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탈모 치료에 뛰어드는 스타트업
수백만 명의 남성이 탈모로 고통받는다. 탈모 치료 시장의 엄청난 수익을 향한 기대감으로 관련 기업들은 탈모를 해결하기 위한 신약과 신제품을 테스트 중이다.
마르쿠스 로베터 Marcus Rohwetter <차이트> 기자
▲ 영국 배우 제이슨 스테이섬은 부유하고 유명한 남성은 탈모일지라도 매력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REUTERS |
부유하고 유명한 남성은 탈모일지라도 여전히 매력적일 수 있다. 영국 윌리엄 왕세자와 미국 배우 빈 디젤, 영국 배우 제이슨 스테이섬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대머리 남성’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대다수 남성에게 탈모는 비보가 아닐 수 없다. 대다수 남성은 탈모를 상쇄할 부나 유명세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부나 유명세가 없더라도 탈모 문제 해결의 희망을 품게 됐다. 관련 업계는 탈모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제품 개발에 전력투구 중이다.
탈모 시장 규모는 엄청나다. 전체 남성의 40%가 35살에 이미 탈모가 상당 수준 진행된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탈모 남성의 비율은 늘어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소리 없이 시작된 탈모는 결국 머리 전체로 진행된다.
▲ 말리아 테라퓨틱스를 공동설립한 생물학자 알렉산더 슈타인카세러(가운데) 교수는 CD83으로 불리는 분자가 탈모 치료에 도움이 되는지를 연구 중이다. 말리아 테라퓨틱스 누리집 |
탈모 치료에 도움되는 분자
영국 컨설팅업체 퍼시스턴스 (Persis-tance)의 추정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적으로 탈모 치료에 연간 90억달러(약 12조원)가 지출되고 있으며, 10년 후에는 240억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예측치도 비슷한 수준이다. 탈모 치료라면 누구나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믿을 수 있으면서 신속하고도 고통 없이 풍성한 머리카락이 나게 해주는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다.
그런데 이런 꿈의 의약품과 의료기기가 조만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요즘 남성들은 자기 외모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다. 뷰티업계는 라이프스타일 의약품이 창출할 엄청난 수익의 꿈에 잔뜩 부풀었다. 화이자나 로슈 등의 글로벌 제약업체들은 여전히 탈모 신약 생산에 뛰어들기를 주저한다. 하지만 스타트업과 소규모 기업은 탈모 치료 시장의 성장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고 있다.
4년 전 에를랑겐대학병원 연구캠퍼스에 설립된 ‘말리아 테라퓨틱스’ (Mallia Therapeutics)도 그런 스타트업 중 하나다. 말리아 테라퓨틱스에서 일하는 생물학자 알렉산더 슈타인카세러(66) 교수도 머리 곳곳이 듬성듬성해 머지않아 자사 고객이 될 전망이다.
슈타인카세러 교수는 CD83으로 불리는 분자가 탈모 치료에 도움이 되는지 연구 중이다. 실제로 CD83 분자는 탈모 치료 이상을 해내는 것으로 보인다. “새 피부에서 새 모낭이 자라는 것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고, 여기에 비즈니스 기회가 있다는 것도 우리는 확신했다.”
파트너들과 함께 회사를 공동 설립한 슈타인카세러 교수는 2021년 50만유로(약 7억5천만원) 상금과 함께 ‘엠포 어워드’(m4 Award) 연구상을 받았다. 수상 기관인 바이에른 주정부는 이 연구상을 통해 의학·생명공학 분야의 유망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슈타인카세러 교수의 말리아 테라퓨틱스는 상금 50만유로를 받아 분자 CD83이 함유된 팅크제(tincture, 생약에 알코올 또는 묽은 알코올을 가해 유효성분을 침출한 액체)로 탈모약을 개발해 상업화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이 외에도 임상실험 지원자 세 명이 4개월 동안 매주 2회 탈모 부위에 개발 중인 탈모약을 발랐다.
