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희소성 앞세워 가격 거품 피로감·소비위축에 찬바람

기사승인 [172호] 2024.08.01  

공유
default_news_ad1

- [TREND] 열기 식은 운동화 리셀 열풍

 
얼마 전만 해도 운동화 애호가들은 이지(Yeezy)나 에어 조던 같은 유명 모델을 구매하기 위해 매장 앞에서 밤을 새웠다. 그런데 최근 운동화 리셀(되팔기) 가격이 갑자기 하락하고 있다.


틸로 노이만 Thilo Neumann 〈슈피겔〉 기자
 

   
▲ 파비안 아르놀트는 2019년 독일어권 국가에서 희귀 운동화를 재판매하는 브랜드 하이페니즈를 창업해 대박을 터뜨렸다. 링크드인


9년 전, 파비안 아르놀트(25)는 바이에른의 란츠베르크 암 레히를 맨발로 걸으며 운동화로 돈을 많이 벌 수 있음을 깨달았다. 당시 17살인 아르놀트가 맨발이었던 이유는 시내 중심가에서 한 남자가 다가와 그의 신발을 가리키며 당장 사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아르놀트에게 생일 선물로 갈색과 회색이 섞인 운동화를 사줬다. 아디다스와 래퍼 카니예 웨스트가 공동으로 작업해 만든 이지(카니예 웨스트의 별명) 라인이었다.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모델로 당시 소매가는 200유로(약 30만원)였다. 하지만 아르놀트가 길에서 만난 낯선 남자는 500유로를 제시했다. 땀에 젖은 신발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아르놀트는 즉시 이 거래를 받아들였고 그 자리에서 신발을 벗어 주었다.
 

   
▲ 래퍼 카니예 웨스트가 2016년 2월 뉴욕 패션 주간을 맞아 아디다스와 컬래버레이션한 이지 시즌3 제품들을 선보이기에 앞서 참석자들 앞에서 춤을 추고 있다. REUTERS

골드러시 같은 분위기
아르놀트(신발 사이즈 270)는 “그때 처음으로 운동화가 얼마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것이 그가 수십억달러 규모의 리셀(되팔기) 사업에 처음 발을 디딘 순간이었다. 당시 운동화 리셀 시장은 정점을 찍고 있었다. 리셀 시장은 매장에서 품절된 모델을 필사적으로 찾아다니며 어떤 금액이라도 지불할 준비가 돼 있는 마니아들을 상대로 했다.
아르놀트는 10대 시절부터 이런 환경에 익숙했다. 그는 수집가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을 손에 넣기 위해 찾아다녔고, 이를 이베이(eBay)에서 판매해 큰 수익을 올렸다. 학교를 졸업한 직후, 그는 동업자 두 명과 함께 독일어권 국가에서 희귀 운동화를 재판매하는 브랜드 하이페니즈(Hypeneedz)를 창업했다.
2019년 뮌헨에 첫 번째 가게를 열었을 때, “족히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문 밖에 몰려 공무원들이 출동했다고 아르놀트는 설명했다. 그는 사업하기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 있었던 것이다. 운동화는 숭배의 대상이자 사회적 지위의 상징, 그리고 투자 대상으로 여겨졌다. 골드러시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였다.
그로부터 약 5년이 지난 2024년 5월의 화창한 월요일, 아르놀트는 헐렁한 바지에 빨간색과 흰색이 섞인 농구화를 신고 뮌헨의 하이페니즈 매장 앞 한산한 광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일반 운동화 사업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의 회사는 지난 회계연도에 수백만유로의 매출을 올렸을 만큼 잘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달간 신발 중고판매 가격이 대부분 하락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중고 시장에서 소매가보다 훨씬 높은 값에 팔리던 일부 모델은 시장가치가 50% 이상 하락했다. “언젠가 분명 시장이 회복될 것”이라고 아르놀트는 말했다.
미국 투자은행 티디코웬(TD Cowen)의 애널리스트들이 추산한 2022년 운동화 중고판매 시장 규모는 60억달러였다. 2030년에는 그보다 5배 증가해 30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인 전망과 달리, 최근 몇 달 동안 운동화 시장에 위기가 닥쳤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일부 모델은 더 이상 소매점에서 판매하지 않는다. ‘운동화 시장의 붕괴’는 거품이 터졌다고 볼 수 있다. 단기간에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에 몰려들었던 초기 리셀러들은 업계를 떠났다.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이두박근처럼 부풀어 올랐던 시장은 이제 끝난 걸까? 어떻게 운동화는 그렇게 빨리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가 금방 시들해진걸까?
유행 이후 열풍이 사그라든 것은 운동화만이 아니다. 1630년대에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파동’이 벌어졌다. 투기 거품의 첫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튤립 구근 하나가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좋은 지역의 집값과 맞먹는 가격에 거래됐다. 하지만 1637년 튤립 경매에서 높아진 가격을 지불할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자 시장은 점차 붕괴됐다.
 

