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VER STORY] 신용위기 끝인가 시작인가- ④ 무너진 크레디스위스
크레디스위스는 지난 수년 동안 각종 투자 실패와 부패 스캔들로 흔들렸고, 결국 유동성 위기에 처하면서 2023년 3월19일 스위스 최대 은행 유비에스(UBS)에 인수됐다. 인수 뒤에도 크레디스위스발 리스크는 여전히 있다.
잉고 말허 Ingo Malcher <차이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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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름 켈러허 유비에스(UBS) 회장(오른쪽)이 악셀 레만 크레디스위스 회장과 2023년 3월19일 크레디스위스 인수와 관련한 기자회견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REUTERS |
2023년 3월19일 일요일 오후, 크레디스위스(Credit Suisse) 몰락 소식이 전해졌다. 악셀 레만 크레디스위스 회장은 스위스 베른 연방궁의 미디어센터 연단에서 크레디스위스의 종말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레만 회장은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침착하게 일일이 답했다. 영원한 경쟁업체 유비에스(UBS)가 정치적 조율을 거쳐 크레디스위스를 인수한 것은 “분명한 전환점”이라며, 크레디스위스가 구제 대상이 된 것은 자신에게 “슬픈 소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크레디스위스 몰락이 누구의 책임이냐’는 으레 나올 법한 질문이 나왔다. 크레디스위스 몰락으로 일자리 수천 개가 사라질 위험에 처했고, 스위스국립은행(SNB)은 이번 인수를 위해 2천억스위스프랑(약 291조원) 이상의 유동성 지원을 했다. 전세계 은행들은 크레디스위스가 파산할 경우 미칠 파장에 떨었고, 예금자들은 예금 안전성을 우려했다. 스위스는 자국 금융기관의 몰락으로 또다시 체면을 구겼다. 책임 소재를 질문받은 레만 회장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것 보십시오. 과거를 회고하는 것은 쉽습니다. 크레디스위스가 2021년 이후 줄곧 언론에 오르내렸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레만 회장의 표현대로 지난 몇 년간 언론에 오르내렸다는 말로 이 은행이 ‘최후’를 맞은 이유를 요약할 수도 있다. 2007년 기준 크레디스위스의 시가총액은 1천억스위스프랑이었는데, 2023년 3월17일 금요일 기준 시가총액은 70억스위스프랑에 불과했다. 취리히, 뉴욕, 런던, 싱가포르 등 세계 수많은 대도시에서 부유층의 자산 증식을 책임진 금융기관치고는 충격적인 시총 급락이 아닐 수 없다. 부유층 고객들은 크레디스위스에서 결국 신뢰를 거둬들였다. 2022년 한 해에만 고객들은 이 은행에서 예금액 1230억스위스프랑을 인출했다.
금융위기의 교훈 잊어
레만 회장이 말한 언론 보도로 돌아가자면, 크레디스위스는 지난 몇 년간 과도하게 자주 파티를 벌였다. 오직 고객을 위한 파티만 없었을 뿐이다. 파티를 즐긴 것은 수상쩍은 금융비즈니스로 보너스를 두둑이 챙긴 은행 임원들이었다. 이런 임원들에게 제동을 거는 장치는 크레디스위스 내부 어디에도 없었다. 크레디스위스의 최근 몇 년은 부패 스캔들과 실패한 투자 등으로 점철돼 있다. 그렇게 크레디스위스는 몰락의 길을 걷고 말았다.
여느 스위스 금융기관들처럼 크레디스위스도 탈세 지원이 몰락의 시초가 됐다. 소리 없이 진행된 이 은행의 몰락은 미국 조세당국이 금융기관의 탈세 지원 업무를 더는 용인하지 않았던 것에서 시작됐다고도 말할 수 있다. 과거에는 돈을 갖고 스위스에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서류가방이든 자동차 트렁크 스페어타이어든 어딘가에 숨겨 국경을 넘어온 돈이면 상관없었다. 돈의 출처에도 관심이 없었다. 타국에서 탈세로 나온 돈이라도 스위스 은행에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취리히의 경쟁사 UBS 바로 옆에 있는 크레디스위스 본부 또한 오랫동안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미국 조세당국이 크레디스위스의 탈세 지원을 수사하면서 이런 분위기는 일거에 달라졌다. 미국 조세당국은 2018년 미국 시민권자들의 탈세를 지원한 이 은행 직원 8명을 고소했다. 법원 문서에 따르면, 크레디스위스 직원들은 자신이 탈세를 돕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직원 한 명은 체포될 것을 우려해 미국에 입국하지 않고 대신 고객들을 바하마에서 만났다. 다른 직원은 취리히에서 그가 묵던 호텔에서 택배로 서류를 받아 보았다고 한다.
