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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조합’이 드러낸 병든 미국

기사승인 [129호] 202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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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바이든 시대의 미국- ③ 병든 미국- 트럼피즘과 코로나19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패배에도 미국은 도덕적으로 병든 것 같다. 이 ‘위대한’ 나라는 언제 어디서 잘못된 길로 접어든 것일까. 5년간 미국 뉴욕에 체류한 특파원의 생각은 어떨까. 조 바이든의 미국은 이 병을 치유할 수 있을까.

필리프 욈케 Philipp Oehmke <슈피겔>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무엇보다 병든 미국을 치유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트럼피즘(트럼프주의과 코로나19로 망가진 미국이 가장 우선적인 대상일 것 이다. 바이든 당선인의 부인인 질 바이든이 2020년 12월 기자회견 도중 남편을 살짝 안고 있다. REUTERS

2020년 11월 첫째 주 토요일 저녁, 정치·사회 풍자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를 시작하며 미국 코미디언 데이비드 셔펠은 청중에게 코로나19 이전 삶이 어땠는지 아직도 기억할 수 있는지 물었다. 바로 두 시간 전에 조 바이든은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선거 당선자 신분으로 대국민 연설을 했다. 바이든은 거리로 쏟아져나와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려 했다. 그 뒤 셔펠이 나왔다.
심야 버라이어티쇼 진행자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어느새 한 나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평론가가 되어버린 것은 미국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독일에서 코미디언은 틈새시장을 점유할 뿐이지만, 미국에선 중요한 사회적 목소리 중 하나로 셔펠은 지난 수년간 가장 크고 영향력 있고 날카로운 목소리를 냈다.
오프닝 멘트에서 셔펠은 코로나19 이전 상황이 어쨌는지 떠올렸다. 매주 대형 총기 사건이 일어났다. 사실 사람들은 코로나19에 대해 신에게 감사해야 한다. 누군가는 이 살인적인 백인들을 집에 머물도록 해야 한다고 셔펠은 말했다.

   
▲ 미국의 정치·사회 풍자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위키피디아 제공

트럼프 시대 어두운 ‘미국의 경험’
미국은 일단 도널드 트럼프에게서 살아남았다. 아마 팬데믹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다. 그 뒤엔 지난 몇 년간 ‘미국의 경험’을 상당히 어둡게 했던 문제와 씨름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와 코로나19, 특히 두 요소가 결합해 만들어진 ‘독성조합’은 그 문제를 표면에 드러냈을 뿐이다. 바이든이 하는 격려의 말, 공동체의 맹세는 중요하다. 하지만 말만으로는 국가를 구할 수 없다.
바이든은 그가 가장 먼저 다룰 네 가지 문제에 ‘체계적 인종차별’이 포함됐다고 말했다.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경제·의료보험·일자리·조세제도, 선거 승리의 순간에 언급하는 주제는 이런 것들이다. 그런데 체계적 인종차별이라니?
미국은 스스로 병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선거의 정당성이 의심받고 정치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언론은 비당파적 관찰자로서 역할을 포기하거나 상실했다. 대부분 백인으로 구성된 경찰력은 실망하고 분노한 흑인에게 반복해 돌발적인 폭력을 저지른다. 무장한 민병대가 거리로 나오고, 소셜미디어에서는 증오에 찬 댓글을 받지 않고는 개인 의견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그 끝에는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대통령, 감염병에 맞서 무력한 ‘연대 없는 사회’가 있다.
트럼프가 가더라도 이 모든 문제는 남을 것이다. 심지어 트럼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음번 권위적 지도자는 트럼프보다 덜 멍청하고 덜 유치하고 덜 무능하길 바랄 뿐이다.
보수 성향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스> (The Atlantics)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이런 증상이 실제 한 역사적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는지 자문했다. 지난 6년간 미국은 일종의 탈피를 유발하고 새로운 도덕을 탄생시킬 결정적 격동을 겪은 것일까. 브룩스는 이 부분에서 20세기 후반 위대한 정치사상가인 새뮤얼 헌팅턴의 말을 인용했다.
헌팅턴은 미국 역사에서 60년마다 그와 같은 ‘도덕적 격변’(Moral Convulsions)이 일어나며 항상 동일한 증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제도 불신, 거대한 도덕적 분노, 엘리트를 향한 경멸이 나타난 뒤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을 가진 도덕적인 젊은 세대가 사회 토론을 장악하고 이전에 소외되고 무시당하던 그룹이 주류로 떠오른다. 20세기 말에 나온 내용임에도 마치 미국의 현재 상태를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십 년간 전세계에 큰 영향력을 미쳤던 문명 공간의 수수께끼 같은 쇠퇴는 어쩌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예고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촉발 요인을 간파하기 어려웠다. 실제 정치적 성격을 가진 요인이 아니라, 변화한 내적 상태이거나 브룩스가 말한 것처럼 사회적 신뢰 문제이기 때문이다.
브룩스는 이를 “한 사회의 도덕적 질을 측정하는 척도. 사람과 제도를 신뢰할 수 있는지, 약속을 지키고 공동선을 위해 일하는지 아닌지”라고 묘사했다. 교인들이 신앙을 잃거나 교회에 대한 믿음을 잃으면 교회는 붕괴한다. 사회 구성원이 제도를 불신하고 서로를 믿지 못하면 국가가 붕괴한다.

