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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재 불참 이스라엘, 푸틴 부자 친구들 도피처로

기사승인 [146호] 202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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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OT] 올리가르히를 위한 약속의 땅

민주주의국가 가운데 드물게 이스라엘은 친푸틴 억만장자들에 대한 경제제재를 지지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부유한 친구들을 위한 안전한 도피처가 될 것인가.

외르크 쉰들러 Jörg Schindler <슈피겔> 기자

   
▲ 2022년 3월14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 벤구리온 국제공항의 VIP 라운지에서 러시아 재벌이자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전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카메라에 찍혔다. REUTERS

예고 없는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왔다. 한 통화가 끝나면 또 다른 통화가 이어졌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헤르츨리야, 네타냐에 아파트 혹은 단독주택을 구한다는 것이다. 500㎡(약 151평) 내지 그 이상의 면적을 구하는데, 돈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고 한다.
시라 오리온은 “약 4주 전에 시작됐다”고 말하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니심알로니 거리에 있는 복층 펜트하우스 사진을 보여준다. 38층과 39층에 있는 지중해가 보이는 집으로 천장이 5m이고, 고급 목재 바닥과 독립형 욕조를 갖추고 있다. 가격은 5500만셰켈, 유로화로는 1500만유로(약 202억원)에 해당한다.
시라 오리온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텔아비브 북동쪽, 자마레트공원의 고급 주거 타워 바로 아래에 있는 카페로 우리를 초대한 이 여성은 여기서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긴 머리에, 집중하는 시간이 짧은 오리온은 지난 20년간 최상위 부동산 중개업자로서 많은 것을 경험했다. 쿠엔틴 타란티노를 비롯해 유명 인사들이 그의 고객이었다. “그래도 지금 일어나는 일은 정말 미친 현상”이란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시작된 뒤 러시아 부호 두 명 중 한 명은 이스라엘로 이사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할 정도다. 대부분 “얼마나 오래 거주할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가구 딸린 집을 구한다.
최근 이스라엘에서 이런 이야기를 점점 더 자주 듣는다. 러시아 부호의 중개인들이 이스라엘의 저택 소유자에게 집을 팔라고 성가시게 조른다고 한다. 해변의 멋진 대지가 갑자기 3천~4천만달러에 팔렸다. 로만 아브라모비치(영국 프리미어리그 소속 첼시 전 구단주)가 이스라엘의 벤구리온공항에서 사진 찍힌 3월 중순보다 훨씬 이전부터,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재벌)들은 지중해의 이 작은 나라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스라엘은 러시아 경제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얼마 안 남은 민주주의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푸틴의 부유한 친구들을 위한 안전한 도피처가 될까 많은 사람이 우려한다.

   
▲ 2016년 6월18일 시리아의 흐메이밈 공군기지에서 목격된 러시아 군용기. REUTERS

몰려드는 올리가르히
이 논란은 이스라엘 정부에 예민한 문제다. 외무부 장관인 야이르 라피드는 “이스라엘이 제재 회피처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곧이어 이스라엘 정부는 서구의 제재 체제를 면밀하게 살펴보는 부처 간 워킹그룹을 가동했다. 하지만 거기서 무슨 논의가 진행되는지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대신 이스라엘로 향하는 러시아 개인 항공기가 유독 많아졌다는 소식은 점점 더 많이 들린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국 국무부 차관도 이미 2022년 3월 중순 (이스라엘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으로서 이런 사태의 전개를 우려하면서 주시하고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눌런드 차관은 이스라엘을 염두에 두고서 “푸틴이 전쟁하기 위해 동원하는 더러운 돈을 위한 마지막 피난처가 될 것인지” 각국이 잘 생각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 비판에 이스라엘은 반박할 말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2천㎞나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으로 이 나라가 정치적 딜레마에 빠졌다는 사실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줄곧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보호국인 미국의 화를 돋우고 싶지 않을뿐더러 우크라이나를 분노하게 하고 싶지도 않다. 전쟁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에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해 약 20만 명에 이르는 유대 후손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쟁을 일으킨 푸틴 대통령의 호의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라피드 외무부 장관은 러시아 제재에 답을 내놓는 중요한 선언을 2월에 한 바 있다. “우리는 러시아와 국경을 공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라피드 장관이 말하려는 바는 이웃 국가인 시리아의 내전 상황이다. 시리아 영공은 러시아군이 통제하고 있다. 레바논에서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를 위해 수송되는 무기를 이스라엘 전투기가 폭격했는데, 푸틴이 이를 묵과했다는 것은 알려진 비밀이다.
이 묵인은 이스라엘 정부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에 따라 전쟁이 시작된 뒤 라피드 장관은 푸틴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수사적으로 비틀어 발언하고 있다. 침략이 시작됐을 때 그는 러시아조차 언급하지 않은 채, “동우크라이나에 가해진 조처”에 모호하게 유감을 표했을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가장 대규모의 유대인 학살이 자행된 장소, 우크라이나의 바비야르가 폭격당했을 때도 라피드 장관은 비슷한 방식으로 모호하게 행동했다.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잔혹한 일이 벌어진 뒤에도 이스라엘은 러시아 제재 동참을 망설이고 있다.

