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NVIRONMENT] 위기의 프랑스 양봉산업
유럽에서 꿀이 꿀로 인정받으려면 세세한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 까다로운 유럽 시장을 파고든 가짜 꿀이 꿀 가격을 무너뜨리고 있다. 프랑스 양봉산업이 위기에 봉착했다.
안느 도쿠아 Anne Dhoquois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가짜 꿀이 유럽 시장을 파고들면서 프랑스 양봉산업이 위기에 처했다. 파리 근교의 한 양봉농가에서 양봉업자가 벌집 틀을 들고 있다. REUTERS |
꿀 진열대가 텅 비었다. 2024년 1월 말부터 프랑스 영세농업인연합회가 행동을 벌인 결과다. 영세농업인연합회는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수입산 꿀을 없앴다. 사람들이 느낀 충격과 경각심은 컸다. 수입 꿀은 모든 종류를 취급했기 때문이다. 아카시아꿀, 밤꿀, 피나무꿀, 라벤더꿀, 산꿀까지. 꿀벌이 꿀을 따러 가는 꽃이나 나무에 따라 맛과 색이 제각각이다.
2001년 유럽연합(EU)은 식품 투명성에 관한 지침에서 꿀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꿀은 서양종 꿀벌이 밀원식물에서 채집한 당원을 꿀벌 특유의 분비물과 결합하고 이를 벌집 속에 놓아 탈수, 숙성한 천연 당분이다.”
그런데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꿀’이 무더기로 유럽 국경을 넘어온다. 에티엔 브뤼노 유럽 농업협동조합 코파코제카(Copa-Cogeca) 산하 양봉조합 부위원장이 “유럽에서 가짜가 가장 많은 식품이 꿀”이라고 말할 정도다.
가장 큰 문제는 중국산과 튀르키예산이다. 두 나라의 공장에서는 글루코스, 프럭토스(과당), 말토스와 같은 당분과 글루코닉산, 다른 꽃 꽃가루(제품 검사에서 꽃가루로 밀원식물을 파악한다)를 섞거나 (쌀, 밀, 옥수수 등에서 얻은) 곡물 시럽에 희석한 ‘가공 꿀’을 만든다.
‘아침 식사’ 지침
꿀을 가공하는 목적은 낮은 비용으로 대량생산하기 위해서다. 양심 없는 상품포장업체가 1㎏당 1.50유로(약 2200원)에 산 꿀은 대형유통업체에서 소비자에게 한 통에 3~4유로에 판매된다. 프랑스 양봉가가 경쟁할 수 없는 가격이다. 프랑스 전국양봉산업협회(UNAF)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꿀 1㎏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6유로다.
EU는 가공 꿀 대량 유입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1999년 처음으로 수입산 꿀 샘플(표본)을 채취해 설탕시럽 포함 유무를 검사했다. 검사 결과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었다. 설탕시럽이 포함됐는지만 확인하는 검사였음에도 비중이 6%에 달했다. 다른 불순물이 섞인 꿀은 계속해서 유럽 국경을 넘어왔다. 에티엔 브뤼노는 “수입 꿀 검수 체계가 없었다. 검사관 두세 명이 적절한 도구와 예산 없이 열악한 조건에서 일했다.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해마다 꿀 30만t이 판매된다. 에티엔 브뤼노에 따르면 그중 45%가 수입산이다. 그가 속한 양봉조합은 수입산 꿀 검수를 재개하고 가공 꿀 판별 방식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마련해달라고 당국을 압박했다. 그렇게 당국을 재촉하지 않았다면 수입 꿀 정기 검수제도가 생기기까지 시간이 더 걸렸을지도 모른다. 유럽 반부패국(OLAF)이 2021년 11월과 2022년 2월 사이 수입 꿀 샘플을 검수한 결과, 46%가 가공품인 것으로 드러났다.
