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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제철소도 가동 중단

기사승인 [151호] 20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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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에너지 위기, 벼랑 끝 기업- ① 10배 오른 가스비

독일에서 산업은 줄곧 국부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가스·전기 요금이 큰 폭으로 뛰면서 수익성이 나빠지고 있다. 금리인상과 경기침체까지 겹쳐 자금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들의 도산이 잇따르고 대기업들은 생산기지를 국외로 이전하거나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의 갈림길에서 복병처럼 맞닥뜨린 에너지 가격 폭등에 기업들은 패닉에 빠졌다. 독일은 과연 탈산업화의 위험에 빠져 있는가. _편집자

콜랴 루트치오 Kolja Rudzio
마르크 비트만 Marc Widmann
<차이트> 기자

   
▲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철강회사 아르셀로미탈 공장의 용광로. 지금은 이 용광로의 불이 꺼졌다. 가스 가격 폭등을 감당하지 못해서다. REUTERS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021년 연방하원선거를 불과 몇 주 앞두고 함부르크 항만을 방문해 “나에게 아주 아주 중요하다”는 핵심 프로젝트를 시찰했다. 숄츠 당시 총리 후보는 귀마개와 주황색 헬멧을 쓰고 서서히 먼지가 쌓여가는 가죽신발을 신은 채 세계 최대 규모의 아르셀로미탈(ArcelorMittal) 제철소를 둘러봤다. 우베 브라운 아르셀로미탈 최고경영자(CEO)는 귀마개를 한 숄츠의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자사의 비전을 설명했다. 아르셀로미탈은 수년 이내에 친환경 수소로 거의 탄소제로의 철강을 연간 100만t 생산할 계획이 있었다. 연간 100만t은 세계 최대 수준이다.

탈산업화 위협 본격화
숄츠는 브라질과 캐나다에서 수입한 철광석이 천연가스를 사용해 900℃에서 연소하는 거대한 고로(용광로)를 한자리에 서서 꽤 오랫동안 하염없이 바라봤다. 숄츠는 당시 제철소에 무척 만족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독일 경제를 떠받치는 제조업계의 웅장한 설비, 근면성실한 노동자들, 기후중립 제품 등 숄츠가 머릿속에 그린 독일도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그랬던 용광로에 불이 꺼지고 있다. 숄츠 총리가 감탄했던 높이 50m의 거대한 원통형 파이프 집합체 용광로는 2022년 9월 말 결국 가동을 중단했다.
아르셀로미탈 제철소의 가동 중단 업무를 맡은 직원은 엔지니어 아르네 켈러다. 가동이 중단된 제철소가 실제 가동이 멈췄는지 제어실에서 관리·감독하는 직원은 켈러 한 명에 불과하다. 현재 단축 조업 중인 직원은 530명에 이른다.
이미 연초 이후 아르셀로미탈 제철소는 생산 용량의 5분의 1만 가동 중이다. 가스 가격 폭등으로 독일에서 제철소 운영은 더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우베 브라운 CEO는 “가스 가격은 2021년 대비 무려 10배나 뛰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함부르크 제철소는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아르셀로미탈 제철소는 현재 가스가 저렴한 캐나다에서 해면철을 생산하고 있다. 함부르크 제철소가 언제쯤 수지타산이 맞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우리는 이 정도의 불확실성은 감당할 수 없다. 생산 비용을 예측할 수 없다면 고객과 어떻게 가격을 흥정할 수 있겠나?”
독일의 수많은 기업 역시 52년 역사의 함부르크 제철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많은 기업이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이미 파산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기업도 적지 않다. 하룻밤 만에 몇 배로 뛰어버린 가스와 전기 요금을 부담해야 하는 베이커리와 여타 소상공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철강, 화학, 건설자재, 유리, 제지 등 독일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에너지 집약적 산업부문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천문학적 에너지 비용에 직격탄을 맞은 산업부문과 기업, 소상공인들은 독일 정부가 이른 시일 안에 지원책을 내놓지 않으면 독일이 탈산업화의 위협을 받으리라고 경고한다.
독일 경제의 황금기에도 독일 기업들은 늘 힘들다며 울상이었다. 하지만 과거 경제위기가 단순한 경제의 부침에 따른 것이었다면 지금 위기는 차원이 다르다. 생산과정 초기에 필수적인 저렴한 에너지는 이제 향후 몇 년간은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의 저렴한 가스·전기 가격과는 이제 오랫동안 결별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평생 결별할 수도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비상대책 패키지로 에너지 위기를 타개하려 하며, 독일 정부도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위해 대규모 지원금을 계획 중이다. 하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한 일회성 지원금으로 경제대국 독일 경제를 구할 수 있을까? 독일이 지난 금융위기 때 높이 평가받은 대목은 에너지집약적 철강·화학 산업이 주류 산업이라는 점이었다. 그것이 금융기관과 보험업이 주류 산업인 영국과 달랐다. 이제 독일 경제의 어느 업종이 현 에너지 위기에서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을까?

