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VER STORY] 신용위기 끝인가 시작인가- ① 은행 파동의 충격
실물로 옮겨붙는 은행발 위기 불씨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과 스위스 크레디스위스(CS)의 몰락 등으로 초래된 은행발 금융불안 사태는 외형상 진정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용위기에 따른 공포는 잠복해 있고, 실물경제 쪽으로 옮아갈 조짐마저 보인다. 손실이 잦은 성장기업에 대규모 대출을 해주던 유일한 은행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으로 스타트업 돈줄은 말라가고, 건설업계는 은행들의 대출기피와 고금리에 신규 사업을 접었다. 각국 정부 당국자들은 신용위기가 끝난다며 시장을 안심시키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_편집자
팀 바르츠 Tim Bartz 등 <슈피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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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3월1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점 앞에서 돈을 찾으려는 예금자들이 은행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REUTERS |
은행 파동은 금융시장에 압박을 가하고 취약한 세계경제로 확산할 수 있다. 특히 각국의 중앙은행이 곤경에 처했다. 인플레이션에 맞서 싸우려는 모든 과감한 조치는 새로운 충격파를 촉발할 수 있다.
2023년 3월 어느 수요일 저녁, 독일 연방금융감독청(BaFin)의 수장 마크 브랜슨(54)은 프랑크푸르트의 한 고층빌딩 17층에 마련된 작은 연단에 앉아 <블룸버그> 통신 기자와 3월 몇 주 동안 주식시장을 뒤흔든 사건들과 관련해 인터뷰했다. 데이터 및 뉴스를 제공하는 미디어그룹 <블룸버그> 통신은 자본시장에 피를 공급하는 공혈자라고 할 수 있다. 전세계 증권거래인들이 <블룸버그> 단말기 앞에 앉아 뉴스를 접하고 매매한다.
<블룸버그> 고객인 몇몇 미국 쪽 은행가와 최고경영자(CEO)가 꿈처럼 아름다운 봄날에 브랜슨의 견해를 들으려 <블룸버그> 사무실을 찾았다. 세계경제가 2008년처럼 붕괴 직전에 놓여 있는가? 아니면 미국 지역은행 3곳의 파산, 스위스 대형 은행인 크레디스위스(CS)와 유비에스(UBS)의 긴급 합병, 중앙은행이 시스템에 투입한 유동성 공급 등은 사소한 불균형에 불과해 곧 정상으로 돌아올 것인가?
브랜슨은 교묘하게 돌려 말했다. “현재 재정 안정성 측면에서 우리는 며칠 전보다 더 나은 상태에 있다. 하지만 최근 사태와 같은 상황을 매주 겪고 싶지는 않다.” 그는 지쳐 보였다.
영국 태생인 그는 크레디스위스와 UBS에서 경력을 쌓았고, 2021년 독일 연방금융감독청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7년 동안 스위스 금융시장감독청장직을 맡았다. 유럽의 현재 위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이 자리에 게스트로 초대된 것은 순전히 우연의 일치였다. 이번 일정은 몇 주 전에 정해졌기 때문이다.
브랜슨은 신중하고 절제된 용어로 상황을 설명했다. 은행들이 또다시 세계경제에 던지는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런 때 사람과 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겁먹은 금융감독자는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다.