2023년부터 여러 대응책이 도입됐다. 회원국은 수입하는 꿀이 EU가 정한 정의에 부합하는지를 의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예산과 믿을 만한 검사법이 없는 탓에 수많은 가공 꿀이 여전히 방어망을 통과한다. 검사 결과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면 수입을 통제할 수 없다. EU의 가공 꿀 검수 기술은 아직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2024년 1월 진전을 보였다. EU 의회와 이사회가 ‘아침 식사’에 관한 지침을 개정하는 데 합의했다. 꿀 포장지에 밀원식물 함유량(%)이 많은 순서대로 전부 표기하는 원칙을 세웠다. 그 전까지 ‘유럽연합산’ 또는 ‘비유럽연합산’으로만 포장지에 적혀 유통됐다. 원산지 표기는 각 회원국이 지침을 재량껏 해석해 의무를 부여하도록 했다. 양봉농가는 이 점을 우려한다.
양봉농가의 또 다른 걱정거리는 밀원식물 표기 의무가 2년 뒤에야 적용된다는 점이다. 다른 새 규정은 발효되기까지 5년이 남았다. 그중 양봉농가가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규정은 이력추적제다. 이력추적제가 시행되면 꿀 생산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가공꿀을 선별할 수 있다. 그 밖에 살균하거나 여과한 꿀(꽃가루를 걸러내는 방법), 숙성이 덜 된 꿀의 판매를 금지하는 제도도 도입이 시급하다.
에티엔 브뤼노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다 법으로 만들어진다면 오늘날 진열대에서 판매되는 꿀 중 20%만 남을 것이다. 수입은 해야 한다. 유럽은 소비하는 꿀의 60%밖에 자체적으로 생산하지 못한다. 그마저도 지구온난화로 더 힘들어졌다. 몇몇 지역에선 밀원식물이 사라져간다”고 했다. 그는 수입 꿀 감시를 강화하되 고품질 꿀을 더 많이 수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양봉인구는 총 6만 명이다. 양봉사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인구는 2500명이다. 프랑스 전국양봉산업협회에 따르면 2023년 프랑스에서 생산한 꿀은 총 2만t이다. 프랑스인은 매년 꿀을 약 4만t 소비한다. 생산이 소비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보호제도 부족한 양봉 시장
그럼에도 프랑스 양봉농가는 판매처를 찾지 못해 재고를 쌓아둔다. 고품질 꿀 가격이 많이 올라서 소비자가 구매를 주저한다는 게 대형유통업체의 설명이다. 결국 양봉농가는 손해를 감수하고 가격을 내린다. 베리 지역에서 벌통 1200개를 키우는 마뉘엘 로제도 사정이 비슷하다. 영세농업인연합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그는 생산한 꿀의 80%를 도매로 판매한다. 재고를 없애고 수익을 내려면, 1㎏당 생산 단가 6유로보다 낮은 4유로(약 6천원) 미만에 내놓아야 한다. 마뉘엘 로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가공한 가짜 꿀이 세계 시장에 대량으로 유통되는 탓에 이 지경이 됐다”고 말했다.
프랑스 영세농업인연합회는 정부가 위생 규정과 수입 꿀 가격하한제 규정 등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제르 지역에서 벌을 키우는 뮈리엘 파스칼은 “정책 의지 없이sms 불공정 경쟁에서 프랑스 농가를 지킬 수 없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양봉농가 수가 적은 것도 양봉산업이 부진한 이유로 꼽힌다. 영세농업인 조합기구에서 업계를 대변할 사람이 별로 없다 보니, 농업장관과 대화할 자리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프랑스 양봉농가가 목소리를 전달하는 창구를 마련하고자 연합체를 꾸렸다. 전국양봉산업협회, 영세농업인연합회, 프랑스양봉업자연맹(FFAP), 전국양봉업조합(SNA)이 뭉쳤다. 연합체가 요구하는 건 꿀 수입 제한으로 양봉농가의 소득 보장·보호, 프랑스산 꿀 가치 향상 의무화다.
