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중기획] ‘차이나 리스크’ 새로운 시선 ② 위엔위엔앙 교수 인터뷰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중국의 글로벌 패권국가로의 부상은 서구의 근대화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싱가포르 출신의 정치경제학자 위엔위엔앙(Yuen Yuen Ang)은 중국과 서구의 유사점을 연구한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교수인 그는 중국의 정치경제학과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 증대를 중점적으로 연구한다. 영국에 본부를 둔 세계적 공공부문 글로벌 네트워크 ‘에이폴리티컬’(Apolitical)은 그를 2021년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100인에 선정했다. 위엔위엔앙 교수는 저서 <중국은 어떻게 가난에서 벗어났나>(How China Escaped the Poverty Trap, 2016)와 <중국의 황금시대>(China’s Gilded Age, 2020)로 유명해졌다.
시판 양 Xifan Yang <차이트> 중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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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엔위엔앙 누리집 |
21세기 권력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흔히 양대 체제의 다툼으로 그려진다. 위엔위엔앙 교수는 어떻게 미-중 양국의 공통점에 주목하게 됐는가.
나는 1978년 개혁·개방 시행 뒤 중국의 발전에서 배울 점을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중국은 어떻게 부유하게 됐는가’에 관심 갖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은 중국이 서구의 규칙에서 예외적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이러한 질문과 대답 모두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자본주의 성장, 발전 혹은 현대화 등 무엇이라 명명하든, 부유해지는 것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존재한다. 서구 계몽주의 역사는 식민지 수탈과 궤를 같이했다. 서구의 혁신과 정신적 전통의 세계 지배로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이 큰 대가를 치렀다.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은 서구의 부상과 중국의 부상 모두에 적용된다. 중국은 부유해지기 위해 ‘무언가를 제대로 했던 것’만이 아니었다. 서구처럼 중국도 많은 것을 제대로 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이 잘못 흘러갔다. 중국의 부는 흔히 말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셈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중국의 성장은 수억 명을 빈곤에서 해방했다. 하지만 중국의 성장과 동시에 불평등, 부패, 환경오염, 현대적인 자본주의사회에서 내재적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나타났다. 글로벌 파워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서구가 무엇을 제대로 했는지’만 연구할 것이 아니라, 서구가 이 과정에서 범했던 갖가지 실수를 포함한 전체 역사를 고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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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엔위엔앙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교수. 유튜브 갈무리 |
서구도 중국도 똑같은 실수
중국의 지정학적 강대국으로서 부상도 미국의 슈퍼파워로서 부상과 유사점이 있지 않은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국의 중개자로서 역할이 논의된다.
미국은 20세기 전반기에 국내 정치적으로 진보적 개혁이 대대적으로 실시되던 때 슈퍼파워로 떠올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역시 ‘진보적 시기’의 지도자로 자신을 생각하는데, 미국과의 유사점은 이것이 전부다. 중국의 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가 중국을 받아들이는 것을 바탕으로 쌓았다. 우크라이나에서 평화 중재는 중국에 서구 민주주의국가들과 악화하는 관계를 회복할 기회가 될 것이다.
위엔 교수는 중국의 황금기에 관한 저서에서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의 경제 기적과 19세기 후반 미국 경제 부흥기의 경제 기적에 유사점이 있다고 썼다.
미국은 1865~1900년 황금기(Gilded Age) 때, 유럽 투자자들을 빨아들이며 급속 성장의 길을 걷던 산업국가였다. 골드러시 때의 미국 명칭에 중국 명칭만 넣으면 현재 중국 스토리와 아주 흡사하다. 당시 미국과 현재의 중국은 놀라운 성장 속도를 기록했고 동시에 자본주의 폐해에 시달렸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을 설립한 미국 철도왕 릴런드 스탠퍼드를 비롯한 악덕 대규모 자본가들은 노동자를 착취했고 자신을 슈퍼리치로 만들었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인들에게 아낌없이 뇌물을 바쳤다. 이런 부끄러운 역사는 이제 거의 잊혔다.
미국은 당시 현재의 중국과 달리 민주주의국가였다.
대부분의 교과서는 서구 국가들이 민주주의와 자유에 의해 발전했다고 서술하는데 이는 역사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상류층 백인 남성은 투표권이 있었고 경제·정치적 자유를 향유했다. 이민자와 여성은 이런 권리와 혜택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미국 원주민과 남부 연방주들의 노예, 중국 출신 강제노동자는 착취당했다. 특권층 사이에도 ‘동일한 조건’은 적용되지 않았다. 악덕 자본가들은 공식적으로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옹호하면서도 사적으로는 특권과 국가의 비호를 무한대로 누렸다. 대다수 서구 교과서에는 성공 신화와 이에 내재한 이중 잣대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고스란히 담겼다.
미국과 중국은 동일한 방식으로 각각 자국을 현대화하지 않았나.
