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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서 벌어지는 새로운 콘텐츠 전쟁

기사승인 [164호] 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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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LTURE & BIZ] 논픽션 콘텐츠로 새 활로 찾는 OTT

 
문동열 콘텐츠산업 칼럼니스트
 

   
▲ 2023년 10월2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뱅크오브아메리카 스타디움에서 리오넬 메시가 미소짓고 있다. 메시의 활약이 이어지면서 애플TV+의 시즌권 판매량이 20배 넘게 급증했다. USA TODAY REUTERS


콘텐츠산업에서 논픽션(Nonfiction)은 허구가 아닌 사실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콘텐츠를 의미한다. 픽션이 아닌 장르 모두를 논픽션으로 분류할 수 있기에 논픽션의 범위는 매우 넓고 다양하다. 그럼에도 산업 내에서 늘 비주류의 위치에 있었다. 현대 콘텐츠산업은 대중의 욕구를 최대한 만족시켜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진화했다. 재미만을 추구하며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픽션은 산업 진화에 맞는 방식이기에 오랫동안 콘텐츠산업의 주류가 됐다.
이런 흐름이 달라진 것은 최근 유튜브를 비롯한 1인 미디어 시대를 맞은 이후다. 개인 미디어를 중심으로 비용도 많이 들고 만들기 힘든 픽션보다 상대적으로 제작이 쉬운 논픽션의 문법을 가져오면서, 논픽션은 이제 현대 콘텐츠산업에서 픽션에 못지않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시장은 논픽션의 현재 위치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트렌드에 민감한 OTT 시장
현재 콘텐츠산업에서 트렌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시장을 선도하는 곳은 OTT 플랫폼이다. 벌써 10년 이상 이어진 치열한 기싸움에서 살아남은 콘텐츠 시장의 새로운 맹주라 할 수 있다. 기존 ‘레거시 미디어’(전통 언론매체)와 콘텐츠산업의 전통적 강자도 시대 흐름을 이길 수는 없었다. 여전히 사이좋게 공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도권 자체는 이미 넘어간 상황이다. 3년에 걸친 코로나19 대유행이 결정적 전환점을 제공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제 긴 콘텐츠 전쟁의 양상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바로 OTT 간 치열한 주도권 싸움이다. 이미 넷플릭스라는 거대 공룡이 버티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싸움일지는 의아한 생각도 들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양상과 OTT 기업마다 서로 다른 셈법이 숨어 있다.
우선 적어도 OTT의 후발 주자들은 픽션 장르에서 넷플릭스에 대적할 생각을 버린 것처럼 보인다. 실제 막대한 규모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생산하는 넷플릭스에 픽션 콘텐츠로 맞불을 놓는 것은 무의미하다. 넷플릭스가 이미 픽션 장르라는 전장의 주도권을 장악한 절대 승자임을 인정한다면 그들에게 대적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바로 픽션이 아닌 논픽션 콘텐츠에서 벌이는 새로운 전선의 형성이다.
최근 소식을 보면 전통적 콘텐츠 부잣집인 디즈니플러스(+)를 제외한 다른 OTT 후발 주자들은 오리지널 콘텐츠 한두 편으로 넷플릭스라는 공룡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접은 것처럼 보인다. 그 움직임은 2022년부터 서서히 나타났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애플이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코다> 등을 제작하며 늦었지만 열심히 OTT 시장의 지분을 확보하려 노력하던 애플TV+는 픽션 콘텐츠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후발 주자로 그들이 시장의 한 조각을 제대로 차지하기 위해 새로 발견한 곳은 바로 스포츠 스트리밍(실시간 재생)을 중심으로 한 논픽션 분야다.
애플TV+는 2022년 3월 <프라이데이 나이트 베이스>라는 프로그램에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경기 생중계를 포함한 스포츠 콘텐츠를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업계의 시선이 차가웠다. 애플TV+의 스포츠에 대한 진심이 서서히 나타난 것은 나이키와 스포츠 다큐멘터리 제작 계약을 하면서다. 곧이어 2023년 2월 미국 프로축구 리그인 MLS와도 계약해 월 14.99달러(약 1만9천원)짜리 시즌 패스를 제공했다. 6월에는 MLS와 전세계 독점 중계 계약을 하기에 이르렀다. 결론적으로 이런 애플의 시도는 신의 한 수가 됐다. 마침 세계적인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의 이적에 맞춰 MLS에 전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이 집중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메시의 활약이 이어지던 8월 애플TV+의 시즌권 판매량이 20배 넘게 급증했다. 이는 시청점유율 1%인 OTT 시장의 꼴찌 애플TV+의 반란으로 이어졌다.
 

   
▲ 2023년 초 화제가 됐던 다큐멘터리 시리즈 <나는 신이다>는 저널리즘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보였다. 넷플릭스