   
▲ 2005년 나이키는 ‘SB 덩크’ 모델 시리즈 중 하나를 한정판으로 생산해 뉴욕에서만 판매했는데, 구매를 위해 야영하던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뉴욕포스트>의 1면 기사 제목은 ‘운동화 폭동’이었다. 뉴욕포스트 누리집

운동화계 ‘교황’
이제는 운동화가 그 자리를 꿰찼다. 투기 대상이 되기까지 비교적 긴 여정이었다. 고무 밑창이 달린 최초의 운동화는 아마도 19세기 중반에 생산됐을 것이다. 1917년 미국의 컨버스(Converse)가 올스타 농구화를 생산했을 때 최초로 대량생산이 이뤄졌다. 이 모델은 현재까지 10억 켤레 이상 판매됐다. 이후 아디다스(1949)와 나이키(1964)가 합류해 새로운 실루엣, 쿠션 시스템, 컬러 패턴을 개발했다. 그럼에도 운동화는 그저 운동화일 뿐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1984년 미국 회사인 나이키는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과 계약하고, 그를 위한 혁신적인 제품 라인을 만들었다. 신제품은 기능뿐만 아니라 미적으로도 뛰어나야 했다. 영리한 마케팅 캠페인과 더불어 조던이 세계 최고 선수로 급부상하면서 운동화를 중심으로 컬트가 형성됐다.
그보다 몇 년 앞서 미국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힙합과 브레이크 댄스는 다른 서브컬처와 마찬가지로 의류를 통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런디엠시(Run DMC)의 래퍼들은 아디다스 운동복과 흰색 운동화를 트레이드마크로 삼았고, 독일 헤르초게나우라흐(아이다스와 퓨마 본사가 있는 도시)의 운동복 회사에 관해 노래했다. 래퍼 엘엘 쿨 제이(LL Cool J)는 앨범 커버에서 나이키의 조던 신발을 신고 포즈를 취했다.
미국에서 동쪽으로 수천㎞ 떨어진 독일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에서 당시 고등학생이던 히크메트 주괴어(신발 사이즈 265~270)는 1987년 음악 채널 〈엠티브이〉(MTV)를 통해 독일 거실에 등장한 래퍼들처럼 옷을 입고 싶었다. “음악도 멋지지만 옷이 더 멋지다고 생각했다”고 1973년생인 주괴어가 말했다. 당시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운동화 중 상당수는 독일 상점에서 구할 수 없었다. 그는 미군 기지 앞에 서 있다가 군인과 그 가족을 설득해 미국 시민들만 이용할 수 있는 군부대 상점에서 신발을 샀다.
이것이 열정의 시작이었다. 오늘날 주괴어는 업계에서 ‘운동화계 교황’으로 불린다. 2000년대 초, 그는 베를린에 솔박스(Solebox)라는 전문매장을 열었다. 이곳은 국내외 운동화 팬들이 찾는 장소가 됐으며 컬트적인 지위를 얻었다.
업계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도 그를 알게 됐다. 아디다스와 뉴발란스 같은 브랜드는 주괴어와 함께 운동화 특별 모델을 개발하고, 패션 에이전시들은 그의 가게에 직원을 보내 현재 고객에게 인기 있는 제품이 무엇인지 조사한다.
블로그와 커뮤니티는 업계에서 ‘릴리스’(Release)라고 불리는 판매 개시 정보가 알려지는 공간이다.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을 사는 방법은 온라인상에서 퍼진다. 제조업체들은 점점 더 많은 타깃층이 신발을 스포츠용품이 아닌 라이프스타일 상품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응에 나섰다. 신제품 개발을 줄이고, 기존 디자인을 새로운 색상과 소재로 재출시하는 이른바 ‘레트로 버전’에 집중했다. 예를 들어, 나이키의 ‘에어조던1’은 지난 25년 동안 여러 가지 색으로 수없이 재출시됐다. 때로는 매우 적은 수량이 한정판으로 나오면서 가격이 점점 올라갔고 고객들은 이에 부응했다.
그러자 시장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2005년 나이키는 ‘SB 덩크’ 모델 시리즈 중 하나를 한정판으로 150켤레만 생산했다. 이 회색 신발은 오직 뉴욕에서만 살 수 있었다. 추운 2월 운동화 팬들은 해당 신발을 사기 위해 며칠 동안 맨해튼 매장 앞에서 야영을 했다. 야영하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경찰이 개입했고 곧 폭동이 일어났다. 기다리던 사람들은 야구 방망이와 마체테(정글도)로 무장했다. 다음날 미국 타블로이드지 〈뉴욕포스트〉 1면 기사 제목은 ‘운동화 폭동’이었다.
이른바 캠프아웃(Campouts), 즉 운동화 팬들이 인기 있는 모델을 가장 먼저 구매하기 위해 매장 앞에서 밤을 새우는 현상은 이때부터 일상적인 일이 됐고, 뉴욕에서와 마찬가지로 항상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 2015년 2월 뉴욕 패션 주간에 한 모델이 아디다스와 래퍼 카니예 웨스트가 공동 개발한 이지부스트 750을 선보이고 있다. REUTERS