모호한 이스라엘의 태도, 왜?
이로써 많은 러시아인, 최소한 유대의 뿌리를 지닌 이들에게 이스라엘은 갑자기 ‘약속의 땅’이 됐다. 이스라엘의 귀환법에 따르면 최소한 조부모 중 한 명이 유대인이거나 배우자가 유대인인 사람은 모두 입국할 수 있으며 국적을 신청할 수 있다. 이제 상당히 많은 수가 그렇게 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엘리 게르비츠 변호사는 최근 러시아로부터 매일 수백 통의 전자우편과 전화를 받는다. “모두가 SOS 신호를 보내고 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영혼을 구해달라는 의미이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이 저축한 돈을 구해달라는 의미이다.” 자기 생명을 구하고 싶거나, 자기 자산을 구하고 싶은 것이다.
일리야라는 이름으로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게르비츠는 수십 년간 이스라엘에 살면서 러시아 출신 이민자를 돌보는 일을 전문화했다. “다행히 아직 제재 대상에 속하는 올리가르히는 없지만” 백만장자, 억만장자까지 그 앞에서 줄을 서고 있다.
요즘 부자들에게 중요한 이스라엘 법률이 또 하나 있다. 새로 시민이 된 사람은 지난 10년간 외국에서 벌어들인 자산에 대해 세금을 낼 필요도, 이스라엘 외부와의 사업관계를 공개할 필요도 없다는 법률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유대의 뿌리를 지닌 모든 올리가르히, 서구의 많은 곳에서 더는 원하지 않는 이들을 끌어들이는 자석이 될 것인가? 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2014년 푸틴이 크림반도를 병합했을 때, 2018년 미국 재무부가 광범위한 ‘제재 항목’(푸틴 리스트)을 발표했을 때도 이스라엘은 집중조명을 받았다.
당시 이름이 거론된 약 100명의 올리가르히 가운데 최소 18명이 유대인 뿌리를 갖고 있다. 그중 하나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같은 해에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하고, 텔아비브와 헤르츨리야에 여러 부동산을 샀으며, 이스라엘의 스타트업과 유대인 조직에 수만달러를 투자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 아브라모비치는 수백만달러를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추모관인 야드바에 기부했다.
‘푸틴 리스트’에 있는 러시아-이스라엘 올리가르히인 미하일 프리드만, 게르만 한은 최근 몇 년간 엄청난 금액을 홀로코스트 추모관에 기부했다. 또한 프리드만, 한, 표트르 아벤은 푸틴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회당에 수천만달러를 기부했다. 이것이 최근 이스라엘 정부가 서구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기 어려운 이유일 듯하다. 부유한 기부자와 긴밀한 사업관계인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국가이성이 제재에 반대하는 것이다.
게다가 몇몇 올리가르히는 이스라엘 정부의 여러 각료와 최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석유와 알루미늄 재벌인 빅토르 벡셀베르크의 요트 ‘탱고’를 스페인의 마요르카에서 극적으로 압수했는데, 벡셀베르크는 현재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인 베니 간츠가 경영하던 기술기업 ‘5차원’(Fifth Dimension)의 대투자자이다.

