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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 고착시킨 중앙은행의 착오

기사승인 [166호] 20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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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꿈틀거리는 일본 경제- ① ‘잃어버린 30년’의 교훈

 

   
▲ REUTERS

잃어버린 30년 딛고 도약하는 일본 경제
일본이 지난 수십 년간 갇혀 있던 장기 침체의 늪에서 서서히 헤어나오고 있다.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물가와 임금이 뛰기 시작했다. 지금 일본 경제는 1990년부터 시작한 ‘잃어버린 30년’ 이후 가장 흥분된 시간을 보내며 30년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경제가 부활한 이유로는 엔화 약세, 일본 중앙은행의 초완화적 통화정책, 글로벌 원자재값 상승 등이 꼽힌다. 비관론도 있다. 일본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저출산과 고령화다. 일본 경제가 뚜렷한 변곡점을 맞이하지만 디플레이션 늪에서 완전히 빠져나올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_편집자

왕리웨이 王力為 왕스위 王石玉 <차이신주간> 기자
 

   
▲ 2023년 5월13일 일본 니가타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앞서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와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이야기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1990년대 거품 붕괴 당시 금융정책 판단 착오로 디플레이션을 심화했다. REUTERS

30년 가깝게 지속된 디플레이션과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가장 커진 이때, 그동안 일본이 겪은 과정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일본은 장기불황을 피할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2013년 ‘아베노믹스’(2012년 12월 일본 총리로 취임한 아베 신조가 시행한 경제정책으로 과감한 금융완화와 재정지출 확대, 경제성장이 주 전략- 편집자)를 추진하기 전까지 거시정책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은 여러 해 동안 일본 정계와 학계에서 연구·토론했던 주요 의제였다.
“일본 정부가 잘못된 정책 판단을 했을 가능성을 논의할 때마다 특정 시기에 다른 정책으로 대응했더라면 일본 경제가 다른 양상을 보였을 것인지 묻게 된다.”
일본 대장성(현 재무성) 대신 관방 참사관(차관보에 해당)을 지낸 이토 다카토시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와 호시 다케오 일본 도쿄대학대학원 경제학과 교수는 2022년 출판한 <번영과 정체: 일본 경제 발전과 전환>(중국 번역본 제목, 원제목 The Japanese Economy, Second Edition) 증보판에서 일본 경제의 성장부터 침체까지 회고했다.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장기 디플레이션에 빠진 일본이 시행한 거시정책을 1987~2012년 시기별로 구분한 뒤 되짚어봤다. 1990~1991년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과도하게 긴축했던 것은 아닐까? 1992~1996년 급증했던 금융업의 부실자산에 금융당국의 감독이 약했던 것은 아닐까? 2001~2006년 실시한 양적완화 정책의 강도가 부족했거나 서둘러 종료했던 것은 아닐까? 2009~2012년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가 부족해 일본이 디플레이션과 저성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세계 최강국 미국과 격차가 계속 벌어진 것은 아닐까?
하지만 관점을 바꿔 보면 일본은 선진경제국 지위를 유지했고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또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고 사회의 안정과 복지를 유지했다. 이와 동시에 고령화에 대응하고 한때 불리했던 국제관계를 관리하는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했고 여러 정책을 훌륭하게 추진했다.

