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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미술과의 닮음보다 다름에 주목하자

기사승인 [164호] 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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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단색화라는 교차점

 
이승현 미술사학자
 

   
▲ 서현석 작가의 ‘옵/신 페스티벌 2023’ 참여작 ‘( )’. ‘옵/신 페스티벌 2023’ 누리집

전시장에 벽돌이나 철판, 형광등 따위를 그냥 늘어놓거나 수수께끼 같은 문장들을 작품이라고 우긴다. 알 수 없는 대사와 동작으로 연극도 무용도 아닌 퍼포먼스를 한다. 나무나 동물 등을 전시장에 가져오거나 거꾸로 야외에 나가 다리나 건물을 천으로 둘러싸며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이럴 때마다 대중은 난감하다. 서구 주류 미술계에서 회화와 조각이라는 전통적 매체를 내팽개친 이런 극단적 전환은 1960년대 등장한 미니멀리즘이 촉발했고, 이 변화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나누는 경계가 됐다. 그래서 20세기 말 전환기 주류 비평계의 대부 격인 핼 포스터는 ‘미니멀리즘이라는 교차점’이란 제목의 글을 남겼다.
이 미술은 지금도 여전히 어려워서 우리는 이를 그냥 ‘다원예술’이라 불렀다. 다원예술은 기존 예술 장르로 분류하기 모호해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던 예술활동을 한데 묶어 효율적으로 지원·관리하려는 정책 용어로 만들어졌다.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다원예술 소위원회를 설치하며 공식화됐다. 그러니 1960년께 앵포르멜(제2차 세계대전 뒤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새로운 회화운동)을 도입하면서 현대미술의 분기점을 맞은 한국미술계가 이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1960년대에 한국 작가들은 파리청년비엔날레와 상파울루비엔날레를 통해 서구 동향을 직접 접할 수 있었고, 1957년부터 파리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하던 이일이 1965년 귀국했다. 1968년 일본 비평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이우환과 박서보의 본격적인 친교가 시작된 뒤 1969년에는 이론가와 작가들이 함께 모여 ‘AG’, 1970년에는 ‘ST’라는 그룹이 만들어졌다. 서구미술에 대한 집단적인 연구와 작업으로 이를 이해하고 따라잡으려는 노력이 본격화한 것이다. 말하자면 서구미술이 격동의 1960년대를 보낼 때 한국미술은 암중모색의 1960년대를 보냈고, 그 결실로 1970년대의 단색화와 실험미술이 등장할 수 있었다.

1970년대 단색화 등장
단색화는 1960년대 이후 서구와 일본에서 설치와 행위가 주류 미술계를 평정하고 있을 때 유독 회화를 고집하면서 이들과 차이를 보였다. 단색화는 내용은 미니멀하지만 오브제가 아닌 회화이고, 일종의 퍼포먼스를 하지만 서예가가 획을 연습하듯이 캔버스 위에 단순한 행위를 반복한다. 물질과 사물을 지향하지만 대상으로 전시하지 않고 오히려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이 차이를 두고 일본 평론가 지바 시게오는 단색화에 대해 일본이 해야 할 것을 한국이 먼저 했다고 아쉬워한 바 있다.
이런 단색화를 서구는 자연스럽게 주류 미술사의 계보인 미니멀리즘 변방의 변주로 이해한다. 예를 들어 2014년 단색화를 처음 선보인 서구의 메이저 화랑 블룸앤포는 2016년 두 번째 전시를 ‘단색화와 미니멀리즘’이란 타이틀로 열면서 단색화를 미니멀리즘과 포스트미니멀 경향의 작가들과 함께 전시했다. 또한 이우환의 회화를 미니멀리즘이나 ‘프로세스 아트’(Process Art·작품의 진행 과정을 완성된 결과보다 중요시하는 미술 경향) 등과 비교·분석한 독일 미술사학자 질케 폰 베르스보르트-발라베를 비롯해 서구의 이론가들은 그들의 미술, 즉 주류 미술을 중심으로 단색화를 바라본다.
하지만 단색화의 세계화는 닮음 못지않게 다름에 의해 가능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설명하기 전에 서구가 차이를 제대로 알 방법은 없다. 게다가 서구를 배우고 닮으려 노력한 100여 년간 지속된 관성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 법이어서 이제는 서구뿐 아니라 우리도 단색화를 서구의 주류 미술사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 더 익숙하다. 그러나 우리 미술이 세계미술과 접점을 마련한 이 시점에 우리가 강조하고 주목해야 할 지점은 더 이상 닮음이 아니라 다름이다.
단색화는 서구의 동시대 사조를 배우고 참조했지만, 당시 김환기의 전면점화에서 보여준 단색조의 화면과 점 위에 점을 찍을 때 번지면서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그러데이션 효과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김환기가 캔버스 위에 아교를 바른 뒤 그런 번짐 효과를 낸 것은, 그보다 먼저 아교를 바른 뒤 물감의 번짐을 이용해 추상 작업을 한 박래현의 선례가 있었다. 원래 바림은 수묵화의 주요한 기법이며, 반복은 선비들이 자신을 단련하는 서예의 훈련 방법이기도 하다. 따라서 단색화의 다름을 설명하려면 단색화뿐 아니라 한국미술 전반을 함께 소개하고 설명해야 한다.
또한 서구와의 다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역사와 사상 전반을 알리게 된다. 서구와 일본이 퍼포먼스를 할 때 우리는 왜 화폭 위의 반복적인 붓질이라는 행위에 만족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사물과 환경, 대지를 드러내려 할 때 우리는 왜 대상과 하나 되는 물아일체를 추구했는지, 그 배경은 무엇이고 의미는 무엇인지 등 말이다. 문화선진국은 이처럼 우리 문화의 다름을 스스로 알리려는 적극적인 노력으로 가능하다.

다름을 설명해야 하는 이유
반세기 전에 단색화는 1960년대 이후 서구미술의 급격하고 난해한 변화를 받아들여 독자적인 양식을 만들면서 한국미술의 분기점을 이뤘다.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모더니즘으로 다시 소환되며 한국미술의 세계화라는 또 다른 분기점을 이루고 있다. 한국미술에서 두 번의 교차점을 만들어낸 단색화는 이제 닮음이 아니라 다름을 드러내고 설명하는 노력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마침 다원예술이란 용어를 만들었던 ‘옵/신 페스티벌’의 김성희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현대예술의 특징이 장르주의를 해체하려는 ‘다원성’인데, 이걸 우리나라에서 다원예술이라는 장르로 부르는 것은 이상하다”며 “앞으로 ‘다원예술’이란 용어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고 밝혔다. 그의 말에서도 느껴지듯이 이제 더 이상 따라갈 서구와의 간격 같은 건 없다. 그들처럼 우리도 동시대를 사는 우리의 미술을 하는 것이다.

*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7년을 다니다 작은 금융자문회사를 차렸다. ‘선진’ 금융을 보급한다고 했으나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혼자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호텔에서 2주가량 지낼 정도로 미술에 미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12월호

 

이승현 shl219@hanmail.net

<저작권자 © 이코노미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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