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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 죽은 동물 모피라지만 어디서 왔는지 회사도 몰라

기사승인 [157호] 202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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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EEN] 알파카는 자연사했을까- ① 보온 털 덮개의 커지는 의혹

 
“수놈, 어린 알파카였네요.” 알파카 사육자가 내 보온 물주머니 덮개의 털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여기 쓰인 알파카는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라면서.

카린 체발로스 베탄쿠어 Karin Ceballos Betancur
<차이트> 기자
 

   
▲ 페루 안데스산맥의 알파카들. 낙타과에 속하고 무리지어 사는 것을 좋아한다. REUTERS

그 물주머니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 자랑스러운 마음은 없었다. 대신 ‘아 참 부드럽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보온 물주머니는 알파카 모피로 만든 덮개에 싸여 있었으니 말이다. 2019년 형부가 언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게 바로 이 모델이었다. 당시 나는 그게 너무 부러웠다. 하지만 몇 년을 기다려도 동생인 내가 그 주머니를 물려받을 가망이 없어 보이자 마침내 직접 인터넷에서 같은 제품을 주문했다.
물주머니 크기는 폭 26㎝에 길이 34㎝인데 바깥쪽은 전부 털로 덮였다. 바로 그 모피, 폭신폭신하고 하얀 알파카 모피야말로 이 상품의 최고 매력이다. 구름을 손으로 잡는다면 이런 부드러움이 아닐까 싶다. 아, 여기서 하나 고백해야겠다.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그 덮개는 거기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을 그때는 하지 않았다.
평소 나는 아주 의식 있는 소비자라 자부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달걀을 살 때도 수정을 끝낸 수컷을 분쇄기에 넣지 않는다고 장담하는 양계업자에게 간다. 인쇄할 때 반드시 종이 양면을 쓰고, 대중교통수단으로 이동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가죽점퍼도 있고 주로 유기농 생산물을 먹지만 소량이나마 어쨌든 육식도 한다. 따라서 진짜 동물 모피로 만든 보온 물주머니 덮개를 살 때 스테이크 먹을 때 이상의 심적 부담은 갖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보면 이 동물은 밤에 잘 때 내 몸을 덥혀주는 반려동물이나 마찬가지니까. 이미 생명이 없어진 모피니 언젠가 죽는 일도 없다며 나 자신에게 말하기까지 했다.
 

   
▲ 미국 콜로라도주 웨스트클리프의 한 농장에서 알파카의 털을 깎고 있다. 알파카 털은 부드러운 것으로 유명하다. REUTERS

구매할 땐 심적 부담 없어
주문한 제품의 포장을 열었을 때 보온 물주머니 입구 쪽에 광택 나는 작은 쪽지가 대롱대롱 달린 게 보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얼마 전 창업한 제조회사(WEICH Couture Alpaca)의 상품설명서인데 “페루에서 키운 알파카 모피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 판매한다”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졌다. “제품 원료가 된 동물이 자연에서 자유롭게 살았고 이 제품의 원료가 되기 위해 해를 당한 일이 없다는 점에 우리는 나름의 확신을 갖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일까? 가죽이 벗겨지고 털이 깎여 보온 물주머니 덮개가 된 동물인데 피해를 당한 적이 없다고? 그게 가능할까?
고객서비스부에 전자우편을 보냈다. 내 생각에는 이 물주머니 덮개를 생산하기 위해 안데스산맥 어딘가에서 알파카 한 마리가 자연사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텐데? 그러자 바로 답장 전자우편이 왔다. “고객님은 우리 회사의 웹사이트에 있는 상품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셨습니다”라고 서두를 뗀 직원은 “본사는 바로 그렇게 자연사한 알파카들의 모피만을 제품 원료로 사용합니다”라고 썼다.
이후 며칠 나는 편안하게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사실 소비자로서 우리는 그런 말을 듣기 좋아하지 않는가. ‘모든 생산공정이 올바르게 진행됐다’ ‘누구도 이로 인해 고통당하거나 무엇을 빼앗기지 않았다’ 등의 이야기 말이다. 더구나 이 경우엔 자연적으로 생명이 다한 동물의 몸을 처리한 것뿐이라고 하지 않나. 컨설팅 전문회사 매킨지(McKinsey)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 소비자 중 약 4분의 3은 “제품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면서 상품을 산다”고 한다. 독일 전역에 100개 넘는 다양한 환경 라벨과 유기농 라벨이 생겨난 것도 바로 이런 흐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환경 파괴를 눈으로 뻔히 보면서 계속 쇼핑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 알파카 모피 전문 제품 스타트업 ‘바이흐 코우투레 알파카’(WEICH Couture Alpaca)가 2020년 12월 독일 뮌헨에 문을 열었다. 바이흐 코우투레 알파카 누리집

