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VER STORY] 챗지피티 뒤편의 비참한 노동- ② 저임금·고용불안
파트리크 보이트 Patrick Beuth 하이너 호프만 Heiner Hoffmann
막스 호펜슈테트 Max Hoppenstedt <슈피겔> 기자
![]() |
||
▲ 2023년 5월1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150여 명의 콘텐츠 모더레이터들이 모여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유튜브 갈무리 |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세계는 아웃소싱(Out- sourcing)이 AI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다. 당시 미국 프린스턴대학 연구팀이 공개한 이미지넷(ImageNet)은 오늘날 AI 붐을 일으킨 모델의 개발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미지넷은 처음에는 사람이 직접 레이블링한 320만 개의 다양한 대상을 담은 사진 데이터였다. 167개국에서 4만9천 명의 클릭워커들이 2년 반 동안 레이블링했다. 원래는 이 작업에 대학생을 고용할 계획이었는데, 임금 수준이 훨씬 높은 대학생들이 맡았다면 작업을 종료하기까지 최소한 19년이 걸렸을 것이다. 이미지넷은 그림 인식 분야에 혁명을 일으킨 이정표였다. 그럼에도 정작 그 작업을 한 유령노동자들의 공헌은 전혀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프린스턴대학 연구팀은 (전세계 어디에서든 누구나 간단한 설문지 작성이나 짧은 텍스트 번역 등 단순 컴퓨터 작업을 해결하는) 아마존 소유의 온라인 플랫폼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Amazon Mechanical Turk)도 이미지넷 훈련에 사용했다. 이 플랫폼에서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사용자들이 전세계에서 모여들어 ‘미세임무’(Microtask)를 하기 위해 열심히 경쟁한다. 이 임무는 단 몇 초 안에 완성될 수도 있지만 몇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 결과 몇 유로 내지 몇 달러를 벌 수도 있고, 겨우 몇 분의 일 센트 수입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을 ‘터크스’(Turks)라고 부르는 클릭워커들은 정식으로 고용된 직원이 아니다. 콘텐츠 모더레이터에 견줘 훨씬 불안한 노동조건에서 일한다. 이들이 받는 압박은 엄청나서, 좋은 클릭워커 일자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경주한다. 신속함과 주의 깊음, 이 두 가지가 중요하다.
독일 베를린공과대학의 연구원 밀라그로스 미셀리는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불가리아, 시리아에서 현지조사를 했다. 전세계에 흩어진 클릭워커의 노동조건을 사회학자이자 정보처리학자인 그만큼 깊이 들여다본 연구자도 없을 것이다. 그는 클릭워커 작업이 “AI의 토대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고 단언한다. “그 작업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규모 AI 모델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 |
||
▲ 케냐의 메르시 뮤테미 변호사가 2022년 5월10일 전직 콘텐츠 모더레이터를 대신해 미국 기술 대기업 메타와 콘텐츠 모더레이션 계약사 사마를 상대로 열악한 노동환경 관련 고발장을 나이로비의 밀리마니 법원에 제출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REUTERS |
이미지넷, 아웃소싱 원조
그럼에도 고용주들은 이 노동자들을 그늘에서 밝은 세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단 한 발짝도 내디디려 하지 않는다. “기술 대기업들은 여전히 ‘유령노동자’라는 말을 입에 올린다. 이 문제를 한번 살펴보겠다는 그들의 입에 발린 약속을 나는 이제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변화는 아래에서 도모돼야 한다. 미셀리의 말이다. “많은 클릭워커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들은 이 사실을 서로에게 확실하게 알려줘야 한다. AI 공급망 체계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는 또 클릭워커가 “자신들이 하는 중요한 역할을 압력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작업을 단순 노동으로 간주하면서 클릭워커를 그저 필요에 따라 헐값에 부리는 건 AI 산업계의 실수다. 우리는 그들을 전문가로 대접해야 한다. 그들은 실제로 전문가들이다.”
AI 클릭워커에게 안정된 노동조건의 틀을 마련해주려고 노력하는 나라는 소수다. 몇 안 되는 국가 중 선두에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AI를 ‘자동 얼굴 인식’이라는 형태로 기계에 적용해 신장위구르(웨이우얼) 자치주의 무슬림을 탄압하는 데 사용한다.
이제 중국은 AI 산업을 주도하는 나라가 되고자 한다. 중국의 AI 연구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만 산업이 아직 미국만큼 발전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수백만 명의 디지털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중국에서 태어나 현재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강의하는 벤 제펑 장 교수는 “중국 정부는 이 작업을 표준화하려고 노력한다. 무대 뒤에서 진행하던 작업을 양지로 끌어내 더 투명하고 유망한 직업으로 정립하려는 것이다”라고 이 현상을 해석한다. 중국에서는 이 일을 ‘AI트레이너’로 부른다. 이 직업을 향한 수요는 엄청나다. 수백만 명의 트레이너가 투입돼야 하니 말이다.