마침내 프랑스 양봉농가의 목소리가 하원에 전달됐다. 마리 포숑(녹색당), 루익 프뤼돔(불복하는프랑스당), 피에르 모렐아뤼시에(자유독립해외영토지역그룹), 세 하원의원은 프랑스 양봉농가 지지를 선언하며 하원 기자회견에서 “양봉업 미래가 위험하다. 그들이 직면한 위기는 생태계의 미래를 위협한다”고 말했다.
양봉농가는 꿀을 포장해서 상품화하는 양봉업체 파미유미쇼 역시 문제라고 지적한다. 파미유미쇼의 대표 상품은 ‘허니문’이다. 2024년 5월21일 프랑스소비자연맹-크 슈아지르(L’UFC-Que choisir)는 파미유미쇼가 소비자에게 확실하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꿀의 실제 원산지를 밝히지 않았다며 업체를 소비자 기만 상업행위로 고발했다. 소비자연맹은 포장지에 적힌 글귀가 소비자로 하여금 수입산 꿀을 프랑스에서 채집한 꿀로 오해하게 만든다고 고소 이유를 밝혔다. 이 같은 행위가 다름 아닌 ‘프렌치워싱’(프랑스산 위장)이라고 비판했다. 업체는 혐의를 부인한다.
꿀벌은 어떻게 지내나?
이렇게 복잡한 정치·경제 상황에 환경 문제도 엮여 있다.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얼 살충제를 비롯한 농약은 꽃을 오염시키고 그 꽃에서 꿀을 따는 벌을 농약에 중독시켜 죽인다. 더 심각한 건 농약에 오염된 꽃가루가 벌을 매개로 벌통까지 옮겨간다는 것이다. 몇십 년 전부터 살충제가 토지 개발과 더불어 수분 매개 동물을 죽이는 주범으로 지목되는 까닭이다. 무분별한 토지 개발은 꿀벌 서식지를 파괴한다. 몇몇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도 벌통에 치명적이다.
루이 피스테르 전국지방양봉위생조직연맹 회장은 양봉농가에 가장 큰 위협으로 바로아(Varroa)응애를 꼽는다. 바로아응애는 꿀벌 알뭉치에 숨어 있다가 유충이 부화할 때 몸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 진드기다. “꿀벌의 포식동물로 알려진 장수말벌(아시아 자이언트 말벌) 역시 프랑스 전역에 퍼져 있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꿀벌 집단폐사의 20%는 장수말벌이 초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많은 양봉농가가 마땅한 대응 수단을 찾지 못해 속절없이 피해를 보고 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정지비행하는 말벌의 특성을 이용해 벌집 앞에 덫이나 방어막을 놓으면 말벌이 벌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바로아응애는 유기농법이나 재래식 농법에서 예방책을 찾을 수 있다.
기후변화도 꿀벌에 영향을 미친다. 집약농업과 산울타리·목초지 파괴 등으로 인해 꽃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양봉 환경이 변화하면서 농가 일손도 더 바빠졌다. 벌통을 설치할 장소를 찾고 꿀벌에게 영양제를 먹이고 포식동물로부터 벌통을 지켜야 한다. 크리스티앙 퐁 전국양봉산업협회장은 그렇게 공들여서 꿀벌을 키워도 “30%가 매년 죽어나간다”고 말했다.
꿀 가격 외에 꿀벌의 건강도 양봉농가의 걱정거리다. 이제는 그것을 우리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프랑스 국립농업식품환경연구소(INRAE)는 “전세계 농작물의 80%가 곤충 수분 활동으로 생긴다. 그중에서도 꿀벌 활동이 일등”이라고 밝혔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4년 7월호(제448호)
Le faux miel, une vraie menace pour les apiculteurs français
번역 최혜민 위원
안느 도쿠아 economyinsight@hani.co.kr