   
▲ 런디엠시(Run DMC)의 래퍼들은 아디다스의 운동복과 흰색 운동화를 트레이드마크로 삼았고 아디다스와 컬래버레이션을 한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 1917년 미국의 컨버스가 ‘올스타 농구화’를 생산하면서 최초로 운동화 대량생산이 이뤄졌다. 슈피겔

봇으로 입도선매
히크메트 주괴어는 2010년 어느 날 저녁, 집에서 받은 전화를 아직도 기억한다. “가게 밖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니 빨리 와주세요!” 주괴어는 아디다스와 협업해 디자인한 신발을 다음날 선보일 예정이었다. “도착했을 때 가게 밖에 200~300명이 몰려와 있었고 경찰차도 있었다. 큰일 났다고만 생각했다.” 기다리던 군중에게 해산하지 않으면 판매를 취소하겠다고 협박하고 나서야 상황이 진정됐다. 주괴어는 “먹이를 주는 손은 물지 않는다는 말이 고객에게 통한 것”이라고 말했다.
적은 판매량과 폭발적인 수요가 중고 시장, 즉 리셀 시장에 전성기를 가져왔다. 특히 인기가 많은 운동화가 출시되면 흰색 밴을 탄 중간 상인이 신발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지폐를 흔들며 어렵게 운동화를 손에 넣은 마니아들한테 곧장 비싼 가격을 주고 운동화를 되사곤 했다. 그러고 나서 리셀러는 소매 상인이나 개인 고객에게 쉽게 신발을 다시 팔아 이익을 챙겼다. 중고 시장이 커질수록 조달 방법은 더욱 교묘해졌다. 이른바 ‘백도어’ 거래가 성행했는데, 상점 주인이 한정판 운동화 물량의 일부를 중간 상인에게 소매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직접 판매했고 거래는 현금으로 이뤄졌다. 이런 방식은 세무 당국으로 하여금 추가 소득을 알 수 없게 한다.
다른 리셀러들은 물량을 온라인으로 빼돌린다. 이들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봇(Bot)을 이용한다. 소매업체가 고객당 주문 수량을 한 켤레로 제한해도 소용없다. 봇을 이용하면 판매 시작 후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소매업체 웹사이트에서 신발 수십 켤레를 주문할 수 있다. 주문할 때마다 봇은 배송 주소 같은 세부 정보를 변경해 속임수를 들키지 않게 한다. 이는 운동화 애호가들이 소매가로 운동화를 구매할 기회를 박탈하고 때로는 중고 시장에서 엄청 높은 금액을 지불하게 한다.
협업으로 제작된 운동화는 특히 수익성이 높다. 업계 용어로 ‘컬래버레이션’이라고 부르며, 운동화 제조업체와 유명 디자이너 또는 아티스트가 함께 운동화를 만든다. 가장 인기 있는 제품 중엔 미국 래퍼 카니예 웨스트와 나이키가 처음 개발하고, 2015년부터 아디다스가 독점적으로 출시한 이지(Yeezy) 운동화가 있다. 하이페니즈의 창업자 아르놀트가 200유로에 산 이 운동화를 500유로를 받고 판 것은 당시로선 매우 저렴한 가격이었다. 같은 시기에 해당 모델의 새 상품은 3천유로 이상에 거래되기도 했다.
현재 아르놀트의 뮌헨 매장에는 2014년 나이키를 위해 카니예 웨스트가 디자인한 밝은 빨간색 이지 신발이 진열장에 놓여 있다. 출시 가격이 250달러였던 이 신발은 현재 1만6천유로(약 2400만원)다. 카니예 웨스트는 반유대주의 발언 때문에 마지막 협업 파트너였던 아디다스와 결별했는데, 이런 스캔들에도 이지 라인의 인기는 꺾이지 않았다고 아르놀트는 전했다.
다른 인기 컬렉션으로는 래퍼 트래비스 스콧이 나이키와 함께 만든 신발이나 지금은 고인이 된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의 시리즈가 있다. 아블로는 나이키의 ‘에어조던1’을 재해석해 내놓았는데, 2017년 매장에서 190달러였던 이 제품들은 현재 중고 시장에서 2500% 이상 오른 약 5천달러에 거래된다.
 

