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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가 정치선동가로 변신하는 이유

기사승인 [131호] 202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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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SUE] ‘독일을 위한 대안’(AfD) 정당의 기원

경제학 교수들이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만들고 키웠다. 저명한 금융경제학자가 코로나19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독일 경제자유주의자들은 왜 이런 행동에 나섰을까? 그들은 어떤 우파인가?

베냐민 비더 Benjamin Bidder
미하엘 자우가 Michael Sauga
<슈피겔> 기자

   
▲ 무대에서 연설을 마치고 내려오는 독일 기독교민주연합(CDU) 전 대표 프리드리히 메르츠. 그가 재임 때 경제에 대한 조언을 구한 이가 슈테판 홈부르크다. 홈부르크는 <거시경제학> 저자로서 ‘독일을 위한 대안’(AfD) 창당에 앞장선 경제학 교수다. REUTERS

‘당신처럼 현명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유포할 수 있는가?’ 슈테판 홈부르크(59)가 공개 석상에서 발언할 때마다 물밀듯이 들어오는 그의 청중은 이런 질문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홈부르크의 경력은 화려하다. 경제학과 대학생 한 세대가 그가 쓴 책 <거시경제학>과 <신거시경제학>을 교재로 썼다. 홈부르크는 1984년 경제학부 4학기 재학 중에 이 책을 썼다. 프리드리히 메르츠(전 기독교민주연합 원내대표)와 앙겔라 메르켈(현 독일 총리)이 그에게 조언을 구했다.

군중 속으로 뛰어든 경제학자
그러나 이 기사를 읽는다면 다른 사람의 경력을 보는 듯이 느껴질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가 대유행한 해, 홈부르크는 경제학 강의가 아니라, 함성을 지르는 군중이 듣고 싶어 하는 소리를 외쳤다. 간이 단상 위나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홈부르크는 다듬어지지 않은 메시지를 방출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위험하지 않다. 셧다운(봉쇄)은 권력자들이 즐기기 위한 슬픈 실험인 ‘헝거 게임’일 뿐이다. 독일은 전체주의에 빠져들고 있다. 여기는 1933년이다.”(셧다운은 나치시대에나 할 법한 일이라는 뜻 -편집자)
홈부르크는 <슈피겔>의 인터뷰 요청에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그의 사례는 독일 경제학자들이 상당히 우파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2013년 유로화에 반대하는 교수들이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세웠다. 현 당대표는 경제학 교수 외르크 모이텐이다.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자 2020년 여름까지 루트비히에르하르트재단 회장이던 롤란트 티히스가 인터넷 포털 ‘티히스의 통찰’(Tichys Einblick)에서 수년간 우파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적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의혹을 샀다.
이런 현상을 ​​개인 일탈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면 독일에서 항상 특별한 학문으로 여기는 경제학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주는 것일까? 루트비히 에르하르트의 ‘질서자유주의’
(Ordoliberalismus)는 그래도 전후 독일 경제의 기적을 탄생시키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그들이 스스로 만든 국가에 반기를 드는 것일까?
2020년 봄 첫 셧다운이 있었을 때,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경제학자가 이 결정을 비판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극단적인 조처를 해야 할 경우, 경제학자들은 자동으로 다른 곳에서 감수해야 할 희생을 생각한다. 기회비용에 대한 냉철한 사고는 경제학의 장점이다.
홈부르크는 2020년 3월23일 셧다운을 시행하기 전에 감염률이 줄었다고 지적했다. 정확한 진술이었다. 하지만 이후 홈부르크는 합리적인 논거에서 벗어나 “독일에 내전과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2020년 봄, 그는 독일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3천 명이 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주일 사망자 수가 3천 명 정도다. 그 뒤 홈부르크는 수십만 명을 학살한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과 독일 정부를 비교했다.