   
▲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극적으로 압류한 러시아 재벌 빅토르 벡셀베르크의 슈퍼요트 ‘탱고’를 2022년 4월4일 스페인 경찰이 지키고 있다. REUTERS

푸틴 ‘마피아 정권’의 한 부분일 뿐
이러한 이스라엘의 유보적 태도를 중대한 실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2022년 4월 초 헤르츨리야의 자기 사무실에 앉아 쉴 새 없이 호박씨를 씹고 있다. 그는 푸틴의 올리가르히들이 진심으로 이스라엘을 위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레오니트 네브즐린에 따르면 “그들은 푸틴의 정부가 언젠가 무너질 경우, 단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여기 투자할 뿐”이라는 것이다.
네브즐린도 올리가르히였으나, 그는 지금 ‘박애주의자며 문필가’라는 호칭을 더 좋아한다. 그는 1990년대 보리스 옐친 치하에서 돈을 벌었고, 미하일 호도르콥스키와 함께 석유기업 유코스를 이끌었다. 다행히 호도르콥스키와는 달리, 그는 푸틴에 의해 투옥되는 것을 적기에 피할 수 있었다.
2003년 이스라엘로 이주한 네브즐린은 리버럴한 신문 <하레츠> (Haaretz)의 공동소유자가 됐다. <하레츠>는 몇 주 동안 푸틴의 올리가르히들이 얽혀 관여하는 것을 꼼꼼하게 추적하고 있다. 러시아의 전쟁에 대한 네브즐린의 입장은 그의 가슴 위에 달린 파랑-노랑 리본에서 읽을 수 있다. “러시아는 더 이상 나의 나라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나는 거기서 사느니, 오히려 맞서 투쟁하겠다.”
네브즐린은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시아-이스라엘 올리가르히가 갑자기 유대인 시설에 후하게 기부할지라도 그들은 푸틴 ‘마피아 정권’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네브즐린은 오히려 이스라엘이 올리가르히들에게 제재를 가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그렇지 않으면 러시아의 더러운 돈이 자신이 선택한 고향(이스라엘)에 흘러들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게르비츠 변호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제재를 거부했더라도 이 세상의 부자들이 자신과 그 자산을 이스라엘에 가져와 안전하게 지키는 일도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게르비츠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자금세탁법을 갖고 있다. 이스라엘 은행들은 서구의 제재가 시행된 뒤 훨씬 더 엄격하게 자금 출처를 검토한다. 자칫 은행이 어려움에 처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로만 아브라모비치조차 분명 이 지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게르비츠 사무실은 텔아비브에서 오래되고 가장 고급스러운 지역 네브체데크에 있다. 아브라모비치가 최근 새로 사들인 부동산은 게르비츠 사무실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다. 고급 의류 매장, 예술공예품 가게, 카페, 식당이 혼잡하게 몰린 그곳의 샬롬샤바지 거리는 현재 전체 블록이 흰 벽으로 막혀 있다. 그 뒤에 담벼락 잔해가 있고, 나무막대와 철봉 위엔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벽의 틈새로 약 6m 깊이에 60m 길이의 구멍과 새로 부은 시멘트 기초를 볼 수 있다.

러시아 출신의 새 이웃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된 직후 거대한 기계가 몰려와 땅을 파헤쳤다. 왜 그랬는지 여기 있는 사람은 모두 안다. “아브라모비치의 별장이 될 것”이라고 어떤 주민이 알려준다. 언제 별장이 완성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몇 주 전 공사장 노동자들이 갑자기 철수한 뒤 샬롬샤바지 거리는 조용하다. 소유자가 최근 노동자 월급 지급에 어려움이 있다는 소문이 돈다. 어떤 이는 러시아 출신의 새 이웃이 여기 이사 오는 것이 계획보다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한다.

ⓒ Der Spiegel 2022년 제16호
Gelobtes Land für Oligarchen
번역 최현덕 위원

외르크 쉰들러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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