   
▲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언 데이비드 셔펠. 위키피디아 제공

조 바이든 전기를 출판한 에번 오스노스는 잡지 <뉴요커>에 기고한 글에 미국 싱크탱크 ‘평화기금’(Fund For Peace)에서 발표한 취약국가지수(Fragile States Index) 중 내부응집력(Cohesion) 부문의 평가 결과를 언급했다. 지표는 대중의 불만 수준(집단 간 갈등), 치안유지력에 대한 신뢰, 정치집단 파벌화다. 미국 순위는 평가 국가 중 가장 큰 하락세를 보여 바레인, 말리, 심지어 리비아 같은 국가보다 뒤인 맨 끝자락에 있었다.
이런 신뢰 위기를 촉발한 원인은 무엇인가? 미국의 사회·정치·문화는 어디에서 잘못된 길로 들어서 결국 트럼프와 그의 2만 번이 넘는 거짓말, 팬데믹 중 시가전으로 끝난 것일까?
내가 미국으로 이주했을 때, 미국 대통령은 베이비붐 세대인 빌 클린턴이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가장 가시적인 대표 인물상은 1960년대 후반 해방운동에서 정치·문화적 영향을 받은 백인 남성이다.
이들의 인생 경험은 항상 위로 올라간다.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고, 번영이 보장되며, 자녀는 자동으로 부모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 이들에게는 안전이 필요치 않았고 최대한 자유를 추구할 수 있었다. 청바지를 입고 사무실에 출근하고, 태연하게 불륜을 저지르고, 나이 들어서도 록음악을 듣는다. 그들의 상승세는 내가 뉴욕에 도착한 1990년대 후반 절정에 이르렀다. 높은 출산율로 인구가 많았던 베이비붐 세대는 사회에서 지도자 위치를 차지했고 그 선두에 빌 클린턴이 있었다.
그들의 끝없는 낙관주의가 오늘날엔 순진하게 느껴진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는 1992년 미 대선에서 클린턴 진영의 선거 구호였다. 경제만 계속 성장하면 모든 게 더 좋아질 것이다. 시장은 스스로 규제한다. 지금의 인스타그램처럼 모든 이의 입에 오르내리던 다우존스와 나스닥이 무너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처럼 보였다.
빌 클린턴과는 달리 전형적인 베이비붐 세대와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도널드 트럼프를 ‘도널드 트럼프’로 만든 배경 역시 당연히 이런 시대 분위기였다. 자유는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도덕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뒤에 숨겨진 생각은 자아를 실현한 개인의 총합이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젊은 세대는 이런 세계관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심지어 경멸한다. 그들은 “제도가 실패하고, 금융시스템이 무너지고, 가족이 해체되는 세계”에서 성장했다고 말하며 브룩스는 이들이 원하는 건 “해방이 아니라 안전, 자유가 아니라 평등, 개인주의가 아니라 집단의 보호, 무한 경쟁 사회가 아니라 사회적 정의 요구”라고 썼다.
바이든이 체계적 인종차별을 말했지만, 인종차별을 격화한 사람은 베이비부머 클린턴이었다. 공화당 성화에 못 이겨 클린턴은 더 강력한 반범죄법을 통과시켰고 그 결과 미국 교도소는 흑인 죄수로 넘쳐났다. 참고로 당시 조 바이든은 상원의원으로 클린턴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 빌 클린턴 시대를 낳은 경제사회적 요인이 있었던 것처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낳은 미국의 경제사회적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 가상 전당대회에서 연설하는 빌 클린턴. REUTERS

