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SSUE] 미국의 끔찍한 아동노동 실태
미국에서 적지 않은 미성년자가 도축장, 자동차공장, 세탁업체 등지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미국 정치권은 미성년자 근로기준법 약화에 오히려 앞장서고 있다.
하이케 부흐터 Heike Buchter <차이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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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적지 않은 미성년자가 도축장, 자동차공장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있는 도축장. REUTERS |
취재원은 정적을 깨지 않고 렌터카 뒷좌석에 재빨리 올라탔다. 이역만리 미국에서 최대한 투명한 존재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듯 보였다. 스포츠머리의 그는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이다.
취재원은 “미국 체류와 노동허가증이 없다”면서 익명을 조건으로 <차이트> 취재진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10년 전 브로커를 통해 과테말라에서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밀입국했다. 그는 미국 미네소타주에 있는 인구 1만5천 명의 소도시 워싱턴에 온 경위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육류공장 청소부로 취직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20대 후반의 취재원은 지금도 육류공장에서 일한다. 워싱턴 외곽에 있는 육류공장은 1960년대 이후 소유주가 계속 바뀌는 과정에서 몸집이 커졌다. 하루에 도축되는 돼지만 2만 마리다. 취재원은 밤마다 도축시설을 청소한다.
<블룸버그> 통신의 2017년 육가공업계 현황 보도를 보면, 도살된 가축 해체보다 더 힘들고 끔찍한 작업이 육류공장 청소다. 청소노동자들은 “가축 피와 비계, 뼛조각과 살조각이 산더미로 쌓인 곳”에서 일하며, “시간 압박으로 밤샘노동을 밥 먹듯 한다”고 했다. 이에 더해 육류공장 청소노동자들은 악취와 부상, 저임금의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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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화당 소속 에드 잭슨 테네시주 상원의원은 미성년자의 근로기준법 완화가 요식업 인력난 해결에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에드 잭슨 페이스북 |
육류공장의 아찔한 청소노동
하지만 이마저도 익명의 취재원이 불만을 호소하는 대목이 아니다. 취재원이 나선 것은 동료 청소원 중 아무리 보아도 육류공장에서 노동이 금지된 13살 어린이를 포함해 십대들의 불법노동을 폭로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말이 좋아 십대지 아이들이다.”
미네소타주에서 십대 청소년은 미국 같은 육류 소비 산업사회에서 모두가 꺼리는 열악한 노동을 하는 존재일 뿐이다.
최근 미국에선 미성년자 노동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노동부는 2022년 9∼10월 8개 연방주의 육류공장 13곳에 감사관을 파견했다. 여기에는 미네소타주 워싱턴도 포함됐다. 감사관의 보고서는 충격적이었다. 감사보고서에는 날카로운 필렛머신(고기 세절기), 콩팥과 지방 절단기, 가축의 코와 턱 분리기, 골수 절단기, 감사관들이 단두대에 비유한 장비인 헤드스플리터(머리 쇄단기) 등 온갖 위험한 육류가공 장비가 언급돼 있다.
감사관들은 파견을 나갔던 육류공장 13곳에서 묘사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장비를 세척하는 13살 이상의 미성년자 102명을 적발했다. 미성년 노동자들은 낮에는 학교를 다녔고, 밤 10∼11시에 일을 시작해 다음날 새벽 4~5시까지 밤샘노동을 했다. 17살의 한 청소년 노동자는 학업과 일을 병행하다 지쳐 고등학교를 중퇴했다고 감사관들에게 말했다.
미국에는 미성년자 노동에 관한 명확하고도 엄격한 근로기준법이 있었다. 미국에서 미성년자는 제한된 시간만 일할 수 있다. 또한 15살 미만 미성년자는 산업생산직에, 18살 미만 미성년자는 건강에 위해를 끼치는 업종에 종사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최근 미국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미성년자 노동을 제한하는 각종 근로기준법이 있음에도 2018년 이후 불법 미성년 노동자는 70% 급증했다.