‘저성장-저물가’의 악순환
그런데도 일본의 경험과 교훈에 관한 논의는 대부분 위기에 빠진 과정과 대응을 되짚어보고 최근 중국의 상황과 비교하는 것에 집중됐다. 지금 중국은 어떤가? 세계경제를 이끄는 국가에 의해 경쟁국으로 지목됐고 부동산가격이 급등한 뒤 조정을 받았다. 은행업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자산 질은 격차가 생기고 정부 부채가 늘어나 지속가능성에 우려가 생겼다. 개인소비와 기업투자가 신중해지고, 물가가 하락하고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며, 인구고령화가 진행 중인 중국은 30년 전 일본과 비슷한 도전에 직면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990년대 일본처럼 미국을 추월하지 못했다. 이런 차이는 아직 기회가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최근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한 보고서에서 중국이 현재 부채와 인구, 디플레이션의 도전에 동시에 직면했고 일부 투자자는 중국을 1990년대의 일본과 비교하면서 중국이 ‘부채-디플레이션-1인당 소득 성장 정체’의 악순환에 빠진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최근에 관심받은 노무라연구소의 구자오밍 수석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한 ‘대차대조표 불황’의 개념이기도 하다. 물론 ‘대차대조표 불황’은 대부분 위기가 발생한 뒤 각 분야에서 장기간 디플레이션과 침체가 나타나는 종합적인 결과였다.
모건스탠리는 보고서에서 “일부 투자자는 중국 가계부문에서 대차대조표 불황 현상이 나타났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이런 흐름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한층 더 진전된 정책을 시행해서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고 위험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업계 내부 보고서도 중국 부동산시장이 일본의 거품 붕괴 이후 상황과 일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중국의 가계부문은 현금흐름을 유지해서 과거 일본보다 건전하고 주택가격을 방어하고 있지만 과잉공급을 소화할 여력은 없다. 공급이 넘치고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부채 문제가 폭발한 중국 부동산기업의 상황은 당시 일본과 비슷하다. 대도시 집값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지만 중국 부동산산업은 지난 2~3년 일본 부동산의 극단적인 상황을 겪었다.
일부 지표는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 붕괴할 때와 비슷하다. 모건스탠리의 추산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기업의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0%에 달한다. 부동산기업의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으로 수요 부족과 디플레이션 위험이 늘면 ‘저성장-저물가’의 악순환을 유발할 수 있다.
2008년 3월~2021년 3월 일본은행 총재를 지낸 경제학자 시라카와 마사아키가 얼마 전 중국에서 열린 비공개 좌담회에 참석했다. 일본이 부동산 거품을 처리한 교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그는 “거시경제 차원에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일본 국민은 부동산 리스크를 내버려두면 반드시 경기침체와 저효율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과 일본의 부동산시장에서 리스크가 폭발한 원인은 달라도 부동산 거품이 꺼진 후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위협이 정부가 흐름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과감하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원리는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의 경험을 비춰보면 부동산 관련 모든 금융 리스크가 드러나고 원인을 규명한 다음에 상응하는 행동을 취하겠다는 생각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금융 리스크의 확산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고 위기는 긴박하게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어떤 의미에서 보면 기업은 경제성장과 혁신을 위해 가장 중요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을 잃었다.” 도쿠치 다쓰히토 중국 칭화대학교 공공관리학원 산업발전 및 환경거버넌스 센터(CIDEG) 상임이사 겸 연구원은 “일본이 수십 년 동안 겪은 경험으로 장기 디플레이션에 진입한 후 안정적이고 온건한 인플레이션으로 전환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기간에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었다. 실업률이 상승했고 기업이 투자를 꺼리고 개인은 소비를 줄이고 전반적으로 경제성장에 확신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교훈은 명확하다. 일본의 위기 대응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행동이 느린 것이었다.” 도쿠치 다쓰히토는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자 부동산기업부터 은행까지 모두 책임 소재를 추궁하는 엄격한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문제를 숨기기에 급급한 ‘타조정책’(당면한 현실 문제와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은폐하는 정책)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내부에서 부정부패 문제가 끊이지 않았고, 잘못을 바로잡을 유능하고 권위 있는 인물이 부족했다. 결국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취임한 2001년 뒤부터 필요한 구조개혁을 추진했다.
싱위칭 일본 국립정책연구대학원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위기를 발견하면 과거 일본처럼 진실을 은폐하려는 태도를 경계해야 하고, 위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통화정책을 완화해야 할 때 주저하거나 성급하게 변경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 일본 경제가 30년 가깝게 지속된 디플레이션과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2023년 10월31일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닛케이지수가 표시된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REUTERS

