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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미디어 사회적책임 고민해야

기사승인 [158호] 202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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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LTURE & BIZ] 콘텐츠업계의 넘치는 구설

문동열 콘텐츠산업 칼럼니스트
 

   
▲ 영화평론가의 한 줄 혹평이 개인미디어로 확대재생산 돼 국내 흥행 실패의 직격탄을 맞은 영화 <웅남이>의 한 장면. 씨제이씨지브이(CJ CGV) 제공

요즘 콘텐츠 제작자를 만나면 ‘구설수를 조심하라’는 말이 마치 인사나 충고처럼 오간다. 연초에나 보는 토정비결 한 구절 같은 이 말에는 달라지는 콘텐츠산업 환경과 그 속에서 겪는 제작자의 고민이 담겨 있다. 콘텐츠산업은 필연적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분야다. 제작자에게는 무관심이 제일 안 좋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금방 잊히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제작자는 구설도 관심의 하나로 받아들였다. 좋든 나쁘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무관심보다 낫다는 생각에서다.
이런 제작자의 오랜 믿음이 바뀌고 있다. 구설 탓에 오랫동안 공들여 제작한 작품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콘텐츠에 불만이 있더라도 개인이나 작은 집단 수준에서 제기하는 것에 머물렀다. 콘텐츠 소비는 어디까지나 개인 취향의 영역이기에 개인의 호불호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고 여기던 시대는 갔다. 대중은 인터넷이라는 여론 형성 채널을 손에 쥐었다. 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

‘사이버렉카’ 전성시대
최근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레거시미디어(TV, 신문 등 전통 매체)가 지배하던 시절과 사뭇 다르다. 특히 레거시미디어와의 접점이 적은 젊은 세대로 갈수록 유튜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같은 개인미디어로 뉴스나 정보를 얻는 비중이 크다. 미디어 환경이 바뀌면 정보를 얻는 경로가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SNS의 타임라인이나 커뮤니티의 인기 게시물이 주요 정보 취득 경로가 되면서 생기는 ‘정보의 편협성’이다.
특히 사회적책임과 함께 어느 정도 공신력이 있는 레거시미디어보다 개인미디어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지면 정보 편향 문제가 심각해진다. 유튜버나 인플루언서 같은 개인미디어가 내놓는 메시지는 어디까지나 ‘개인 의견’이다. 물론 정보의 질이 높고 중립적 태도를 견지하는 개인미디어도 많다. 하지만 개인미디어의 속성이 대체로 화제를 좇거나 편향성을 띤다는 게 문제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끌기 위해 끊임없이 화제를 따라가며 자극적인 내용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 개인미디어의 숙명이다. 이 때문에 한 이슈가 특정 방향으로 끊임없이 확대재생산되는 결과가 생긴다. 그 특정 방향은 대부분 좋지 않다.
대표 사례가 바로 ‘사이버렉카’다. 혐오와 논란거리를 다루고 만들어내는 개인미디어다. 사이버렉카는 사회적 이슈가 생기면 곧바로 관련 내용을 다뤄 사람들의 클릭을 유도한다. 교통사고가 나면 곧바로 달려오는 사설 견인차(렉카)와 마찬가지다. 빨리 이슈를 선점해야 알고리듬을 통한 노출 가능성이 커진다. 섬네일과 제목도 자극적으로 붙인다.
이들은 콘텐츠나 엔터테인먼트 관련 이슈를 가장 좋아한다. 내용이 쉽고 대중에게 빨리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직관적이고 직설적일수록 더 빠르게 사람들에게 침투하기에 중립적 관점은 사라지고, 사실관계 확인 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전달되기 일쑤다. 사실을 안 뒤 수습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최근 구설에 오른 몇몇 작품이 만신창이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면 무대응이 해결책인 시대는 지난 것처럼 보인다. 이전과 달리 논란과 불편한 감정이 의도적으로 생산되고 확대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웅남이>를 둘러싼 논란의 확산 과정은 구설이 어떻게 작품에 ‘낙인’을 찍을 수 있는지 잘 보여줬다.
시작은 어느 영화평론가의 한 줄 평이었다. 평론가의 혹평을 받는 작품은 흔하다. 문제는 이 한 줄 평이 불러온 논란을 유튜버와 커뮤니티 등이 확대재생산하면서 상황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다는 점이다. 이 논란에서 주목할 부분은 작품성이나 평론의 책임을 떠나 작품에 씌운 나쁜 ‘프레임’이 흥행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것이다. 콘텐츠산업은 기본적으로 대중을 상대로 하기에 이미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특정 프레임에 갇혀버리면 그 콘텐츠의 생명은 끝난다. 해당 영화가 외국에서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해 그 사실이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제작자로서는 링에 오르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패배한 느낌이 들 테니 말이다.
 