   
▲ AfD 현 대표 역시 경제학 교수 출신의 외르크 모이텐이다. 모이텐이 2020년 5월2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코로나19 관련 유럽의회에 참석한 모습. REUTERS

정확성
독일 마그데부르크대학 국제경제학 교수 카를하인츠 파케(64)는 경제 이론과 정치적 실천 사이의 복잡한 긴장관계를 알고 있다. 그의 삶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독일 통일 뒤 파케는 홈부르크와 함께 이 학과를 설립했다. 파케는 4년간 자유민주당(FDP·기민-기사 연합보다 우파 성향 정당) 소속으로 작센안할트주 재무장관을 했다.
파케는 독일 베를린 미테지구에 있는 자유민주당(FDP과 밀접한 프리드리히나우만재단) 본부의 한 사무실에 앉아 있다. 그는 프리드리히나우만재단의 회장을 맡고 있다. 복도에는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자유주의적 커뮤니케이션 안내서’가 비치돼 있다. 안내서 표제에는 ‘극우 선동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라고 쓰여 있다.
자유주의는 우파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가? 파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시장만능주의는 민주주의 국가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졌을 수 있다. 파케는 국가가 정책을 수행할 때 항상 그 정책이 필요한 이유를 입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질서자유주의자’와 국가를 기본적으로 불신하는 ‘자유지상주의자’를 구별한다.
국가를 불신하는 사고방식에서 음모론이 만들어진다. 국가가 시장보다 문제를 더 잘 해결하지 못한다면, 정부의 모든 개입 뒤에 불길한 동기가 있다고 의심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홈부르크의 주장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2020년 4월 독일 일간 <벨트>에 기고한 글에 파케는 국가가 “당당하고 자유로운 시민과 기업가를 리바이어던(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쓴 <국가론>에서 국가 유기체를 비유한 말)과 그의 록다운(이동제한령) 위협에 대한 상시적인 공포로 몰아넣고, 지원금에 매달리게 하려 한다”고 썼다.
오늘날에는 묘하게 번지수를 잘못 찾은 소리로 들리지만, 다른 맥락에서 20년 전까지만 해도 경제정책 토론의 주류에 속하는 주장이었을 것이다. 1990년대 말 사회민주주의운동의 핵심 지지층(노동자 계급)까지도 ‘큰 시장, 작은 정부’가 독일 문제의 해결책이라 생각했다. 사민주의(정치적으로 의회, 경제적으로 노동조합을 통해 합법적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운동)는 실제로 쇠퇴했다. 실업자 수가 400만 명을 돌파했고, 경제성장이 정체됐다. 독일은 ‘유럽의 병자(病者)’로 치부됐다.
일요일 저녁 TV 정치토론 프로그램에선 ‘독일이 영국이나 미국같이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주제로 논쟁이 벌어졌다.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와 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했던 것처럼 하자는 것이다. 베텔스만재단은 ‘사회적 시장경제 개혁위원회’를 설립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최소 정부를 주장하는 이들의 일부 가혹하기까지 한 어조에 당혹했다. 그들은 ‘이 방법 말고 다른 길은 없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2005년 독일 총선 직전에 경제학 교수들이 낸 ‘함부르크 호소문’에 “이미 저임금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임금을 인하해야 실업률을 줄일 수 있다”며 필요한 것은 “노동시간 연장, 휴가 축소나 동기부여”라고 쓰여 있다. 이 글은 최후통첩과 같았다. 호소문의 발기인은 나중에 AfD 당대표가 된 베른트 루케였고, 그 아래에 저명한 경제학자 약 230명이 서명했다.