슈타인카세러 교수는 스마트폰으로 실험 전후 사진을 보여주면서, 의심할 여지 없이 머리카락이 풍성해졌다고 말했다. “우리는 관련 당국과 임상개발 계획을 논의해 탈모인을 대상으로 첫 대규모 테스트를 시작할 예정이다.” 현재 대규모 테스트에 필요한 팅크제를 생산하고 있으며, 2025년 초 탈모인 150명을 대상으로 안전성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임상실험 지원자들은 이미 넘쳐나고 있다.”
남성의 머리는 상당히 복잡다단하다. 중요한 점은 머리가 빠지는 것이 곧 탈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모발은 성장 주기가 끝나면 빠지는데, 보통 매일 약 100개씩 빠진다. 문제는 두피 모낭이 새로운 모발의 발아를 멈추고 죽는 것이다. 이는 유전적 소인과 더불어 아마도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흔히 주장하는 것처럼 호르몬 양이 아닌) 분해 산물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백인 남성이 유색인 남성보다, 그리고 키가 작은 남성이 키가 큰 남성보다 탈모인 경우가 더 많다.
▲ 전세계에서 모발 이식 비용이 가장 저렴한 튀르키예는 휴가와 탈모 시술을 결합한 프로그램으로 전세계 탈모 환자들을 모객한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한 병원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모발 이식을 하고 있다. REUTERS |
모발 이식이 성공 확률 높아
탈모 치료에 사용하는 성분은 보통 1980년대에 개발한 미녹시딜(Minoxidil)과 1990년대에 개발한 피나스테리드(Finasterid) 등으로, 개발된 지 수십 년이 지났다. 두 성분 중에서 특히 피나스테리드는 발기 부전을 포함한 많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탈모 치료를 위해서는 두 성분 모두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하는데, 그나마도 진행 중인 탈모를 잠깐 멈출 뿐이고 이미 빠진 머리카락을 되살리지는 못한다. 독일 최고 권위의 소비자보호기관 ‘슈티프퉁 바렌테스트’(Stiftung Warentest)는 “한번 빠진 머리는 되돌릴 수 없다”고 간단명료하게 결론을 내리면서 두 성분을 제한적으로만 사용하라고 권고했다. 또한 카페인을 함유한 샴푸는 추천하지 않았다.
탈모 치료제보다는 모발 이식이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 축구 감독 위르겐 클로프은 몇 년 전 모발 이식 수술을 받았다고 공개한 몇 안 되는 유명인 중 한 명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모발 이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공개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다.
모발 이식을 위해 탈모 부분에 활성 모낭을 심는다. 전세계적으로 탈모 치료 산업의 큰 비율을 모발 이식이 차지한다. 모발 이식 비용은 캐나다(평균 1만7500달러)가 제일 비싸고, 튀르키예(2700달러)가 가장 저렴하다. 튀르키예의 고급 ‘올인클루시브 탈모클리닉’들은 휴가와 탈모 시술을 결합한 프로그램으로 전세계 탈모 환자들을 모객한다. 그러나 모발 이식도 영구적 해결책은 아니며, 이식 과정에서 피를 많이 흘릴 수도 있다.
