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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어려운 초저금리의 덫

기사승인 [157호] 202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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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신용위기 끝인가 시작인가- ⑤ 연준

 

윤석천 경제평론가
 

   
▲ UBS의 크레디스위스 인수 소식이 알려진 다음날인 2023년 3월20일, 사람들이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크레디스위스 본사 건물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REUTERS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경험한 우리에게 최근 벌어진 은행 파산 사태는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조그마한 은행들이 아니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세 번째 규모의 파산이었다. 주인공은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이다. 그뿐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세계 9위 은행 규모를 자랑하는 크레디스위스(CS)의 부실이 드러나 유비에스(UBS)에 흡수됐다.
심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관건은 지금 사태가 2008년 금융위기 같은 시스템 리스크 폭발로 번질 것이냐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지만 시스템 붕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각국 정부의 ‘무슨 짓이든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은행 유동성 지원, 전방위 예금 보장 등은 은행산업 붕괴를 틀어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은행위기가 봉합되더라도 다른 곳에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신용경색은 불가피하다. 자본주의 핵심 동력인 ‘경쟁’이 퇴색하며 경제가 활력을 잃을 것이다.
SVB 파산 뒤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고강도 긴축이 있다. 높은 금리는 초기 기술기업(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의 자금조달을 어렵게 했다. 결국 이들은 예금을 찾아 운영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예금인출 흐름이 거세지자 SVB는 보유 자산을 팔 수밖에 없었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파니 은행은 대규모 인출에 대응할 수 없었다. 파산은 불가피했다.

진짜 원인
충분히 예측 가능한 사태였다. 강력한 긴축이 시행되면 금융기관의 부실 확률이 높아진다. 금융위기의 폭발성을 경험한 금융당국은 당연히 사전에 대비했어야 한다. 최소한 잠재적 취약성을 검증하는 스트레스테스트라도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은행 파산은 스트레스테스트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이런 사태가 생겼을까?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를 정확히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준의 잘못된 스트레스테스트는 은행위기를 촉발한 다른 주요 원인이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 2023년 3월15일치 조셉 메이슨의 칼럼 ‘스트레스테스트는 SVB를 구하지 못했다’의 주요 내용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2022년 스트레스테스트 시나리오는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국채 3개월물 수익률은 0, 10년물은 2022년 1분기 0.75%로 하락, 그다음 두 분기에는 변화가 없는 상황을 가정했다. 그런데 2021년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2023년 목표금리를 2022년의 2배로 예상했다. 2022년 테스트 시나리오는 이런 전망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연준이 합리적이었다면 FOMC의 정책 목표가 시나리오에 담겨야 했다.
2023년 2월까지도 연준은 통화정책에 걸맞은 규제를 시도하지 않았다. FOMC는 2022년 12월 전망에서 정책금리 목표를 ‘2023년 말까지 5.1%’로 예상했다. 반면 2023년 시나리오는 2022년 2월 사용했던 것과 거의 비슷했다. 3개월 국채 수익률이 2023년 3분기에 거의 0으로 떨어지고, 10년물은 2분기 약 0.5%까지 하락한 뒤 1.5%까지 점차 오를 것으로 상정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시나리오다. 2023년 2월에 3개월물 수익률이 4.5%를 넘어섰다. 2022년 2월10일 이후 10년물 수익률은 거의 2배 뛰었다. 2%에서 4%로 올랐다. 2023년 2월9일에서 3월10일 사이에만 0.25%나 올랐다.”