이에 맞서는 공룡의 대응은?
픽션 콘텐츠가 아닌 논픽션 콘텐츠로 고객을 확보한다는 새로운 전략은 다른 후발 OTT 플랫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마존프라임비디오도 2022년 11월부터 목요일마다 미국 미식축구리그(NFL) 생중계를 하고 있다. 거기에 MLB 뉴욕 양키스의 경기 중계권을 포함한 다양한 스포츠 중계권을 사들이고 있다. 비슷한 형태의 전자상거래 플랫폼 기반 OTT인 우리나라의 쿠팡플레이도 2022 잉글랜드프리미엄리그(EPL) 축구경기 중계로 많은 구독자를 확보했다. 이런 사례만 봐도 후발 주자들의 논픽션 공략은 유효한 전략인 듯하다.
픽션 장르에서 절대 무적의 공고함을 자랑하는 디펜딩 챔피언 넷플릭스는 이런 후발 주자들의 움직임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지금 움직임만 보면 넷플릭스 기조는 방관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경쟁자들이 천문학적 돈을 쓰며 논픽션 필드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후발 주자들끼리 핵심 논픽션 콘텐츠를 확보하려 출혈경쟁까지 하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그렇다고 넷플릭스가 논픽션 필드를 그냥 방치하는 건 아니다. 나름의 전략이 숨었다. 후발 주자들이 열을 올리는 스포츠 스트리밍만 봐도 그렇다. 무서울 것 없는 이 공룡이 마음만 먹으면 스포츠 스트리밍도 금방 손에 넣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넷플릭스는 스트리밍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논픽션 장르에 힘을 쏟고 있다.
지금까지 보여준 넷플릭스의 전략은 단순하면서도 강하다. 스토리텔링에 강한 이점이 있는 자사의 콘텐츠 특성을 살려 스토리텔링 논픽션 콘텐츠를 확보하는 중이다. 넷플릭스는 세기말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화한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를 성공시킨 바 있고, 자동차경주 포뮬러원(F1)이나 EPL의 레전드 선수들을 주인공으로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다큐멘터리를 선보였거나 준비 중이다.
어떻게 보면 타사에 비해 소극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전략을 넷플릭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스포츠 스트리밍이 가진 힘에 대해서는 부정할 생각이 없지만 이를 확보하는 데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에 비해 콘텐츠 지속력은 약하다고 본다.’ 넷플릭스는 최근 유명 가수들의 콘서트 실황이나 음악 다큐멘터리 같은 논픽션 콘텐츠의 라인업도 충실하게 지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넷플릭스는 제일 잘 할 수 있고 잘 아는 형태로 논픽션 콘텐츠를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넷플릭스의 움직임을 천문학적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도 특정 스포츠나 취미에 편향된 소비자를 잡아두는 좋은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아무리 명경기라 할지라도 모든 스포츠 이벤트는 경기가 끝난 순간 일회성에 불과한 콘텐츠가 돼버리고 만다. 이 점을 잘 포착해 폭발적인 구독자 확보보다는 다큐멘터리 같은 자사가 강한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팬을 더욱 몰입하게 하고 자사의 서비스를 떠날 수 없게 하는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넷플릭스는 이미 스토리텔링 논픽션의 대표 격인 다큐멘터리에서 세계적 수준의 콘텐츠 생산자다. 드라마나 영화, 애니메이션 등 픽션 콘텐츠에 들어가는 투자에 비하면 적다고 할 수 있지만, 2012년 첫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이후 최근까지 300편 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K-논픽션 충분히 가능하다
최근 우리나라의 논픽션 콘텐츠도 이런 세계적 흐름에 조심스럽게 올라타는 중이다. 몇몇 국산 OTT를 중심으로 스포츠 스트리밍이 본격화하고, 한국 프로축구 케이(K)리그는 1부 리그 외에 하부 리그까지 스트리밍 중계에 나서는 등 그동안 방송사 위주의 전략에서 벗어나 OTT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덕분에 육상이나 태권도, 양궁 같은 올림픽 시즌 외에는 보기 힘들었던 스포츠 종목도 더 쉽게 실황을 볼 수 있게 됐다. 넷플릭스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의 성공 이후 스포츠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클럽하우스>나 <풀카운트> 등 프로야구를 배경으로 한 스포츠 다큐멘터리가 제작돼 OTT로 선보이기도 했다.
그동안 픽션 장르에서 보여준 K-콘텐츠의 약진은 놀랍다. K-드라마의 전세계적 흥행이나 영화의 주목도는 이제 한류라는 일시적 유행이 아닌 하나의 장르로 정착 중이다. 이런 관점에서 다큐멘터리를 포함한 논픽션 콘텐츠도 충분히 세계적 경쟁력이 있으리라 본다. 전체 콘텐츠 유통의 핵심이 텔레비전(TV) 방송사였던 시절에는 ‘교양물’이라 부르는 논픽션은 절대 주류가 될 수 없는 콘텐츠였다. 지금은 콘텐츠산업 환경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이용 행태도 많이 변화했다. 2023년 초 화제가 됐던 다큐멘터리 시리즈 <나는 신이다> 같은 작품처럼 이른바 ‘저널리즘 다큐멘터리’도 그 가능성을 보였다.
몸집이 커지는 픽션 콘텐츠 시장의 규모에 기가 눌려 더 큰 장벽을 느끼는 한국의 독립제작사에 논픽션 콘텐츠 시장의 약진은 새로운 희망이다. 논픽션 콘텐츠는 5명 미만의 영세 독립제작자도 좋은 기획만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볼 수 있는 영역이다. 낮은 진입장벽으로 더 많은 독립제작사가 양산되고, 이들이 결국 전체 K-콘텐츠의 경쟁력을 만드는 기초가 될 것이다. 지금 논픽션 콘텐츠 시장의 흐름은 K-콘텐츠의 미래를 위해 놓치면 안 되는 기회다.

* 문동열 칼럼니스트는 업계 경력 20년 이상의 콘텐츠산업 전문가다. 글로벌 콘텐츠 제작자로 활동하며, 콘텐츠 제작과 금융이 전문이다. 일본 게이오대학원을 졸업하고 LG인터넷과 SBS콘텐츠허브 등에서 방송·게임·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을 맡았다. IBK기업은행에서는 콘텐츠 금융과 관련한 시스템 구축에 참여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3년 12월호

 

문동열 rabike04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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