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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국외 이전, 중소기업 도산

기사승인 [151호] 20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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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에너지 위기, 벼랑 끝 기업- ② 탈산업화 위협

지몬 보크 Simon Book
지몬 하게 Simon Hage 등
<슈피겔> 기자 7명

   
▲ 독일의 청년 기업인들이 2022년 9월13일 베를린에서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기후부 장관의 가면을 쓰고 가짜 지폐를 태우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독일연방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반대하며 석탄과 원자력 발전 재개를 요구했다. REUTERS

독일연방고용주협회(BDA)는 연례행사인 ‘독일 고용주의 날’에 벌어지는 시위라면 이골이 나 있다.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시위도 부대행사처럼 열린다. 좌파 시위대와 분노한 기후보호 운동가들이 이날 벌이는 시위는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2022년 9월13일 화요일, 여느 시위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던 소규모 시위대에 경찰도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악수로 인사하며 서로 존칭을 쓰는 남녀 시위대 10여 명이 회색 승합차에서 석탄 마대를 끌어내리고는 행진을 시작했다.
베를린 옛 템펠호프 공항 앞에서 시위하는 이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젊은 기업인들’이었다. 젊은 기업인들의 ‘공공의 적’ 로베르트 하베크(녹색당) 경제기후부 장관이 공식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기 직전 젊은 기업인들이 시위 퍼포먼스를 벌인 것이다.
차세대 경영인들은 로베르트 하베크 가면을 쓰고 가짜 50유로 지폐 뭉치를 손에 쥔 채 화로를 둘러쌌다. 이들은 가짜 지폐 뭉치를 화로에 던져넣으면서 “석탄과 원자력이 있어야만 전기요금을 감내할 수 있다”고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기업의 줄도산을 경고하면서 하베크 장관을 향해 “에너지 가격 폭등을 중단하라”고 적힌 펼침막을 흔들었다. 하베크 장관이 태우는 것은 “진짜 석탄”이 아니라 “자신들과 소비자의 돈”이라고 젊은 기업인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전무후무한 국부 손실
독일 고용주의 날에 독일연방고용주협회 라이너 둘거 회장은 잿빛 전망을 제시했다. 가스·전력 가격 급등으로 기업들의 줄도산을 막을 유일한 수단은 국가 지원뿐이라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추락, 국외 이전, 탈산업화 등은 요즘 재계와 기업 총수들이 정치권을 압박하기 위해 애용하는 대표 단어들이다.
독일 고용주의 날에 곡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2022년의 두려움은 예년과 달랐다. 최근 독일 산업협회(BDI) 지크프리트 루스부름 회장은 회원사들이 근원적 문제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업계 설문조사에서 기업의 90%는 에너지·원자재 가격 급등이 자사 생존을 위협하거나 상당한 위험이 된다고 답했다. 기업 5곳 중 1곳은 생산기지 국외 이전을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의 야스민 파히미 대표는 <슈피겔>과 한 인터뷰에서 정부가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독일은 탈산업화할 위험이 있다고 확신했다. 페터 아드리안 독일상공회의소 소장은 가장 비관적인 목소리를 냈다. “경제위기가 도래해 전무후무한 국부 손실이 야기될 것이다. 이는 몇 년간 지속할 것이다.”
공포 시나리오는 더 심각하다. 독일 경제는 침체기로 접어들기 직전이고 구조적 단절 위기에 직면했다. 이로써 독일과 유럽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에 처했다. 독일을 지난 몇 년간 글로벌화의 승자로 만들어줬던 산업생태계 전체가 위험에 빠졌다.
독일 산업계가 혁신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탈바꿈해야 하며, 재생가능한 에너지 확충으로 중국과 여타 권위주의 국가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 화석연료로부터 해방돼야 하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독일 정부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최근 유럽을 산업기지로 혁신하겠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유럽이 향후 반도체와 배터리셀을 자체 생산하면 환경기술은 히트상품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유럽 산업의 근간이 되는 발전소·화학공장·제철소를 가동하고 자동차를 움직일 정도로 풍력·태양열·수력이 충분히 전력을 생산할 때까지 가스는 임시방편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가스 사용은 초기 투자가 대대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민감한 에너지 전환의 가장 취약한 지점이다. 이에 저렴한 에너지라는 성공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 올라프 숄츠 독일연방 총리(가운데)가 2022년 9월15일 ‘고용주의 날’을 맞아 연설하고 있다. 왼쪽은 야스민 파히미 독일노동조합(DGB) 의장, 오른쪽은 라이너 둘거 독일연방고용주협회 회장이다. REUTERS