   
▲ 대학에서 정치경제를 가르치는 요아힘 슈타르바티는 현재 AfD 자문위원이다. REUTERS

당시 많은 경제학자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지만, 그들의 주장을 구현할 수 없기에 일종의 집착이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를하인츠 파케는 “많은 발의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독일의 사회국가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 사회를 급격하게 변화시키는 건 모형에서만 가능할 뿐, 실제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는 경제학 핵심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경제학에 통계와 수학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모형 이론은 “경제학자들의 자랑이고, 때로 그들을 오만하게 만든다”. 파케는 “경제학자는 안개 속을 더듬는 사회학자를 내려다본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형 이론은 경제학자를 맹신에 빠져들게 한다.
그래서 위험성에 대한 인식 없이 맹목적으로 정치에 뛰어드는 경제학자들이 있는 것이다. 파케는 유럽연합 구제금융 정책에 대한 토론에 베른트 루케를 초대한 적이 있다.
루케는 청중 250명이 홀에 앉아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중 다수가 AfD 당원이었다. 루케는 파케의 주장을 “마치 견실한 대학 강의”처럼 건조하게 제시했다. 그럼에도 우파 청중은 루케가 열정적인 연설을 한 것처럼 포효하고 함성을 질렀다. 당시 파케는 루케를 바라보며 “이 사람들이 당신을 먹어치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AfD 창립자 중 한 사람의 발언이 FDP 당원 파케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옳은 것이 현실에서 잘못될 수 없다.” 이 발언은 파케에게 “믿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문장, 전체주의적 발상”이었다.
이런 태도 때문에 많은 경제학자가 정치에서 타협하지 못한다. 전통 이론에 따라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많은 이가 “법칙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도록 세상을 바꾼 악당”을 찾는다. 그다음 저금리에 책임이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이나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요아힘 슈타르바티(60)의 지난 25년을 돌아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기나긴 싸움이라는 인상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슈타르바티는 과거 독일에서 존중받았던 많은 요소, 보수적 세계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의 사회적 시장 경제, 독일연방은행과 독일 마르크화(DM) 애국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많은 독일 경제학자와 마찬가지로, 슈타르바티는 유로화 도입을 실수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학자를 저항운동가로 만들었다.

   
▲ AfD 당원인 교수들은 오랫동안 오피니언리더였던 만큼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패배자로서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냉전의 단순한 논리에 따라 행동한다. AfD 전당대회 모습. REUTERS

분노
슈타르바티는 그리스의 수십억유로 구제금융과 유로존 구제금융에 반대해 독일연방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유럽통화연맹의 약속 위반에 대한 분노가 슈타르바티를 정치 세계로 몰아넣었다. 합의된 유럽연합조약의 부채 한도와 계속 늘어나는 구제금융 사이의 모순, 유럽중앙은행 최고 의사결정 기구에 남유럽 국가의 의사가 과도하게 반영되는 점과 이 모든 것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찬성하는 독일연방의회의 대연정이 그를 화나게 했다.
슈타르바티는 2010년 5월 결정된 그리스 구제금융은 “위로부터의 쿠데타”라고 생각한다. “적용되던 규칙이 뒤집혔다.” 각국은 자국의 재정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그 후 “한 국가의 정부가 손을 들기만 하면 구제금융을 받았다”고 슈타르바티는 말했다.
많은 독일인이 그와 마찬가지로 분노했고 그 분노는 AfD 창당의 도화선이 됐다. 슈타르바티는 2013년 AfD에 입당했고, 2014년에는 루케와 함께 유럽의회 의원으로 선출됐다. 어떤 면에서 당시 AfD는 대학교수들이 설립·운영하는 유럽 최초의 경제학 정당이었다. 이들은 동맹 파트너 선택에 까다롭지 않았다.
경제학자들은 의회에서 그들의 의견을 대변할 정당을 신속하게 만들어냈지만, 그만큼 빠르게 자신들이 설립한 정당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 당대표 루케는 뵈른 회케를 중심으로 한 민족국가주의 성향의 하위 조직 플뤼겔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020년 11월 슈타르바티는 AfD와 밀접한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재단’의 초청을 받아 강연했다. 슈타르바티는 4년 전 논쟁으로 AfD를 떠났지만, 여전히 유로화 반대 정당에 호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슈타르바티는 청중을 ‘친애하는 전우들’이라 불렀다.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사회주의’에 대한 분노를 청중과 공감한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한 청중이 그에게 대다수 독일 경제학자가 그의 노선을 지지하는지 묻자, 슈타르바티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교수들은 비겁하다”며 “경제학자를 믿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몇 주 전 영상 인터뷰에서 슈타르바티는 또다시 루케가 실패한 원인은 언론 때문이라고 탓했다. “언론이 AfD를 우파 포퓰리즘으로 몰아갔다. 루케의 실수는 회케의 민족국가주의 성향 플뤼겔 조직과 협정을 맺은 것 때문이 아니다. 그의 잘못은 회케의 주제넘은 언동을 무시하지 못하고 탈당한 것이다.”
반면 AfD의 대다수 사람은 교수들이 실패한 원인을 ‘그들 자신의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수들이 정당을 대학 세미나처럼 권위적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거나, 초청 강연을 할 때 매대에 자신의 책과 함께 세워두는 어릿광대 인형 취급을 했다는 것이다.
슈타르바티는 AfD에 대해 몇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AfD를 방어한다. 2020년 11월 AfD 정치인들이 의회 토론에 불러들인 극우 활동가가 연방의회 의원과 장관에게 욕하고 위협한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언론에서 과장하는 것처럼 “큰 사건도 아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얼마 전 슈타르바티는 현재 독일 여론을 선도하는 경제학자인 독일경제연구소(DIW) 소장 마르셀 프라처와 토론했다. “세상이 30년 전과 달라졌다”는 프라처의 말에 슈타르바티는 “그 말은 맞다. 하지만 경제법칙은 여전히 적용된다”고 대답했다. “부채는 갚아야 하고 제로금리는 경제를 약화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슈타르바티는 교수 정당이 다시 한번 일어나기를 바랐다. “오늘날 AfD는 더 큰 유럽, 더 큰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거대한 여당 연합에 조금이나마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야당이다.”
2년6개월 전, 슈타르바티는 ‘사회적 시장경제 행동그룹’에 명예 상패를 돌려줬다. 한때 그가 협회장이었던 이 협회에서 감히 슈타르바티가 증오하는 메르켈 총리에게 상을 줬다. 메르켈을 향한 불만이 극우세력이 미치는 피해에 대한 우려보다 여전히 더 크다.