상품안내서는 정확할까
더군다나 알파카에게 피해를 준다? 누구도 그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객관적으로 판단해도 알파카는 아주아주 귀여운 동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영국 남서부의 글로스터셔주 출신 도축업자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그는 영국 최초의 알파카 도축 자격증 소지자이지만 정작 일감이 들어온 적은 거의 없다고 했다. “모두 알파카가 너무 귀여워 도저히 죽일 수 없다고 해요.”
“자연사한 알파카만 골라 모피를 사용합니다.” 상품안내서에 쓰인 그 문장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내 보온 물주머니 덮개로 쓰인 그 알파카는 몇 살에 죽었을까? 무슨 이유로 죽었을까? 물론 나는 제조업자가 나에게 장담했던 그 말을 믿고 싶었다. 폭신폭신한 덮개는 자연에서 행복하게 장수를 누린 알파카가 죽으면서 남긴 모피라고 말이다. 불현듯 ‘그렇게 얻어진 모피치고는 이 보온 물주머니 덮개가 너무 보드랍지 않은가’ 하고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이번에는 <차이트> 편집인 신분으로 내 보온 물주머니를 생산한 스타트업 회사에 문의했다. 그 회사 제품에 언론인으로서의 관심을 표명하면서 말이다. 그 회사 사장이 친히 답을 보냈다. 야니크 바이히(29)라는 이름의 그를,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만나 인터뷰하기로 했다. 그의 매장은 고급 가게들이 즐비한 프랑크푸르트 괴테 거리의 한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약속 장소는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건물 바깥에서 커피를 마시는 동안, 말문을 트기 위해 바이히는 자기 이야기를 먼저 했다. 교환학생으로 페루에 갔을 때 생전 처음 알파카 모피를 만져본 느낌이 너무나도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대학에서 경영학 공부를 마친 뒤 같은 과 학생들과 창업 계획을 세웠고, 마침내 독일의 알파카 전문 고급 판매 라인을 정착시켰다.
여기서 그가 생산하는 제품들의 가격이 그리 싸지 않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게 좋을 듯하다. 홍보 기간이라 할인된 가격이었는데도 나는 보온 물주머니 덮개를 149유로(약 21만원)에 샀다. 그의 가게에서 파는 알파카 양탄자며 침대 덮개 같은 상품은 몇천유로에 이른다. 회사 발표에 따르면 이 상품들은 독일 전역 100개가 넘는 매장에서 판매된다. 바이히는 2022년 한 해 동안 페루에 알파카 약 1만3천 마리의 모피 가공 처리를 주문했다고 귀띔했다.
1만3천 마리라고! 그 많은 알파카가 전부 자연사했다고? 바이히는 어떻게 그것을 자신할 수 있을까?
인터뷰하며 금세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바이히는 자사 제품의 원료인 알파카 모피가 어디서 나오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의 회사와 협업하는 페루의 제조업체는 페루 내 시장에서 알파카 모피를 구매한 중간상인에게서 재료를 받는다고 바이히가 설명했다. “여하튼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면서 그는 자기 이론을 설파해갔다. 페루에서 농부가 알파카 모피를 팔아봤자 한 번 털을 깎아 받는 알파카 털 가격보다 적은 금액을 손에 쥔다. 따라서 알파카의 평균수명을 약 20년으로 치고 계산할 때 모피를 얻기 위해 알파카를 죽인다는 건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는다고 그는 주장했다. 알파카를 사육하는 농부들도 경영학적 계산을 근거로 한 그의 말에 수긍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솔직하게 하는 말”이라면서 이 문제를 나처럼 시시콜콜 파고드는 고객은 처음이란 말도 덧붙였다.
나는 의심의 고삐를 늦추지 않은 채 계속 질문했다. 이건 마치 상인들이 상아를 팔면서 이 코끼리는 심장마비로 죽었을 거라고 가정해서 말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유감스럽게도 나는 알파카에 관해 잘 모른다. 내가 아는 건 오로지 페루는 세계에서 알파카가 가장 많이 살고 그 수는 대략 350만 마리라는 것뿐이다. 바이히는 “맞다”라고 내 말에 동의하면서 안데스산맥의 기후가 혹독하게 춥기 때문에 알파카들이 죽는 일이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 알파카 모피 전문 제품 스타트업 ‘바이흐 코우투레 알파카’가 파는 보온 물주머니 덮개.

