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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소비 늘었지만 총량은 여전

기사승인 [132호]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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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기획] 프랑스 탈소비 움직임 ① 허실

프랑스에서 ‘덜 사기, 더 잘 사기’에 대한 높은 관심과 달리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어떤 소비는 절제와 거리가 멀다.

뱅상 그리모 Vincent Grimault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2021년 1월20일 겨울 정기세일이 시작된 첫날 프랑스 파리의 한 쇼핑몰 곳곳에 30~40%의 가격 할인을 알리는 광고가 붙어 있다. REUTERS

이동제한령이 한창이던 2020년 봄, 경제위기를 모르고 지낸 사람들이 있다. 몇몇 농부는 지역 농산물을 찾는 손님이 많이 늘어 이 시기가 나쁘지 않았다. 착한 소비가 늘고 있다는 징표일까. 생활여건관찰연구소(크레독)의 파스칼 에벨 소비·기업부장은 “이전까지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은 현상이 어떤 충격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부터 커지던 환경의식이 이번에 드러난 것이다.” 경제학자이자 사회소비관찰연구소(옵소코) 공동설립자인 필리프 모아티도 “변화를 싫어하는 소수(20%)를 빼고 프랑스 소비자 대부분이 윤리적 소비를 하려 한다”고 말했다. 윤리적 소비? 개념이 방대한 이 말에는 환경이나 건강, 지역경제, 노동환경 등에 좋은 소비라는 뜻이 모두 포함됐다.

유기농, 로컬푸드, 포장재 안 쓰기
몇몇 윤리적 소비 시장이 순풍을 맞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유기농시장이 대표적이다. 2019년 프랑스 유기농시장 매출액은 119억유로(약 16조원)로 가계 식품 지출액의 6.1%였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낮아도 증가폭이 크다. 2010년보다 3배 늘었다. 또 다른 예는 로컬푸드(지역 농산물)다. 로컬푸드 시장의 최근 매출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지만, 프랑스 친환경전환청(ADEME)은 국내 식품 소비의 6~7%가 지역 안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한다.
‘포장재 없는 제품 사기’도 ‘대안 소비’로 떠오른다. 아직 프랑스에선 포장이 안 된 채로 판매되는 식품이 전체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2018~2019년 매출액이 41% 증가해 12억유로에 이를 만큼 비포장 상품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전반적으로 지속가능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채소와 과일을 더 많이 사고, 술과 고기는 덜 산다.
윤리적 소비는 식탁 바깥에서도 일어난다. 새 물건을 고집하지 않고 중고시장을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 경제연구소 제르피에 따르면, 몇 년 전부터 중고시장은 프랑스 가계가 소비하는 속도보다 2배 빠르게 성장했다. 2019년 거래 규모는 70억유로를 기록했다. 경제전망연구소 퓌튀리블의 세실 데조네 연구부장은 이런 추세가 의류업계에서 잘 나타난다고 말했다. 10년 만에 패션업계 가치는 15% 떨어졌다.
‘남이 입던 옷’을 사는 데 거리낌이 없어지는 등 소비자 의식에 변화가 생겼다. 요새 뜨는 소비문화로 공유경제도 있다. 어떤 상품을 모두가 사서 가지고 있기보다 한 사람 것을 여럿이 번갈아 나눠 쓰는 것이다. 옵소코에 따르면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빌리거나 빌려줄 의향이 있다고 말한 프랑스 국민은 2014년 54%에서 2017년 65%로 늘었다.
한편으로 물건을 사지 않는 것도 새로운 소비문화로 떠오르고 있다. 텃밭을 가꾸거나 고장난 물건을 자신의 손으로 고쳐 쓰는 자급자족 경제다. 특히 이번 보건 위기로 그 중요도가 더욱 커졌다. 프랑스 국민의 3분의 1이 이동제한령 기간에 ‘자급자족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옵소코)

저가 선호의 지속
소비문화가 윤리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봐도 좋을까? 슬프게도, 그렇지 않다. 윤리적 소비는 여전히 비주류에 머물러 있다. 유기농시장, 중고시장, 공유경제 등 대안 소비 가운데 어떤 부문도 전체 소비시장에서 10% 이상 차지하지 못한다. 어떤 소비는 여러 시장에 걸쳐 있어(지역 농민이 재배한 유기농 농산물) 각 부문을 더해 종합 비율을 내기도 어렵다.
2018년 프랑스 가계의 최종소비지출액 1조2천억유로(약 1630조원)에서 윤리적 소비 지출액은 몇백억유로에 그쳤다. 필리프 모아티는 말했다. “윤리적 소비가 많이 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전통적 소비’ 방식과 가장 대비되는 소비문화를 언론에서 자주 소개해 그런 줄 안다. 프랑스 상류층이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인다는 소식이 자주 들린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아마존 이용자는 여전히 많다.” 어떤 조사에서도 결론은 변함이 없다. 제품 선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단연 가격이다.
자발적이든 그렇지 않든 프랑스 소비자는 저가 제품 구매를 멈추지 않는다. 하드디스카운트(가격파괴) 업계의 매출은 2018년에도 식품 유통 시장의 11%를 차지했다. 더구나 윤리적 소비가 반드시 ‘윤리적’이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공장식 유기농 제품은 환경에 외려 나쁠 수 있다. 지역 축산농가도 그렇다.
공유경제 역시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과거에 공짜로 이뤄지던 일이 시장에서 상품으로 판매되는 사례가 많다. 길에서 빈 차를 세워 타지 않고 블라블라카(승차공유 플랫폼)를 쓴다거나, 인터백 같은 무료 주택교환 플랫폼 대신 에어비앤비에 집을 내놓는다. 필리프 모아티는 말했다. “소비주의 공급 체제는 소비자의 새 입맛에 맞게 진화한다. 마케팅과 광고를 통해 소비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그것이 필요해지게 만든다. 웬만한 의지로는 공급자가 보내는 신호에 흔들리지 않고 완전히 다르게 소비하기가 쉽지 않다.”

