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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기아 비상사태 경고등

기사승인 [146호] 202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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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우크라이나 전쟁이 부른 식량위기- ① 현황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곡물 수출 시장의 3분의 1을 맡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이곳과 멀리 떨어진 나라에 재앙적인 기아를 가져올 것이다. 러시아 농산물은 경제제재로 수입할 수 없고, 우크라이나에선 곡물창고가 불타고 있다. 러시아군의 폭격이 지나간 농토에 씨앗을 뿌려보지만 수확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공급망 붕괴와 인플레이션에 이어 전세계적인 식량난이 몰려오고 있다. 비극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_편집자

마리안 블라스베르크 Marian Blasberg
옌스 글뤼징 Jens Glüsing 남미 특파원
모니카 볼리거 Monika Bolliger 중동지역 담당기자
야나 드하이비 Jana Dhaybi 게오르크 파리온 Georg Fahrion
베이징 특파원
미추오 마르틴 이와모토 Mitsuo Martin Iwamoto 경제 인턴기자
후세인 모하마드 Hussein Mohammad 프리츠 샤프 Fritz Schaap
남아프리카 특파원
리나 페르슈벨레 Lina Verschwele
<슈피겔> 해외 담당기자

   
▲ 러시아의 공중폭격을 받은 뒤인 2022년 4월5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외곽 야코울리우카에서 한 농부가 트랙터로 밀밭에 비료를 뿌리고 있다. REUTERS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41일째 되는 날, 농산물기업 사장인 알렉스 리시차는 스마트폰 카메라 앞에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자기 회사에 무엇이 더 남았는지 자신도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그는 내일 전쟁 이후 처음으로 밭에 나가 상황이 어떤지 파악하려 한다. 그래야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독일 베를린,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공부한 리시차는 폴란드 바르샤바 증시에 상장한 농산물기업 IMC를 운영하고 있다. 이 기업은 우크라이나 키이우 북동쪽 지역에서 밀과 옥수수를 재배한다.
러시아 침공 이후, 리시차는 안전을 위해 사무실을 폴타바로 이전했다. 우크라이나 중부에 있는 이 도시는 현재 하르키우에서 온 수많은 피란민이 지내는 곳이다. 그는 사무실에서 메신저 서비스인 텔레그램과 와츠앱으로 동료들과 계속 연락했다. 러시아 공격 전에 리시차는 여러 위험한 상황을 대비했다. 안전을 위해 전화번호 목록을 종이에 인쇄하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디지털화된 회사이니 사이버공격에 노출될 확률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직원들은 탱크가 마을을 돌아다닌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때쯤 밭에 거름을 주고 있어야 할 직원은 검문소에 서 있었고, 다른 직원들은 지하실에서 대피할 곳을 찾고 있었다. 체르니히우에서 한 직원은 리시차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포위됐으며 이제는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이틀 뒤 와츠앱에 사진이 올라왔다. 6만8천t(톤)의 옥수수를 저장한 저장고가 미사일에 파괴된 사진이었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농장에서는 소 수백 마리가 병들고 굶어 죽어갔다. 그러고 나서 연구소와 인접 사무실, 3만t의 밀이 쌓여 있던 저장고가 불탔다.

