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중기획] 위기의 실리콘밸리 ① 끝나가는 20년 호황
지난 25년간 실리콘밸리는 세계경제의 선도자였다. 이제 주가 폭락과 대량 해고가 분위기를 흐리고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다. 더는 정말로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고갈되고 혁신과 낙관이 사라지면서 실리콘밸리는 사상 최초로 존재 위기를 맞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다시 세계경제의 엔진이 될 수 있을까. _편집자
알렉산더 뎀링 Alexander Demling <슈피겔> 기자
추락은 이렇게 빠를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샘 뱅크먼프리드, 일명 SBF는 실리콘밸리의 천재 소년이자 지성의 총아였다. 조 바이든 선거캠프에 수백만달러를 기부하고 빌 클린턴, 토니 블레어 같은 패널과 함께하는 무대에 반바지를 입고 나타나는 정치적 파워 브로커였다.
그 뒤 SBF의 가상자산거래소 에프티엑스(FTX)가 붕괴했다. 겉보기에는 호감형이던 그가 고객 돈을 헛되이 날려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FTX가 파산하고 불과 몇 주 뒤 경찰은 그가 선택한 고향인 바하마에서 북슬북슬한 머리를 한 이 30살 남성을 체포했다. 미국 검찰은 그를 사기 혐의로 고발했지만 SBF는 ‘무죄’를 주장한다. 2022년 11월 어느 화요일 밤 9시께, SBF가 모든 것을 쏟아냈을 때와는 다른 어투다.
당시 그는 친구라고 생각한 여성 기자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그의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항상 스캔들 많은 코인 산업 분야의 규제를 요구하는 업계의 극소수 중 한 명이던 그는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Vox)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규제 당국, 엿먹어라”라고 써서 보냈다. 규제 요구는 홍보 전략이었을 뿐이라고 여기자에게 밝혔다. 그리고 왜 그가 고객 돈을 개인 헤지펀드로 옮겨 유용했느냐고? “절대로 의도한 것은 아니다. 살다보면 때때로 그런 일이 생긴다”고 그는 대답했다. 살다보면 그런 일이 생긴다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SBF의 가상자산거래소는 320억달러의 가치가 있었지만 지금은 파산했다. 회사의 대차대조표는 폭탄을 맞은 것 같다. 이에 대해 SBF는 “내가 많은 일을 다르게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빈약한 후회의 말밖에 생각해내지 못했다.
▲ 파산한 가상자산거래소 에프티엑스(FTX) 창립자 샘 뱅크먼프리드가 2023년 1월3일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서 재판을 마친 뒤 떠나고 있다. FTX 파산 사건은 실리콘밸리 시스템의 약점을 드러냈다. REUTERS |
기후위기·팬데믹 무대책
SBF에게 투자한 이들은 거의 창업자 본인만큼이나 스스로에게 속아넘어간 것 같다. 실리콘밸리에서 평판 좋은 벤처캐피털 중 하나인 세쿼이아캐피털(Sequoia Capital)은 FTX에 2억1천만달러 이상을 투자했는데 이 때문에 명성을 많이 잃었다. 지금은 세쿼이아 누리집에서 삭제된 SBF의 인물 프로필에서 글쓴이는 차세대 거물이 수백만달러 규모의 차기 투자를 위한 협상 중에 컴퓨터게임 <리그오브레전드>(League of Legends)를 하는데도 어떻게 투자자들이 깊이 감동하며 회의를 마쳤는지 묘사했다. 최근까지 세쿼이아의 수장이던 더그 레온은 FTX가 파산한 뒤 “앞으로 3~6개월 동안 우리는 꿈을 조금 덜 꾸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파멸은 산업재해가 아니다. 이 사건은 실리콘밸리 시스템의 약점을 드러냈다. SBF는 현명하다고 여겨지는 늙은 투자자들을 꿈꾸게 하는 그런 종류의 창업자였다. 편안한 옷차림으로 아무 겁 없이 큰일에 도전하는 젊은 수학광, 소년 천재이자 차고 창업자 스티브 잡스, 앳된 얼굴의 하버드대학 중퇴자 마크 저커버그 같은 실리콘밸리의 원형이었다.