15년 전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의 암울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주식시장의 패닉은 일단 가라앉았다. 독일 대표 주가지수 닥스(DAX)는 거의 은행 파동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마치 전세계가 잠깐 놀란 뒤 위험을 모면한 것처럼 보인다. 정치인, 은행가 그리고 브랜슨 같은 감시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그간의 더 엄격한 규제 덕분에 금융기관이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안정적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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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과감한 금리조처를 하겠다고 발표했다가 금융시장 불안 조짐이 보이자 한발 물러섰다. 라가르드 총재가 2023년 3월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의를 마치고 떠나고 있다. REUTERS |
리먼브러더스의 악몽
하지만 이는 그저 자기 확신일 뿐인지도 모른다. 좀더 쉽게 표현하면 어두운 숲을 지나가며 무서움을 없애기 위해 휘파람을 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표면 아래에선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경제·정치·사회에 어떤 위험이 발생하는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금리인상이라는 유턴(U-turn)은 경영자, 재무장관, 주택건설업자들의 계산을 뒤엎었다. 곧 언제 또 다른 은행이 위태로워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앙은행이 저금리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도 경제에 큰 타격이 없으리라는 희망은 무너졌다. “은행 파동은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독일 IFO경제연구소의 클레멘스 퓌스트 소장은 말했다. 얼마나 심각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은행은 정기적으로 전세계에서 활동하는, 영향력 있는 전문 투자자들에게 평가를 요청한다. 그들의 의견은 (퓌스트 소장보다) 한 걸음 더 나간다. 이들 중 42%는 12개월 안에 세계경제가 경기침체에 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한 달 전인 2023년 2월에는 24%에 불과했다. 한 외국계 대형 은행의 독일 지사장은 “현재 상황이 매우 취약하다”고 말했다.
혼란이 확산하면서 중앙은행이 통제력을 유지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어느 때보다 더 중앙은행의 결정에 따라 경제의 방향성이 정해지는 시점이다. 수년간 중앙은행들은 세계를 ‘금리 다이어트’로 몰아넣었다. 인구통계, 세계화, 디지털화는 자본 수요를 둔화하고 초저금리를 유지하게 했다.
자본시장의 금리를 더 낮추고, 팬데믹에 시달리는 경제를 저렴한 돈으로 부양하기 위해 통화 관리자들은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수조달러 상당의 채권을 매입했다.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 규모는 급증했고, 전세계는 할인된 가격으로 대출받을 수 있었다.
이는 개별 국가, 기업, 심지어 소비자에게도 도움이 됐지만 경제 전체에는 매우 위험하다. 오늘날 부채는 2007년 금융위기 직전보다 더 높다. 동시에 인플레이션과 이자율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에너지 가격 상승과 중국의 봉쇄 종료 이후에도 매번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기존 부채를 갚거나 투자하기 위해 지금 신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이자를 훨씬 더 많이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 스위스 자산운용사 GAM의 글로벌 투자 책임자인 데이비드 다우셋은 “금리가 낮을 때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기업은 이제 생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치명적인 착종이다. 현재 위기 이전에도 중앙은행들은 어려운 결정에 직면해 있었다. 그들은 금리인상으로 갈수록 끈질겨지는 물가상승을 억제하려 한다. 금리인상은 경기침체를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이제 그들은 자신이 내리는 모든 결정이 팽창한 금융시장에 추가 충격파를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안고 있다. 모하메드 엘에리언의 말처럼 ‘삼중 딜레마’다. 전 자산운용사 핌코(Pimco) 대표이사이자 현재 케임브리지대학 퀸스칼리지 총장인 그는 자본시장을 속속들이 아는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말에 무게가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처할 때 기대와 현실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다. 유로존에서는 근원물가지수, 즉 식량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인플레이션이 6%에 근접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목표치는 2%다. 그럼에도 물가상승 대응책을 내놓는 것에 머뭇거린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구체적이고 과감한 금리 조처를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뒤로 한발 물러났다. 심지어 금융시스템에 더는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앞으로 엄격하게 최신 데이터에 근거해 금리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최근 라가르드는 상황이 심각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필요한 경우 금융시스템에 유동성을 제공하기 위해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고 주문처럼 반복했다. 그의 동료인 스위스국립은행(SNB)의 토머스 조던 총재는 3월 둘째 주말에 급히 은행 지원에 나서야 했다. UBS와 크레디스위스의 강제합병을 재정적으로 보충하기 위해 스위스국립은행은 상당한 유동성을 공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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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마그데부르크대학을 방문한 2022년 8월25일 독일 시민들이 대학 건물 앞에서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급격하게 금리를 인상하는 과정에서 갖가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REUTERS |
중앙은행의 삼중 딜레마
중앙은행들은 이제 ‘대규모 지원’이라는 끝없는 고리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엄청난 유동성 지원, 무엇보다 지난 금융위기에 대처하려 중앙은행들이 사용했던 수단인 국채와 회사채 매입은 다시 장롱에 들어가야 마땅했다. 수십억달러 규모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통해 라가르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그리고 이들의 동료들은 오랫동안 금리를 낮게 유지했고, 특히 정부가 점점 더 많은 채권을 발행하는 것을 수월하게 해줬다.
