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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와 디지털, 확연히 구분 가능할까

기사승인 [169호]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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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AI 시대의 미술

 

이승현 미술사학자
 

   
▲ 애플이 출시한 헤드셋 ‘비전프로’를 쓰면 컴퓨터 화면 속 디지털 공간과 일상에서 접하는 아날로그 공간이 하나의 디지털 디스플레이 안에서 함께 펼쳐진다. 애플 누리집


챗지피티(ChatGPT)가 실용화하면서 인공지능(AI)은 우리 일상에 들어와 있다. 외국인과 통화하면 수신자의 언어로 통역해서 들려주는 휴대전화가 출시됐고, 영문 전자우편을 쓰다보면 실시간으로 오류를 지적해 더 나은 문장으로 고쳐주는 서비스가 지원된다. 세계 최고의 AI 회사 중 하나인 구글 딥마인드의 창립자 무스타파 슐레이만은 AI가 “앞으로 3년 이내에 광범위한 작업에서 인간 수준의 성능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한다. 그렇다면 미술에서 AI의 영향은 어떨까?
미술 현장에서는 이미 이미지 생성형 AI가 그린 그림에 붓칠만 해서 완성하는 작가가 명성을 얻어 미술관 전시에 초청된다. 이처럼 최종 결과물을 그대로 가져다 쓰지는 않더라도 대부분의 작가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차원에서 AI를 사용한다. 말하자면 작가들에게 이미지 생성형 AI는 마치 물감과 붓처럼 작업을 위한 또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이 도구는 양면의 날이 있어 간단한 디자인은 이제 굳이 디자이너를 찾지 않고 바로 AI로 해결한다. 이는 전업 디자이너의 일자리를 위협한다.

애플 ‘비전프로’ 등장의 의미
과연 이미지 생성형 AI는 전업 화가에게 얼마나 위협이 될 수 있을까? 최근에 만난 한 50대 화가는 디지털 세대가 아날로그 감성을 결여한다고 걱정하며 회화 영역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는 입장이었다. 또 다른 50대 미디어 작가는 장비를 들고 나가 촬영을 하느냐 마느냐의 측면에서 분명한 영역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상 이들의 입장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명확한 구분과 아날로그 원본의 실재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 기반한다.
50대 기성세대 작가들에게 아날로그의 현실은 실재하는 반면, 디지털 세계는 가상의 시뮬라크르(실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있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인공물)일 뿐이다. 따라서 복제나 가상이 아닌 원본의 아날로그 세계는 기계가 넘볼 수 없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MZ세대나 스마트폰이 대중화한 이후 태어난 알파세대의 경우 메타버스 같은 디지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아서 아날로그 세계를 향한 향수나 요구가 이전 세대만큼 크지 않다.
얼마 전 애플은 이른바 ‘공간컴퓨터’라는 헤드셋 ‘비전프로’를 출시했다. 이 헤드셋을 쓰면 내가 보는 주변을 배경으로 컴퓨터 화면이 디스플레이된다. 그동안 컴퓨터 화면 속 디지털 공간과 일상에서 접하는 아날로그 공간이 분리돼 있었다면, 이제 그 두 개의 세계가 하나의 디지털 디스플레이 안에서 함께 펼쳐진다. 원본인 아날로그 세계를 가상의 디지털 이미지로 만들어서 보는 것이다. 원본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기계의 접근 가능성이 훨씬 중요함에 따라 이런 디지털화는 더욱 가속될 것이다.
그런데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과연 실재와 가상의 세계로 확연히 구분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색채지각은 우리가 바라보는 물체를 떠나온 빛의 속성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신경계 구조로 결정된다. 우리 경험은 신경계 구조와 얽혀 있어 우리는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야를 체험하며, 세계의 색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색채공간을 체험한다. 그렇다면 우리 신경계가 감각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과 컴퓨터가 입력된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에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지과학뿐 아니라 과학철학자 브뤼노 라투르는 물질과 지식이라는 깔끔한 근대식 이분법에 이의를 제기한다. 라투르는 우리 지식이 대상으로부터의 수많은 지시 연쇄를 통해 가능하며, 각각의 연쇄를 통과하는 재생산으로 창설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에게는 대상이 아니라 지시와 재생산 같은 다양한 동사가 서로 다른 존재양식으로 실재한다. 그리고 2003년 <MIT물리학 연보>에 물리학자 프랭크 윌첵은 “양성자와 중성자의 질량 대부분이 입자 안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에너지로부터 온 것이라면, 이것은 사실상 ‘질량 없는 질량’이며, 결국 우리는 질량을 특성이 아닌 행동의 결과로 간주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고 적었다.
우리는 AI 시대의 도래를 맞이하며 디지털 세계와 아날로그 세계의 분리를 경험하고, 메타버스 같은 디지털 다중우주를 경험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학기술 발달로 우리가 맞이하는 분할은 그런 현상으로서의 세계가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다양한 동사로 이뤄진 존재양식의 분할이다. 라투르나 윌첵에 따르면 실재의 대부분이 명사라기보다는 동사이며, 그 동사의 유형에 따라 존재양식이 달라지면서 다양한 차원의 실재가 존재한다. 우리는 과연 그런 세계를 상상이라도 해본 적이 있었던가? 우리가 맞이해야 하는 실재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분할된 것이다.

세대 간 감성의 분할
기성작가들의 예상과 달리 새로운 세대에게 아날로그 감성은 반드시 갖춰야 할 요건이 아닐 수 있고, 이미 텍스트에서 바로 동영상을 생성하는 기술이 상용화돼 촬영작업은 점차 편집작업으로 대체될 수 있다. 미술뿐 아니라 지금과 같이 기술 발전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향후 AI의 영향을 예상하는 일은 현재의 조건이 아니라 가보지 않은 기술의 도래를 함께 예상해야 하는 이중의 작업이다. 이때 변화하는 기술에 적응해 활용하는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는 전혀 다른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경험해보지 못한, 상상조차 못해본 실재의 분할을 마주한 우리는, 일상에서는 디지털 격차에 따른 바로 이 세대 간의 경험과 감성의 또 다른 단절 내지는 분할에 직면하고 있다.

*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7년을 다니다 작은 금융자문회사를 차렸다. ‘선진’ 금융을 보급한다고 했으나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혼자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호텔에서 2주가량 지낼 정도로 미술에 미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4년 5월호

 

 

이승현 shl219@hanmail.net

<저작권자 © 이코노미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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