   
▲ 에너지 가격 폭등은 베이커리 같은 소상공인들에게도 타격을 준다. REUTERS

독일 최대 요소수 업체 가동 멈춰
다름슈타트공과대학 에너지 전문가 크리스토프 바우어 교수는 “독일은 단순히 산업적 슬럼프의 위협을 받는 수준이 아니라, 이미 (슬럼프가) 진행 중”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독일 기업들이 국외 생산기지와 비교해 훨씬 비싼 전력·가스비를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2023년 에너지 수급 가격이 분수령이 될 것이다. 산업계는 하루 단위로 에너지를 매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독일에서 가스 가격은 메가와트시(MWh)당 180~210유로(약 29만원) 수준이다. 미국에서 해당 가격은 21유로에 불과하다. 바우어 교수는 “독일 기업들은 미국에서보다 가스비 10배를 부담해야 하고, 전력 비용의 경우 지역에 따라 약 5배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각종 에너지 분담금으로 에너지 가격은 추가로 30유로가량 올랐다. 여기에 유럽연합의 탄소배출권 비용까지 추가된다.
바우어 교수는 “이 정도 수준의 비용으로 독일에서 생산하는 것은 대체로 더는 경쟁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가스 가격이 미국과 비교해 2배가량 비싼 수준에 그친다면 적잖은 독일 기업이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우어 교수는 “하지만 지금처럼 에너지 가격이 지속해서 높은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기업의 줄도산, 생산 감축과 투자 유출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독일화학산업협회(VCI)의 볼프강 그로세 엔트루프 회장은 요즘 전자우편만 확인해봐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2022년 9월29일 베를린에서 독일화학산업협회 총회를 준비 중이었는데, 화학기업 대표들이 무더기로 불참을 통보했다고 한다. “화학기업 대표들은 ‘지금 내 집의 불부터 꺼야 한다’며 회의 불참을 통보했다.” 엔트루프 회장은 2022년 독일 산업부문 3위 규모의 화학업계 생산량이 최대 9%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대기업들은 독일에서 생산량을 줄이고 에너지가 저렴한 다른 생산기지에서 생산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가격충격을 그나마 상쇄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동부에 있는 중소기업에는 이런 기회가 없다. 평범한 중소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이 정도의 가격 압박을 받는다면 경쟁력을 완전히 잃게 된다.”
독일 중동부 작센안할트주 피스테리츠에 있는 SKW피스테리츠는 대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직원 900여 명의 SKW는 독일 최대 암모니아 및 요소수 제조업체다. 비료 및 요소수, 제약·자동차·섬유·반도체 생산에는 화학제품이 필요하다. 다만 화학제품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원자재가 가스라는 점이 문제다.
최근 가스 가격이 폭등하면서 SKW는 2022년 9월 초 독일 내 생산을 전격 중단했다. SKW의 생산 중단은 독일의 가스 저장량 유지에는 희소식이다. SKW가 연간 소비하는 가스 14테라와트시(TWh, 1TWh는 1조Wh)는 150만에 이르는 2인 가구가 연간 사용할 수 있는 가스양에 맞먹는다. 하지만 SKW와 직원들에게 독일 내 생산 중단은 대참사를 의미한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SKW 대변인은 독일 정부와 생산 재개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다른 에너지집약적 업체들의 상황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유럽철강협회(EUROFER)에 따르면, 유럽연합(EU)에서 알루미늄과 아연 생산 시설의 절반이 현재 가동을 중단했다. 독일 알루미늄 제조업체 트리메트(Trimet)는 직원 2400여 명을 둔 가족기업인데 에센·함부르크·뵈르데에서의 알루미늄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유럽철강협회는 많은 기업이 “이번 겨울에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독일에서 기업들이 떠나거나 망해버려 탈산업화 현상이 도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독일의 한 제조업체에서 노동자가 알루미늄을 용접하고 있다. REUTERS

