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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과잉, 성장 넘어 환경 위협

기사승인 [132호]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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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기획]집 프랑스 탈소비 움직임 ④ 엇갈리는 시선

드니 클레르 Denis Clerc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2021년 2월 프랑스 니스에서 손님이 쇼핑카트를 밀고 카르푸 매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기불황이 심해져 소비가 경제와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둘러싼 논란이 커졌다. REUTERS

소비가 경제에서 맡은 역할은 크다. 누구는 소비가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동력이라고 말한다. 누구는 소비가 상품을 팔아치우는 데 필요한 전략 요소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에게 소비는 계층 사다리를 오르는 매개이거나, 천연자원을 고갈시키는 위험 요인이다. 하나의 소비를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을 소개한다.

공급이 수요 창출
1890년 영국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은 신고전학파 기초를 닦은 저서 <경제학 원리>를 발표했다. 그는 “수요를 창출하는 생산이 있을 때 진보(여기서는 경제성장을 가리킨다)가 일어나지, 생산을 유발하는 수요가 생겨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마셜은 경제활동 동력이 생산에 있다고 봤다. 생산이 소비자에게 행동(구매) 욕구를 유발하고, 소비자는 여건이 맞으면 이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약 70년 뒤 미국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자신의 이름을 알릴 저서 <풍요로운 사회>를 발간했다. 갤브레이스는 마셜과 비슷하게, 그러나 더 단호하게 “사실 수요는 생산이 만든 결과물”이라고 주장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실크셔츠, 조리기구, 오렌지주스 등을 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악마의 속삭임”이 들리는 상상을 해봤는가.
생산자는 새것의 매력을 계속 선전하며 소비자가 갖고 싶게 한다. 갖고 싶은 것은 얼마 안 가 필요한 것이 된다. 그러다가 친구가 가진 것을 보면 사게 된다. 이후 <새로운 산업국가>에서 갤브레이스는 ‘소비자는 왕’이라는 신고전주의 접근법을 거칠게 비판한다. 이 표현은, 미국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 ‘소비자가 주문하고, 생산자는 이를 따른다’는 이론을 설명하면서 처음 썼다.
갤브레이스 생각은 이와 정반대였다. 그는 대기업이 그들의 영향력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시장을 움직이고, 소비자의 사회적 태도를 성형한다”고 생각했다. 따르는 쪽은 거의 항상 소비자다. 소비자는 시장에 처음 나온 상품을 살 때 기업이 정한 가격을 내야 한다. 막강한 영향력 덕에 이런 기업 전략은 실패한 적이 거의 없다. 공급이 결정하고, 수요는 적극적으로 혹은 소극적으로 그 뒤를 따른다.
공급이 수요를 이끄는 세상의 모습은 어떨까? 20세기 몇 안 되는 여성 경제학자인 조앤 로빈슨은 1962년 저서 <경제 철학>에서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사치품 생산이 의료서비스에 투자하는 것보다 인류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하는가? 답은 명확해 보인다.” 답은 명확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회계급 지표
현실에서는 더 비싼 보험료를 내느니 사치품을 사겠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현실은 그런 것이며, 이런 두 가치 사이의 선택으로 사회계층이 결정된다고 (1899년에!) 노르웨이계 미국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말했다. 그는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소비자가 자신의 명성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사치품을 소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앤 로빈슨의 사치품은 더 높은 사회적 체면과 지위를 향한 경주에 발을 들이는 수단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치품으로 내 위에 쌓인 모든 계급 사다리를 단숨에 불태워버리려는 시도는 하나 마나 한 일이다. 조앤 로빈슨은 우아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느 계급이나 바로 위에 있는 계급보다 나아지겠다는 욕구에 따라 그와 경쟁하며 진화한다. (…) 훨씬 위에 있는 계급과는 비교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짜 보석이 조금 반짝인다고 다이아몬드로 봐주는 사람은 없다. 어차피 계급은 소비가 결정한다.
이제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눈으로 소비를 바라보자. 케인스는 소비가 경제판을 이끄느냐 마느냐에 관심 두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소비 규모, 더 크게는 소비나 투자 같은 지출이 완전고용을 실현하거나 완전고용에 가까워지게 경제활동을 이끌 수 있는지에 있었다.

강력한 손
케인스는 대표 저서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6)에서 ‘가계소득이 증가할수록 전체 지출에서 저축이 차지하는 비율이 커진다’는 “기본적인 심리적 법칙”을 제시했다. 이때 저축은 아무도 삶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서 하는 예비적 성격이 강하다고 케인스는 말한다.
소득이 높아지면서 소극적으로 변하는 소비 태도는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통장에 쌓인 돈이 투자나 대출같이 다른 경로로 시장에 풀리지 않으면 총수요가 줄어든다. 소비가 줄어들면 일자리가 줄고, 따라서 소득이 줄고 실업자는 늘어난다.
케인스학파는 이런 악순환이 먼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닌, 1930년대 대공황과 2008년 서브프라임(비우량주택담보대출) 위기 때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 말한다. 그 배경에는 대출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돈줄을 막은 은행이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 또는 지금 같은 보건) 위기에선 정부가 가라앉은 소비를 늘리고 디플레이션(통화수축)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빚내서라도 돈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케인스학파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2012년 저서 <경제위기를 끝내자, 지금!>(End This Depression Now!)에서 생산이 감소하고 실업률이 증가하는 이유를 탐구했다. 그가 제시한 답은 이렇다. “우리(소비자·기업·정부 모두)는 충분히 소비하지 않는다. (…) 빚 있는 사람은 더 소비하고 싶어도 못하고, 돈 빌려주는 사람은 더 소비하지 않으려 한다.” 크루그먼에게 소비는 투자와 마찬가지로 일자리와 경제성장의 열쇠다.
소비를 향한 이런 찬사는 그 빛을 잃었다. 소비가 늘어나다 못해 지나쳐 지구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소비가 생태계와 기후, 천연자원을 압박한다. 케인스가 1928년 발표한 논문 ‘우리 손자들을 위한 경제 전망’에서 해법이 보인다. 케인스는 논문에서 “앞으로 100년 뒤(얼마 안 남았다) 선진국 생활 수준은 오늘날보다 4~8배 높을 것”이라고 했다. 맞다, 프랑스는 전쟁을 겪고도 1인당 생활 수준이 그때보다 6배 좋아졌다.
그리고 덧붙였다. “경제문제(케인스는 이를 ‘생계 싸움’이라고 표현했다)가 해결될 것 (…) 인류가 (…) 그 걱정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다음 “잘사는 기술”을 생각하고, “그 기술이 완벽해질 때까지 갈고닦을 수 있을 것”이다. 케인스의 ‘잘사는 기술’은 지구환경에도 좋은 기술일 테다. 그것을 갈고닦는 법은 모두가 안다. 불평등을 줄이고 적정 노동시간을 보장하는 것이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1년 3월호(제410호)
Un moteur de l’économie et de l’estime de soi
번역 최혜민 위원

드니 클레르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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