아니다. 유사하다는 것이 양국이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나는 항상 강조했다. 각 사회는 당연히 상이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미국은 민주주의국가이고, 중국은 일당 체제로 이제는 시진핑 주석의 일인 체제가 됐다. 미국의 100년 전 황금기는 사회 진보를 견인했고 부패·불평등과의 싸움을 이끌었다. 시민사회는 정치적으로 활발했고, 부패한 정치인들은 낙선했다. 그리고 공공부문은 개혁됐다. 반면 중국 시진핑 정부는 유사한 문제를 위로부터의 명령으로 해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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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경제적 부흥기 188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역사드라마 <길디드 에이지> 시즌1의 한 장면. 미국은‘도금 시대’에 급속한 성장의 길을 걸었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폐해에 시달렸다. HBO 갈무리 |
부패가 경제성장에 역할?
위엔 교수는 19세기 미국과 지난 수십 년간 중국에서 공히 부패가 경제적 성공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저서에 썼다. 이는 부패가 국가 발전에 치명적이라는 일반적인 인식과 모순된다.
이쯤에서 ‘경제적 성공’이라는 개념을 다시 정의해야 할 것 같다. 미-중 양국에서 부패는 실제로 경제성장에 기여했고 동시에 사회경제적 문제에 빌미도 제공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현대화를 성공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부유해진 동시에 비만이 된 것으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위엔 교수는 부패를 어떻게 정의하나.
모든 종류의 부패는 마약처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유해하다. 공무원이 서민 주머니를 털고 엘리트 기득권층이 국가재정에 큰 구멍을 낸다면 이는 대형 절도다. 이른바 성장에 따른 폐해다. 내가 ‘스피드 머니’(Speed Money)라고 부르는 부패는 이와 다르다. 매장 운영자가 관할청에서 신속하게 허가나 승인을 받으려고 뇌물을 준다면, 이는 진통제 복용과도 유사하다. 소량 복용은 무해하지만 다량 복용은 치사량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특권으로의 문을 열어주는 돈, ‘액세스 머니’(Access Money)라는 것도 있다. 이런 방식의 부패는 특히 (미국 등) 부유한 자본주의국가에서 흔히 나타난다.
조금 더 설명해줄 수 있나.
중국에서는 뇌물을 통해 대출도 받고 세제 혜택도 누리며, 독점권이나 사업권한을 확보하기도 한다. 시진핑 주석이 2012년 취임 뒤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기 전까지, 중국 정부 공무원들은 경제 호황기에 막대한 자산을 축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액세스 머니가 완전히 합법적인 나라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가.
미국의 로비와 대선전을 예로 들어보자. 2021년 로비에 든 비용은 37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로비에 들어간 돈은 얼마나 악의적이고 얼마나 합법적일까? 이에 대한 답은 이중적이다. 로비는 민주주의 대표자들에게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로비는 과도하면 부패한다. 그렇다면 그 경계는 어디일까? 과도한 선거 비용으로 출마가 돈 있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것은 부유한 민주주의국가에서 흔히 나타나는 문제다. 미국 조지아주에서 2020~2022년 4개 선거에서 선거비용으로 총 14억달러가 지출됐다. 누가 14억달러를 썼을까? 현재 서구에서 과도한 선거비와 돈 있는 사람들에게만 선거 등용문이 열린 문제는 포퓰리즘을 낳았다. 일반 시민들은 슈퍼리치들이 지배하는 정부에서 더 이상 제대로 대변되지 못한다고 느낀다.
중국 정부는 서구의 현대화 이론을 반박하면서 중국 공산당이 효율적인 권위주의를 펼치는 반면, 서구 민주주의국가들은 대혼란에 빠져들었다고 주장한다.
서구 교과서가 서구의 부상에 대한 신화를 퍼뜨렸다면, 시진핑 주석의 중국 정부는 ‘권위주의의 장점’ 신화를 선전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 어느 편도 들지 않는 학자로서 양국 모두를 비판하는 것이 내 임무다. 시진핑 정부는 중국 성공의 동력을 잘못 이해했거나, 잘못 설명했다. 중국의 놀라운 성장은 덩샤오핑과 그의 후계자들에게서 시작했고, 시 주석은 달콤한 과실을 물려받았을 뿐이다. 덩샤오핑이 일당 체제의 중국에 부분적인 권력 통제와 경쟁, 실용주의를 도입해 권위주의 최악의 폐해를 다소 완화했던 덕택에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시 주석은 2012년 취임 이후 덩샤오핑의 개혁을 지속해서 폐기했고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시 주석은 중국의 성공 요인이 굳건한 권력 덕분이었다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가고 있다.
위엔 교수는 세계의 현대화가 일방적으로 긍정적으로만 스토리텔링이 이뤄진다고 비판했다. 어찌 됐든 오늘날 인류는 어느 때보다 더 나은 상황이 아닌가.
