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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감 된 사냥꾼… 전통기업 따라 하기

기사승인 [148호] 20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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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SINESS] 넷플릭스의 정체성 위기

업계의 개척자 넷플릭스는 지난 몇 년간 엔터테인먼트 사업 분야를 선도했지만 지금은 구독자를 쟁취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대응책 콘셉트는 과거 민영방송 시절과 수상쩍을 정도로 비슷하다.

마르쿠스 뵘 Markus Böhm
알렉산더 뎀링 Alexander Demling
올리버 케페 Oliver Kaeve
<슈피겔> 기자

   
▲ <브리저튼> 제작진과 배우들이 넷플릭스 공동 CEO 시어도어 앤서니 서랜도스(왼쪽 둘째)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REUTERS

거대한 퐁파두르(올림머리) 가발을 쓴 여왕이 붉은색 긴 의자에 앉아 매서운 시선으로 대열을 바라본다. 오늘 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중심부에 있는 ‘밀레니엄 빌트모어 호텔’의 무도회장에서 이번 시즌에 가장 뛰어난 데뷔탕트(신인배우)를 ‘최고의 다이아몬드’로 지목해야 한다. 그의 앞에 파스텔색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티아라(작은 왕관)를 쓴 젊은 여성들과, 연미복을 입고 실크모자와 무도화를 착용한 남성들이 모여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댄스파티 같은 분위기다.
이날 밤 행사는 19세기 초 가상의 영국을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Bridgerton) 콘셉트로 진행했다. <브리저튼>은 스트리밍 서비스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이며, 스타일로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과 미국 드라마 <가십걸>(Gossip Girl)의 애정 어린 결합이자, 후프스커트와 코르셋을 입은 틴에이저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시즌1은 신분에 맞는 결혼을 해야 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찾는 대프니 브리저튼의 이야기다.
이 시리즈는 관습이 흔들리고, 누가 누구에 대해 권력을 가졌는지가 빠르게 불분명해지는 세상을 보여준다. 오래된 질서가 열정적인 젊은이들보다 위에 있는가? 아니면 전통보다 새로운 질서가 위인가? 이는 현재 넷플릭스에 던져진 질문이기도 하다.

   
▲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공동 CEO. REUTERS

넷플릭스의 디즈니 따라 하기
‘여왕의 무도회’(Queens-Ball) 행사에서 팬들은 가상 역사드라마 시리즈를 따라 한다. 그들은 여왕 앞에서 궁정 인사를 해보기 위해 입장료 39달러와 그 밖의 추가 비용을 냈다. 열성팬들은 ‘성물’을 얻기 위해 많은 돈을 낼 준비가 돼 있다. 직원들은 이날 저녁 수놓은 조끼를 입고 참가자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앙트레(메인요리) 대신 팬 굿즈를 보여주는 메뉴 카드를 나눠줬다. 꽃무늬 나무 부채는 20달러, ‘브리저튼 1813’이라고 프린트된 후드티는 60달러다. 한때 스트리밍 서비스의 개척자였던 넷플릭스는 현재 이처럼 매우 전통적인 사업 영역을 발견하고 있다. 넷플릭스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불과 반년 사이에 미국 캘리포니아의 기업 넷플릭스 주가는 70% 이상 하락했다. S&P500 기업 주식 중 이렇게 급격한 폭락을 보인 주식은 거의 없다. 2억2천만 구독자를 보유한 넷플릭스는 여전히 세계 1위 스트리밍 서비스이지만, 10년 만에 처음으로 구독을 취소한 사용자 수가 신규 사용자 수를 넘어섰다. 로스가토스에 본사를 둔 넷플릭스는 이번 분기에만 구독자 200만 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이 끝나가면서 사람들이 다시 소파에서 영화관으로 이동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디즈니플러스, HBO맥스 같은 스트리밍 분야의 경쟁업체는 계속 강한 성장세를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넷플릭스 자체에 있다. 사냥꾼이 사냥감이 됐다. 두려운 상대가 농담의 대상이 돼버린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러시아 인형처럼>(Russian Doll)의 주연 배우 너태샤 리온은 “<러시아 인형처럼> 시즌2가 넷플릭스에서 상영 중”이라면서 “(<러시아 인형처럼>에는) 지금 사람들이 꼭 함께하고 싶은 두 가지, 넷플릭스와 러시아가 있다”고 풍자 가득한 어조로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를 홍보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업체가 넷플릭스를 따라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OTT) 업계의 선구자인 넷플릭스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엔터테인먼트를 약속했다. 정해진 편성표에 따라 방영되는 것이 아니라 버튼만 누르면 원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TV. 광고에 구애받지 않는 연출을 보여주는 드라마 시리즈.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나이 든 스튜디오 보스의 직감이 아니라, 전세계 수백만 시청자의 취향을 훨씬 더 잘 감지할 알고리즘에 의한 제어.
넷플릭스는 길을 제시했고, 경쟁업체들은 스트리밍 모델을 모방하기 위해 노력했다. 디즈니,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 같은 기존 업체들은 넷플릭스를 따라잡기 위해 심지어 그들의 가장 가치 있는, 극장 개봉이 예정된 블록버스터까지 자체 플랫폼에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이들 기업은 오랫동안 넷플릭스 뒤만 쫓아야 했다.