알파카, 쉽게 죽지 않아
바이히는 덧붙여 말했다. “물론 극히 일부지만 식용을 위해 도축하는 경우도 있다. 그 사실을 묵과할 생각은 없다. 모피는 그저 부산물인 셈이다.”
“그런 경우는 자연사가 전혀 아니지 않나?”
“우리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모피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알파카를 도축하는 일은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알파카는 십중팔구 자연사로 죽었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합의했다.
며칠 뒤, 나는 프리츠위르겐 히이케에게 전화로 보온 물주머니에 관해 이야기했다. 독일 알파카사육연맹 회장인 그의 반응은 뜨악했다. 그는 알파카가 그렇게 간단히 죽지 않는다며 말을 이어갔다. “혹 먹이를 구하지 못하거나 퓨마에게 잡혀 몸이 찢기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 모피도 어차피 쓸 수 없게 된다.” 다만 알파카 고기는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적다는 이유로 찾는 사람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인기가 있다고 한다. 이쯤 되자 내가 선택할 유일한 길은 그를 만나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히이케가 사는 에르츠산맥(독일 작센주 산지로, 체코와 국경을 접한다)을 향해 길을 떠났다.
목초지를 지나 암컷 알파카가 있는 우리까지 걸어 올라가는 길에 눈이 발목까지 찼다. 히이케는 자신이 독일 통일 전에 경찰의 증거 보전 부서에서 형사로 근무했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사람보다는 동물이 더 좋아지더라는 것이었다. 정원으로 가까이 갔을 때 그는 나에게 전기가 흐르고 있어 위험한 도선들을 가리키며 머리를 움츠려 피할 수 있게 해줬다. 내가 알파카 모피로 된 물주머니 덮개를 산 것을 더는 나쁘게 여기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히이케가 알파카 우리의 문을 연 순간, 어마어마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서부영화의 어느 술집에 막 들어선 듯한 느낌이었다. 재미있는 머리 모양과 입 한쪽에 시가 대신 빨대를 물고 있는 듯한 상냥한 표정의 존재들이 가득 자리잡고 있었다. 알파카 약 60마리가 낮게 숨소리를 내며 수줍은 듯 서로 조금씩 밀쳤다. 암컷 한 마리가 용기 내어 앞으로 나오더니 몰랑몰랑한 코를 내 머리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진짜 알파카를 팔에 안은 느낌이 어떤지 체험하도록 히이케가 알파카 한 마리를 내게 끌어다 줬다. 알파카의 목이 따뜻했다. 부드럽고 건초 냄새가 났다. “얘들은 침도 흘리나요?”라고 묻자 “흘릴 수도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아직 소화되지 않은 채 위에 남아 있던 액체로, 알파카는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의 눈을 향해 이 침을 뿜는다고 했다. 알파카가 세상에 대항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로는 뒷발로 차는 것 외에 이것이 유일하다고 했다. 그들의 모피로 보온 물주머니 덮개를 만들어내는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라틴어로 ‘비쿠냐 파코스’(Vicugna pacos)라고 하는 알파카는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다. 낙타과에 속하고 무리지어 사는 것을 좋아한다. 암컷의 임신기간은 350일 정도고, 보통 한 번에 한 마리를 낳는다. 키는 최고 1m까지 자라고 아래턱에 송곳니가 여섯 개, 위턱에 씹는 움직임을 받쳐주는 판이 있다. ‘신의 모피’라는 알파카 털의 부드러움을 일찍이 잉카인도 높이 평가했다. 알파카 털은 알레르기반응을 야기하지 않고 양털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최상품은 비단보다 더 부드럽다.
 

   
▲ 남미 최고의 미식 축제로 알려진 페루의 ‘미스투라’ 기간 중 요리사가 알파카 고기를 굽고 있다. 알파카 고기는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적다는 이유로 찾는 이가 늘고 있다. REUTERS

어린 알파카도 모피로
수컷 알파카는 다른 우리에 있었다. 그리로 가면서 히이케는 10년 전 도축 경매에 참석하러 페루로 여행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곳에서 동물을 열 마리씩 묶어 한 세트로 판매했는데, 한 마리당 가격이 7유로50센트(약 1만원)였다고 한다. “도축할 때 모피 뭉치가 떨어지는데, 알파카를 사는 의미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는 알파카를 농부에게서 직접 대규모로 살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여기서 한 마리 죽고, 저기서 한 마리 죽고” 그런 식으로 해서 어느 세월에 대량판매를 하겠냐는 말이다. 히이케는 모피가 대부분 도축장에서 나오는 것으로 간주한다.
농장 직매점에서는 히이케와 그의 파트너 로미가 털실, 양말, 이불 등 그들이 키우는 알파카 털로 만든 제품을 팔고 있었다. 나는 여행가방에 내내 넣고 다니던 보온 물주머니 덮개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집에 있을 때는 이 덮개를, 귀한 물건을 보관할 땐 늘 그렇듯이 천가방으로 싸놓았다. 그런데 이제 내게는 탁자 위에 놓인 그 덮개가 저기 95번 국도에서 지나가던 차에 치인 동물처럼 보였다. 끔찍한 사고를 당한 알파카로 말이다.
로미가 한숨을 쉬었다. “어쩌겠습니까, 이미 죽은 것을.” 그래도 현재 상황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겠다는 듯 그가 말했다. 그러고는 덮개의 알파카 털을 쓰다듬었다. “수놈 알파카였네요. 아주 어린 놈이에요. 털을 깎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이 알파카 사육자는 슬픈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두 가지 서로 다른 모피가 이어진 것으로 볼 때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라고. “알파카가 갓 태어났을 때 모습이 이렇다.”
알파카 두 마리의 사체를 여행가방에 담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 알파카, 털을 한 번도 깎여본 적이 없는 갓난이.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 Die Zeit 2023년 제13호
Ist es einfach umgefallen?
번역 장현숙 위원

 

카린 체발로스 베탄쿠어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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