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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 독일 ‘예산 대란’에 ‘채무 제동장치’ 효용성 논란

기사승인 [166호] 20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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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CUS] 예산 위기에 직면한 독일

 
독일 헌법은 공공부채가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게 제한하는 ‘채무 제동장치’를 걸어놨다. 이 재정 준칙을 우회하려고 역대 독일 정부는 특별기금 명목으로 예산을 불려왔다. 그런데 최근 독일 헌법재판소가 그런 관행이 위헌이라 판단하면서 독일은 사상 초유의 예산 대란에 직면했다. 결과적으로 독일은 당초 계획보다 엄격하게 예산을 관리할 것으로 보이지만, 채무 제동장치의 효용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크리스티앙 샤바뇌 Christian Chavagneux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독일 정부는 2024~2027년 코로나19 유행 때 쓰지 않은 600억유로를 포함해 총 2120억유로를 기후전환기금으로 쓰기로 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운데)와 슈테판 바일 니더작센주 장관이 2023년 12월31일 독일 북서부 페르덴의 수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REUTERS

이 나라의 공공부채 문제로 유럽 경제가 시끄러워질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독일 얘기다. 믿기 힘들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이 그렇다. 유럽에서는 미래를 준비하려 예산·부채 관련 공동 규정을 손보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 상황에서 유럽 경제 규모 1위인 독일이 연방헌법재판소의 2023년 11월15일 판결로 심각한 예산·부채 위기에 처했다. 독일 연립정부는 한 달간 협상한 끝에 2024년 최종 예산안을 완성했다. 독일이 어쩌다 경제·정치·사법의 난마에 빠지게 됐는지 알아보자.

채무 제동장치, 너무 세게 죈 탓
사태의 시작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 의회는 코로나19 위기 대응에 쓰려고 600억유로(약 86조2천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의결했다. 모두 공공부채였다. 결국 그 돈은 쓸 필요가 없어져 그대로 남았다. 몇 달 뒤 독일 정부는 이 불용 예산을 ‘기후전환기금’(KTF)으로 돌리기로 했다. 기후전환기금 재원은 본래 탄소배출권 판매 수익으로 조성된다. 하지만 그 수익으로 독일이 친환경 전환 사업에 필요한 지출을 전부 감당하기에 부족하던 참이었다. 독일 3당(사회민주당·녹색당·자유민주연합) 연립정부는 2024~2027년 코로나19 유행 때 쓰지 않은 600억유로를 포함해 총 2120억유로를 기후전환기금으로 쓰기로 했다.
연립정부의 예산 전용 계획에 보수 성향인 기독민주연합·기독사회연합(CDU·CSU)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기민련·기사련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 시절에 장기 집권하다 2021년 권력을 상실해 야당이 됐다. 헌법재판소는 야당 편을 들어줬다. 독일 헌재는 한 해에 특정 명목으로 조성한 예산을 다른 해에 다른 명목으로 쓰는 조치가 ‘채무 제동장치’(Schuldenbremse)를 우회하는 행위라며 이를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채무 제동장치는 국가부채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독일 헌법 규정이다.(상자기사 참조)
독일 정부는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처럼 특수한 상황에서 채무 제한 규정의 적용을 면제받고 공공부채를 대폭 늘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빚을 늘릴 권한은 본래 목적과 다른 이유로 몇 년이 넘도록 행사할 수 없다. 독일 연립정부가 600억유로 넘는 예산 공백을 떠안게 된 배경이다. 코로나19 대응에 쓰지 않은 600억유로 가운데 170억유로는 2024년 국정예산으로 쓸 계획이었다. 해법을 찾으려면 연정 내부의 협상이 시급하다.
난관에 빠진 올라프 숄츠 정부가 온전히 책임을 짊어질 수는 없을까? 팬데믹 대응에 쓰려고 조성한 600억유로를 본래 목적과 아무 관련이 없는 용도(열펌프 설치, 반도체 공장 설립 지원금 배분 등)로 쓰기로 한 것은, 연정이 공공부채 제한 규정을 피하려 꾀를 쓴 게 맞다.
하지만 그 계획은 숄츠 총리 머리에서 불쑥 나온 게 아니다. 숄츠 총리는 수십 년 전부터 거의 모든 독일 정부가 고수하던 예산 집행 관행을 따른 것뿐이다. 지금껏 독일이 보인 엄격함은 이 나라가 실제 예산을 짜고 쓰는 방식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 최근 일로 드러났다.