최근 미성년자 불법노동은 문화투쟁에서 가장 큰 논쟁거리다. 미국 보수 우파 정치인 사이에서 미성년자의 ‘노동할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공화당 소속 리치 드라하임 미네소타주 상원의원은 미네소타주에서 미성년자의 근로기준법 완화 법안을 발의하면서 “기업들은 미성년 피고용인에게 미래를 준비하는 능력을 가르치며, 평생 해당 업계에 종사할 문을 열어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소속 에드 잭슨 테네시주 상원의원도 미성년자의 근로기준법 완화는 “요식업 인력난 해결”과 “귀중한 경험을 하기 위해 노동시장에 뛰어드는 젊은이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클 슐스(16)의 사망으로 미성년자 노동이 다시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위스콘신주의 한 제재소에서 일하던 슐스가 기계에 빨려 들어가 사망하는 참변이 발생했다. 위스콘신주는 보수 정치인이 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근로기준법을 노골적으로 철폐하려는 연방주 중 하나다. 위스콘신주 하원은 호텔업과 숙박업의 인력난 완화라는 명목으로 14∼15살 청소년의 노동시간을 밤 11시까지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민주당 소속의 위스콘신주 주지사는 해당 법안이 발효되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 법안을 뒤엎어버렸다.
2023년 5월 이후 아이오와주에서는 미성년자 노동금지 규정을 대대적으로 완화했다. 아이오와주에서 현재 14살 이상은 산업용 육류냉동창고와 세탁업체, 15살 이상은 컨베이어벨트, 17살 이상은 술집에서 늦은 밤까지 일할 수 있다. 미성년자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기업의 형량도 조만간 완화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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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불법체류 중인 이민자 자녀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직원들이 2019년 5월19일 보호소에 구금 중인 불법이민자 가족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로 이송하기 위해 텍사스 브라운즈 빌사우스파드리 국제공항에 계류 중인 전세기에 탑승시키고 있다. REUTERS |
문화투쟁이 된 미성년자 노동
지난 몇 달간 10여 개의 연방주에서 유사한 개정 법안이 발의·시행됐다. 일례로 세라 허커비 샌더스 아칸소 주지사는 청소년이 노동허가를 받고 일자리를 구하려면 연령확인서와 부모동의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아칸소주 규정을 없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백악관 대변인 출신인 샌더스 주지사는 해당 규정 철폐로 “억지로 만들어진 부담”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어린이·청소년 근로기준법 완화에 앞장선 곳은 요식업협회와 지역 상공회의소다. 그중 전국자영업연맹(NFIB)이 가장 적극적이다. 전국자영업연맹 관계자는 최근 오하이오주 하원 청문회에서 “구인난은 기업의 성공을 저해하는 가장 큰 걱정거리다”라며 회원사가 인력난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미성년자 근로기준법 완화는 인력난 해소에 유용한 구제책이 된다는 것이다.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에 기반을 둔 미국의 보수적인 공공정책 싱크탱크 회계감사재단(Foundation for Government Accountability)도 미성년자 근로기준법 완화의 주축이다. 회계감사재단은 <차이트> 취재진의 문의에 답변을 피했지만 <워싱턴포스트> 등을 비롯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여러 의원의 해당 법규 개정안 작업을 지원했다고 한다. 싱크탱크의 최대 기부가인 리처드 율라인은 부모에게 상속받은 포장재 기업이 전자상거래 붐과 맞물려 상당한 자산을 축적했다. 율라인은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이기리라 믿었던 후보를 중점적으로 지원했다.