2002년 미국 붕괴의 첫 경고
2001년 내가 막 임기를 끝내고 뉴욕 할렘 지역에 새 사무실을 개업한 클린턴을 수행 취재할 때만 해도, 거리에는 환성을 지르는 흑인 팬들이 늘어서 있었다. “당신은 항상 우리의 대통령일 것이다!”라고 그들은 외쳤다. 클린턴의 반범죄법이 시행된 지 7년이 지났지만, 그들은 파괴적이고 사회 붕괴적인 영향을 아직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미국의 붕괴를 대중이 실감한 첫 경고의 외침은 1년 뒤인 2002년에 나왔다. 전 경찰 기자 데이비드 사이먼이 워싱턴DC에서 멀지 않은 항구도시 볼티모어에 대한 TV 드라마 시리즈를 제작했다. 사이먼의 드라마는 유료 채널 <HBO>에서 방영됐다. 당시 <HBO>에선 문화적 엘리트 계층을 다룬 <더 소프라노스>(The Sopranos), <섹스 앤드 더 시티>(Sex and the City) 같은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었다.
사이먼의 <더 와이어>(The Wire)는 5시즌에 걸쳐 볼티모어 같은 도시가 1990년대 초반 이미 ‘실패한 국가’(Failed State·파탄 국가)처럼 망가졌다는 것과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사업과 정치 영역까지 스며든 통제되지 않는 마약 거래, 흑인 갱단이 지배하는 빈집이 늘어선 거리, 백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은 항구가 있었다. 가난한 동네의 학교는 상태가 너무 엉망이라, 배우려는 의지가 있는 아이들조차 어느 순간 마약 갱단에 들어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에 더해 환멸을 느끼는 경찰과 언론 노출에만 관심 있는 부패한 정치가가 있다. 요약하면 그곳은 보수 성향 칼럼니스트 브룩스가 지금 말하는 신뢰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장소였다.
드라마가 방영되고 몇 년 뒤, 사이먼과 함께 볼티모어를 돌아다닐 때 나는 그에게 공공시스템이 붕괴한 이유를 물었다. 그 시점에는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충격적인 현실이 이미 대중의 인식에 도달했고 문예란에서 논의되고 있었다. 사이먼은 “사람들이 더는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또한 사회적 신뢰 상실을 뜻하는 표현일 뿐이다.
사이먼의 드라마는 약 20년 전에 주로 단절되고 버림받은 대도시의 흑인 하류층을 조명했다. 같은 시기 오하이오나 웨스트버지니아와 같은 연방주의 시골 지역에선 다른 이유로 흑인 하류층 못지않게 자신들이 배제됐다고 느끼는 백인 프레카리아트가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게 자라나고 있었다.
코미디언 데이비드 셔펠은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무대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 하류 계층에 이제 흑인 대중에게서 배우라고 권했다(그는 흑인 대중이라 하지 않고 ‘N-워드’(Nigger·흑인을 가리키는 모요적인 말 ‘깜둥이’)를 썼다.) 그는 백인에게 “당신들의 재난지원금(Stimulus Checks), 당신들의 헤로인이 우리를 방해한다. 당신들은 당신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우리 눈이 필요하다”라고 외쳤다. 셔펠은 이를 통해 흑인들을 향한 선입견인 실업과 마약중독을 암시했다.
트럼프가 정치 무대에 등장하기 3년 전인 2012년, 정치학자 찰스 머레이는 이 부류(백인 하층 트럼프 지지 그룹)에 대해 대중에 처음으로 알렸다. 흥미롭게도 그들의 특징은 경제 요인이 아니라 심리·도덕·습관적 요인이었다. 빈곤이 주요 문제였던 과거의 불안정 그룹은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은행 계좌는 국가가 채워줄 수 있지만, 사람 머릿속은 채워줄 수 없다. 