   
▲ 독일 정부가 팬데믹 대응을 위해 마련한 600억유로를 이와 관련 없는 열펌프 설치 등에 쓰기로 한 것은 공공부채 제한 규정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프란치스카 기파이 베를린 부시장(오른쪽)이 2023년 1월6일 히트펌프 제조공장을 방문해 엔지니어와 이야기하고 있다. REUTERS

위선이 가득한 정치판
기후전환기금은 독일 감사원이 최근 보고서에서 파악한 29가지 특별기금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들 기금은 대다수가 정부가 빚내어(국채를 발행해서) 모으는 재정이고 그 금액은 공식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다.
특별기금은 국가재건사업을 위해 1950년대에 처음 조성됐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 뒤에도 통일 비용을 대고, 금융위기와 코로나19의 충격을 막고, 2021년 여름 대규모 홍수를 수습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려 특별기금을 모집했다. 나라가 특수한 위기에 빠질 때마다 독일 정부는 이른바 ‘공공부채에 대한 역사적 적의’를 내려놓고 빚내어 나라 경제를 떠받쳤다.
옳은 대응이었다. 이례적인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 돈을 빌리는 건 적절한 대응이다. 엇박자는 여기서 났다. 독일 지도부는 다른 유럽 나라에 재정건전성을 지켜야 한다며 그때도 훈계를 늘어놓았다. 특별기금에 감춰둔 공공부채가 2022년 말 기준 5220억유로(약 750조2천억원)에 이른다(독일 감사원 추산)는 사실은 꼭꼭 숨겼다. 2023년 필요한 공공재정은 예산안에서 공식 발표한 460억유로를 훌쩍 넘는 1900억유로라는 점도 밝히지 않았다.
독일 정치인, 특히 우파의 주장을 다시 풀이해봐야 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말이다. 자유민주당 소속인 크리스티안 린트너 현 재무장관을 보자. 건전재정을 강조하는 린트너 장관은 2022년 경기안정화와 군비지출 명목의 특별기금으로 각각 2천억유로와 1천억유로를 조달하고, 기후전환기금에 600억유로를 이전하는 방안에 동의했다.
정부 예산 전용 계획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기민련·기사련 소속 하원의원 197명은 집권당일 때 이들 기금 조성에 모두 찬성했다. 그렇게 특별기금 명목으로 넘치게 모은 돈을 쓰지 않고 남겼다. 그리고 이제 와서 정부에 위헌 시비를 거는 것이다. 위선이 가득하다.
그다음 벌어질 일은? 숄츠 총리가 밝힌 대로다. 헌재 위헌 결정으로 “현재 그리고 미래의 독일 정부는 새로운 현실에 처하게 됐다.” 확실한 점은 독일 행정부가 자국 헌법 규정을 우회하는 위선을 벗어던지면 큰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것이다. 변화는 연방정부와 지자체에 모두 찾아올 것이다. 지자체도 예산 전용 관행에 엮여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 자를란트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가 대표적이다.

예산 공백 수습에 나선 연정
연정은 2024년 예산안에서 170억유로 부족분을 메울 해법을 찾으려 한 달간 협상을 벌였다. 사민당과 녹색당은 친환경전환 지출 삭감(기후전환기금 지출 120억유로 삭감)에 동의해야 했다. 그 대신 화석연료 지원금을 줄이고 탄소세 인상폭을 올리자는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세금 인상안에 반대하는 쪽에 선 린트너 장관은 이번 협상에서 한발 양보했다. 사회보험 지출을 깎자는 그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논쟁 끝에 공공지출 삭감에 대한 내각 과반수의 동의를 얻었다.
결과적으로 독일은 당초 계획보다 엄격하게 예산을 관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어리석은 해결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네덜란드 은행 에이비엔암로(ABN Amro)의 크리스토프 부셰 투자부장은 “경제 면에서 재정건전화가 급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프랑스의 대표 협력국인 독일은 필요하지도 않은 허리띠 졸라매기를 해야 하는 부조리한 현실에 갇혔다. 독일에 긴축재정이 불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친환경 전환에 투자가 절실하고, 다른 하나는 경제 기반이 튼튼해서 빚을 더 늘려도 괜찮기 때문이다.
독일은 다른 나라에 견줘 공공부채가 많지 않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80%다. 공식 통계에 넣지 않는 각종 특별기금을 더한 게 그 정도다. 그런 나라가 녹색투자에 제동을 걸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게 구시대적인 재정 준칙 탓이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3년 12월호(제442호)
Le contre-modèle budgétaire allemande
번역 최혜민 위원

 

크리스티앙 샤바뇌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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