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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사지 말고 경험하세요

기사승인 [138호] 202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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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END] 구독경제 시대

자동차를 사는 대신 정기구독 형태로 이용하는 사업모델이 독일 자동차업계에 나타났다. 넷플릭스나 스포티파이가 영상과 노래를 판매하는 방식을 본뜬 ‘구독경제’ 사업모델이 자동차업계에도 들이닥친 것이다. 자동차업계에 출현한 이 신종 사업모델은 독일 자동차시장을 어떻게 바꿀까.

지몬 하게 Simon Hage
마르틴 헤세 Martin Hesse
<슈피겔> 기자

   
▲ 중국 지리그룹의 자동차 브랜드인 링크앤코(Lynk&Co)가 2021년 봄 최초로 유럽에 진출한 방식은 판매가 아닌 구독 모델이었다. 이 회사는 이미 차량 구독서비스회원 1만7천 명을 확보했다. 베이징에 전시된 링크앤코 자동차 모습. REUTERS

알랭 비세르는 ‘자동차업계 공룡’으로 불린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그는 포드에서 16년간 일했다. 그 뒤 제너럴모터스에서 5년을 더 일했다. 이어 오펠에서 3년 동안 경영을 맡았다. 볼보에서도 같은 기간 책임자로 근무했다. 이 정도 이력이면 공룡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벨기에 태생의 비세르는 57살이던 6년 전 결심한다. 자동차업계가 사라지기 전에 직장을 떠나겠다고. 마치 저 옛날 공룡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이 업계도 비대해진 나머지 현 상황에 적응할 능력을 잃었다고 봤다.

   
▲ 독일에서는 구독서비스용 자동차가 2020년 4만2천 대 팔렸다. 시장의 선두 주자는 쾰른에 있는 플리트풀(Fleetpool)이다. 이 회사의 직원들이 환호하는 모습 플리트풀 누리집