   
▲ 넷플릭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여주인공 로빈 라이트. REUTERS

주가 폭락은 정체성 위기의 결과
넷플릭스의 주가 붕괴는 많은 의문을 제기한다. 데이터 분석업체 패럿애널리틱스(Parrot Analytics)의 최고전략책임자인 줄리아 알렉산더는 “넷플릭스가 정체성 위기에 처했다”고 말한다. 넷플릭스는 지금 더 많은 고객을 유지하기 위한 솔루션을 바쁘게 찾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솔루션 중 상당수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광고 포맷, 생방송 프로그램, 그리고 몇 주에 걸쳐 방영되는 시리즈. 결국 미래의 TV는 과거의 TV와 크게 다를 바 없는가?
2022년 4월 넷플릭스가 1분기 실적을 발표할 때 가입자 감소를 경고한 모습은 성공에 익숙한 이 회사가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보여준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 리드 헤이스팅스와 최고경영진이 영상으로 설명회에 참여하는 동안 주가는 초 단위로 하락했다. 결국 이날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은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540억달러(약 70조원)가 감소했다.
향후 가격 인상 여부에 대한 질문에 경영진 중 한 명이 “큰 변화는 없다. 우리는 기존 계획을 고수한다”는 문장으로 답변을 끝내려 했다. 그러자 헤이스팅스가 끼어들어 즉흥적인 발상임이 분명해 보이는 혁명을 선언했다. 앞으로 2년 이내에 넷플릭스는 광고가 포함된 구독할인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이 제도가 2022년 안에 시작될 것이라 밝혀졌다.
이로써 넷플릭스는 오랫동안 지켜온 원칙을 땅에 묻었다. 2020년까지만 해도 헤이스팅스는 이용자 정보를 광고 목적으로 이용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광고가 없는 ‘더 나은, 더 가치 있는 회사’라는 것이었다.
그의 새로운 사업모델은 독일에선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시베이(Civey)가 <슈피겔> 의뢰로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 넷플릭스 가입자 6명 중 1명 정도만이 지금보다 더 저렴한 광고 포함형 넷플릭스로 갈아탈 의향이 있다. 이런 구독 모델에 대한 비구독자의 관심도 마찬가지로 낮다.

   
▲ 2021년 11월20일 타이 방콕의 한 백화점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의상을 입은 소년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에 참여하고 있다. REUTERS

폐기되는 원칙들
넷플릭스가 현재 폐기하는 원칙은 한둘이 아니다. 이 회사는 빈지워칭(Binge-Watching), 즉 몰아보기를 유행시켰다. 이용자는 주말 내내 집의 소파에 앉아 새 시리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이제 넷플릭스는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등 인기 있는 포맷의 새 시즌을 한 번에 공개하지 않고 몇 주 간격으로 출시한다. 디즈니와 워너브러더스가 예전부터 해온 것처럼 새 시리즈가 더 오래 화제에 오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 영화를 구독자에게 공개하기 전에 몇 주 동안 영화관에서 상영할지 영화관 체인과도 다시 논의하고 있다. 즉각적인 충족에 단련된 넷플릭스 이용자는 갑작스레 다시 인내를 배워야 한다.
넷플릭스가 감독과 TV프로그램 총괄책임자에게 제공하던 거액의 제작비도 끝났다. TV부문 대표 벨라 바자리아는 최근 예산이 “적절한 규모로 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영국 해리 왕자 부인) 메건 마클이 제작하기로 했던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포함해 다수의 ‘명망가 프로덕션’을 취소했다.
“우리는 어떤 콘텐츠의 가장 비싼 버전을 제작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성공의 레시피가 아니다. 규율이 조금 더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는 넷플릭스 글로벌TV의 유럽지역 담당 부사장 래리 탄츠는 넷플릭스가 약 8년 전 독일에 진출했을 때 입사했다. 그는 넷플릭스에서 <다크>(Dark) 등의 드라마 시리즈를 제작했다. 넷플릭스는 독일어 콘텐츠를 위한 예산을 2023년까지 두 배로 늘렸고, <1899> 같은 초대형 프로젝트를 발주했다. <1899>는 <다크>의 공동제작자 얀톄 프리제와 바론 보 오다어의 차기작이다. 그러나 탄츠에 따르면 지금은 <1899> 같은 대형 프로젝트 하나마다 영국의 청소년 드라마 시리즈 <하트스토퍼>(Heartstopper)처럼 적당한 예산으로 만들 수 있는 작품이 제작된다.
이런 조처가 투자자들의 우려를 진정시킬 수 있을까. 미국에서는 넷플릭스의 가장 인기 있는 구독 상품의 요금이 이미 경쟁사인 디즈니+, HBO맥스보다 비싸다. 지금까지는 많은 이용자가 계정 공유로 비싼 요금을 나눠 내는 방법으로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곧 이것도 조처할 예정이다. 또 하나의 회사 전략 변경이다. 공식적으로 넷플릭스는 계정 공유 대상을 가족 구성원이나 동거인으로만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동안에는 패스워드 공유에 매우 관대했다. 곧 무료 접속이 제한될 수도 있다.
넷플릭스의 문제는 높은 인플레이션에 직면한 고객들이 어떤 회사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가장 먼저 포기할지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디즈니는 어린이 프로그램과 슈퍼히어로 영화로, 미국 방송채널 HBO는 <왕좌의 게임> <석세션> 같은 고품질 시리즈로 많은 이에게 꼭 봐야 할 서비스로 여겨진다. 반면 넷플릭스의 인상은 거의 희미해졌다. 정치 스릴러 <하우스 오브 카드>와 교도소 시리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처럼 많은 찬사를 받은 시리즈로 넷플릭스가 필수라 여겨지던 시대는 지났다.

