 알려진 의료보험 개혁, 즉 모든 국민이 쉽고 싸게 보험에 가입하도록 지원하는 법 시행으로 7천만 명이 넘었던 의료보험 비가입자는 2016년 4천만 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의 폐기 정책으로 무보험자는 다시 크게 늘었다. 결국 미국은 세계 코로나19 사망자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공공병원 늘어난 적 없는 한국
미국이 의료보장제도 낙후에 발목을 잡혔다면 한국은 공공병원 부족이 보건의료체계에서 최대 취약점이다. 코로나19 방역에서 생기는 부담은 물론이고 필수의료 부족, 수도권 환자 집중, 의료비 증가 등 의료 문제 대부분에 공공의료 취약이 바탕에 깔려 있다.
정부가 2020년 7월 포스트 코로나 대책으로 발표한 그린뉴딜은 한국 경제·사회 체제에 큰 영향을 줄 대형 대책이 망라돼 있다. 하지만 사회정책 분야에서 ‘휴먼뉴딜’은 너무나 미약해 보이고 포스트 코로나의 보건의료 대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2020년 12월13일 보건복지부는 새 지방의료원 9개를 신설하고 11개를 증설해 5천 개 병상을 2025년까지 확대하겠다는 ‘공공의료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해방 75년 만에 발표된 ‘전대미문 최대 규모’의 공공병원 확충 계획이었다. “설마 그럴 리가?” 하는 이가 많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한국에서 공공병원은 늘어난 적이 없다. 공공병원을 이만큼이라도 늘리겠다는 방침이 나온 것은 전적으로 코로나19 때문이다.
2020년 2월, 대구에서 대유행할 때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하루 700명을 넘었다. 대구에는 상급종합병원이 5개나 있었지만 중환자들을 수용하지 못했고 일부는 병원에도 못 가보고 사망했다. 대구에서 의료체계가 붕괴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대구의료원이라는 442개 병상의 공공병원과 신축 공사가 끝나고 개원 전이어서 비어 있던 1천 개 병상의 동산병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병상을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지방의료원도 없는 광주, 대전, 울산에서 감염병이 대유행했다면 어떠했을까. 지역 의료시스템 붕괴, 그로 인한 사회 전체의 혼란은 상상조차 어렵다.
한국의 코로나19 방역 성공 사례는 ‘케이(K)방역’이란 용어를 만들었다. 질병관리청의 방역 활동과 건강보험공단의 무료 검진과 치료가 양대 축이었다. 그러나 실제 검진과 진료를 맡은 것은 보건소와 공공병원, 특히 국립중앙의료원과 지방의료원이었다. 전체 의료기관 병상에서 10%에도 못 미치는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의 80%를 진료했다. K방역의 진짜 주역은 바로 이들이다. 국민은 평소 있는 줄도 몰랐던 보건소와 지방의료원이 국가재난 상황에서 기댈 언덕이란 것을 새삼 깨달았다.
공공병원 확대 요구는 여러 지방정부에서도 이어졌다. 부산·대전·인천·울산·세종·경남 등에서 공공병원 신설이 추진되고 서울과 성남 등에선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이미 공공병원 신설과 이전이 있었다. 성남의료원은 오랜 진통 끝에 2020년 초 개원했으나 자리를 잡기도 전에 코로나19 전담 병원 구실을 하느라 휘청거리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직영하는 일산병원은 800개 병상의 70%를 코로나19 전담 병상으로 전환해 경기 북부 병원들을 지원하고 있다. 공공병원은 오래전에 확대됐어야 했지만, 역사는 그렇지 못했다.

