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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명! 프랑스 국민의 지갑을 열어라

기사승인 [130호] 202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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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ECIAL REPORT] 프랑스 가계저축- ① 캐지 않은 광산

올겨울 코로나19가 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다. 미국에선 확진자·사망자 수가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유럽 여러 나라에선 또 이동제한령이 내려졌다. 각국에서 국민의 외출과 소비가 줄어듦에 따라 가계의 ‘코로나 저축’이 늘고 있다. 프랑스에선 불어난 가계저축을 시장에 풀어 경제 활력을 되찾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이를 위해선 국민이 미래를 낙관할 수 있게 하고 정부와 금융기관이 가계의 위험부담을 덜어주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_편집자

오드 마르탱 Aude Martin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2021년 1월 코로나19가 다시 퍼져 야간 통행금지령이 내려진 프랑스 니스의 구시가지에 있는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아 거리가 텅 비었다. REUTERS

2020년 프랑스 국민의 겨우살이 준비는 누구보다 빨랐다. 이른 봄, 다람쥐가 도토리 떨어지는 가을을 기다리는 동안 집에 갇힌 돈이 바깥 구경을 포기한다. 휴가는 취소다. 낡은 식기세척기도 다음에 바꾸기로 한다. 영화는 집에서 본다. 이동제한령이 풀려 집 밖에 나가도 되지만, 베짱이처럼 여름을 즐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감염병 확산 기세가 꺾일 듯하면서도 다시 고개를 든다. 공포에 질린 프랑스 국민(여윳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곁에 쥐고 놓지 않는다. 프랑스 사회와 경제는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개미 행렬이 이어진다. ‘코로나19 저축’으로 모인 돈은 이제 900억유로(약 12조300억원)를 돌파했다. 이전에 모아둔 돈까지 합하면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두툼해진 지갑
어디, 누구에게도 쓸모없는 돈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가 쓴 <수전노> 속 아르파공처럼 돈을 땅에 묻어둔 것이 아니라면 저축한 돈은 어디든 쓰이게 돼 있다. 은행 등 금융기관이 돈 쓸데는 차고 넘친다. 항상 좋은 곳에 쓰지 않는다는 것이 흠이지만. 그래도 다행히 대안이 있다. 프랑스 국민이 모은 6조유로어치 보물로 지금보다 더 공정하고 자연친화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 해법이 궁금하다면 ‘저축 경제’의 미로에 초대한다!
휴가를 취소했다, 식당과 영화관이 문을 닫았다, 큰 지출을 다음으로 미뤘다. 프랑스 경제전망연구소(OFCE)에 따르면, 2020년 1~6월 프랑스 국민의 통장에는 ‘보통 때’보다 620억유로가 더 쌓였다. 프랑스 통계청은 2020년 1분기 프랑스 가계저축 총액이 1700억유로에 이른다고 밝혔다. 2020년 12월 경제전망연구소는 ‘코로나19 저축’이 2분기에도 270억유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말 대목을 앞두고 전 국민 이동제한령이 또 떨어졌으니, 저축 증가세가 다시 가팔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2020년 코로나19 관련 저축 총액은 (기사 작성일 기준) 890억유로를 기록했다.

달라진 저축 양상
노다지는 탐욕을 부르기 마련이다. 프랑스 정부는 이 돈을 나라 경제 회생의 도구로 쓰려 한다. 다른 한편에서 기업은 가계가 얼른 돈을 꺼내 자사 제품과 서비스를 사길 바란다. 소비 부진이 지속되면 경제는 소용돌이에 빠진다. 가계가 지갑을 닫으면 기업은 사업을 축소하고, 직원을 내쫓는다. 일자리를 잃은 가계는 소득이 줄어든다. 구매력이 떨어졌으니까 지갑을 또 닫는다. 돌고 도는 악순환이다. 프랑스 국민이 지갑만 열면 침체한 프랑스 경제를 되살릴 수 있을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코로나19 관련 저축의 대부분은 법률로 이자율과 상한액을 정해놓은 저축 상품이나 자유입출금 통장에 있는 돈이다. 프랑스 공탁소(CDC)에 따르면, 2020년 3~9월 프랑스 가계가 비과세저축예금과 지속가능한발전·연대통장(LDDS)에 부은 돈의 총액(이자 제외)이 월평균 38억유로에 이른다. 2019년 같은 기간(17억유로)의 두 배가 넘는다. 프랑스 공탁소는 두 상품의 예금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이다.
프랑스 은행은 1차 전 국민 이동제한령이 떨어지고 자유입출금 통장에 매달 평균 90억유로가 쌓였다고 했다. 2017년 1월부터 2020년 2월까지 프랑스 가계의 자유입출금 통장 예치금 총액의 평균은 32억유로였다. 반면 생명보험에 붓는 돈은 줄었다. 부동산투자 예금상품(‘비금융’ 예금상품)도 마찬가지다. 2019년 1분기 710억유로에서 2020년 1분기 580억유로로 뚝 떨어졌다.
코로나19 유행이 부추긴 저축은 그 전과 양상이 다르다. 부동산 거래를 하지 못하니 자연히 투자 예금상품에 돈을 덜 붓는다. 저축액 전체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던 부동산투자 자금이 절반으로 쪼그라들었다. 금융 예금상품만 살펴보면, 생명보험보다 입출금이 자유로운 상품에 더 많은 돈을 넣었다.
전 국민 이동제한령으로 돈 쓸데가 없어진 탓도 있지만, 소득 감소나 실직을 우려해 돈을 모아두는 ‘예비적 저축’의 성격이 크다. 저축 양상이 달라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브뤼노 르메르 경제장관의 말대로 “프랑스 국민이 스스로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돈을 쓰는 것”일 테다. 통장에 묶인 돈을 다 쓰는 것은 무리지만, 그 일부라도 시장에 돌면 상황이 크게 나아질 것이라고 여러 경제학자는 말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해답을 찾으려면 ‘가계저축 증가’라는 한 줄짜리 결론만이 아니라 통계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 총리 자문기관인 경제분석위원회는 “늘어난 저축의 70%가 소득 상위 20%가 모은 돈”인 것으로 분석했다. 반대로 소득 하위 20%가 저축한 돈은 줄어들었다. 코로나19 위기로 생계가 막힌 이들 가계는 이제 모아둔 돈을 꺼내 쓰고 있다.
(보험금, 급식비 등) 고정으로 나가는 돈이 전체 지출의 30%를 넘어서고(소득 상위 20%에서는 19%), 저축은 0%를 맴돈다. 이런 저소득층은 쓰고 싶어도 더 쓸 돈이 없다. 역으로 고소득층의 전체 지출에서 저축이 차지하는 비율은 30%다. (레저, 숙박, 외식 등) 2020년 감염병에 희생된 산업에 쓰인 돈이 많다.
소득이 적은 가계도 소비를 늘릴 수 있다.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없는 돈을 쓰라고 할 수는 없으니 쓸 돈을 쥐여줘야 한다. 정리하면 이렇다. 저소득층 구매력을 강화해 소득 진작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그런 정책으로 코로나19가 낳은 저축 거품은 끄기 어렵다.