   
▲ 2020년 12월13일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REUTERS

책 <분리되다: 미 백인국>(Coming Apart: The State of White America)에서 머레이는 자신이 ‘피시타운’ (Fishtown)이라 부르는 가상 장소를 이야기한다. 피시타운은 일자리와 함께 도덕성도 잃어버린 산업화 이후 도시다. 그는 통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피시타운을 조합해 이 도시 주민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피시타운 남성들은 점점 더 자주 일할 능력이 없다고 등록하고, 그곳에 거주하는 전체 아이 중 한 명만 부모와 함께 산다. 사람들은 이전에 지역사회의 중요한 안정제였던 교회에 더는 가지 않는다.
작가 J. D. 밴스는 머레이의 통계 수치가 없어도 이런 상황을 잘 안다. 피시타운 같은 곳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고향은 실제로 존재한다. 오하이오주 소도시 미들타운이다.
밴스의 아버지는 도망갔고, 어머니는 마약중독자였다. 그는 조부모 곁에서 자랐고 해군 입대로 미들타운에서 빠져나와, 동부 해안의 예일대학에 입학했다. 그곳의 첫 저녁 식사에서 웨이터가 일반 생수와 탄산수 중 어떤 물을 원하냐고 묻자 그는 발작이 난 것처럼 웃었다. 그때까지 탄산수가 뭔지 몰랐던 밴스는 웨이터의 물음을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기 몇 달 전, 2016년 여름 미국에서 <힐빌리의 애가>(Hillbilly Elegy)가 출간됐다. 자신이 자란 환경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밴스의 회고록이었다. 뉴욕에서 우리 모두는 오지로부터의 소식인 이 책에 달려들었다. 트럼프는 그 존재조차 몰랐던 유권자 수백만 명의 선택을 받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곧 유명해진 러스트벨트(미국 북동부 5대호 주변의 쇠락한 공장지대)에는 지난 20년 동안 국가와 사회에 대한 모든 신뢰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화가 난 백인 중산층과 하층이 살고 있다.
이들을 보기 위해 나는 웨스트버지니아, 오하이오, 켄터키를 방문했다.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지역은 2000년대 이후 헤로인처럼 작용하는 정제 형태의 진통제 오피오이드로 파괴됐다. 백인 마약중독자 수백만 명에게 판매되는 가장 유명한 오피오이드 계열 제품의 이름은 옥시콘틴(Oxycontin)이다.
퍼듀제약은 1996년 이 제품을 출시한 뒤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오피오이드 오·남용 사태를 일으켰다. 이 지역 소도시에는 250달러를 받고 옥시콘틴 처방전을 써주는 장사만 하는 개인병원도 있다.