이미지에 알맞게도 SBF는 스탠퍼드에서 성장했다. 그의 부모는 팰로앨토에 있는 스탠퍼드대학의 인기 있는 법학 교수였다. 수세대에 걸쳐 실리콘밸리를 이끄는 엘리트를 길러낸 이 유명 대학은 대부분의 유명 벤처캐피털이 본사를 두고 있는 캠퍼스 위 언덕의 도로, 샌드힐로드의 교두보 구실을 한다. 그래서 FTX 파산은 현재 실리콘밸리의 불안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샌프란시스코와 새너제이 사이의 계곡, 즉 실리콘밸리는 지금 메타·아마존·트위터에서 일어나는 주가 하락, 도산, 대량 해고를 이미 여러 번 경험하고 극복했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초로 존재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좋은 아이디어가 고갈되는 것이다. 한때 글로벌 기업을 양산했던 지역의 광채가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어느 때보다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인류는 힘든 도전에 직면했다. 실리콘밸리 엘리트의 자금, 발명가 정신 그리고 낙관주의가 이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베이에어리어(Bay Area·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은 기후보호나 신에너지와 관련해 제공할 것이 거의 없다. 그리고 코로나19 대유행에 맞서 싸운 지역은 팰로앨토가 아니라 (바이오엔테크가 있는) 독일 마인츠의 노이슈타트였다.
▲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애플 본사 항공사진. 이제 애플은 혁신의 상징이었던 과거의 애플이 아니다. REUTERS |
누구의 삶도 바꾸지 못한 기술
하이테크 산업은 한 시대의 끝자락에 와 있다. 중앙은행의 값싼 자금, 미친 듯한 성장률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거침없는 비전을 바탕으로 지난 20년간 호황을 누렸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알파벳·테슬라·메타, 이 6개 기업의 주식시장 가치가 일시적으로 1조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스타트업이 끊임없이 생겨난 덕분에 실리콘밸리는 처음엔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다음에는 인터넷, 마지막으로 스마트폰까지 주요 기술의 트렌드를 지배했다.
자율주행차, 에어택시, 가상세계, 휴머노이드로봇, 영원한 생명 등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이 감히 시도하지 못한 것은 없었다. 어떤 산업도 기술혁신을 피해가지 못했고, 샌드힐로드의 기술 대기업과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아무리 괴상해 보이는 아이디어라도 수십억달러를 쏟아붓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벤처캐피털 앤드리슨호로비츠(Andreessen Horowitz)의 설립자 마크 앤드리슨은 이미 2011년에 프로그래밍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자들의 야망을 명확하고 공격적인 공식에 담아냈다. “소프트웨어가 세계를 먹어치우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소프트웨어가 오히려 아무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정크푸드를 너무 많이 먹어치운 것처럼 보인다. 실리콘밸리 거물들은 실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그들이 만들어낸) 암호화와 메타버스 환상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모든 과대광고에는 사기꾼과 몰락한 영웅이 있다.
암호화폐 열광의 진정한 비극은 SBF와 같은 헛된 환상을 만들어내는 자를 정상에 오르게 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 기술이 소수의 마니아와 투기꾼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삶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전 기술 붐 시기에는 달랐다. 새로운 기술은 항상 얼리어답터에게서 시작해 대중에게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페이스북은 첫날부터 쓸모 있었다. 처음에는 소수의 하버드대학 학생이, 나중에는 인류의 절반이 이 플랫폼을 유용하게 썼다. 비트코인은 2022년 출시 15주년을 맞이하지만, 미친 가격 급등과 폭락을 제외하면 막대한 이산화탄소(CO₂)만 배출했을 뿐이다.
실리콘밸리 퇴보의 상징은 한때 실리콘밸리의 슈퍼스타이던 일론 머스크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머스크는 기존 산업을 차례로 뒤집어놓으며 자신의 사명을 거창한 말로 포장하는 방법을 아는 모범적인 기업가였다. 테슬라는 단순히 전기자동차를 판매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하고, 스페이스엑스(SpaceX)는 인류를 “다행성 종족”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머스크의 거창한 계획은 구세주 같은 키치(싸구려 감성)로 가득 차 있었지만, 남아프리카 태생의 이 기업가는 항상 엄청난 위험을 감수했고 결국엔 성공했다. 머스크가 2008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금을 마지막 로켓 발사에 투입한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졌다. 테슬라가 모델3 양산 실패로 파산할 뻔했을 때 공장에서 며칠 잠잤던 일화도 있다.