   
▲ AfD 당원인 많은 교수는 정치적 실패를 맛본다. 정당을 대학 세미나처럼 권위적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2017년 9월 독일 베블린에서 열린 선거에서 당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협
AfD 당원인 교수들의 이야기에는 동일한 흐름이 보인다. 엘리트 계층에 속하고 오랫동안 오피니언리더였던 이들이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패배자가 된다. 이후 이들은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냉전의 단순한 논리에 따라 행동한다.
독일 에르푸르트대학에서 경제사상사를 가르치는 카렌 호른(54)은 국가에 대한 회의와 적대감 사이에 선을 그으려 했다. 호른은 2011~2015년 자유주의 단체에 속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우파 성향이 강해진 하이에크학회의 회장이 되었다.
이런 우파 성향 집단 안에서 민주주의국가의 업적이 얼마나 쉽게 경멸당하는지는, 페라 렝스펠트 같은 사람의 강연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전 인권운동가 렝스펠트는 독일연방공화국을 독재국가이자 새로운 동독(DDR)이라 묘사해, 하이에크학회 회원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하이에크학회에선 수년에 걸쳐 베아트릭스 폰 슈토르히(독일 연방의회 하원의원) 같은 반동주의자나 현재 AfD 원내 공동대표 알리스 바이델 같은 미심쩍은 인물을 배출했다. 최근에는 논란이 있는 전 헌법수호청장 한스 게오르크 마센이 회원 후보 명단에 ​​올랐다.

   
▲ 2020년 11월28일 열린 전당대외에서 AfD 대의원이 투표하고 있다. REUTERS

이것은 침투 과정이다. 하지만 침투당하는 쪽에서도 기꺼이 이 침투를 허용하고 있다. 자유주의적 국가 회의론이 점점 국가를 향한 증오로 바뀌었다. 5년 전 호른은 그에 항의하며 학회를 떠났다. 약 60명의 회원이 그의 행동에 동참했다. 유명인사도 있었다. 호른은 “어떤 사람들은 경제 측면에서 자유주의를 원하지만, 민주주의·평등·정의 같은 자유주의와 다른 주요 주제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씁쓸한 깨달음을 얻었다. “시장 작동 방식에 대한 통찰로 자유주의적 사고에 도달한” 일부 경제학자가 특히 그랬다. 많은 이가 사실 진정한 자유주의자도 아니었다.

ⓒ Der Supigel 2020년 제53호
Wut und Wissenschaft
번역 황수경 위원 

베냐민 비더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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