   
▲ 사진작가인 율리아 쇼이어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운동화 컬렉터 중 한 명이지만, 근거나 문화적 연관성 없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운동화 열풍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슈피겔>

위조품 검사
‘운동화계 교황’인 주괴어는 이런 수치에 손을 내젓는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수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예전에는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은 신발을 신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누가 가장 비싼 신발을 신느냐에만 모두 관심이 있다.” 그는 이런 사고 방식으로 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3년에 그는 운동화 소매유통 체인인 스나입스(Snipes)에 솔박스를 매각했고, 이후 독자적인 운동화 브랜드 손라(Sonra)를 창업했다.
오늘날 시장에는 위조품이 넘쳐난다.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외곽의 허름한 창고에서 막스 쇼넨베르크(33, 신발 사이즈 255)는 모조품 운동화를 분별하기 위해 애썼다. “짝퉁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어서, 이 일이 점점 더 어렵다.” 시끄러운 힙합 음악 속에서 그가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했다. 쇼넨베르크는 세계 최대 운동화 온라인 플랫폼 중 하나인 스탁엑스(StockX)에서 검증과 품질보증팀을 이끈다. 미국 회사인 스탁엑스는 중개자 역할을 한다. 판매자와 잠재적 구매자가 스탁엑스를 통해 가격에 합의하면 판매자는 네덜란드에 있는 검증센터로 신발을 보낸다. 쇼넨베르크와 그의 동료들은 수수료를 받고 상품을 검사한 다음 이상이 없으면 구매자에게 상품을 보낸다.
책상 위에 두 개의 신발 상자가 놓여 있다. 겉에 붙은 라벨을 보면, 둘 다 똑같은 나이키 모델이다. 하지만 그중 하나만 진품이다. 쇼넨베르크는 운동화 한 켤레를 집어 들더니 냄새를 맡고 가죽을 만져보고 끈을 검사하고 밑창의 잘린 모양, 색상, 구멍 등을 비교했다. “평균적으로 약 50단계의 테스트를 거친다.” 그는 두 상자를 나란히 놓고 모델명, 신발 사이즈, 생산지가 표시된 라벨을 보여줬다. 라벨의 글꼴, 글자 간격, 글자 두께가 모두 달랐다.
쇼넨베르크가 “이건 가짜”라며 오른쪽 신발을 톡톡 쳤다. 어떻게 가짜를 분별할까? 그는 모조품을 가려내는 여러 방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고는 “제발 기사에 쓰지는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이 부탁은 그와 만나는 도중에 수십 번 반복됐다. 검사 도구 중 일부는 공개하지 않았다.
‘하루에 운동화 몇 켤레를 검사하는가? 그리고 평균적으로 얼마나 자주 모조품이 발견되는가?’라는 질문에 허리춤에 무전기를 찬 쇼넨베르크가 “회사 기밀”이라고 말했다. 스탁엑스는 2023년에 총 8천만달러가 넘는 분량의 운동화를 잠재적 구매자에게 보내지 않았다. 위조품이라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쇼넨베르크는 새로운 모델이 계속 출시되기에 신입 직원을 교육하는 데도 몇 달이 걸리며, “우리도 계속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장 관계자에 따르면 과거에는 아시아 생산 공장에서 단기간에 수백, 수천 개의 위조품이 만들어졌다. 오늘날에는 기술자가 1~2주를 들여 값이 나가는 위조품을 만든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이득이 더 크기 때문이다. 동시에 위조품의 대량생산도 계속된다.
위조품이 소비자들의 신뢰를 떨어트렸을까? 이것이 가격 하락의 원인일까? 뮌헨에 본사를 둔 리셀러 하이페니즈의 공동대표 아르놀트는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티셔츠와 후드티도 판매한다. 그럼에도 그는 시장이 침체되는 시나리오에 피곤한 미소를 지었다. “단지 우리가 기복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도가 지나친 신발 제조사들