머스크는 이제 더는 임대료도 내지 않는 (본인 소유의) 텅 빈 트위터 본사에서 잠을 잔다. 그는 수천 명을 해고하고, 어설픈 근거로 언론인을 플랫폼에서 쫓아냈으며, 우익 극단주의 온라인 폭도를 선동해 자신을 비판한 유대계 전 매니저를 공격했다. 머스크는 자신의 정치적 일탈을 “문명의 미래를 위한” 사심 없는 행동이라고 미화했다. 그의 선언이 항상 이렇게 공허했는지 의심이 생긴다. 오랫동안 머스크는 실리콘밸리 이미지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사악하게 성공한 자본주의자임에도 겉으로는 선량해 보였다.
▲ 2012년 2월26일 캘리포니아 할리우드에서 열린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스티브 잡스의 사망을 추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REUTERS |
▲ 이제 실리콘밸리에는 잡스도, 래리 페이지도, 세르게이 브린도 없다.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전 지구적 재앙에 맞서 싸운 것은 실리콘밸리의 테크기업들이 아니라 독일 마인츠에 있는 바이오엔테크였다. REUTERS |
엑손모빌 기업가치 테슬라 앞서
“Don’t Be Evil”(사악해지지 말자)은 구글의 모토다. 이 회사의 로고는 2007년 1월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 무대에서 스티브 잡스가 공중으로 들어 올린 아이폰의 아이콘만큼이나 익살스럽고 다채색이다. 애플 창업자는 사업감각과 반문화, 추진력과 캘리포니아 특유의 냉정함이 어우러진,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멜란지(Melange·혼합형)를 구현했다. 아이비엠(IBM)이 대형 컴퓨터로 전세계 컴퓨터 사업을 장악한 1970년대, 21살 스티브 잡스는 ‘홈브루 컴퓨터 동호회’에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었다. 잡스는 그의 영원한 숙적이던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에 대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가끔 엘에스디(LSD·환각제의 일종)를 복용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잡스는 자신의 기계를 “마음의 자전거”라 불렀고 그 유명한 1984년 슈퍼볼 광고에서 애플을 회색빛 거인 아이비엠에 대항하는 컬러풀한 언더도그(약자)로 홍보했다. 곧 애플의 화려한 맥(Mac)뿐만 아니라 그 창조자(스티브 잡스)도 스타일 아이콘이 됐다. 잡스의 검은색 목티는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부터 ‘테라노스 사기꾼’인 엘리자베스 홈스, 축출된 와이어카드 최고경영자 마커스 브라운에 이르기까지 그를 닮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이 모방했다. 최근 한 경매업체에서 애플 창업자의 낡은 버켄스탁(샌들)이 약 22만달러(약 2억8천만원)에 낙찰됐다.
옷 문제는 경제적 패권과 함께 실리콘밸리가 달성한 문화적 헤게모니를 상징한다. 시대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닥스(DAX·독일 대표 주가지수) 상장 기업의 경영자라면 누구나 옷장에서 후드티와 흰색 운동화를 꺼내 착용하고 넥타이는 넣어둔다. 구세계의 모든 기업은 제2의 노키아가 되지 않기 위해 코치들로부터 민첩성을 훈련받는다.
테이블 축구 게임기와 간식 냉장고가 있고, 직원들이 회사 로고 색상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창밖으로 산이 바라다보이는 다채롭고 여유로운 구글 캠퍼스의 분위기를 모든 현대적인 사무실이 모방하고 있다.
반면 SBF의 너절한 옷차림은 더는 모방자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암호화폐 붕괴, 트위터 사태, 주가 폭락이라는 복합적 위기는 실리콘밸리의 명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이곳에는 더 이상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기술 전도사가 없다. 잡스는 죽은 지 오래다. 구글의 창립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대중의 시선에서 거의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업계의 마지막 남은 거물인 머스크는 현재 자신의 재산보다 더 빠르게 이미지를 깎아먹고 있다. 최근 석유 다국적기업인 엑손모빌의 가치가 다시 테슬라보다 더 높아졌다.
ⓒ Der Spiegel 2023년 제3호
Das Tal der Ideenlosen
번역 황수경 위원
알렉산더 뎀링 economyinsigh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