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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부유는 자본주의 병폐 치료법

기사승인 [139호] 2021.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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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기로에 선 중국 경제- ⑤ 전문가 기고

윤석천 경제평론가

   
▲ 2021년 9월 막대한 부채로 파산 위기에 몰린 중국 부동산개발업체 헝다그룹의 광둥성 선전 본사 빌딩 옆 빈터에서 건축 공사가 한창이다. REUTERS

중국 부동산개발업체 헝다그룹이 위험하다는 소문은 2021년 1분기 말부터 돌기 시작했다. 그때도 중국 부동산개발업체의 몰락이 재앙적 연쇄반응이 되리라고 걱정하는 이들이 있었다. 일견 잠잠한 듯 보이는 지금도 이런 우려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베이징 나비의 날갯짓이 태평양 건너 미국에 허리케인을 불러올 수 있다는 ‘카오스 이론’의 현실화에 대한 근심이다. 중국의 경제적 위상을 생각한다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가 중국 외부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리라고 보진 않는다. 가시적인 충격 대부분은 중국 내부에 국한될 것이다.
헝다 사태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같이 세계 금융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작다. 덩치가 크지만 일개 부동산개발업체의 파산과 거대 금융기관의 그것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금융기관의 부채는 거미줄처럼 다른 금융기관과 연계돼 특정 금융기업이 파산하면 다른 금융기관도 영향받는다. 신용위축은 불가피하며 이는 연쇄반응을 일으켜 실물경제를 파괴한다. 부동산개발업체 파산이 그런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과장에 가깝다.
다만 이번 사태를 면밀히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 중국이 변화하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거대 국가의 변화는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중국의 변화 과정
중국 같은 큰 나라의 변화를 읽어내는 것은 어렵다. 무엇이 바뀌었는지 알아채는 데 몇 년이 걸릴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중국의 지난 몇십 년을 살펴보면서 현재를 보는 것이다.
현대 중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은 1931년 이후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였으며 1949~1959년 국가주석을 지냈다. 1976년 사망할 때까지 실질적으로 중국을 이끌었다. 그는 이념과 행동 모두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다. 그의 집권기 중국에서 자본주의 냄새를 맡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소련이 그랬듯 공산주의는 최소한 경제적 측면에선 성공하지 못했다. 마오쩌둥 치하의 중국은 재난 상황에 가까웠다. 인민 수천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렸다. 공산주의는 비합리적 자본 배분을 만들었고 중국을 피폐하게 했다.
그의 후계자는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소련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집권으로 변화하기 오래전부터 중국은 바뀌기 시작한다. 바로 덩샤오핑 시대다. 1980~1990년대 지도자였던 그로 인해 중국은 소련과 같은 무질서한 붕괴를 피할 수 있었다. 이때 비로소 자본주의 방식의 혁신과 기업활동이 가능했다. 한계는 명확했지만 중국의 변화가 시작된 시기다.
이후 중국 지도자들은 덩샤오핑에게 큰 영향을 받아 그의 정책을 계승, 발전시킨다. 중국은 마침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다. WTO 가입으로 중국은 상전벽해 수준의 성장을 한다. 2000년대 초반 중국의 성장은 경제사에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이는 부분적으로 값싼 인건비에서 출발했다. 2000년대 초부터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찾아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한다. 이른바 농민공은 2억5천만 명에 이르렀다. 정말 거대한 이주였다. 덕분에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할 수 있었다.
문제는 2008년부터 시작된다. 글로벌 대침체의 여파를 중국도 피할 수 없었다. 일자리를 잃은 농민공들은 시골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도시의 달콤함을 맛본 이들의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농민공 문제는 사회질서의 위협 요인이 됐고 공산당은 이를 해결해야 했다. 해법은 간단했다. 인프라와 주택 건설을 통한 성장이었다. 현대적 기반시설과 주택 건설을 통한 삶의 질 제고가 목표였지만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있었다.
시진핑은 2013년 집권했다. 그는 마오쩌둥 휘하에서 성장했고 경력은 공산당 안에서 쌓았다. 공산주의자이자 실용주의자다. 2008년 금융위기를 돌파하려는 정책은 그의 집권 이전에 실행됐다. 수혜자는 그다. 인프라 투자는 거대한 경제 붐을 만들었고 중국뿐 아니라 세계의 회복도 이끌었다. 그의 집권기 경제는 좋았고 무역 흑자는 치솟았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본격화했지만 피해는 거의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전포고한 무역전쟁으로 2016년부터 감소했던 흑자는 2021년 1분기 마침내 과거 정점(2015년 4분기)을 넘어섰다.