   
▲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흑인으로 묘사해 논란을 낳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드라마 <퀸 클레오파트라>에서 클레오파트라 7세 역을 맡은 영국 배우 아델 제임스. 넷플릭스 제공

소송·외교 문제도
최근 콘텐츠업계 전반에는 이런 구설이 넘쳐난다. 2022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수리남>은 외교 문제로 비화했다. 드라마 무대인 남미 수리남은 마치 마약의 온상인 것처럼 묘사돼 국가 전체 이미지가 훼손됐다며 정부 차원에서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결국 한국 정부 인사가 수리남을 방문해 해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작품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특정 집단에 따른 구설도 여전하다. 특히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악역으로 자주 등장하는 조선족 중국 동포들의 불만이 크다. 영화 <청년경찰>은 서울 구로구 대림동을 강력범죄의 소굴처럼 묘사해 논란이 일었다. 결국 소송전까지 간 끝에 법원이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는 최근 공개한 다큐멘터리 드라마 <퀸 클레오파트라>에서 클레오파트라를 흑인으로 묘사해 논란에 휩싸였다. 클레오파트라의 모계 쪽 조상이 흑인이었을 가능성이 있기에 하나의 가설로 충분히 다룰 수 있다. 문제는 그 대응에 있었다. 클레오파트라 역을 맡은 배우가 소셜미디어에 ‘배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쇼를 보지 않으면 된다’는 식의 도발적 메시지를 올렸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역사 왜곡이라며 비난했다. 넷플릭스의 세계적 영향력을 생각하면 ‘엄청난 역사 왜곡의 만행’이 될 것이라고 연일 넷플릭스를 규탄했다.
지금도 수없이 양산되는 콘텐츠에 대한 구설은 소수의 의견이라 할지라도 커뮤니티나 개인미디어 채널을 통해 얼마든지 자극적으로 바뀌어 콘텐츠 이미지에 큰 흠집을 낼 수 있다. 무관심보다 낫다며 애써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대중에 대한 예의
이렇게 몇몇 사례를 보더라도 콘텐츠 제작 환경이 이전과 분명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콘텐츠산업을 포함한 창작 분야 산업은 민주주의의 가장 큰 가치라고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에 의존했다. 어떻게 보면 표현의 자유라는 우산 밑에서 거의 무한한 자유를 누렸다. 문제는 지나친 표현의 자유가 다수가 수용하는 사회적 질서를 흔들 수 있다고 판단될 때다. 이때 가장 쉬운 해결 방법은 정부 검열이지만 이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최근 대두하는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의 이용자 중심 자정 활동이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같은 의식의 개혁이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콘텐츠 제작산업 또한 창작 이전에 기업활동이라며 현재 대다수 기업이 지키는 사회적·법적 책임, 즉 ‘사회적 준수’(Social Compliance)에 적극적 관심을 보여야 할 때라고 말한다. 제조업의 사회적 준수가 안전한 제품 생산과 환경보호 등이라면, 콘텐츠산업은 콘텐츠가 사회에 끼칠 영향을 생각하고 사회가 더 건강하고 기본 가치를 지키는 방향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생길 수 있는 여러 구설을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 불필요한 사회적 논쟁이나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조장은 말할 것도 없다. 나아가 콘텐츠 기업 자체의 지속 경영을 위한 이미지 관리도 고려해야 한다.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인터넷게임 같은 정보기술(IT) 분야에선 사회적 준수 활동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콘텐츠업계 전반에 표현의 자유라는 보호막 아래에서 사회적책임과 윤리의식을 외면하려는 경향이 여전하다. 콘텐츠업계도 이제 일반 기업 수준의 사회적 준수 인식이 필요하다.
단순히 ‘착한 기업’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기업이 아닌 독립제작사나 작은 콘텐츠기업에 ‘구설 리스크’는 회사 존립을 위협하는 큰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달라지는 환경에 적응해 변화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은 자명하다.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구설에 대비해 원칙과 윤리를 지켜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원만하게, 때로는 너그럽게 대응하는 모습이 새로운 콘텐츠 환경에서 필요하다.
이런 ‘선을 지키는’ 모습으로 콘텐츠산업이 다양한 대중에게 폭넓게 다가가고, 이를 통해 대중의 신뢰와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콘텐츠를 보고 불편해하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하는 것이 콘텐츠산업을 사랑하는 대중에 대한 예의이자 최고의 배려가 아닐까 싶다.
 

* 문동열 칼럼니스트는 업계 경력 20년 이상의 콘텐츠산업 전문가다. 글로벌 콘텐츠 제작자로 활동하며, 콘텐츠 제작과 금융이 전문이다. 일본 게이오대학원을 졸업하고 LG인터넷과 SBS콘텐츠허브 등에서 방송·게임·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을 맡았다. IBK기업은행에서는 콘텐츠 금융과 관련한 시스템 구축에 참여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6월호

 

문동열 rabike0412@gmail.com

<저작권자 © 이코노미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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