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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자급은 환상일 뿐 업체·대학과 생태계 조성

기사승인 [165호] 202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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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SINESS] 반도체업계 ‘슈퍼 을’ ASML의 성공 비결

 
유럽이 아시아에 의존한다고? 그럴지도 모르지만 네덜란드 기업 에이에스엠엘(ASML) 없이는 전세계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다. <차이트> 취재진이 유럽 시가총액 최대 기업 ASML을 방문했다.


콜랴 루트치오 Kolja Rudzio <차이트> 기자
 

   
▲ ASML 직원들이 2019년 4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막바지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REUTERS/ASML 제공


메르세데스벤츠나 에어버스보다 시가총액이 높으며, 유럽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기업인 이곳은 일단 구글 검색이 필요한 네덜란드 펠트호번에 있다. 펠트호번은 네덜란드 남부의 벨기에 국경에 위치한 인구 4만6415명의 지자체다. 펠트호번의 산업지구에 있는 이 기업은 개당 가격이 무려 3억5천만유로(약 4960억원)에 이르는 기계를 제작한다. 이 기업의 반도체 장비가 없다면 전세계 어디에서도 스마트폰, 노트북이나 전산센터에 들어가는 고성능 마이크로칩을 생산할 수 없다.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업체 에이에스엠엘(ASML)이 없으면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완전히 멈춰버린다.
ASML이라고? ASML은 세계적으로 가장 핵심적 반도체 장비 업체이지만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다. ASML은 전세계 60개 이상 지역에서 직원 4만2천 명이 일한다. 연매출은 200억유로, 시가총액은 2240억유로에 달한다. 특정 반도체 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ASML은 반도체를 둘러싼 글로벌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다. 권력과 부를 두고 다투는 이 전쟁에서 미국은 반도체 기술에서 중국을 고립시키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 그리고 주변부의 유럽은 자체 반도체 생산을 늘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2023년 10월24일,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은 반도체의 독자적 수급이 독일 산업 전략의 일부라고 재차 강조했다.

60개 지역 직원 4만2천 명
미국의 압박을 받은 네덜란드 정부는 ASML이 만드는 최신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한편, 독일 등의 국가들이 신규 반도체 공장에 정부지원금을 퍼붓는 상황에서 단연 ASML이 최대 수혜자다. 미국 대기업 인텔이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신규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독일 정부의 지원금 상당 부분이 ASML로 흘러들어 간다.
이렇게 특별하다는 ASML의 반도체 장비는 어떤 기계인가? 그리고 ASML은 중국 의존도와 종속성을 낮추기 위한 (유럽 및 미국) 정치권의 시도에 어떤 입장일까?
ASML 본사에서 반도체 장비를 하나라도 근접거리에서 보려면 엄격한 출입 준비 과정을 감수해야 한다. 가방과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필기노트조차 반입되지 않는다. 방진모자, 방진복, 장갑, 무릎까지 오는 방진부츠를 순서대로 착용해야 한다. 전체 보호복 착용 후에는 에어락(Airlock)을 통과한다. 선폭 10nm(나노미터, 1nm=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 공정을 소화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생산은 이물질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 클린룸에서 이루어진다. 클린룸에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떨어지면, 주택으로 나무가 정면으로 떨어져 지붕을 뚫은 것만큼이나 치명적이다.
에어락을 통과하면 미로를 방불케 하는 수많은 복도와 홀이 복잡하게 이어진다. <차이트> 취재진은 복도를 걸어가면서 ‘위험: 레이저 작동 중’이라는 빨간불이 들어온 경고문을 여러 차례 보았다. 보호복으로 전신을 감싼 직원들이 작업 중인 신비한 기계 부품으로 가득 찬 홀도 지나갔다. 이곳은 마치 우주정거장을 연상시킨다. 케이블과 호스로 구불구불하게 감싼, 사람 키 높이의 금속 부품도 보였다. 어느 순간 완제품 장비가 눈앞에 있었다.
거실 크기의 완제품 장비는 흰색 천으로 싸여 있다. 이 장비는 기술의 총집합체다. 공간을 가득 채운 장비는 ASML의 기본 모델이다. 장비의 중량은 45톤(t)이고 가격은 무려 7천만유로다. 이 장비보다 고차원인 모델은 버스 크기, 최상의 모델은 별장 크기에 맞먹는다. 반도체 장비가 클수록 극초소형 마이크로칩을 생산할 수 있다.
현재 반도체 대부분을 아시아에서 생산한다. 전세계 반도체의 약 5분의 1은 대만, 또 다른 5분의 1은 중국에서 생산한다. 유럽 생산량은 8% 정도인데, 유럽연합은 이 비율을 2030년까지 2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수치의 이면에는 복잡다단한 노동분업이 있다. 전세계가 아시아에서 생산한 반도체에 의존하는 것 같지만 전적으로 종속된 것은 아니다. 특히 아시아 생산업체들은 유럽과 일본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장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네덜란드 펠트호번에 있는 반도체 장비 업체 ASML 없이는 전세계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다. ASML 본사 전경. REUTERS