상업은행과 보험사들도 많은 채권을 샀다. 독일보험협회 사무총장 외르크 아스무센은 독일 보험사의 투자금 중 약 80%가 고정금리 채권에 투자됐다고 말했다.
아스무센은 금융위기와 관련한 경험이 많다. 2008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을 때 그는 페어 슈타인브뤼크 당시 재무장관 아래서 재무차관으로 막 임명됐다. 아스무센은 그때와 오늘날의 상황은 제한적으로만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수많은 은행이 투자하고 광범위한 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전체 자산군이 있었다.”
이에 비해 현재 위기의 발단은 거의 터무니없을 정도다. 이번에는 복잡한 고위험 증권이 아니라 하필 극히 보수적인 국채가 금융기관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국채 매입이 좋은 사업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구매자가 손실에 대비하기 위해 소중한 자기자본으로 채권을 헤징(위험 분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된 저금리 채권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채무불이행이 임박해서가 아니라 이자율이 더 높은 새로운 채권의 매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채권의 소유자가 만기가 될 때까지 해당 채권을 계속 보유한다면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으로 무너진 실리콘밸리은행(SVB)처럼 고객이 급하게 돈을 인출하면 은행은 채권을 빨리 팔아야 한다. 그러면 순수한 장부상 손실이 실제 손실이 된다. 악순환이다. 브랜슨 청장은 “나는 항상 금리인상이 힘든 상황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고 상기시켰다.
개별 금융기관의 경우 상황이 빠르게 위협적으로 변할 수 있다. 라가르드 총재와 가까운 유럽중앙은행 관계자는 “시장에서 어떤 은행이 취약하다고 인식되고 소문이 돌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우리 업무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털어놨다.
유럽중앙은행은 2023년 5월 초까지 다음번 금리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독일 방식의 강경파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요아힘 나겔 분데스방크(독일 중앙은행) 총재가 이미 유럽 통화 당국이 기존 노선을 고수하고, 금리를 계속 인상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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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졌던 2008년 9월15일 이 은행 영국 런던 지점에 근무하던 직원이 개인 짐을 싸서 건물을 나오고 있다. 그간의 더 엄격한 규제 덕분에 지금은 금융기관이 2008년 때보다 더 안정적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의외의 복병이 나타날 가능성은 남아 있다. REUTERS |
국채가 신용위기 발화점으로
반면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압박에 굴복하고 있다. 2023년 3월23일 연준은 기준금리를 또다시 0.25% 인상했지만, 파월은 은행 부문의 혼란으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금리 동결도 최소한 검토는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은행 시스템은 여전히 “건전하고 회복력이 있으며” 이번 위기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미국에서도 인플레이션은 아직 통제되지 않고 있다. 엘에리언에 따르면 중앙은행 자체가 삼중 딜레마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들이 높은 인플레이션에 너무 늦게 대응했기 때문에 더 오랫동안 고금리가 유지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 비판은 유럽중앙은행에 특히 더 적용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국계 은행가는 유럽중앙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아일랜드인인 필립 레인이 “순진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레인은 유로존이 위기 때마다 더 강해졌다고 항상 주장한다. 그러나 이 은행가는 “그 대가로 매번 부채 더미가 더 커졌다. 그들은 우주선을 타고 여행 중이고, 지상 기지와 멀어졌다”고 비판했다.
ⓒ Der Spiegel 2023년 제12호
Raus aus der Krise, rein in die Krise?
번역 황수경 위원
팀 바르츠 economyinsigh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