시진핑 시대와 헝다
1990년대 이후 중국 관리들은 주택 공급을 빠르게 늘리라는 중앙정부의 압력을 받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민간 개발업자를 끌어들여 30층 높이의 아파트를 짓는 것이었다. 지방정부가 도시개발에 열을 쏟은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토지임대 수익 때문이다. 중국은 1994년 분세제도 개혁을 수행했다.
1980년대의 재정분권화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상해 실행됐지만 분세제도는 재정 배분을 제도화해 협상의 여지를 없앴다. 이 개혁으로 재정 권한이 중앙정부에 집중됐다. 반면 지방정부는 공공·사회보장 서비스 권한을 이양받았다. 이런 제도 변화로 지방정부는 실질적으로 재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지방정부는 토지임대를 통한 수익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주택과 인프라에 대한 과잉투자는 불가피했다.
헝다는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게 아니다. 이런 변화 과정의 산물이었다. 헝다는 중국 인민이 필요한 것을 제공해 성장했으며 정부 목표와 일치했기에 가능했다. 헝다 같은 민간개발사는 온전한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 아니다. 정부 관리들이 의도한 자본주의 결과물이었다. 중앙정부는 인프라 건설과 일자리 확보를 통한 사회질서를 원했고, 지방정부는 세수를 원했다. 주택 건설은 이 둘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프로젝트였다.
한 세대 전 덩샤오핑은 “부자가 되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일단 인민을 부자가 되도록 하라”는 그의 지침은 중국 경제의 족쇄를 풀었고 수많은 갑부를 만들어냈다. 이는 초고속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시진핑 시대는 고도성장의 그림자가 두드러지기 시작한 때라고 해도 좋다. 고도성장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부산물을 낳는다. 공산주의 이념과 대척점에 있는 억만장자들이 생산됐다. 부의 불평등은 심화됐고 자원의 불균형한 배분이 두드러졌다. 특히 과도한 레버리지(부채)를 이용한 과잉투자의 폐해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시진핑은 공산주의자다. 자본주의 부산물은 폐해고 자신에게 이를 해결할 소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골고루 잘살자는 ‘공동부유’가 등장한 배경이다.
서구에선 일반적으로 이득은 사유화, 손실은 사회화된다. 시진핑의 중국은 그 손실을 개인화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동시에 이득 중 더 많은 몫을 사회화하려 한다. 빅테크 기업의 임금 인상, 청년 고용 촉진, 더 많은 기부 등이 거의 강제되고 있다. 이것을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기업이 자사의 실수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건 새로운 자본주의 병폐를 치료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중국에서 기업의 실수가 정부 정책의 실패에서 비롯했다는 점이다. 기업의 성장이 정부 정책의 결과물이었듯 실패 또한 같다. 헝다의 몰락은 정부 정책의 변화 때문이다. 정부가 수십 년간 부추겼던 레버리지를 이용한 투자와 투기를 갑자기 단속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 변화는 갈등과 후유증을 낳기 마련이다. 헝다의 몰락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낡은 체제의 종말
공동부유로 인한 후유증 대부분은 중국 안에 국한될 것이다. 다만 일부는 세계에 얼마든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 증가를 유심히 봐야 한다. 중국은 수십 년 동안 ‘한 자녀 정책’을 고수했다. 그 결과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고령화 속도가 빨라졌다. 여기에 공동부유까지 더해지면 임금 인상 압박이 커질 수 있다. 게다가 에너지 자원에 대한 탐욕은 앞으로도 계속될 여지가 크다. 삶의 질이 향상되면 에너지 소비는 늘 수밖에 없다. 상품시장 가격 상승의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다.
중국은 현재까지 낮은 제조원가를 통해 세계에 디플레이션을 수출해왔다. 그 덕에 세계는 최소한 제조업 생산품에 대해서는 인플레이션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반면 음식, 에너지, 주택 같은 품목은 상당한 인플레이션 현상을 겪었다. 이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중국의 변화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상당 기간 가중할 수 있다.
미국의 국제정세 전문가 조지 프리드먼은 특정 시기에 특정 국가가 글로벌 제조공장의 구실을 하는데 거기엔 사이클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40~50년이 주기다. 1890년대에 미국, 그 뒤를 일본이 이었고, 1980년대 이후 중국이 그 구실을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중국의 ‘세계 공장’ 구실은 끝나간다.
그의 주장이 맞을지 틀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중국은 이제 값싼 인건비와 쉬운 부채에 의존한 성장에서 벗어나려 한다. 시진핑은 공산주의자이고, 중국은 공산주의체제다. 정부나 지도자의 의지는 쉽게 철회되지 않는다. 공동부유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특정 집단, 시장의 이익은 얼마든지 무시될 수 있다. 그 성공 여부와 별개로 중국이 변하면 세계 역시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국의 변화는 그동안 익숙했던 세계질서나 경제구조가 바뀐다는 것을 뜻한다. 언제나 그렇듯 구체제의 종말은 기회이자 위기일 수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11월호
 

윤석천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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