뉴햄프셔주 다트머스대학의 경제학 교수이자 노동시장 전문가인 에릭 에드먼스는 정치권이 앞다투어 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근로기준법을 완화하는 뒷배경에 진영 논리가 있다고 확신한다. “미국 문화투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는 더스티 존슨 사우스다코타주 하원의원이 최근 학기 중을 포함해 십대의 노동시간 연장을 뼈대로 하는 개정 법안을 발의한 사례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존슨 하원의원은 개정 법안 발의 사유를 “고등학생이 밤늦게 축구하거나 비디오게임을 해도 된다면, 일자리를 가지는 것도 무방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미국에서 미성년자 불법노동은 대부분 이민자나 소수자의 자녀에게 주로 해당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에 불법체류 중인 이민자 자녀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시골 농가 중에는 수 세대째 미성년자 불법노동이 아니면 문 닫을 걱정을 해야 하는 곳이 적지 않다. 하와이에서 10살 이상 미성년자는 방학에 하루 8시간 커피농장에서 일할 수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12살부터 담배농장에서 일할 수 있다. 현재 미국 농장에서 불법노동 중인 미성년자는 30만∼5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몇 달간 지속해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던 불법노동 미성년자 사례는 다양한 업종에서 광범위하게 확인된다. 켄터키주 맥도날드 프랜차이즈에서 불법노동이 적발된 미성년자는 300명이 넘었다. 이 중 10살 어린이도 2명 있었는데, 감사관에 따르면 이 둘은 새벽 2시까지 주문 메뉴 준비와 서빙, 매장 청소를 했다고 한다. <차이트> 취재진의 문의에 맥도날드는 두 어린이는 매장 야간매니저의 자녀로, 매장에서 부모를 도왔던 것이라고 답했다.
<뉴욕타임스>는 2022년 탐사취재 중 미성년자 불법노동이 미국 전체 50개 연방주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버지니아주의 대형 세탁업체에는 13살 소녀들이 호텔용 침구류를 세탁했고, 13살 소년은 학교도 다니지 않고 공사장에서 일했다. 사우스다코타주의 한 제재소에서 9학년(한국의 중3) 남학생은 14시간 연속 일했다고 한다. <로이터> 통신은 2022년 자동차하청업체에서 미성년자 10여 명이 일했다고 폭로했다. 여기서 한 12살 소년은 금속펀칭 작업을 했다고 한다.
불법노동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미성년자가 부상을 당했는지 정확한 통계 수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상의 경우에만 통계치에 잡힌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2012∼2018년 15~24살 ‘어린 피고용인’ 320만 명이 사업장에서 사고로 응급치료를 받았다. 2020년 사업장 사고로 사망한 미성년자 수는 26명에 달했고, 2021년은 24명이었다. 2022년 조지아주에서 16살의 오스카 남보 도밍게즈는 땅파기 작업 중 불도저에서 추락해 불도저에 치어 사망했다. 그리고 앨라배마주에서는 15살의 후안 마우리시오 오르티스가 지붕공사업체에서 일하는 첫날, 지하 15m로 떨어져 사망했다.
미국에서는 기업이 미성년자 근로기준법 위반을 적발당해도 크게 잃을 것이 없다. 해당 기업은 다시는 미성년자를 불법고용하지 않겠다는 신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빠져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벌금 최고액도 사안별로 1만5천달러(약 1900만원)에 불과하다. 그래서 미네소타주의 청소업체 ‘패커스 위생서비스’(Packers Sanitation Services)는 미성년자 수백 명을 도축장으로 파견노동을 시켰지만 벌금 150만달러를 내는 데 그쳤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근 연매출액 5억달러를 기록한 패커스 위생서비스에 150만달러는 그야말로 ‘껌값’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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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노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 노동부 감사관이 파견 당시 워싱턴의 육류업체에서 적발한 미성년자들은 이후 자취를 감췄다. 이들의 전 동료였던 취재원이 취재진의 차량 뒷좌석에 앉아 “불법노동 중인 미성년자들은 분명히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미국에서 추방당하거나 불법이민자가 가는 보호소에 구금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을 거라고 추측한다. 현재 워싱턴 육류공장에서 한때 일했던 미성년자의 소재는 미궁에 빠졌다.
이민자 지원 비영리협회의 한 자원봉사자는 이들의 소재를 모르지만 비참한 고국 상황을 잘 안다면서 “그들에게 어떤 다른 대안이 있냐”고 <차이트> 취재진에 되물었다. 스페인어로 예배하는 지역의 목사, 학교 행정직원, 이민자 대상 외래 병동 자원봉사자, 비자와 거주권 전문변호사 모두 행방을 감춘 미성년자들의 소재에 함구했다.
이들이 더 이상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라진 도축장 미성년자의 행방에 입 다물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과거에 불법 미성년자 노동이 있었고, 앞으로도 이루어질 것임은 워싱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 Die Zeit 2023년 제31호
Amerikas ausgebeutete Kinder
번역 김태영 위원
하이케 부흐터 economyinsigh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