   
▲ 2021년 3월 프랑스 니스의 채소 가게에서 주인이 대파를 묶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몇 년 사이 유기농과 지역 농산물의 소비가 크게 늘었다. REUTERS

탈소비 시대 진입?
소비 방식을 가장 극적으로 바꾸는 해법은 물론 소비하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탈소비다. 프랑스 경제가 소비의 ‘정점’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여러 지표가 말한다. 패션업계처럼 이미 정점을 찍은 뒤 내려가는 부문도 있다. 생활여건관찰연구소에 따르면, 프랑스 육류시장 매출액은 2007~2016년 12%나 줄었다. 사회소비관찰연구소는 화장품 업계와 선물용품 시장도 비슷한 추세를 겪고 있다고 말한다.
전반적인 소비가 하락세에 들어섰음을 여러 거시지표가 알려준다. 첫 번째 지표는 구매력이다. 구매력은 1960~1974년 해마다 5.8%씩 늘었다. 그런데 2007년부터는 증가율이 단 한 번도 연 2%를 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는 (임대료, 공과금 등) 고정지출이다. 주거 비용이 점차 늘어나면서 소비지출이 줄고 있다. 2016년 프랑스 가계가 주거비용으로 쓴 돈은 최종소비지출의 34%를 차지했다. 1960년에는 15%였다. 세 번째는 소비자 나이다. 소비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프랑스 통계청(INSEE)은 “소득이 일정하다고 했을 때 65살을 기점으로 소비가 갑자기 줄어든다. 80~84살은 40~44살이 쓰는 돈의 83%밖에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프랑스가 늙어가는 것이 문제다.
소비 감소세를 좀더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면 공공소비(도로, 건축물 등)도 빼먹지 말아야 한다. 공공소비량은 에너지소비량 같은 간접 지표를 보고 측정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최종 에너지 소비는 최고점을 찍은 2001년에 견줘 5.3% 줄었다. 물론 에너지효율이 높아진 덕이지만, 어쨌든 반가운 소식인 것은 확실하다.
게다가 프랑스 국내 원자재 소비도 2007~2017년 1인당 14톤(t)에서 11.7톤으로 14%나 줄었다. 이것도 원자재 사용량이 많은 건축 부문이 2008년 위기를 맞은 탓이지, 가계가 자발적으로 소비를 줄인 결과는 아니다. 이유야 무엇이든 원자재 소비가 줄면 지구환경에 좋다. 그래서 많은 경제학자가 앞으로 소비 규모(재화와 서비스 구매)는 줄고, 소비 가치(품질)는 높아지길 바란다.

멀쩡한데 새것으로
그러나 소비문화의 전반적인 그림은 암울한 편이다. 소비 성장곡선이 완만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프랑스 통계청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은 1993년과 2012년을 제외하고 50년 넘게 그 전년도보다 소비를 조금씩 더 많이 하고 있다. 오늘날 1인당 연간 소비 규모는 1960년보다 3배 더 많다.”
몇 년 전만 해도 모든 가계에서 없는 것이 없는 ‘재화의 정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재화 소비는 줄고 서비스(여행, 웰빙, 문화 등) 소비가 늘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통계청의 제롬 아카르도는 “새 기술과 기능을 탑재한 제품이 나오면 쓰던 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꾼다”며 “그 대표적 예가 자동차”라고 말했다.
프랑스 가계에선 웬만한 내구재(텔레비전, 세탁기 등) 구비율이 100%에 가깝다. 그런데도 가계가 제조물품을 사는 데 쓰는 돈은 서비스 이용에 내는 돈보다 더 가파르게 늘고 있다. 1974~2009년 전년도 대비 재화 지출 성장률은 2.3%, 서비스는 2%였다. 프랑스 친환경전환청의 2017년 통계를 보면, 소비자가 바꾼 휴대전화의 88%가 작동이 잘되는 멀쩡한 제품이었다. 여러 변화가 있긴 하지만, 소비주의 마약의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한참 멀었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1년 3월호(제410호)
Nos façons de consommer changent-elles vraiment?
번역 최혜민 위원

뱅상 그리모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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