2~3년 전 가격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리셀러만큼이나 운동화 인기를 이용해 수익을 올리고 싶었던 운동화 제조업체는 생산량을 늘렸다. 하지만 이는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나이키 같은 브랜드는 도가 지나쳤다.” 여기에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소비 심리가 위축된 상황도 판매 부진에 한몫했다.
예전에는 소매가가 200유로인 조던 모델을 600유로에 되팔 수 있었지만 지금은 350유로 정도에 거래된다. 고객이 하이페니즈에서 주문하는 평균 금액은 380유로에서 260유로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좋은 일이다. 훨씬 많은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더 많은 사람이 신발을 구입할 수 있다.” 아르놀트와 같은 리셀러는 판매량 증가로 손실의 상당 부분을 메웠다.
소매업체가 볼 때 현재 운동화 시장의 주구매층은 “역대 최고”라고 아르놀트는 평가했다. 그들은 젊고, 주로 남성이며, 소비할 준비가 돼 있고, “여러 강력한 계기 덕분에 쉽게 운동화에 빠진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10대 청소년 두 명이 매장으로 들어왔다. 배기 바지를 입고 값비싼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둘 다 진주 목걸이를 했다. 소년들은 진열된 신발 밑창에 있는 정보무늬(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해 하이페니즈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했다. 이는 고객이 매일 달라지는 신발 가격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요즘에는 무엇보다 소셜미디어가 구매를 자극한다. “인스타그램에서 괜찮은 사람이 괜찮은 신발을 신고 있으면, 해당 신발의 인기가 올라간다.” 인플루언서 킴 카다시안이 인스타그램에 분홍색 나이키 ‘에어맥스95’를 신은 사진을 올렸는데, 15분 만에 이 모델의 온라인 검색량이 2400%나 증가했다고 한다.
율리아 쇼이어러(42)는 이렇게 트렌드에 빠르게 반응하는 사람은 주로 “과열된 인기를 좇는 젊은층”이라고 지적했다. “그들은 운동화 문화를 주도하지 않지만 부모를 따라 매장을 돌아다니며 신발을 사는 주요 소비자다.”
베를린 출신 사진작가 쇼이어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컬렉터 중 한 명이다. 그가 지난 25년 동안 모은 운동화는 1천 켤레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양이 많으면 수를 세기가 어렵다. 그리고 수집품도 계속 바뀐다.” 운동화 수집 세계에서 그는 ‘스니커퀸’으로 통한다. 아디다스는 그의 로고가 새겨진 특별 모델을 제작하기도 했다.

운동화의 사회적 맥락
쇼이어러를 이끄는 원동력은 맹목적인 수집 욕구가 아니라 “운동화의 사회·문화적 맥락과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향한 관심이다. 그의 컬렉션 중 약 3분의 1은 1992년 이전에 생산된 것으로, 더는 신을 수 없고 밑창에 구멍이 나거나 가죽이 갈라진 경우가 많다. 쇼이어러는 2024년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운동화 박물관 전시회에서 수집품 여러 개를 전시하기도 했다. 그는 블로그에 운동화에 대한 사랑과 모델 하나하나의 역사를 써서 올린다. “운동화 문화는 오랫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 쇼이어러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갖는다. “운동화와 관련된 이야기는 오로지 소비와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전부다.”
아무런 근거나 문화적 연관성 없이, “대부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운동화 열풍”을 그는 반기지 않는다. 쇼이어러가 150유로 이상을 주고 운동화를 구매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Der Spiegel 2024년 제25호
Ist der Sneaker-Hype vorbei?
번역 이상익 위원

 

틸로 노이만 economyinsight@hani.co.kr

<저작권자 © 이코노미인사이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