정책 속도에 관한 논란
도쿠치 다쓰히토는 ‘전지적 작가 시점’처럼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면 일본 문제를 2~3년 안에 해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조직과 법률, 인간관계, 문화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일본은 오랜 시간 문제를 처리했고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일본 부동산은 1980년대부터 상승세를 탔고 시간이 지나면서 부동산을 받쳐주는 기본 여건이 부실해졌다. ‘플라자합의’(1985년 9월22일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주요 5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만나 달러화 약세를 유도한다는 데 뜻을 모음)로 엔화 가치가 크게 상승했고 완화적 통화정책과 관대한 금융감독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 닛케이225 지수가 1984~1989년 4배 가깝게 올랐다. 토지가격은 1984~1991년 2배 올랐고 대도시는 상승폭이 더 컸다. 일본의 주류 경제계 인사와 학자들이 플라자합의가 일본 거품 경제의 붕괴를 불러왔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품을 제거하고 주가와 지가의 과도한 상승을 끝내기 위해 일본 중앙은행은 통화긴축 정책을 시작했고, 이 통화정책 기조를 1991년 7월까지 유지했다. 부동산 대출 규제도 강화했다. 1990년 3월, 대장성은 은행의 건축과 부동산, 비은행부문에 제공하는 대출을 제한했다. 비은행부문이란 임대회사와 소비금융회사, 주택금융전문회사 등을 말한다. “이는 2020년 중국 정부가 시행한 대출 제한 정책과 비슷하다.” 대장성과 금융청에서 일했던 전직 관료는 “당시 일본은 ‘지가세’도 도입했다”고 말했다.
이런 정책의 전환은 한때 일본 사회에서 박수를 받았다. 당시 집값이 터무니없이 비쌌기 때문이다. “그 시대 사람들이 고수했던 일종의 신념이었다. 집값이 내려서 평범한 사람도 집을 살 수 있으면 좋은 일이라고 믿었다.” 이토 다카토시와 호시 다케오는 <번영과 정체>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거품을 제거하는 정책이 나오자 일본 주식시장은 1989년 마지막 거래일에 고점을 찍은 후 계속 하락했고 1990년에는 거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지가지수의 고점은 1991년 나타났고 그 후 12년 가까이 계속 하락했다. 2004년이 되자 지가는 고점 대비 8분의 1까지 떨어졌고 2004~2007년 약간 상승했으나 이후 다시 하락해 2012년까지 이어졌다.
주가 하락과 비교하면 지가 하락은 완만했다. 하지만 이토 다카토시는 토지가격지수 측정에 오류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거래가격이 아니라 평가가격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자산가격을 조정했지만 1990년대 초반에는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고 1993년에야 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토 다카토시는 거품이 꺼진 뒤 성장률 하락과 금융시스템 혼란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 반문했다.

일본 중앙은행의 판단 착오
중신건설(中信建設)이 내놓은 보고서는 일본의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거품을 억제하면서 거품 붕괴 과정을 겪게 됐지만, 그 정도와 파급력은 예상 범위를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돌이켜보면 일본 중앙은행은 거품 붕괴가 금융 안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는데도 긴축정책을 지속하는 오류를 범했을 수도 있다.” 이토 다카토시는 <번영과 정체>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도쿠치 다쓰히토는 부동산은 주식과 달라서 가격이 천천히 내려간다고 지적했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아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점차 부동산기업이 무너졌고 주택담보대출을 제공한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에 문제가 생겼다. 그때 일부에서 구제를 호소했지만 국회에서 반대했고 국민도 반대했다. 많은 사람이 국가의 돈으로 부동산을 구제하는 것에 반대했고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었으니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새로운 지가세 법안이 통과된 뒤 몇 년이 지나자 반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때 집값이 무섭게 떨어져서 평범한 사람들의 실질적 이익이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소개한 일본 대장성과 금융청에서 근무했던 전직 관료는 그런 이유로 지가세 부과를 중단했지만 정책과 정부, 금융기관에 국민의 원망이 커졌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2% 목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고 양적완화 정책이 디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에도 부정적이었으며 통화정책을 선택할 때 보수적이던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 총재도 자산가격 안정을 포함한 금융시스템 안정이 중앙은행이 집중해야 하는 목표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최근 중국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시라카와는 금융위기 초기에 구제정책을 제정할 당시 앞으로 다가올 리스크에 정부 각 부처의 판단이 일치하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1991~1992년 일본은 부동산가격 변화가 금융기관에 가져올 영향의 민감도를 분석했고, 정부 재정을 투입해 금융기관의 재정을 보충하지 않으면 일본이 적어도 10년 동안 경제성장 동력을 잃을 것이란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일본 내각에서도 이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훗날 역사가 이를 증명했다.

ⓒ 財新週刊 2023년 제49호
日本經濟30年:教訓與經驗
번역 유인영 위원

 

왕리웨이 economyins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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