SVB 구하기의 후유증
기준금리가 1년 동안 올랐다. 초저금리 시대 은행이 무차별적으로 매수한 채권의 손실은 누구든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규제 당국은 이를 간과하거나 무시했다. 철저한 스트레스테스트로 공연한 혼란을 불러오기보다 사태가 불거진 뒤 수습하는 게 더 쉽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번 은행위기는 연준이 만들어낸 완전한 실패작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에서 25만달러(약 3억3천만원)를 넘는 예금은 원칙적으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지급 보장 대상이 아니다. 위기가 불거지자 미국 재무부, 연준, FDIC는 ‘예금 전액 보장’이란 극단적 카드를 썼다. 이 결정은 공짜가 아니다. FDIC는 SVB를 인수한 은행에 예금 전액 보장을 위해 추가로 200억달러를 지급했다. 이 돈은 예금보험기금에서 지출했다. SVB 예금주들은 구제금융을 받았다. FDIC의 준비금 규모는 2022년 말 기준 1282억달러다. SVB 뒤처리에 쓴 돈이 준비금의 15% 정도다. 유사한 규모의 은행 몇 곳이 더 망가지거나 큰 은행 하나가 붕괴한다면 이 기금은 고갈될 것이다.
그땐 누가 부담할까? 납세자다. 이익은 은행과 예금주들이 사유화한 셈이고 손실은 사회화한다.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다. 예금주는 천사가 아니다. 예금은 이익을 바라고 은행에 돈을 빌려주는 행위다. 왜 은행에 빌려준 돈만 국가가 나서서 갚아줘야 하나? 같은 논리라면 모든 채권의 지급 보장을 국가가 해야 옳다. 개인 간 채무도 빌린 사람이 갚지 못하면 국가가 갚아줘야 한다.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이 ‘시스템 리스크’다. 2008년 금융위기 뒤 만들어진 도드-프랭크법(Dodd-Frank Act)은 ‘체계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이 위기에 처했을 때 FDIC는 예금 전액을 보장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 조항이 이른바 ‘대마불사’를 강화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큰 은행은 작은 은행에 비해 훨씬 안전하다. 국가기관이 보증을 서기 때문이다.
예금주들은 이 조항을 몰랐거나 무관심했다. 하지만 이번 SVB 사태로 어떤 은행이 훨씬 안전한지 알게 됐다. 이로써 작은 은행에서 큰 은행으로 예금 대이동의 가능성이 커졌다. 지역은행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장기적으로 은행업에서도 경쟁이 줄어드는 것을 뜻한다. 경쟁이 치열해야 더 나은 서비스가 나오고 가격이 떨어진다. 독과점이 심해질수록 소비자 후생이 감소한다.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인 독과점 강화 현상이 은행업에서도 일반화할 우려가 커졌다.
은행 예금은 급속히 중소형 은행에서 대형으로, 다시 머니마켓펀드(MMF)로 이동하고 있다. 2022년 연준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뒤 MMF에 4천억달러 이상 유입됐고, 은행위기가 불거진 2023년 3월 셋째 주에만 1200억달러 넘는 돈이 추가로 들어갔다. MMF는 대표적인 초단기 공사채형 금융상품이다. 약간의 손실 가능성이 있지만 안전하고, 입출금이 자유로운 게 가장 큰 장점이다. MMF로 돈이 몰리는 것은 예금의 불안정성을 반영한다. 은행 예금이 이탈하는 것이다.

신용경색 불가피
이에 따라 신용경색 가능성이 커졌다. FOMC 자료에 따르면 지역은행 예금총액은 은행산업 총자산의 12%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 대출시장의 큰손이다. 연준 자료를 보면 상위 25개 은행을 뺀 나머지 은행이 전체 대출의 약 38%를 차지한다. 특히 전체의 67%에 이르는 상업용부동산 대출에 절대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큰 은행이 하지 못하는 대출을 지역은행이 한다. 소규모 자영업자 대출과 개인 신용대출도 이들 몫이다. 이들 지역은행은 유동성이 확보되기 전까지 신용공급을 줄이거나 멈출 것이다.
신용경색의 다른 이유는 예금 이탈로 자금조달 비용이 빠르게 늘어나는 것이다. 은행은 무이자 수시입출식 예금이나 2~3%대 낮은 금리 예금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하지만 예금 이탈로 연준에서 거의 5%에 이르는 금리로 돈을 빌려야 하는 형편이다. 조달 비용이 많이 드니 고금리 대출을 할 수밖에 없다. 대출은 줄고 연체율은 올라갈 우려가 크다.
연준은 이번 은행위기의 전염을 막기 위해 무차별로 지원하고 있다. 연준의 대차대조표가 양적긴축 추세를 무너뜨리고 명백한 양적완화로 선회했다. 과연 이것으로 신용위축을 막아낼 수 있을까? 은행 유동성은 늘어나겠지만 신용경색으로 유동성이 실물경제나 시장으로 얼마나 유입될지 의문이다. 최소한 은행위기가 잊힐 때까지 새로운 돈이 금고에서 잠잘 가능성이 크다.
돈은 피와 같다. 경제라는 핏줄을 타고 흘러야 한다. 신용경색은 혈전과 같다. 막히기 시작하면 혈관이 터지듯 경제가 파열한다. 무엇보다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초저금리로 전환해 돈의 순환 속도를 빠르게 강제할 수도 없다. 연준은 구석에 몰렸다. 초저금리 시대의 덫에 갇혔다. 과연 어떤 식으로 이 난관을 헤쳐 나갈까? 어떻게든 침체를 피하려 하겠지만 가능할까? 거기에 은행위기라는 복병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인플레이션, 은행위기, 침체를 동시에 해결할 수는 없다. 물가를 누르려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누적된 고금리 압박이 무언가를 부숴야 이 고난의 시간도 끝날 것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5월호

 

 

윤석천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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