침체로 가는 독일 경제
독일 경제가 침체의 방향으로 간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관련 뉴스도 하나둘 나온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화장지·제지 제조업체 하클레(Hakle), 신발 제조업체 괴르츠(Görtz), 자동차부품업체 닥터슈나이더(Dr. Schneider)가 파산을 신청했다. 화학·철강·제지 등 에너지집약 업종 기업들이 생산을 줄이거나 아예 중단하고 있다. 대표 사례가 비료 제조업체 SKW피스테리츠다. 킬(Kiel)세계경제연구소 슈테판 코츠 부소장은 “독일은 기대했던 경기회복이 아닌 상당한 침체를 경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독일 기업인들이 현재 던지는 질문은 생존에 직결됐다. 우리는 고가의 에너지 비용을 얼마나 더 견뎌낼 수 있는가? 에너지를 어떻게 절약할 수 있는가? 독일 현지 생산이 수지타산이 맞기는 하나? 아니면 에너지가 저렴한 생산기지를 찾아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의 답은 가스·전력 시장의 심각한 변동성이 얼마나 지속하는지, 가스·전력 가격이 위기 이전 수준으로 떨어질지, 떨어진다면 언제일지 그 시점에 달렸다. 독일이 이번 겨울 한 번 정도는, 어쩌면 1년은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년, 혹은 3년을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독일은 연간 가스 소비량이 940억㎥로 유럽 최대 가스 소비국이다. 이 중 3분의 1은 산업계에서 소비한다. 기업컨설팅업체 롤랜드버거의 에너지 전문가 토르스텐 헨첼만은 “적잖은 기업이 하룻밤 새 가스 공급이 아예 끊기는 위험은 적어도 사라졌다”고 판단한다. “우리는 가스 배급 없이도 가스비상수급계획 3단계에 따라 이번 겨울을 넘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스 가격은 아주 높은 수준에서 요동칠 수 있다. 경제에 더욱 중요한 전력 가격은 가스 가격에 연동돼 있다. 현재 전력 가격은 매 순간 신고가를 갈아치운다. 사상 최고치의 전력 가격을 부담해야 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가?
‘IFO 경제연구소’의 클레멘스 퓌스트 소장은 팬데믹 동안과 유사한 경제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국가 지원으로 독일의 사업모델이 봉착한 현 위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에너지 인프라를 재구축하고,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을 만들며,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체제를 재정립하고 이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체제 재정립에 성공한다면 에너지 비용이 현재 수준 이상을 유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퓌스트 소장은 “탈산업화 위험은 상존하지만 지금 경고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이중 메시지를 동시에 전하는 셈이다.
기업들이 에너지 위기 극복과 경제체제 재정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결론에 도달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 1785년 설립된 독일의 자동차부품회사 키르히호프의 연구원이 양자역학 원리를 기반으로 한 원자분석기 옆에서 사진 찍고 있다. 키르히호프의 아른트 키르히호프 감독이사회 회장은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독일 투자는 더 이상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REUTERS

자동차 인프라 잃을 우려
1785년 설립된 키르히호프그룹은 독일의 주요 자동차부품업체다. 폴크스바겐의 전기자동차 배터리용 알루미늄 케이스와 베엠베(BMW) 모델의 충돌경고 시스템 등을 제작하는 키르히호프그룹의 사업은 번창하고 있다.
키르히호프그룹 등의 기업들에 문제가 생긴다면 자동차업계는 훨씬 더 힘든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 “어느 업체가 독일에서 생산기지를 운영할 여력이 있는지 향후 몇 달간 드러날 것”이라고 가족기업 키르히호프의 아른트 키르히호프(67) 감독이사회 회장은 말한다. 키르히호프에서 전력·가스는 총비용의 3~4%를 차지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뒤 이 비율이 12%로 껑충 뛰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투자는 더 이상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키르히호프 회장은 말했다.
키르히호프는 매출 22억유로(약 3조원)의 글로벌 플레이어로 미국, 멕시코, 중국 등지에서 공장을 운영한다. 국외 생산기지에는 저렴한 에너지가 풍족하게 공급되고 있다. 키르히호프는 생산기지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현재 그렇게 하고 있다. 키르히호프는 독일에서 기존 생산설비만 유지하고 신규 생산설비 구축 계획은 없다. 독일에서 생산 용량 증대는 현재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글로벌 생산기지망을 갖추지 않은 하청업체들의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의 설문조사에서 자동차부품업계의 10%는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32%는 ‘향후 몇 달 동안 재정난이 예상된다’고 답했다. 설문조사에 응한 기업 103곳은 최대 부담으로 ‘전력 요금’을 꼽았다. 이에 따라 기업의 절반 이상이 계획한 투자를 연기하거나 철회하고 있다. 힐데가르트 뮐러 독일자동차산업협회 부회장은 특히 중소기업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1년만 해도 기록적인 수익을 올렸던 폴크스바겐그룹조차 경고의 목소리를 낸다. 한스 디터 푀치 폴크스바겐그룹 감독이사회 회장은 탄탄한 자동차 하청업계 건재가 중요하다고 했다. “유럽은 자동차 하청 인프라를 잃으면 경쟁력을 잃는다.” 공개 발언을 꺼리는 푀치 회장이 이례적으로 강력한 발언을 했다.
에너지 위기에 직면해 차라리 유럽 이외 지역에 투자하라는 투자자들의 빗발치는 요구에 시달리는 기업들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 이미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진 전기 모빌리티 전환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전기자동차 운전자들이 부담할 수 있는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고 푀치 회장은 강조했다.
향후 몇 년간 대대적인 투자를 앞둔 자동차업계는 에너지가 저렴한 생산기지나 재생가능한 에너지가 대규모로 공급되는 생산기지로 이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로 인해 독일 자동차산업에 공동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한두 해 힘든 시기를 보내는 차원이 아닌, 미래의 국부 원천이 걸린 문제다. 미래 국부는 배터리셀 등 에너지집약 기술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폴크스바겐그룹만 해도 유럽에서 배터리 생산에 200억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다. 심지어 글로벌 배터리 선도기업인 중국의 CATL(寧德時代)도 독일 튀링겐주에 기가팩토리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비영리 연구기관 자동차연구센터(Center Automotive Research)의 페르디난트 두덴회퍼 소장은 이런 계획이 “원점에서 재고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이 벌인 에너지 전쟁이 독일 국내에서 “새로운 자동차산업인 전기자동차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Der Spiegel 2022년 제38호
Die Panik der Bosse
번역 김태영 위원

지몬 보크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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