   
▲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가토스에 있는 넷플릭스 본사. REUTERS

존재감 잃어가는 콘텐츠들
구독자를 유지하려면 정액제 서비스 업체도 리얼리티쇼나 여러 시즌이 있는 시트콤처럼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고, 이 두 가지는 TV방송의 전문 분야다. 오랫동안 넷플릭스는 TV방송사에서 <사우스 파크>나 <프렌즈> 같은 인기 프로그램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방송사는 자체 플랫폼을 출시한 뒤 그들의 보물을 자사를 위해 간직하는 것을 선호한다.
넷플릭스는 이제 오스카상 후보인 서부영화 <파워 오브 도그>(The Power Of The Dog), 액션 코미디영화 <레드 노티스>(Red Notice), 제빵사들이 햄버거부터 볼링공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모양으로 케이크를 만드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이즈 잇 케이크?>(Is It Cake?) 등으로 빈자리를 메우려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 확장에는 한 가지 단점이 있다. 넷플릭스 누리집은 TV방송 프로그램 안내 사이트처럼 보인다. 투자은행 웨드부시(Wedbush)의 마이클 패처는 “스트리밍의 월마트가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모든 물건이 다 있는 슈퍼마켓이다. 그중에는 쓸모없는 것도 많이 포함됐다.
넷플릭스는 <브리저튼> 같은 보석에서 되도록 많은 수익을 짜내려 노력한다. 이는 예전부터 디즈니의 전략이었다. 미키마우스 그룹은 <스타워즈>와 마블 슈퍼히어로에 대한 (팬들의) 열광을 영화부터 커피잔, 유람선 여행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상업화에 이용하는 (영화콘텐츠 사업의) 달인이다. 넷플릭스는 <브리저튼> 무도회 외에 넷플릭스 드라마 팟캐스트, <기묘한 이야기>의 모노폴리(보드게임) 버전 및 1980년대 아케이드 기계식 픽셀아트형 스마트폰 게임을 제공한다.
넷플릭스 게임 개발부문 책임자인 마이크 베르두는 게임업계를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일렉트로닉 아츠’(Electronic Arts)에서 일했고, 넷플릭스 입사 직전에는 메타(옛 페이스북)의 가상현실 게임을 맡았다. 넷플릭스가 그에게 맡긴 임무는 스마트폰용 게임 개발이다. 퀴즈게임부터 현실적인 그래픽의 슈팅게임까지 대략 50개의 게임을 2022년 말까지 완성해야 한다. 넷플릭스는 게임으로 개발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와 캐릭터를 많이 가지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두 개의 차원(드라마와 게임)에서 존재할 것”이라고 베르두는 말했다. 다음 시즌을 기다리면서 팬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드라마와 캐릭터를 게임에서 계속 볼 수 있다. 넷플릭스는 게임으로 고객을 붙들어두려 한다. 넷플릭스 구독자에게는 게임이 무료로 제공된다. 넷플릭스는 이를 통해 가격 인상을 더 수월하게 관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는 ‘여왕의 무도회’ 같은 행사도 마찬가지다. 호텔에서 숙박하려면 무도회 입장권 가격의 다섯 배를 내야 한다. 이날 밤에는 200명의 팬이 왔다. 사람이 많은 날에는 300명까지 참석한다. 수익 창출 머신이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하다.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컨벤션센터에서 진행했던 ‘스타워즈 셀러브레이션’과는 상당히 다르다. 이 행사에는 유료 관객 10만여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 Der Spiegel 2022년 제22호
In der Identitätskrise
번역 황수경 위원

마르쿠스 뵘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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