당연히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과거 귀족이나 가능했던 생활양식을 영위하고 있다. 우리는 현대화가 계속해서 나아지는 일차원적 과정이라는 사고와 결별해야 한다. 대신 나는 현실적 관점을 견지하려 노력한다. 부가 쌓일수록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역사는 가르쳐준다. 기후변화를 생각해보자. 기후변화 등의 문제는 금융위기, 사회 불안정, 심지어 정치적 폭력으로 나타나고 정치권이 더는 해결할 수 없는 지점까지 쌓인다. 이 위기들로 사회는 대대적인 변혁을 할 수밖에 없다. 현대화는 새 위기가 새 해결책을 가져오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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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6월28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공연에서 덩샤오핑 모습이 대형 화면에 보인다. 덩샤오핑은 일당 체제의 중국에 부분적인 권력 통제, 경쟁, 실용주의를 도입해 권위주의의 폐해를 완화했다. REUTERS |
‘자기혁신’이 체제 경쟁의 핵심
우리가 정치적 위기 시대에 사는 것은 역사적 관점에서 흔히 일어나는가.
그렇다. 현대화 역사를 사이클로 고찰한다면, 서구 민주주의사회의 현재 위기는 크게 이상할 것이 없다. 전세계가 이 위기에 대해 무엇을 할지 격론을 벌이고 있다. 이른바 ‘과거의 황금기 영광을 되찾겠다’는, 말도 안 되는 공약을 남발하는 포퓰리스트에게 한 표를 던지는 것이 해결책으로 보일 수도 있다. 혹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신화를 무너뜨리고, 구체적 대책으로 불평등을 척결하는 방법도 있다.
미-중 대립을 신냉전, 심지어 ‘문명 충돌’이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과 중국이 공통분모가 전혀 없는 반대 진영으로 묘사되는 동안, 양국은 점점 멀어지고 적대감이 고조됐다. 나는 이런 표현 대신 미-중이 자본주의를 무기로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기후변화를 극복하기 위해 함께 싸우는 것으로 표현하고 싶다. 미-중 경쟁은 상호 파괴가 아닌, ‘자기혁신’이 핵심인 체제 경쟁이라고 생각한다. 승자는 자체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쪽이 될 것이다.
미국에서도 19세기 말처럼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미국은 일부 지역에서 황금기 부활을 경험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상당히 발전한 후기 산업사회로, 100년 전과 달리 거대 자본가들은 더는 철강·철도 산업이 아닌 금융과 하이테크에서 배출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 주석 모두 자본주의 폐해를 최소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캠페인을, 시 주석은 다 같이 잘사는 사회라는 의미의 ‘공동부유’ 캠페인을 띄웠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공투자와 법인세 인상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지만, 시 주석은 대규모 선거전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미-중은 현재 상이한 발전 단계에 있다. 미국은 헌법에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국가이지만, 중국은 일당 체제다. 하지만 양국 모두 불평등한 성장을 낳은 국내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서로 다른 점만 언급하고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미국 토론문화의 특성상, 지지자를 확보하기 위해 한쪽 편에 서서 극단적 태도를 강화해야 한다. 반면 중도의 균형 잡힌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양쪽에서 비판받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위엔 교수는 싱가포르 출신이다. 출생지는 위엔 교수의 세계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나는 싱가포르에서 태어났고, 친조부모는 인도네시아 출신이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다. 대학도 미국에서 다녔다. 중국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정기적으로 해외여행을 다닌다. 나 자신을 글로벌 노마드족으로 생각한다. 다문화 배경을 가진 사람으로서 어디에서나 외부자로 느낀다. 일상에서 항시 적응해야 하므로 불편할 수 있다. 다만 연구에는 도움이 된다. 특정 국가나 문화에 특별히 소속감을 느끼지 않기에 미-중 관계를 더 객관적이고 글로벌하며 인간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중국은 유사한 두려움과 기대를 갖고 있지만 각기 상이한 조건에 처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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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미총기협회(NRA)의 핵심 로비스트였던 크리스 콕스가 2017년 2월23일 미국 메릴랜드 내셔널하버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비는 과도하면 부패한다고 위엔위엔앙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교수는 지적한다. REUTERS |
탈세계화가 아니라 ‘재세계화’
‘글로벌’이란 주제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정말 탈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는가.
‘탈세계화’란 표현은 퇴행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탈세계화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고립돼 작은 마을에 살면서 외부 세계와 아무런 접촉이 없는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의 경제적 불평등에 토대한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반작용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국가 간 관계와 사회 내부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제 바라보고 있다. 탈세계화보다 ‘재세계화’(Reglobalization)란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 Die Zeit 2023년 제11호
Wie amerikanisch ist China?
번역 김태영 위원
시판 양 economyinsigh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