EU, 횡재세 걷어 기업 지원
전문가들은 독일이 경기침체로 접어들고 있다고 판단한다. 킬(Kiel)세계경제연구소는 애초에 2023년 독일 경제가 3.3%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가, 최근 마이너스 0.7% 성장으로 대폭 하향 수정했다. 또한 실업자가 최대 30만 명 생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른 경제연구소들이 내놓은 경제 전망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행히 경제 전망치에 따르면 독일 경제는 침체의 늪에 깊이 빠지지 않고, 일시적으로 경기가 나빠지는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일선 경제 현장의 분위기와는 다소 괴리가 있다. 실제 전망치마다 경제 악화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예외 없이 따라붙는다. 경제 전망이 에너지 가격의 향후 추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에너지 가격 추이는 예측하기 힘들다. 상황은 훨씬 나빠질 수도 있다. 경기 전망치는 국가경제의 단기 추이를 위주로 한다. 따라서 개별 업종의 장기 전망이 상당히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독일의 전방위적인 탈산업화의 위험까지는 아니더라도, 에너지집약적 업종의 몰락 위험은 충분히 상존한다. 에너지집약적 업종은 단순한 틈새시장 이상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독일연방통계청에 따르면 에너지집약적 업종에 속하는 업체는 약 7천 곳이고 종사자만 100만여 명에 이른다. 에너지집약적 업종의 생산은 2022년 초부터 7월까지 이미 7% 줄었다. 이는 다른 업종의 생산량이 2% 감소한 것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알루미늄과 암모니아 등을 수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입은 업계 종사자들만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다. 엔트루프 회장 등 업계 관계자들은 알루미늄과 암모니아 등을 수입할 경우, 독일 경제가 외부 수급처에 또다시 의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에너지집약적 알루미늄 생산기지가 독일을 떠나 국외로 이전한다면 환경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유럽철강협회에 따르면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기업들은 알루미늄 생산 용량을 대폭 늘렸다. 독일은 이제 중국에서 아연도 수입한다. 중국산 아연은 유럽연합에서 생산된 아연·알루미늄과 비교해 기후를 훼손하는 탄소를 무려 2.5~2.8배 더 배출한다. 중국은 여전히 석탄으로 대부분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생산된 아연·알루미늄을 유럽으로 수입하는 운송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까지 고려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치권의 신속한 지원을 요구한다. 아르셀로미탈 제철소 브라운 CEO는 유럽 차원에서 저렴한 산업용 전력 가격의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2022년 9월14일 기사 마감 이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비상지원 대책을 내놓았다. 에너지 대기업들의 ‘횡재세’도 이에 포함된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횡재세 세수를 에너지 비용 폭등으로 고통받는 일반 가계와 기업에 지급하게 된다.
독일 정부도 에너지 비용 부담이 상당한 기업들을 위한 지원책을 확대할 구상이다. 중소기업들도 지원 대상이다. 숄츠 총리는 9월13일 “독일 정부는 전속력으로 지원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후보 시절 함부르크 제철소를 방문했던 숄츠 총리는 용광로에 불이 꺼지면 이후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 Die Zeit 2022년 제38호
Wenn der Ofen ausgeht
번역 김태영 위원

콜랴 루트치오 economyinsight@hani.co.kr

<저작권자 © 이코노미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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