창고 불타고 항구는 막히고
리시차는 침을 삼켰다. “제발 우리 밭의 절반만이라도 경작 가능한 상태이기를 바란다.”
우크라이나의 많은 농부가 리시차와 같은 일을 겪고 있다. 전 국토에서 농가들은 경작물을 잃었다. 들판에는 지뢰나 파괴된 군사장비가 놓였고, 인력이 자원입대해 휴경할 수밖에 없다. 연료가 부족하거나 운송 경로가 막혔거나 항구가 더 이상 열리지 않아서 팔지 못한 몇t의 곡물이 저장고에 남아 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우크라이나는 3월에 500만t의 밀을 수출했을 것이라고 리시차가 전했다. 전쟁 중인 2022년 3월에는 20만t을 수출했을 뿐이다. 리시차는 하나도 수출하지 못했다.
식량 생산과 수출의 붕괴는 우크라이나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농업전문가들은 전세계에 기아 비상사태가 벌어질 것을 두려워한다.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검은 토양에서 자라는 곡물은 세계 식량 시스템에서 큰 역할을 한다. 제재의 결과로 무역이 중단된 러시아와 함께 우크라이나는 전세계 밀 수출에서 거의 30%를 담당한다. 옥수수의 경우도 족히 15%는 된다. 보리의 비중도 비슷하다. 해바라기유는 세계 수출량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두 국가는 전세계에서 소비되는 칼로리의 약 12%를 생산한다.
물류의 세계는 촘촘하게 연결되었기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공급하는 많은 식량이 사라지면 그 충격은 아주 먼 곳까지 도달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뿔’ 지역(아프리카에서 코뿔소 뿔처럼 생긴 지역으로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소말릴란드, 지부티가 속한다)이나 리시차가 대량으로 곡물을 수출하는 중동에서도 문제는 발생할 것이다. 레바논, 이집트, 리비아, 예멘에서는 거의 모든 곡물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그런데 현재 수입 물량이 대부분 도착하지 않고 있다. 조만간 곡물 가격이 폭등하고, 수백만 명이 식량을 살 수 없을 것이다. 밀 가격만 해도 전쟁 시작 이후 40% 상승했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의 데이비드 비어즐리 국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경험한 모든 것을 능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엔세계식량계획은 우크라이나에서 재배한 곡물로 식량이 필요한 사람 125만 명 중 절반을 지원하고 있었다. 비어즐리는 식량 폭동, 불안정, 대량 난민을 경고하면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굶어 죽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음식이 부족한 이들에게 배급하는 식량을 줄이는 것이 현실”이라고 발표했다.

   
▲ 우크라이나 그레베니 마을 근처의 해바라기 농장. 우크라이나는 해바라기유의 주요 생산·수출국이다. REUTERS

영양실조 최대 1300만 명 예상
미국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의 농업전문가 데이비드 라보르데는 “나의 위치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돈을 더 지불해야 하는지, 덜 먹어야 하는지, 굶어야 하는지를 의미한다. 이미 우리는 벼랑 끝에 있다”고 말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곡물 가격이 상승하면 2023년에 영양실조에 걸리는 사람이 800만~1300만 명 정도 증가하리라고 관측한다. 무엇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벌써 두 명 중 한 명이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국제적십자위원회에 따르면, 아직 수면에 떠오르지 않은 비상상황이 재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도움을 청한 나라는 거의 없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볼 수 있는) 끔찍한 사진들도, 거리에 쓰러진 사람들도, 유럽의회에 영상으로 호소하는 아프리카 대통령도 없었다. 기아는 전쟁범죄가 아니다. 기아는 리시차의 곡물저장고를 공격한 수류탄 같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을 천천히 죽인다.
기아는 지금 우리 눈앞에 있다. 레바논 학교에서는 식사 시간을 없앴다. 수단에서는 빵집들이 문을 닫고 있다. 이 나라에 더 이상 밀이 들어오지 않아서다. 이집트는 1980년대 이후 처음으로 보조금을 받지 않는 빵에도 고정가격을 부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일이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소말리아 여성 삭디오 오스만 로블이 말했다. 그녀는 바이도아라는 시 외곽의 난민촌에 살고 있다. 이곳 메마른 땅에는 색색의 천막들이 흩어져 있다.
여기에 온 사람들은 가진 것이 없다. 상수도도 전기도 스마트폰도 없다. 세 자녀의 어머니인 로블은 다른 이웃처럼 몇 년간 비가 오지 않아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내륙에서 얼마 전까지 살았다. 이들은 굶주림 때문에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로블은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한다”고 말했다. 천막촌의 많은 사람처럼 그녀도 거리에서 구걸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녀는 가게들 앞에 서 있다. 몇 주 전보다 빵 가격만 두 배로 오른 것이 아니다. 정말 어려운 상황이라고 로블은 말했다. “며칠째 우리 아이들은 우유를 마시지 못했다. 애들이 마지막으로 먹은 것은 어제저녁 밥 한두 숟갈이 전부다.”