또 다른 여직원은 취리히에서 미국인 고객에게 100만달러를 현금으로 전달했다. 미국인 고객은 100만달러를 종이봉투에 담아 갔다고 한다. 에릭 홀더 당시 미국 법무부 장관은 미국 시민권자들에 대한 크레디스위스의 탈세 지원 사건을 이렇게 논평했다. “수년간의 수사를 통해 크레디스위스와 자회사들이 미국 시민권자들의 탈세를 지원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14년 크레디스위스는 결국 탈세 지원 사실을 인정하고 벌금 26억달러를 냈다. 26억달러는 미국 조세범죄 사상 최대 벌금액이다.
크레디스위스가 미국 조세당국과 충돌을 빚은 유일한 은행은 아니었다. 다른 은행들도 미국 조세당국의 수사 대상이 됐고, 일부 은행은 수사받는 과정에서 파산했다. UBS도 미국에서 조세 관련 수사를 받았다. 미국이 부과한 탈세 지원에 대한 벌금은 크레디스위스가 값비싼 대가를 치른 몰락의 시작에 불과했다.
영국 런던에 있는 로펌인 ‘팔라스파트너스’(Pallas Partners LLP)의 설립 파트너 너태샤 해리슨은 대규모 자본이 얽힌 금융사건 전문 변호사로, 금융계에서 공격적인 투자자들의 변호사로 잘 알려져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뒤 해리슨 변호사는 로이드은행(Lloyds Bank), 스코틀랜드왕립은행(Royal Bank of Scotland), 아이슬란드의 은행들과 소송전에서 예금자들 변호를 맡았다. 해리슨 변호사는 몇 년 전부터 크레디스위스 소송전도 맡고 있다. “적잖은 은행이 변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2008년) 금융위기에서 배웠다. 하지만 크레디스위스만은 예외였다.” 금융위기 이후에도 크레디스위스는 프로세스에 대한 충분한 관리감독 없이 고위험 금융상품도 닥치는 대로 판매했다.
현재 해리슨 변호사는 모잠비크 정부 채권 매입 과정에서 크레디스위스로부터 사기당한 투자자들의 변론을 맡고 있다. 크레디스위스는 2016년 한 은행, 중개인들과 함께 모잠비크에 13억달러(약 1조7천억원) 규모의 대출을 중개했다. 13억달러 대출액은 참치잡이 선박 구매에 쓰일 계획이었다. 이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13억달러로 참치잡이 선박 구매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잠비크 의회도 모르게 철저히 비밀리에 이뤄진 13억달러 대출은 은행원들과 정치인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이 사건이 폭로되면서 모잠비크는 국가 파산을 선언했고, 모잠비크 국채는 발행이 중단됐다. 크레디스위스는 채권 발행의 투명성 부족, 리베이트, 횡령 가능성이 있는 대출 주선 등으로 2021년 10월에 미국과 영국, 유럽에서 5억달러 가까운 벌금을 부과받았다.
모잠비크 대출 사기 사건은 해리슨 변호사에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여성의 의뢰인들은 크레디스위스로부터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2023년 10월 런던 대법원에서 재판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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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셀 레만 크레디스위스 회장이 2023년 4월4일 주주총회를 마치고 전화를 받으며 무대를 떠나고 있다. REUTERS |
모잠비크 스캔들
해리슨 변호사는 다른 소송건으로도 크레디스위스를 상대로 법정 소송을 벌이는 투자자들을 변론하고 있다. 바로 2011년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금융사업가 렉스 그린실이 설립한 핀테크 회사 그린실캐피털 파산 사건이다. 크레디스위스는 그린실캐피털의 자산유동화증권(ABS)에 투자하는 ‘공급망 금융펀드’를 출시해 히트를 쳤다. 2017년부터 공급망 금융펀드 4개를 출시해 100억달러나 판매했다. 그린실캐피털이 위험해 보인다는 경고가 내부에서 줄곧 나왔지만, 수익에 눈이 먼 크레디스위스는 펀드 판매를 멈추지 않았다.