칩 생산은 노동분업
“칩산업은 1980년대부터 글로벌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도이체방크리서치(Deutsche Bank Research)의 기술전문가 헤르만 라프는 말한다. 20개 이상 국가들이 반도체산업의 노동분업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미국, 대만 및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더불어 영국과 독일도 반도체 설계에서 선도적 역할을 한다”고 라프는 설명한다. 미국과 일본, 네덜란드는 반도체산업에 필요한 특수화학품을 공급해왔다. 그리고 베트남, 말레이시아, 중국 및 인도는 반제품 칩의 연결과 테스트, 포장 등에 특화돼 있다. “칩은 생산과정에서 지구를 평균 다섯 바퀴 돈다”고 라프는 말한다.
칩 생산의 입지가 반드시 정치적 결정의 결과물은 아니다. ASML이 펠트호번에 자리잡은 것은 네덜란드 정부의 계획이라기보다 프레드릭 필립스의 결정에 따른 바가 더 크다. 프레드릭 필립스는 1890년 아들 헤라르트 필립스와 함께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전구를 생산했다. 두 부자의 회사는 후일 라디오에서 뢴트겐 장비에 이르기까지 각종 전자기기를 생산하는 필립스그룹으로 성장했다.
필립스그룹은 1984년 에이에스엠아이(ASMI·Advanced Semiconductor Materials International)와 EUV 노광장비 업체를 합작 설립했다. 합작회사는 우선 ASMI 본사 옆 창고에 둥지를 틀었다. 이후 수㎞ 떨어진 이웃 지역 펠트호번으로 옮겼다. 합작회사의 현재 이름은 ASML이다. 펠트호번에서만 ASML 직원 1만7천 명이 일한다. ASML은 고도로 전문화된 최첨단 반도체 제작장비를 생산한다. 그래서 오히려 전세계가 ASML과 유럽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ASML이 납품한 반도체 첨단 장비로 인텔, 삼성 등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에 7㎚ 이하의 미세회로를 새긴다. 반도체칩 안에는 트랜지스터라고 하는 회로 소자가 있다. 1971년 출시된 최초의 상업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인텔 4004’ 회로에는 트랜지스터 2300개가 들어 있었다. 현대적 컴퓨터칩은 트랜지스터 500억 개 이상이 구성됐다. 최소한의 공간에 상상을 초월하는 수의 부품을 조립하려면 물리적 가능성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리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ASML의 최첨단 반도체 장비가 투입된다.
ASML의 시스템반도체 노광장비는 시스템반도체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그려주는 장비이다. 노광장비는 빛의 성질을 이용해 마스크(회로 설계도)에 있는 회로 패턴을 축소해 웨이퍼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노광장비의 성능은 빛의 파장과 렌즈의 개구수(NA)로 결정된다. 파장이 짧고 개구수가 크면 더 미세한 회로를 그릴 수 있다.
 

   
▲ ASML 본사에서 반도체 장비를 가까이에서 보려면 방진모자, 방진복, 장갑, 무릎까지 오는 방진부츠를 순서대로 착용하는 등 엄격한 출입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한다. REUTERS