   
▲ 시리아 난민 어린이가 2022년 4월19일 레바논 베카 계곡에 있는 비공식 난민캠프의 텐트에 기대어 서 있다. REUTERS

국민 3분의 1이 굶주리는 소말리아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밀의 90%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하는 소말리아는 이 전쟁으로 심하게 타격을 입은 나라 중 하나다. 3년 연속된 가뭄으로 들판은 쩍쩍 갈라져 있다. 소말리아인 200만 명 이상이 로블처럼 다른 선택이 없다. 식량이 떨어지면, 국제구호기구 캠프를 찾아 난민으로 지낼 수밖에 없다.
소말리아 국민의 3분의 1이 굶주린다고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추정한다. 어린이는 140만 명으로, 2022년에 이들은 더 심한 영양실조에 시달릴 것이다.
추상적인 숫자만으로는 개개인에게 닥친 어려움을 체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기아구호에서 일하는 라파엘 슈나이더 같은 이들은 이 수치에 잠을 못 이룬다. 구호기관들의 식량창고가 서서히 비어감에 따라 많은 지역에서 이미 배급량을 30% 줄여야 했다고 슈나이더는 말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소말리아 같은 국가에서 식량 원조의 상당 부분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현금으로 지급한다. 물가가 오르면 구매력도 줄어든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더 많은 현금을 지급하는 것은 선택지가 되지 못한다. 많은 구호기관은 기부자들이 약속을 지킬지, 아니면 그들의 돈이 우크라이나로 흘러들지 지켜보고 있다.
오늘날 기아의 최전방에 있는 많은 이가 깨달았듯이, 기아에 대항해 싸우는 것은 신문 지면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한 고통의 무게를 다른 고통의 무게와 비교하게 하는 것, 이것이 전쟁의 사악한 측면이다.
소말리아는 작은 발화점에서 생긴 불이 어떻게 큰불로 번지는지 보여주는 한 예일 뿐이다. 에티오피아는 내전이 문제다. 남수단에서는 홍수가 그렇다. 레바논은 2019년부터 시작된 경제위기가 있다. 2020년의 베이루트 항구 폭발이 경제위기를 심화했고, 세계은행은 역사상 유례없을 정도라고 평가했다.
레바논의 통화는 2년 동안 90% 절하됐고, 레바논파운드 가치는 더 떨어지고 있다. 많은 지역의 병원은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디젤 발전기를 돌리고 있다. 레바논 정부는 자국민의 식량을 챙겨야 할 뿐 아니라 50만 명에 달하는 시리아 내전 난민도 챙겨야 한다. 이들은 이제 미국으로 눈을 돌려서 밀을 살 지원금을 요청하고 있다.
몇 주 만에 두 배가 된 빵 가격의 의미가 무엇인지 경험하려면 리비아 트리폴리의 밥알타바나에서 반나절만 보내면 된다. 이 지역은 ‘슬럼가’로 많은 사람이 다층 건물에 밀집해 살고 있다.
이웃인 하나 아마드와 알람 알 모하메드가 난방이 되지 않는 아파트에 함께 앉아 있었다. 라마단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일상의 속도를 줄이고, 낮에는 금식을 한다. 저녁에는 모든 가족이 모여 축제 분위기 속에 함께 식사한다.
하지만 아마드와 모하메드는 자선단체의 구호물자에 의지하고 있다. 매일 저녁 자선단체가 이 구역에 와서 쌀과 약간의 고기와 채소를 나누어 준다.
“그리 많은 양이 아니다”라고 모하메드가 말했다. 그녀의 남편은 건설 일용직으로 2달러 남짓의 일당을 받아 온다. “나는 종종 굶고 잔다. 그래야 아이들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당뇨병 환자인 아마드는 다 먹은 약통이 담긴 봉투를 바닥에 던졌다. 더 이상 약을 살 여력이 없다. 아마드는 사야만 하는 것들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음식이 약보다 우선이다.

ⓒ Der Spiegel 2022년 제16호
Der stille Tod
번역 이상익 위원

마리안 블라스베르크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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