볼보 소유주도 흡족해한 구상
2016년 볼보에서 근무할 때 중국 지리그룹 창업자 리수푸는 “자동차 브랜드를 하나 새로 만들어내라”고 비세르에게 주문했다. 비세르는 “이제 세상에 자동차 브랜드가 더 나올 필요는 없다”고 대답했다. 사실 그의 머릿속에는 새 브랜드 창출이 아닌 다른 차원의 아이디어가 싹트고 있었다. 넷플릭스나 스포티파이가 영상과 노래를 공급하는 방식을 본떠 자동차도 고객에게 정기회원제 서비스를 제공하면 어떨까. 다른 사람이 이 말을 들었다면 비세르에게 제정신이냐고 반문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수성가형 억만장자이자 2010년부터 볼보의 ‘소유주’가 된 리수푸는 비세르의 아이디어에 흡족해했다.
그 뒤 5년간 비세르는 사업모델과 정보통신기술(ICT) 플랫폼 개발에 몰두했다. 나아가 이에 적합한 차종을 꼼꼼히 정비했다. 노력 끝에 중국 지리그룹의 글로벌 전략 브랜드인 링크앤코(Lynk&Co)가 마침내 2021년 봄 최초로 유럽에 진출했다. 링크앤코는 현재 자동차 구독서비스 회원 1만7천 명을 확보해 2021년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다.
다른 자동차회사들은 비세르의 아이디어를 곧바로 모방했다. 탄탄한 기반의 자동차 생산 회사 다임러, 식스트(Sixt)를 비롯한 렌터카 회사와 리스(임대)차 회사, 신생기업들이 비세르와 마찬가지로 구독서비스 모델을 도입해 젊은 고객을 확보하려 한다. 대출까지 받아 수만유로를 내고 산 차를 사용하지 않은 채 차고에 뒀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대상이다.
2020년 독일에서는 구독서비스용 자동차가 4만2천 대 팔렸다. 시장의 선두 주자는 쾰른에 있는 플리트풀(Fleetpool)이다. 이 회사는 라이크2드라이브(Like2drive), 콩카(Conqua)와 이지카스(eazycars) 등의 플랫폼을 운영한다. ‘카센터 자동차 연구소’(Car Center Automotive Research) 소장 페르디난트 두덴회퍼는 2030년까지 구독서비스가 독일 자동차시장의 40%까지 차지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새 아이디어를 소개할 때면 비세르는 두 아들을 등장시켜 이야기한다. 이해하기 쉽도록 하는 데 이 방법이 효과적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누구나 각자 자가용을 보유해야 한다면 내 아들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분명히 두 아들 모두 아주 피곤한 표정을 보일 것이다’라는 식이다.
비세르는 “오늘날 중요한 것은 경험이지 소유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이동성’은 자가용과 동일한 의미였다. 하지만 이제 자동차 세계에 영화, 음악, 자전거 등 여러 제품에서 다뤄지는 것처럼 직접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구독경제’가 들이닥쳤다. 그는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기업은 이동성 서비스 (구독경제) 기업에 기계장치만 납품해주는 처지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링크앤코에서는 고객이 한 달에 500유로(약 68만원)씩 내면 ‘01모델’을 사용할 수 있다. 이 모델은 시각적으로는 ‘볼보 XC40’을 닮은 소형 스포츠실용차(Compact-SUV)이다. 월이용료 500유로에는 연료비만 제외하고 자동차보험부터 세금, 정비까지 모든 비용이 포함돼 있다. 링크앤코 쪽은 이 밖에 9개월마다 새 차로 바꿔준다는 약속도 내걸었다. 비세르는 “이 사업에서 우리가 성공적으로 해내야 할 일은 자가용을 사고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비싼지 고객에게 계산해 보이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구매비와 그 밖의 고정 지출액을 모두 합한 뒤 자동차 사용 개월 수로 나누면 그 액수가 금세 몇백유로에 육박한다. 고객은 3만5천유로(약 4800만원)를 내고 01모델을 살 수도 있다.
차량의 가동률을 높여 지출을 줄이려 한다면, 고객이 다른 고객과 차를 공유하는 방법도 있다. 조건은 해당 고객들이 자체적으로 정한다. 정기구독과 차량공유를 혼합한 방식이다. 다만 이 방식은 월 1250㎞ 운행 제한이 있어 사용자에게 불리하다. 1250㎞ 이상 운행하는 사람은 1㎞당 15센트를 추가로 내야 한다.
독일에서 자동차는 오래전부터 소유자의 신분을 알려주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그런 독일에서 비세르의 자동차 구독서비스가 추종자를 얻은 데는 ‘전기자동차 전환’이라는 최근 추세도 영향을 줬다고 자동차 전문가 얀 필리프 하젠베르크는 진단한다. 하젠베르크는 기업 컨설팅 회사 롤란트베르거(Roland Berger)에서 근무한다.
실제로 요즘 자동차를 사는 사람들은 구매한 차량이 급속히 가치를 잃을 수 있다는 위험을 의식한다. 엔진을 사용하는 차는 머지않아 시장에서 모습을 감출 것이고, 전기차는 전기차대로 맹렬한 속도로 기술이 발전해 그만큼 빨리 시대에 뒤처질 수 있다. 비세르는 “독일은 기술을 가장 잘 아는 고객들이 있어 유럽에서 제일 중요한 자동차시장”이라고 강조한다.
고객이 쉽게 구독서비스에 가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구독자가 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다음 사례에서 보듯이 말이다. 함부르크의 작은 호수 비네날스터 인근에는 오래된 건물이 한 채 있다. 이 건물의 ‘팝업클럽’(Pop Up Club)에는 마치 개인 집의 거실 같은 편안한 분위기가 흐른다. 티셔츠를 입은 젊은 남녀 영업사원들이 파란색 ‘링크 자동차 모델’의 시운전에 초대된 고객들에게 커피와 탄산음료를 따라준다. 이 클럽 바에서 고객들은 시판 예정인 하이브리드-SUV 가입 대기자 목록에 자기 이름을 올릴 수 있다. 독일 함부르크에 이어 베를린과 뮌헨에서도 이런 클럽이 열린다. 하지만 정작 차가 언제 나올지는 사원들도 대답하지 못한다. 고객 처지에선 답답한 일이다.
차종 선택 범위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단출하다. 비세르는 구독경제 모델이 돈이 되도록 하기 위해 “너무하다 싶을 만큼 옵션을 단순화해” 비용을 최소한으로 낮췄다. 그 결과 01모델은 검은색과 파란색 두 버전만 출시됐고 둘 다 하이브리드 엔진을 장착했다. 이유는 “유럽의 충전 인프라가 빈약하기 때문”이라고 비세르는 설명했다. 그는 현재 링크앤코가 전기차에 모든 것을 거는 건 시기상조라고 본다.

   
 

중고차도 정기구독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는데 과연 그렇게만 해서 될까? 라이크2드라이브 같은 신생기업이나 식스트 같은 렌터카 회사들은 여러 회사에서 생산한 자동차들을 자신의 구독 프로그램에 함께 올린다. 임대비용은 월 230~1350유로다. 새 차와 마찬가지로 중고차도 구독할 수 있게 했다. 이 시스템은 구독자가 사용해 중고가 된 자동차를 구독서비스 회사가 헐값에 처분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자동차 전문가 하젠베르크는 “오로지 새 차만 갖고 구독서비스를 하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쉽게 돈을 번다”고 말했다.
비세르도 이런 경쟁 상황을 잘 안다. 그가 생각해낸 모델을 마치 최신 아이디어인 것처럼 포장해 판매하는 경쟁자도 있다. 이들의 서비스 모델에서는 여러 비용이 따로 부과되고, 한번 계약하면 최소 6개월이 묶인다. 이에 비해 비세르가 운영하는 01모델은 한 달 뒤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리수푸는 사업 호흡이 길기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다.
비세르는 “01모델은 마구간의 야생마”라고 말하며 조만간 독일 자동차시장에서 자신의 사업모델이 확고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 Der Spiegel 2021년 제31호
Wildpferd im Stall
번역 장현숙 위원

지몬 하게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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