이후 스위스 금융감독청(FINMA)이 수사해 밝혀낸 것처럼, 크레디스위스 관계자들은 ABS의 위험성을 “거의 인지하지 못했고 통제에도 실패”했다. 은행이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투자금을 날린다. 크레디스위스도 그린실캐피털 ABS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코로나19로 경기가 나빠지자 어음발행 기업들이 부도가 났고, 외상매출채권을 모아 발행한 ABS도 손실이 생기면서 휴지 조각이 됐다. 그렇게 고객 자산 100억달러가 사라졌다.
크레디스위스에 그린실캐피털 파산은 상당한 충격을 가져온 스캔들이었다. 크레디스위스는 엄청난 손실을 입은 고객들에게 지금까지 약 75억달러를 상환했다. 스위스 금융감독청은 그린실캐피털 투자 최종보고서에서 크레디스위스가 그린실캐피털 펀드를 다루는 과정에서 금융감독법을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결론 내렸다. 또한 크레디스위스는 관련 금융상품에 대해 부분적으로 “잘못되고 너무 낙관적으로” 설명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크레디스위스는 대체 왜 과거 금융위기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했는지 의문이 든다. 해리슨 변호사는 이 질문에 “이런 일이 한번 발생하면 실수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지난 10년간 지속해서 일어났다”고 답했다.
크레디스위스는 그린실캐피털 투자에서만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이 은행은 한국계 미국인 투자자 빌 황과의 사업에 대해서도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한국계 헤지펀드 매니저 빌 황(한국 이름: 황성국)은 ‘아케고스 자산관리’라는 가족재산운영회사(패밀리오피스)를 설립했다. 빌 황에게 크레디스위스는 브로커 구실을 했다.
빌 황은 중국 은행과의 내부거래에 따른 사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2012년 6천만달러 이상의 합의금을 낸 뒤 사실상 월가에서 퇴출당한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크레디스위스는 빌 황과 서슴지 않고 거래했다. 패밀리오피스 아케고스는 크레디스위스를 비롯한 글로벌 투자은행들로부터 자금을 받아 무려 500억달러를 굴리는 큰손이었다. 5~10배짜리 레버리지 투자를 하던 아케고스는 주가 하락으로 마진콜(증거금 추가납입 요구)을 맞았고, 결국 디폴트를 선언했다.
아케고스 투자 실패를 정산하기 위해 크레디스위스는 한 로펌에 보고서 작성을 의뢰했다. 보고서는 “아케고스와 관련해 크레디스위스가 입은 손실은 임원진의 실패이자, 투자은행 관리감독 실패의 결과다. 사업은 단기적 이익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아케고스 리스크 최소화를 소홀히 했다”고 지적했다. 크레디스위스는 직원들이 아케고스 투자에서 ‘위법’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아케고스 투자 실패 이후 크레디스위스 내부 관리감독 시스템이 강화됐고, 직원 9명이 해고됐다.
티잔 티암이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하는 기간 일어났던 스파이 스캔들 외에 크레디스위스의 종말을 부추긴 사건은 많다. 당시 UBS로 이직한 크레디스위스 전직 임원이 크레디스위스의 의뢰를 받은 사립탐정에게 미행당했다. 내부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직원 미행은 다른 은행에서도 일어나기는 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크레디스위스는 꼬리가 밟혔다는 점이다.
이 밖에 안토니우 오르타-오조리우 이사회 의장 사건도 있었다. 코로나19 봉쇄 동안 그는 개인 비행기로 영국 런던을 출발해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했다가 불과 사흘 뒤 다시 떠났다. 코로나19 격리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그는 이런 규정이 일반인들에게만 적용될 뿐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후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끝나지 않은 몰락
그의 후임 악셀 레만은 2023년 3월19일 크레디스위스의 몰락을 세상에 알렸다. UBS는 크레디스위스의 금융거래 외에 진행 중인 법정 싸움도 인수받았다. UBS의 인수와 인수 규정에서 파생된 문제도 있다. 160억스위스프랑에 이르는 크레디스위스의 신종자본증권, 이른바 AT1 채권은 전액 상각됐다. AT1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투자금을 회수하고 싶은 AT1 투자자들의 연락을 받은 해리슨 변호사는 이들의 변론을 맡았다. “새로운 라운드의 소송이 시작될 것이다.” 그는 크레디스위스, UBS 및 스위스의 금융감독기구를 상대로 소송할 예정이다. 크레디스위스 몰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법정으로 무대를 옮겼을 뿐이다.
ⓒ Die Zeit 2023년 제13호
Credit verspielt
번역 김태영 위원
잉고 말허 economyinsigh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