   
▲ 2020년 10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주택의 주차장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REUTERS

‘옥시스’ 마약에 빠진 백인 유권자층
1990년대 크랙(Crack)이 대도시와 흑인의 약물이었다면, 옥시스(Oxys)는 시골과 백인의 마약이다. 가장이나 밴스 어머니 같은 가정주부가 희생자가 되었다. 조부모, 부모, 자녀가 모두 오피오이드 중독자인 가족도 있다.
당국이 ‘알약 클리닉’이라 부르는 오피오이드 처방전을 장사하는 개인병원을 폐쇄하고 약품을 손에 넣기 어렵게 한 뒤 가격을 올리자, 중독자 대부분은 더 저렴한 헤로인으로 갈아탔다. 웨스트버지니아주 헌팅턴에서 나는 ‘백인 좀비’들로 가득한 슬럼가를 보았다. 켄터키주 애슐랜드에선 약물을 과다 복용한 중독자에게 출동하는 것이 업무의 대부분인 응급의사를 동행 취재했다.
오하이오에서 만난 밴스는 왜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문화·습관적 단절을 해소하는 일이 불가능한지, 어떻게 수십 년에 걸쳐 그들의 행동 방식이 형성됐고 다른 국민에게서 분리된 그들의 세상, 진실, 도덕성에 대한 시각이 형성됐는지 설명했다.
밴스가 그의 책에서 묘사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도널드 트럼프를 선택했다. 트럼프와 그의 공격적이고 음흉하고 끝없이 이기적인 행태에서 그들은 익숙한 모습을 발견한다. 트럼프 같은 사람은 어느 가족에나 있다.
재미있게도 미들타운에 거주하는 그의 옛 친구들은 대부분 실업 상태임에도 항상 자신들이 힘들게 일한다고 주장한다. 세상이 그들에게 반대하고, 누군가가 그들을 속이려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대통령에게서 동질감을 느낀다. 이런 긴장은 최근 몇 년 동안 뉴욕에서도 분리돼 갈등을 빚어온 주민 계층이 어디에선가 서로 마주칠 때마다 느껴졌다. 유기농 슈퍼마켓 홀푸드(Whole Food) 계산대에서 부유한 고객과, 목에 문신한 다수의 흑인 계산원 사이에 터무니없는 심리적 싸움이 벌어진다. 

   
▲ 조 바이든은 정적 도널드 트럼프가 만든 ‘병든 미국’이란 울타리를 넘을 수 있을까. REUTERS

대부분 교육수준이 높고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진 고객이 판매원을 과장되게 예의 바른 태도로 대할수록, 판매원들은 이를 명백하게 특권층에 더욱 경멸적인 태도를 보여야 할 동기로 생각한다.
“거짓된 작은 친절이 수백 년의 탄압을 보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어쨌든 2020년 봄 미국 뉴욕대학에서 만난 작가 타네히시 코츠는 앞의 문장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팬데믹 직전이었고, 조지 플로이드 살해로 촉발된 인종 폭동이 전국에서 일어나기 3개월 전이었다. 고객(백인 엘리트)이 슈퍼마켓 직원(흑인)에게 친절하게 대해도 소용이 없다. 부유한 고객이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코츠와 어느 정도 관련 있다. 2015년 펴낸 수필집 <세계와 나 사이>(Between the World and Me)에서 그는 진보적인 백인 엘리트 계층에 2010년대에 미국에서 흑인으로 사는 일이 어떤 느낌인지 충격적인 방식으로 설명했다. 그리 좋지는 않다. 항상 자신의 신체적 안전에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보다 나 자신이 가치 없다고 느낀다.
미국 대선이 끝난 뒤 상당한 기간 트럼프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수백 년 된 미국 사회의 중산층 정당인 공화당의 대부분이 그를 지지했다. 7100만 명 이상이 그에게 표를 주었다. 그중 대다수는 트럼프의 선거 사기 주장이 가짜라고 믿을 것이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리라는 믿음이 있는가? 데이비드 브룩스가 요구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올바른 일을 하리라는 신뢰가 있는가? 그런 것은 없지만 희망은 있다. 그것이 최대다.(그나마 최대한으로 생각하면 희망은 있다고 볼 수 있다. -편집자)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이 나라를 떠난다.

ⓒ Der Supiegel 2020년 제47호
Toxische Kombination
번역 황수경 위원

필리프 필리프 욈케 economyinsight@hani.co.kr

<저작권자 © 이코노미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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