EUV 노광장비, 정밀기술 요구
ASML의 노광장비는 주석(을 고온으로 녹여 떨어지는) 방울(입자)에 레이저를 타격해 극자외선(EUV)을 발생시킨다. 레이저를 맞은 주석 방울은 순간적으로 폭발 기화하면서 플라스마 상태가 된다. 주석 방울은 초당 5만 회 떨어지는데, 방울마다 연거푸 두 차례씩 레이저로 정교하게 맞춘다. 굉장히 정밀한 기술이 필요하다. 플라스마 상태란 이온화된 가스덩어리 상태를 의미한다. 주석 방울이 순식간에 이온 상태로 변화하는데, 이때 전자는 순간적으로 매우 높은 에너지 준위를 갖게 되고 다시 낮은 에너지 준위로 회귀하면서 전자기파를 방출한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해 EUV 광원을 최종적으로 얻는다.
인텔과 더불어 한국의 삼성과 대만의 TSMC 등 대표적인 칩 생산업체가 신규 반도체 공장을 계획 중이라면, ASML의 노광장비가 필요하다. 인텔이 계획 중인 독일 마그데부르크의 신규 반도체 공장도 마찬가지다. ASML의 로저 다센(58)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마그데부르크 신규 반도체 공장을 위해 30억~40억유로 규모의 리소그래피(실리콘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형성하는 공정) 장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리소그래피 장비 대부분을 인텔의 마그데부르크 반도체 공장에 납품하게 될 곳은 당연히 ASML이다. “ASML의 시장점유율은 90%가 넘는다.”
ASML에는 경쟁업체 두 곳이 있다. 니콘과 캐논이다. 하지만 일본의 두 업체는 ASML과 달리 극소형 칩 구조를 생산하는 반도체 EUV 노광장비를 만들지 못했다. 칩 구조가 소형화할수록 프로세서는 고성능이 되면서 에너지 소비량도 줄어든다. 캐논은 2023년 10월 말 유사한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는데, 그렇다고 캐논이 선두주자 ASML의 시장점유율을 조금이나마 가져올지는 불확실하다.
그렇다면 ASML의 특별한 점은 무엇이며, ASML은 어떻게 다른 업체보다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ASML의 연구·개발 생태계 덕택이다. ASML은 단순히 직원 4만2천 명의 회사가 아니라 납품업체, 파트너사, 대학, 연구소, 지식의 집합체이다.” 경쟁업체 니콘·캐논과 달리, ASML은 광학전문업체도 아니다. “하지만 ASML은 분야별 선도적인 파트너 업체들과 협력한다.” 네덜란드, 이탈리아, 프랑스, 북미, 일본, 독일의 선도적 업체들이 ASML과 긴밀하게 협력한다. 다센 CFO는 특히 트럼프(TRUMPF)와 차이스(Zeiss) 독일 두 업체가 ASML의 주요 협력업체라고 설명한다.
독일 디칭겐에 있는 트럼프는 EUV 생산에 필요한 고성능 레이저를 개발했다. 독일 남서부 중소도시 오베르코헨에 위치한 광학전문업체 차이스의 자회사 중 한 곳(ASML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이 ASML에 EUV 장비의 ‘눈’에 해당하는 광학시스템을 독점적으로 공급한다. EUV 레이저 광원으로부터 반도체 웨이퍼 표면까지 총 11개의 거울이 이용되며, 차이스가 납품한다. 미세한 결함은 빛의 진행 경로에 작용해 이는 반도체 표면 위 회로 패턴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거울 표면을 매끄럽게 연마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세계 전체 칩의 80%가 자사 광학시스템으로 생산된다고 차이스는 자랑스럽게 발표한 바 있다. 차이스는 ASML 반도체 장비에 회사 명칭을 적시하는 유일한 납품업체이기도 하다. ASML 반도체 장비 케이스에는 ‘Optics by ZEISS’라고 적혀 있다.
이로써 칩 생산업체들만 전세계 납품업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슈퍼 을’ 반도체 장비 제작업체 ASML도 특화된 업체의 네트워크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현대적 마이크로칩 같은 복합적인 제품은 노동분업 없이는 생산하기 힘들다.

반도체 자급은 비현실적 논리
다른 업체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정말 의미 있는 목표일까? “완벽한 자급이란 환상에 불과하다”고 기술전문가 라프는 지적한다. 기껏해야 의존도를 조금 줄일 뿐이라는 것이다.
베를린의 독립적 싱크탱크 ‘새로운책임재단’(Stiftung Neue Verant-wortung)에서 반도체 산업과 공급망을 연구하는 얀페테르 클라인한스도 이(완벽한 자급)를 “잘못된 생각”이라고 표현한다. 반도체 공장에 국가지원금을 쏟아붓더라도 납품 공급을 제3국에 의존하는 현실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ASML의 로저 다센 CFO도 ‘반도체 자급’ 혹은 ‘주권 수호’의 노력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생태계는 복잡다단하다. 전문인력과 장비, 그리고 원자재가 필요하다.” 국가나 정부가 이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마련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발생하면서 혁신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반도체 공장에 아무리 세금을 대거 투입해도 독일과 유럽이 의존도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리라는 부정적 결론이 도출된다. 하지만 전세계가 반도체를 공급받으려면 유럽이 필요하다는 것은 긍정적인 대목이다.

ⓒ Die Zeit 2023년 제46호
Chip, Chip, hurra!
번역 김태영 위원

 

콜랴 루트치오 economyinsight@hani.co.kr

<저작권자 © 이코노미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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