그 결과 중국에는 ‘AI 데이터레이블링’을 위한 국가 차원의 시험이 있다. 산업정보기술부의 교육·시험 센터가 이를 주관한다. AI트레이너는 이 시험을 치러 5급에서 1급까지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데, 자료를 레이블링하는 업무는 그중 제일 낮은 급의 자격증에 해당한다.
장 교수도 현재 이 교육을 받는다. “한 과정을 수료하려면 약 450달러(약 57만원)의 수강료가 든다. 다른 일과 병행하면서 교육받는 경우 서너 주 정도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졸업시험을 봐야 한다. 합격하면 자격증을 받는다.” 앞으로 많은 기업과 스타트업이 이 자격증을 가진 트레이너를 선호하거나 그런 사람만 직원으로 선택할 것이다. “그러면 회사가 직원을 따로 힘들여 교육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런 회사는 더 좋은 주문을 더 많이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표준화된 교육을 해도 낮은 보수는 개선되지 않을 것이며, 현재 보수는 생활하기에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말도 그는 덧붙였다.
독일 바이첸바움연구소와 베를린공과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톈링 양은 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석 달간 중국의 데이터 처리 플랫폼에서 일했다. 그는 “어떤 프로젝트냐에 따라 어느 기업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보수가 다양하다”고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어떤 크라우드소싱 플랫폼의 주문을 받아 스마트폰으로 동일한 거리의 사진을 다섯 장 찍어 검토해야 한다면, 대개는 시간당 1~3유로 정도 받는다. 그런가 하면 사진을 100장에서 200장 정도 보내고도 받는 돈은 1장당 겨우 5센트로 계산되기도 한다. 어쨌든 많이 보낼수록 받는 임금의 총액은 많아진다.”
클릭워커는 그들이 받는 작업 명령이 요즘 “상당히 불분명해졌다”고 말한다. 톈링 양이 인터뷰했던 한 직원은 ‘이른 아침 하늘 사진을 찍으라’는 주문을 받았는데 이른 아침이 정확히 언제를 가리키는지 작업명령서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그 직원은 결국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일출 전, 일출 중, 일출 후 이렇게 세 장의 사진을 찍느라 세 시간이나 들여야 했다고 한다.
이 직업의 노동조건은 전세계에 걸쳐 열악하고, 심리치료는 그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제공되며, 대기업들은 문제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 직업 종사자들은 기업이 정말로 이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의지가 있다고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정치가들이 가까운 시일 내에 기업가에게 그런 변화를 의무화할 것이라고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뭉쳐 조직화하기 시작했다. 독일서비스노동조합의 히크마트 엘함무리는 수백 명의 콘텐츠 모더레이터와 이야기를 나누고, 직장평의회를 구성하도록 지원했다. “직원 보호를 그냥 기업에만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회사에 실질적인 심리치료를 제공할 의무를 요구해야 한다.” 그는 무엇보다 이렇게 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일의 대가가 최저임금을 넘지 못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케냐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클릭워커가 자신들의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사마 직원이었던 리처드 매텡지는 최근 이 일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아 콘텐츠 모더레이터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매텡지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는 게시물의 양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자 곧장 해고당했다고 말했다. 언론에서 비판적인 보도가 나오자 사마와 오픈AI는 동업을 중지했다. 오픈AI는 주문을 다른 곳에 맡긴 게 분명한데, 아프리카에 있는 콘텐츠 모더레이터를 계속 고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회에 조사 청원
전에 콘텐츠 모더레이터로 일했던 오키니이와 그의 동료 서너 명은 콘텐츠 모더레이터 기업을 공식적으로 조사해달라는 청원서를 케냐 국회에 제출했다. 정신 건강을 해치는 위험에서 디지털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전직 콘텐츠 모더레이터들은 자기가 무슨 목적을 위해 일하는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한다. 오키니이는 사마에서 일하는 동안 챗지피티를 훈련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그러다 한참 후에야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프로그램에 학습 지도를 하는지 분명히 알게 됐다.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너를 안전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주는 게 누군지 혹시 아니?”라고 챗봇에 물어보았다. 그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그 일을 할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의 이름을 아니?”라고 되묻자 챗봇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 Der Spiegel 2023년 제29호
Die Gesichter hinter der KI
번역 장현숙 위원
파트리크 보이트 economyinsigh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