   
▲ 노동시민단체들이 2020년 11월 서울 여의도동 국회 앞에서 ‘코로나19 위기에 공공병원 확충예산 0원’을 비판하며 공공의료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메르스 교훈 잊지 말자”에 “닥치라”고 고함
2015년 6월25일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필자는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서 있었다. 메르스 특위 결과로 여야가 합의해 제안한 ‘감염병 예방법 개정안’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감염병에 대비한 공공병원이 영남에 하나, 호남에 하나, 국제공항이 있는 인천에 하나는 있어야 한다. 오송 질병관리본부에 연구병원 하나는 있어야 한다. 공군에 전투기 하나, 해군에 전함 하나 사주듯이 감염병 전쟁에 전투부대 몇 개 세울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 그렇지 않으면 메르스에 대해서 아무것도 배운 게 없게 된다.” 돌아온 반응은 “닥치라”는 고함뿐이었다.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이 의료보험을 도입했다. 12년 만에 한국은 전 국민 의료보장을 달성했다. 세계 사회보장 역사에 남는 신기록이자, 제3세계 국가가 빈곤을 넘어 복지국가로 가는 첫발을 딛는 기적이었다. 하지만 그 뒤 이해하기 힘든 모순이 숨어 있다.
의료보험을 도입하기 직전, 보건의료비의 공공재정 비중은 10.5%였다. 같은 시기 총병상에서 공공병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46.3%였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2018년 공공재정 비중은 59.8%, 공공병상 비중은 10.0%로 반전됐다. 이상하지 않은가?
공공재정을 늘리는 보건의료 정책을 추진하려면 당연히 공공병원도 늘려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정부, 그다음 정부도 공공의료 확대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의료보험 발전은 민간병원 확충과 동시에 진행됐다. 이 모순된 정책은 지난 40년간 의심 없이 추진됐다.
공공병원에 대한 부정적 견해에는 그럴 만한 이유도 있다.
첫째, 공공병원은 관료주의적이고 실력이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간 공공병원이 ‘버린 자식’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잘 먹지 못한 아이가 잘 뛸 수는 없다. 국립암센터,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등과 같이 충분한 지원이 있는 병원은 이용자 만족도가 매우 높다. 공공병원이 좋은 병원이 되려는 혁신적 노력은 꼭 필요하지만 공공병원의 가능성을 무조건 부정하는 견해는 맞지 않다.
둘째, 공공병원을 짓는 것은 엄청난 투자비가 들고 설립 뒤에도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게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사실을 검토해보면 어떤가? 500개 병상 규모의 공공병원을 짓는 데는 약 2500억원이 든다. 이 돈으로 고속도로를 약 5~8㎞ 깔 수 있다. 역산하면, 서울에서 대전까지 고속도로 200㎞를 까는 예산이면 공공병원 24~40개를 지을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공공병원 운영 재정은 이미 만성 적자를 벗어나고 있다. 지속적인 수가 개혁으로 공공병원 기본 운영비는 이미 건강보험제도가 보장해주고 있다. 정부는 보건사업 부분만 예산을 지원하면 된다.
공공병원 건립을 기피하는 건 정말 나라에 돈이 없어서일까? 그렇지 않다. 정부의 역할 설정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서구 국가들이 국민 건강과 복지 보장을 국가의 기본 역할로 보는 반면, 한국 정부는 이를 줄기차게 등한시했다. 토목 지원은 정부가 할 임무이지만 국민 삶을 보살피는 건 민간이 해야 할 일이라는 논리는 어떻게 성립하는 것일까?

공공병원 가치 부정하는 ‘예비타당성 조사’
공공병원을 지금의 두세 배 늘려야 하고, 시도별로 두세 곳씩 신설해야 한다. 지금 있는 공공병원의 획기적인 현대화도 필요하다. 지금 짓거나 증설하는 병원들은 앞으로 100년은 써야 하는 곳이다. 좋은 건물,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 의사와 간호사가 만족스러운 활동을 하고 주민이 믿고 찾을 수 있는 병원이 돼야 한다. 공공병상을 늘리는 방식으로 새로 짓는 것뿐 아니라 경영이 어려운 민간병원을 인수해 공공병원으로 전환하는 방식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공공병원을 설립하려 할 때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예비타당성 조사’가 공공병원 설립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를 면제하거나 평가 항목을 사회정책에 맞게 대폭 바꿔줘야 한다. 경제성과 효율성만을 보는 현재의 예비타당성 조사는 꼭 필요한 공공병원 가치조차 부정한다.
공공병원은 ‘미운 오리새끼’ 같다. 오리 중에 유난히 못났지만 잘만 키우면 제일 큰 역할을 해줄 오리가 바로 공공병원이다.
공공의료 확충은 사회적 논의와 지지를 필요로 한다. 부정적 담론을 넘어 긍정적 담론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공공의료 강화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담론 형성은 더디기 마련이지만, 꼭 가야 할 길은 국민 지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여론이 정당 당론으로, 정부 정책으로, 새 국가 지침으로 바뀌어야 한다. 바이든은 이미 의료보험 개혁 선언으로 국민 건강과 복지를 국가 책임으로 떠안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1월호
 

김용익 syikim@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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