   
▲ 프랑스 파리 부도심 라데팡스의 중심가에 설치된 현금자동인출기. 프랑스 국민이 코로나19로 외출과 소비를 하지 못해 늘어난 저축이 12조원을 넘는다. REUTERS

가계의 신뢰 회복 우선
부의 재분배 말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경제학자 에리크 모네는 “정부가 가계에 저축하지 말라고 한 역사가 별로 없다”며 “1930년대 대공황 때가 거의 유일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뉴딜정책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보장제를 도입했다. 그 덕에 가계 소비심리가 눈에 띄게 회복됐다. “자유주의 사상에 따라 저축한 돈이 저절로 쓰이게 놔두느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실업·도산 위험을 줄이고 국민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울 것이냐 선택해야 한다.”
2020년 11월 프랑스 가계의 미래 신뢰도는 2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를 다시 끌어올릴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 정부가 △부분적 실업 지원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고 △공공부문에 일자리를 만들고 △기업에 에너지전환 사업을 맡기면 된다.
중산층이 일자리를 잃을까 우려해 돈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라면, 고소득층은 또 다르다. 고소득층 주머니를 열려면 더 멀리 생각해야 한다. 에리크 모네는 “생명보험 같은 특별 예금상품이나 부자들이 많이 쓰는 저축 수단에 세금을 매기는 방안과 금융자산에 대한 조세 제도를 전면 개정하는 방안이 있다”고 말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집권 초기 밀어붙인 개혁과 정반대로 가야 한다는 말이다. 정부가 2018년부터 금융자산에 30%로 고정된 비례세율을 적용하면서 부자들이 내는 세금이 줄어들었다.
늘어난 세수는 되도록 환경정책 집행에 쓰는 것이 이상적이다. 환경문제는 소비 진작을 통한 경기 활성화(케인스주의 정책)가 논의될 때마다 따라붙는 의제다. 녹색경제, 절약경제의 흐름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가계가 돈을 쓰게 하는 것이 가능할까. 일각에선 특정 상품에 쓸 수 있는 ‘녹색 수표’를 저소득층에 발행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그러나 이 정책은 정부 보조금이 원하는 곳에 쓰이게 할 수 있어도 가계소비를 유도할 수는 없다. 결국 가계지출은 가계가 마음먹기에 달렸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지갑은 열리지 않는다.

친환경 소비로 전환
프랑스 국민이 미래를 낙관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날이 왔을 때 프랑스 국민의 잉여 소비가 환경 목표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소비자 앞에 놓인 친환경 제품의 선택지가 다양해야 한다. 생산 구조를 통째로 바꾸는 대공사라 당장은 실현이 어려울 것이다. 지금의 생산 모델에 집착하는 이상 가계지출이 몇 달 안에 마법처럼 친환경 지출로 바뀔 수는 없다. 하지만 정부가 재정적·법적 수단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가계지출이 앞으로 친환경적으로 변할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유기농법 전환, 제품 수명을 일부러 짧게 하는 ‘계획적 구식화’ 방지, 주택 에너지효율 개선 지원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코로나19가 부풀린 가계저축 거품은 가라앉힐 수 있다. 프랑스 경제에 다시 돈이 돌 수 있다. 정부가 각 계층이 놓인 상황에 맞는 해법을 제시한다면 말이다. 그래도 통장에 남는 돈은 가계저축을 관리하는 금융기관이 슬기롭게 쓰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1년 1월호(제4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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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최혜민 위원

오드 마르탱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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