더블린에 있는 아일랜드 제약업체 ‘코스모 파마슈티컬스’(Cosmo Pharmaceuticals)의 계획대로라면, 모발 이식 수술은 머지않아 필요 없어질 것이다. 현재 코스모는 미국, 폴란드, 조지아, 독일의 피부 클리닉에서 남성 1500명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실험대상자 1500명은 클라스코테론(Clascoterone) 성분의 팅크제를 사용한다. 미국에서 지금까지 여드름 치료제 성분으로 승인된 클라스코테론은 새로운 모발을 자라게 하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얼굴 여드름과 탈모 모두 호르몬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코스모는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새로운 메커니즘 후보 성분을 발견했다”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코스모는 클라스코테론이 최종 테스트 단계를 거쳐 2년 후 미국과 유럽에서 발모제로 승인되기를 기대한다. 탈모 신약은 ‘브리줄라’(Breezula)라는 이름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다이애나 하버트 코스모 매니저는 2023년 안전성 테스트를 시작할 무렵, “글로벌 탈모약 시장은 엄청난 규모지만 공급이 아주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스모는 몇 주 전 탈모 신약의 미국 내 예상 가격대를 발표했다. 신약 브리줄라의 약국 가격은 “다른 라이프스타일 의약품 가격과 비슷한 수준”으로, 한 달 분량이 75달러에서 150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가장 각광받는 사업은 라이프스타일 의약품이다. 편리한 탈모 방지법을 찾는 연구가 지금 다시 활발하게 진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련 업계는 많은 사람이 풍성한 머리를 원하며, 이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 의향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탈모 신약 개발 러시는 체중 감량 주사 오젬픽(Ozempic)과 위고비(Wegovy)가 촉발한 측면이 있다. 체중 감량 주사를 맞으면 식이요법이나 운동보다 체중을 더 빨리 감량할 수 있다. 덴마크 제약업체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는 체중 감량 주사로 큰 수익을 남겼고, 그 덕에 2023년 유럽 시총 1위 기업에 등극하기도 했다.
원래 당뇨병 치료를 위해 개발됐던 클라스코테론 성분이 비만 치료에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전세계적으로 열풍이 불었다. 독일 연방의약품의료기기연구소는 2024년 1월 “클라스코테론 당뇨 치료제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고 확인했다. 사람들이 뱃살을 빼기 위해 너도나도 클라스코테론 주사를 맞으면서, 정작 당뇨병 환자들은 제때 당뇨 주사를 맞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라이프스타일 의약품은 의료 차원이 아닌 개인의 선택 문제로 간주된다. 독일에서 미용 목적의 치료비는 의료보험으로 부담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한다. ‘모발 성장 촉진제’와 마찬가지로 체중 감량 보조제도 미용 목적의 치료로 간주돼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위해 투자하고 싶은 사람은 스스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취지다. 물론 이 규정의 취지를 납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이오스템(Niostem)의 탈모 치료 디바이스 가격은 990유로(약 148만원)다. 990유로는 조기 구매자를 위한 특가로, 조만간 정가 1290유로를 내야 한다. 이 디바이스는 머리에 쓰는 연회색 플라스틱 모자 형태다. 독일 쾰른의 공유오피스에 자리잡은 나이오스템 본사를 방문한 짧은 시간 동안, 택배기사들이 소포 6개 정도를 들고 나갔다. 나이오스템 디바이스를 주문한 첫 고객들에게 배송될 제품이었다.
캡 안쪽에는 동전 크기 전극센서 11개가 스프링 접촉 방식으로 장착돼 있다. 디바이스를 머리에 쓰면 전극센서들이 짧게 진동한다. 나이오스템 공동 창업자 에밀 알리프(31)는 “이 진동은 정상 작동을 시작했다고 고객에게 알리는 신호다. 정상 작동 중에 고객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 탈모 치료제보다는 모발 이식이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 축구 감독 위르겐 클로프는 모발 이식 수술을 받았다고 공개한 몇 안 되는 유명인 중 한 명이다. REUTERS |
탈모 치료 디바이스의 테슬라?
풍성한 흑발의 알리프가 스마트폰을 쳐다본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전극센서들이 탑재된 디바이스의 두피 접촉면이 선으로 연결된 모습이 보인다. 접촉면은 처음에는 붉은색으로 깜빡이기 시작하다가 이후 녹색 불이 들어온다. 전류가 제대로 흐르고 있으며, 모든 것이 정상 작동 중이라는 뜻이다.
“나이오스템은 탈모 치료 디바이스의 테슬라”라고 알리프는 강조했다. 나이오스템의 디바이스는 약물이나 부작용 없이 전용 앱으로 제어할 수 있는 기술적 솔루션이다. 투자은행가였던 알리프는 쾰른의 막스플랑크 노화생물학연구소에서 모발 줄기세포 연구를 수행했던 세포생물학자와 3년 전 팀을 결성했다. 나이오스템 디바이스를 착용하면 두피를 통해 흐르는 전류가 줄기세포를 자극해 두꺼운 모발이 자란다. 나이오스템 디바이스는 1회 30분 정도, 일주일에 여러 차례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알리프는 탈모 치료 디바이스를 근육 만들기에 비유한다. “허리 통증을 없애려면 헬스장에 일주일에 한 번만 가서는 안 된다.” 나이오스템 디바이스 주문자는 이미 2천 명이 넘었으며, 주문 물량은 배송을 앞두고 있다. 연말에 미래 성장을 위한 자금 조달 목적으로 투자자들과의 투자 회의도 열릴 예정이다.
하지만 말리아 테라퓨틱스, 코스모 파마슈티컬스, 나이오스템 등 세 회사가 선보인 탈모 치료제 및 치료 기기가 정말 효과가 있을까? 유전성 탈모의 의학적 명칭인 안드로겐성 탈모증을 치료할 방법이 별도로 있는 것일까?
<차이트> 기자는 독일 피부과학회의 게르하르트 루츠 교수에게 세 업체가 인터넷에 공개한 탈모 치료 방식을 공정하게 평가해달라고 요청했다. 루츠 교수는 피부과 전문의로, 모발 치료 전문가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모발 문제를 연구하고 강의해왔다.
말리아 테라퓨틱스의 상처 치유 분자 성분에 대해 루츠 교수는 “상처 치유의 맥락에서 탈모 치료 효과는 혁신적이다. 다만 CD83 분자가 어떻게 모발 성장을 촉진하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임상연구가 필요하다.”
코스모의 여드름 치료제 용도 변경 시도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접근 방식이다. 이 성분이 남성 탈모증을 개선하고 모낭을 재생한다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루츠 교수는 나이오스템의 디바이스에 대해서는 이렇게 지적한다. “회사 누리집에는 이 디바이스가 실제로 얼마나 많은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실험했는지 나와 있지 않다. 기본적으로는 누리집에 명시된 결과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임상진행 사진도 기록돼 있어야 하며, 소비자에게 임상 진행 상황을 명확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과거 탈모인 시선 지금과 달라
이론상 효과가 있거나 실험실에서 성공했더라도, 실제로는 여러 다양한 이유로 실패할 수 있다. 제약업계에서는 유망한 신약 후보 10건 중 1건만이 실제로 상업화에 성공한다. 의료품 승인이 필요 없는 나이오스템 전기 캡의 경우 시장 출시까지 장벽이 훨씬 낮다. 하지만 시장에 쉽게 출시됐다고 해서 해당 의료기기의 효능이 반드시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탈모제와 탈모 치료 기기 모두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심란해할 필요는 없다. 영국 리즈베킷대학의 한 사회심리학자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과거에는 탈모인들을 향한 주위의 시선이 지금과는 확연히 달랐다.
고대 이집트 벽화나 17세기 이후 유럽 회화에서도 대머리 남성은 단골 소재였다. 부처, 일본 칠복신 중 하나로 알려진 포대(Hotei), 기독교 성직자 소프로니우스 히에로니무스도 대머리로 묘사됐다. 지난 4500년 동안 탈모를 치료해야 한다고 인식한 정황은 없다. 그랬던 탈모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은 불과 수십 년 전 대중매체와 텔레비전 등장 이후부터다.
ⓒ Die Zeit 2024년 제26호
An den Grenzen des Wachstums
번역 김태영 위원
마르쿠스 로베터 economyinsigh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